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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애덤스(미국 건국의 아버지중 하나, 2대 대통령)


그는 영국의 귀족 정치와 양원제를

매우 호의적으로 생각하면서

민주주의에 대해 부정적 시선이 있었던 사람인데,

여기 그 이유가 있어.


그가 활동했던 당시는 프랑스 혁명이 터진지

얼마 되지 않아 귀족들이 루이14세 따라오너라

돼버리고, 상퀼로트(급진적이고 과격한 하층민들)들이나,

급진적 계몽 사상가들에 의해


절대적 평등, 절대적 자유 이 두 요구를

폭력으로 이루려던 때였어.


이 꼴을 본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나,

여러 보수주의 사상가들이 이 참상을

비판했고, 그 중 하나인 존 애덤스도 말했어.


"견제되지 않은 민주주의에서 도덕은 지속되지 못한다.

절대적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그 자체를 파괴하는데,

그 절대성에 지혜와 절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마지막에 향하는 곳은 전제 정치로의 전락뿐이다."


이것을 오늘 날에 빗대어 보자.

오늘 날 선진국 조무사쯤 되는 느그나라에

이런 전제주의적 씨앗이 있을까?


대충 눈치 챘을 거야. 바로 감성 독재지.

전세계에 퍼져있는 역겨운 PC주의.

절대적 평등주의. 이 두 폐기물들은

자연적 법칙에도 어긋날 뿐더러, 평등한

상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것이

우리가 걸어가야 할 방향인 냥 멍멍꿀꿀

짖어대는 꼴이 한심하기도 하지만,

또 한 편으로 소름돋는 점이 있어.


정부가 그들에게 상투를 잡혀서 이리저리 휘둘린다는 거야.

오랫동안 억눌려있던 계층이 자유나 권력을 얻으면

그것을 '격정적'으로 사용하게 되는데,

자기들 뜻대로 사회가 변모하는 모습을 보면서

묘한 희열감을 느끼지. 바로 '권력'에서 오는.


따라서 그들의 요구와 외침은

정의, 도덕의 궤도를 떠나서 점차 집중된 권력으로

향하고 있어. '감정적 불편' 권력이지.


이번에 오물 기집년 위문편지 사태,

한국 사회 전반에 걸친 씹인지 좆수성 폐해.

그 감성 독재 권력에 기생하려는 인간쓰레기들 등등.


사회 전반에 걸쳐 평화와 질서가 아닌,

혼돈과 분란만을 가져오는 그들의 노력을

막지 못한다면, 그들의 격정 따위가

사회의 지배적 보편 관념이 돼버리고,

억울하게 억압당하고 착취 당해도

아무도 그들을 도와줄 수 없는 거지.

아니, 않는 거지.


그럼 이것을 막기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실천적 방법은 뭘까?


1. 자기 의견을 갖는 거지. 

속 시원한 말을 해줄 타인에게 기대지 말고,

인터넷 커뮤니티에 의존하지 말고,

책을 읽고 사회현상을 보며 추론하는 연습을 하자.

특히 영양가 있는 책은 고전인데,

자유론, 공리주의나 괜찮으면 보수의 정신도 추천함.


2. 적들과 똑같은 수준이 되지 말자.

이건 1번을 지키면 자연스럽게 따라옴.

물론 개병신같은 년들 조롱해도 좋고,

쌍욕을 해도 되는데, 우리가 사용하는

논리 마저 그들처럼 무지성이 되면 안 된다.

걔네는 이미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는데,

이유는 이미 보편윤리로 통용되는 도덕

등 뒤에 숨어서,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마치 보편 윤리 전체에 대한 공격인냥 호도하면서

반격할 수 있는 판국이지. 

그렇기 때문에 싸움을 불리하게 시작할 수 밖에

없는데, 그저 페미 메갈 쿵쾅만 주구장창 떠들면

흡수해야 할 제 3자의 지지 마저 잃는 거야.


설득력은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논리적으로

말하는 사람에게 생기니까.

그 기반이 바탕이 된 이후에 재치를 더해

덜떨어진 꼴통 페미 저능아들에 대한 조롱을

섞어도 오히려 부가적 효과가 생기는 거야.


'그들의 논리는 틀렸고,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라는 인식이 생기는 거지.


끝으로, 우리 존 행님 말씀 듣고 마치자


"절대 권력은 누구나 좋아한다.

전제군주도, 왕도, 귀족도, 상퀼로트도.

그리고

과격하게 평등을 외치는 자들이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