짤로 오늘 결제한 내 생애 두 번째 총이자 현대 기관총 최애인 M60 올리고 시작하려한다.


말투가 이래서 미안하지만 사람이 원체 거칠어서 그렇더라. 너그러이 양해를 부탁하고 읽을 사람은 읽어주길 바란다.



때는 1997년, 코찔찔이가 유치원을 다닐 적이다. 여리고 물러터진 사내놈은 처음으로 엄마랑 떨어져서 유치원이란 걸 다녀봤고 그 전에도 일찍 맞벌이였던 우리 어머니는 그 놈을 집에 놔두고 출근을 하러 많이 다녔다. 


그 덕에 여섯 살 적부터 다섯살 차이나는 남동생 분유를 맥이고 놀아주고 혼자 그렇게 집에서 지냈던 장남인 놈이었다.

그런데 이 놈은 몰랐었다. 다섯 살이 되자마자, 그리고 형이 됐다는 타이틀이 달리자 마자 혼자 집에서 졸지에 애기 보면서 지내야 했던 부담감과 가슴으론 납득할 수 없는 엄마의 출근으로 인한 집의 그 커다란 빈 자리가 유치원에 가서도 트라우마가 될 줄은.


그렇게 유치원 때 부터 유달리 감정표현이 또래보다 과하고 큰 주제에 머리는 좋아서 여섯 살 밖에 안 된 꼬맹이가 미국인이랑 현지 아이들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며 자연스레 대화하고 읽었던 모든 책의 내용을 페이지 수, 줄 수까지 죄다 외울 정도로 머리가 좋았던.


그렇게 뛰어난 능지를 휘두르지만 그 힘이 그렇게 엄청난 것인줄 지 또래들도, 지 자신도 몰랐던 그 꼬맹이는 유치원 또래들의 이질감에서 비롯된 빨라도 너무 빠른 따돌림 생활을 겪으며 자기랑 노는 몇 유치원 친구들과 아는 밑의 반 유치원 동생이랑만 지내며 아픈건지 아닌지도 모른채 유치원 생활을 했다. 


*TMI: 여기서 저게 왜 놀림감이고 따돌림감인지 이해가 안 된다고 할 사람들이 있을텐데, 지방 출신 현재 20대 후반, 30대 초반 정도면 이해할 거다. 특히나 농어촌 특징이 강하고 지리적으로 구석진 곳에서 살았던 챈럼들이라면 더욱 잘 이해할 거다. 

지방에선 지들이랑 다르면 일단 두려워하고 배척하고 자기 자신들이랑 동화되지 않거나 못 하면 루저, 빙신 취급 하는 게 깡촌이고 이 꼬리표는 심하면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달고 다니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이 꼬맹이는 당시 지가 왜 그렇게 루저 메이킹을 당하고 살아야 했는지, 그리고 지 엄마도 그런 게 따돌림이란 것인지 인식조차 못 한채 생애 두 번째 트라우마를 안고 유치원을 졸업한다. 그러고 간 곳이 초등학교.


당연히 이 꼬리표는 초등학교라는 특유의 대형 좁고 닫힌 사회 안에서 역시너지를 폭발 시킨다. 적어도 그래도 저학년까진 괜찮았다. 왜냐, 애들이 적어도 이 때는 악의는 없었고 이 꼬맹이 지도 악의가 없다 라는 걸 주제에 머리가 커서 인지를 하고 있었고 사람을 엄청 믿는 놈이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고학년, 그러니까 4학년 2학기에 터진다. 사실 남정네 챈럼들은 알 거다. 보통 이 때쯤부터 애새끼들 대가리가 크기 시작하면서 삐딱선 쳐 타고 우월감에 학교 애들 줘 패고 댕기는 새끼들이 하나 둘 대가리를 들이밀고 개 중엔 남자만 있는 게 아니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지들끼리 파벌 쳐 만들고 우루루 몰려 댕기는 여자도 있는 거.


그렇다. 이 꼬맹이는 남자 일진, 여자 일진 할 거 없이 딱 여섯명을 제외하고 모든 일진들의 타겟이 되었다. 안 그래도 여리고 순진해서 굉장히 감수성이 예민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이 꼬맹이의 키는 또래보다 한참 작은 141cm이었다. 심지어 그렇다고 키를 제외한 발육상태가 뭐 좋은 것도 아니었고 겁도 많은 물러터진 순딩이 그 자체인지라 모든 걸 그냥 당해야만 했다.


지속되는 폭력과 지옥의 나날 속에서 엄마는 이게 학교 폭력/집단따돌림이란 것을 여전히 인지하지도 못 했고 담임선생님한테나 들어서 이 문제를 인지했던 수준이었다. 꼬맹이 엄마는 어지간히 이게 충격이고 당신한테도 트라우마였는 모양인지 그 때부터 다니던 회사 본부장 자리까지 올라가놓고 칼같이 퇴사해 버린 채 아이의 심리를 알려 했던 모양인지 ADHD/PTSD 등, 온갖 정신질환에 대한 책들을 사들이고 읽기 시작하며 아이 손을 붙잡고 병원을 갔다.


애엄마는 그 때, 이 꼬맹이한테 거짓말을 했다. 솔직하게 어느 병원이다라고 얘기하면 나중에 자연스레 알게 되어 충격이 크진 않았을 건데, 키 크게 해 주는 병원이라고 거짓말을 해 놓고 정작 먹인 약은 리탈린이었다.


그렇다. 리탈린. 아는 사람은 알 거다. 이 꼬맹이의 IQ 수치는 놀랍게도 138. 지는 성인이 된 지금도 별 느낌이 없지만 이게 알고보면 상당히 높은 수치다 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렇다 IQ와 리탈린이라는 약이 나온 시점이다. ADHD란 말이다. 


메틸페니데이트 처방이 한국에서 시험적 운용이 되던 때고 리탈린이라는 지금이랑은 차원이 다른 원시적 형태의 경구투입 약물이다. 


지금 이 메틸페니데이트 처방을 받고 있을 어디 어느 챈럼들이야 콘서타라는 약을 처방 받겠지만 그 때 리탈린은 동그란 모양의 단순한 밀가루 뭉치 형태였다. 


즉, 투입량 체내 조절이 전혀 되지 않는 아주 원시적이고 직관적인 약이다. 먹고 두 세시간이면 속칭 약빨 다 날아가는 그런 약이었단 뜻이다.


꼬맹이는 무서웠다. 약을 먹는 그 때마다 항상 종이 뒤집듯 뒤바뀌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약에 대한 알 수 없는, 기저면에서 은근히 올라오는 두려움을 느꼈지만 애 엄마가 먹으라 하는 약이었다. 엄마가 먹으라는 약이니 문제가 없을 것이고 자기를 위한 게 당연할 것이기에 꼬맹이는 그냥 먹으며 살았다.


그러기를 2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삐리가 된 이 꼬맹이는 1학년 개학 첫 날부터 알 수없는 공포를 느꼈다. 초등학교 시절 자기가 당했던 2~3년간의 지옥을 떠올렸던 꼬맹이는 발랄하고 대담한 모습을 보여 소위 "쫄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고 그렇게 사흘의 학교 생활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인 나흘 째, 힘의 상하관계 파악이 완료된 반의 들개들은 이제 타겟을 정하기 시작한다. 물론 그 타겟은 이번에도 이 꼬맹이였다. 초등학교 시절의 소문이 학원을 통해 모조리 접하게 된 시 최고의 일진들은 이 꼬맹이를 당연히 가만 놔둘 마음이 없었다.


빵셔틀, 물건 보관셔틀, 체육복/교과서 강탈, 각종 숙제셔틀...


이와 동반된 수많은 폭행과 폭언 욕설들. 14살 코흘리개가 견디기엔, 가뜩이나 마음에 흉이 잔뜩져서 초딩티를 벗는 것 조차 힘들어서 아직 중삐리라는 관념도 생기지 못 했던 이 꼬맹이가 견디기엔 무섭고 무겁고 잔인한 일들이었다.


그리고 중1 여름방학식날, 학교에서 가장 설치고 다니는. 동시에 가장 싸움을 잘 하는 놈을 이 꼬맹이 앞에 어떤 일진 졸개 하나가 데려온다. 


"엄마 욕을 하면 얘 싸움 걸더라." 


옆에 있던 잔챙이 졸개 놈이 그 일진에게 귀띔을 하자마자 당연히 신난다면서 일진은 요즘 기준으로도 선 오질나게 쳐 넘는 개쌍 패드립을 마치 자신이 쇼미더머니라도 쳐 기어 나온 듯 뱉어대기 시작했다.


꼬맹이는 그 뒤 기억을 잃었다. 새하얘진 시야가 다시 돌아오고 나니 눈앞에 보였던건 꼬맹이 지 보다 20~30cm은 더 컸던 그 일진이 거의 부러진 각목 더미 마냥 교실 구석에 쳐박혀 있었고 그 찐따 졸개 놈은 꼬맹이를 뒤에서 붙잡고 뜯어 말리고 있었으며 교실 온갖 잡기가 죄다 살벌하리만치 널브러지고 던져져 있었던 장면이었다.


당시 이 꼬맹이는 얻어맞는 자신이 싫어서 복싱을 잠깐 배우고 있었고 의외로 재능이 있었는지 힘이 꽤 좋아 당시 아이들에게 추천되지 않았던 웨이트 트레이닝을 지 혼자 하고 있었다. 이러다보니 힘이 꽤 좋았고 마른 체구와는 다르게 완력이 굉장했던 모양인지 힘을 꽤 잘 썼다. 


좌우간 이 일진은 그 날 뒤로 쪽팔림을 견디다 못 해 전학을 갔고 방학 동안 학교를 나가는 방학 보충수업이 살아있던 2000년대 초중반 시절인지라 학교를 여전히 나가야 했지만 방학 동안 며칠간의 조용함은 찾아왔다.


허나 그것도 단 며칠 뿐. 당시 방학식 끝나고 학교가 텅텅 비어서 그 장면을 본 사람이 없고 오히려 허황된 형태로 퍼진 소문만 나돌아 다닌지라 이 꼬맹이가 학교를 뭐 제패했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허무맹랑하고 말도 안 되는 소문이 전 학년에 나돌기 시작했다.


당시 키 151cm였던 이 꼬맹이는 혼자 온 몸으로 전 학년들의 쌈박질을 받아내야 했다. 그렇게 얻어터지고 다니는 것도 며칠, 

적응을 한 꼬맹이는 학교의 모든 쌈쟁이들을 역으로 싸움을 걸어올 때 마다 지 혼자 죄다 패고 다니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들어온다는 사실. 상황이 나아지기는 커녕 더 고단하고 어려워지자 이 꼬맹이는 부모에게 알리지 말자는 결단을 내린다. 왜냐면 꼬맹이의 아버지는 지역 시청에서 근무하는 시청 공무원이었는데, 얼마나 일을 잘 하시는지 도청, 심지어 정부 공무원들과도 일을 하고 다니시는 지방 엘리트 공무원이었다. 


그런 아버지의 커리어에 흠을 내기 싫었던 꼬맹이는 그 여리고 감수성 개터지는 유리멘탈로 소위 학교 깡패들과 혼자 싸워야했고 혼자 울고 혼자 피 흘려야 했다. 


그렇게 중1을 지내고 결국 중2 시절, 곪으면 썩어 터지기 마련이랬던가, 꼬맹이는 정신적으로 피폐해져만 갔다. 더 비참한 건 그렇게 모든 학교 깡패들을 줘 패고 다님에도 왕따는 해결될 기미가 전혀 안 보였던 것. 이것이 꼬맹이를 흑화시키는 결정적인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한다.


정신적/육체적으로 도저히 사람이 사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던 꼬맹이는 용기를 내어 담임선생님께 사실대로 있는 그대로 모든 걸 다 말했다. 당연히 집에도 이 이야기가 들어갔고, 아들이 싸움꾼이었다 라는 잠깐의 오해가 풀리자 아버지는 대노 하셨고 어머니는 격분과 동시에 절망과 한을 느꼈다.


꼬맹이의 중학교 왕따/싸움 생활은 다행히 여기서 일단락은 되게 된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고등학교에서 시작된다. 고등학교에 입학해 고삐리가 된 이 새끼는 아직도 여리고 물러터고 순진해 빠진 그 사상을 바꾸질 못 한채 초등학교의 면모가 아직도 남은 상태였고, 꼬리표에 싸움 연대기까지 온 학교에 소문이 쫙 퍼진 상황에서 

당연히 남자 고등학교라면 이걸 그냥 둘 리가 없는 건 다들 알 거다.


꼬맹이는 정말 여태까지 지가 겪지 못 했던, 그리고 앞으로도 겪을 일이 없을 것이고 없어야 할 300:1의 집단 폭력을 경험한다.


정말 농담아니고 온 학교가 이 꼬맹이를


...어...


요새말고 억까 한다고 하나? 


아무튼 이 고삐리의 인생을 300명 남짓의 동갑내기 남자새끼들이 죄다 억까를 하기 시작한거다.



정신이라고 할 만한 무언가가 남아있길 바라면 그건 역적일 것이다.


결국 이 꼬맹이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고 야자 끝나고 돌아와 샤프로 지 오른 팔목을 눈 찔끈 감고 그어버렸다.


근데 존나 웃긴게 뭘까? 


그거 마저 빗나가서 동맥도 아니고 오른 팔목 새끼손가락 힘줄 그 옆의 살을 파버렸다. 


거기에 이 자살시도로 스스로 쇼크 기절했다. ㅋㅋㅋㅋ



그렇다. 자살마저 실패한 거다. 결국 이 새끼 부모님은 또 다시 극대노했고 아버지는 자신의 인맥과 명성으로 학교에 찾아가 해결했고 어머니는 지금까지 애한테 했던 잘못들의 죄책감까지 한꺼번에 대폭발하면서 학교를 찾아가 그야말로 교무실을 완전히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렇게 다 포기했던 꼬맹이 찐따새끼는 중학교 시절 만났던 ㄹㅇ ㅂㄹ새끼 하나랑 지금의 고향 친구놈들의 받쳐줌으로 간신히 회복하고 고등학교를 보란듯이 졸업해 생물학과에 진학했다.


그러고 이 새끼는 대덕연구단지까지도 갔다 오기까지 하는 쾌거를 이룩한다.



그래 이 쯤되면 다들 솔직히 누구 얘긴지는 알 거다. 본인 얘기 당연히 맞다. 


뒷이야기 약간 더 하자면 시비 털었던 당시 고등학교의 한 살 아래 예비 조폭대원놈 줘 패놨더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지역 조폭 대원 놈들이 당연히 고등학교 후배니까 어찌저찌 아는 사이가 됐고 이래저래 서로 죽고 못 사는 의형제 급 사이가 되어 나도 모르는 새 조폭들과 연이 꽤 크게 닿게 되는 속칭 '반달'과 비슷한 킹반인 생활을 하게 되었다.


심지어 우리 엄니는 내 그 어릴 적과 내 학창시절 동안 자기가 했던 몹쓸 일들과 알고보니 해주어야 했던 일들이 있었지만 못 해줘서 애가 저렇게 지금도 곶통받는다는 자격지심과 무지막지한 상처를 안고 있고, 자신의 상처 때문에 결국 지금 내 나이 32살, 대덕 연구단지 나온지 5년 째 되는 지금도 냉전 중이고 사실상 엄니랑은 반쯤 의절 관계다. 오로지 아부지만 모든 걸 대화해서 내려놓으셨고 날 있는 그대로 받아주셨다.


왜 이렇게 얘기가 길었냐고? 심지어 이게 왜 에어소프트 챈에 올라오냐고?


고등학교 당시  날 달래줬던 게 존나 웃기게도 M1 개런드와 셔먼 전차였다 ㅋㅋㅋㅋㅋㅋ

왜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는데 뭔 계기인지 기억조차도 안 나기는 하지만 저 두개가 날 달래주고 저것들을 보고 있는 그 때만 되면 오만 잡생각이 싹 사라지고 평안이 찾아오더라.


그 때부터 밀덕질을 시작했고 파고 파고 파다보니 미빠/소빠 이중생활을 하게 됐다 ㅋㅋㅋ


대덕연구단지도 사실 내 성질머리 때문에 내 스스로 내팽개친 거에 가깝지만 어쨌든 그래도 어릴 적 꿈이었던 과학 연구원 생활도 해 보기도 했고 중고등학교 시절을 저 모양으로 살다보니 사람 새끼가 악바리 깡다구만 남더라. 


주변에서 나 보고 욕데레/츤데레라고 하는 성격도 됐고...


사람 새끼 근본은 또 여려서 그런가 싶다. 


쓰잘데기 없는 소리가 많았는데 어쨌든,



밀덕질 초창기였던 고1 당시부터 난 진짜 이 에어소프트건을 정말 진심으로 갖고 싶었던 그 응애기는 이제 32살이 되었고 지방을 등지고 상경해서 서울에서 혼자 살고 있다.


19년부터 올해 이번 달까지 서울에서 이렇게 살다가 살다가 집안+그 외 주변의 온갖 억까가 터져나오면서 결국 몸이 망가졌다.


건강 챙겨라 챈럼들아. 20/30대라고 방심하지 마라 지방간 심화돼서 간경화 초기까지 왔더라. 심지어 혈압까지 갑자기 폭등하면서 요 며칠전에 한 20~30분 실신했었고...


물론 이렇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고 나도 몰랐다. 그럼에도 난 지금이 행복하다. 집안이랑 냉전 중이고 지방 친구 새끼란 놈들은 딱 한놈 빼고 나 걱정해주는 새끼 단 한놈도 없을 뿐더러 타지에서 사실상 단신으로 홀로 인생 사는 거라서 처음 엄니랑 저렇게 됐을 때는 진짜 우울했다. 


근데 사람 새끼 뒤지라는 법은 없다고 직업이고 건강이고 나발이고 다 날아가서 뒤질 날만 세려고 작정했던 이 ㅈ같은 인생에 한 줄기 빛은 있더라.


내가 뭐가 그렇게 대단한 놈이라고 날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아껴주는 여자친구가 생겼다. 솔직히 이 사람 아니었으면 이미 작년에 없어진 새끼 됐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몇 달 진짜 뒤져라 일하고 지금은 내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모형제작 쪽 일이랑 영상 편집으로 지금 벌어먹....는 직업이다!!


라고 하기엔 좀 어렵긴 하지만 어떻게든 간간히 작업하고 살면서 용돈벌이 하고 있고 알바/막노동 등 닥치는 대로 어떻게든 일 하고 다니는 중이다. 


그렇게 악착같이 사니까 난 몰랐는데 행복이라는 게 이런 건 줄 몰랐다 진짜.


생각들 해 봐라. 


사람 새끼가 ㅆㅂ 인생이 저 개 야랄인데 무슨 놈의 행복이고 무슨 놈의 꿈이냐.


근데 그런 게 있긴 하더라. 심지어 난 이런 게 삶의 행복이다. 라는 건 줄 올 해 진짜로 처음 알았다.



요샌 그래서 아무튼 여자친구도 꽤나 진득한 껨순이고 덕후인지라 내 취미가 이 쪽 밀리터리인 거 인정해 주고 감당되는 선에서 즐기면 상관없다고 까지 해 주길래 지난 5개월 동안 생활비 진짜 ㅈㄴ 쪼개고 쪼개서 모은 70만원 저 M60에 쓴 거다.


이게 뭐라고 ㅅㅂ 눈물이 다 나나 모르겠다. 너무 행복하고 진짜 내 가슴이 다 웅ㅈ...아니아니 따뜻해지더라.


사람 사는 게 이런거구나 싶더라. 



고로 아카라이브 모든 챈럼들아.


뭐 다들 그러고 사는 건 아닐거라 믿지만 만약 무력감과 좌절에 허우적대면서 컴만 붙잡고 내내 주구장창 앉아만 있는 챈럼들이 있다면, 다른 거 큰 필요 없더라.


내가 봤을 적에 지금이 ㅈ같다 느껴지나? 


ㅈ같고 모든 게 개쓰레기 같다고 느껴지나?


그게 느껴지는 그 타이밍에 니들 주변을 둘러보길 바란다.


나는 여태까지 내가 모는 차가 핸들이 고장난 8톤 트럭이라서 주변이고 나발이고 싹 다 밀어 재끼고 부수고 다니느라 몰랐는데, 

ㅈㄴ 놀라운게 난 태운적이 없는 동승자가 조수석에 날 믿고 타고 있고 심지어 뒷좌석에도 또 많이들 타고 있더라. 


그 때 느꼈다. 


"아 ㅆㅂ 내 ㅈ대로 차 몰고 댕겼구나."


왜냐면 난 동승자가 생겼는지도 모른 채 운전했던 개또라이 교통사고범 수준으로 살아왔으니까.


주변을 둘러보길 바란다 진심. 분명 가족이든 친구든 애인이든, 이도저도 아니면 그 누군가가 챈럼들 당신들을 믿고 받쳐주고 봐주고 잔소리 해 주고 같이 울어주고 같이 웃어주고 있다.


진짜 시발 인생 혼자 아니더라. 


이 새벽에 내가 스스로 일어나서 벌은 내 돈으로 내 취미 내가 선택해서 내가 직접 하고 이 취미를 응원해 주는 내 사람이 있으니까 진짜 세상 딴 거 다 필요없더라. 


여친 아니라도 좋다. 친구 없어도 좋다. 가족이 챈럼들 널 버려도 괜찮다.


이 세 부류가 아니라도 그 누군가는 너희들을 위한 사람들이다. 이건 진짜더라.



이 새벽에 찐따글 올려서 미안하고 이 새벽이 이렇게 ㅈ나게 긴 글 올려서 읽기 지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 


그럼에도 여기까지 읽어준 챈럼들이 있다면 너무 고맙고 다들 앞으로 잘 버티면서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가면서 자기 인생 자기 스스로 아끼고 즐기는 그런 사람들이 됐으면 좋겠다.


곧 설인데 다들 다시 한 번 새해 복 많이 받고 올 한해 다들 무탈하게 잘 지내길 빈다.


난 자러 간다. 곧 여친 깨서 자는 지 확인전화 할 시간이거던.


걸리면 ㅈ된다. ㅃ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