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억울하면 치는 걸로 알려진 조선의 신문고는 의외로 그렇게 유용하진 않았다고 한다


사극투로 보면 억울한게 있는 사람은 신문고를 치면 왕이 바로 즉답해주는 방법을 사용한다고 알고 있었지만 실제론 좀 복잡했다



원칙적으론 신문고는 아래 지방관들한테 허락을 받아야 칠 수 있었고 지금으로 치면 동장 - 구청장 - 시장을 거쳐 신문고 허가를 받고 칠 수 있었고 또 중대한 사안만 칠 수 있었다


그래서 본래 취지는 정말 억울한 사안만 왕이 직접 처리해주마! 에 가까웠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유명무실해졌다



첫번째는 좀 많이 엄격했다


중간에 보고 절차를 단 하나라도 어기거나 아니면 내용이 아주 약간 규칙에 어긋난다면 바로 금부도사가 엉덩이를 찰지게 때리러 내려갔다


두 번째는 별거 아닌 일로 치는 사람들이 점차 늘기 시작했고 이것 때문에 왕이 골머리를 앓은 나머지 성종때부터 신문고 대신 왕이 산책 나왔을때 직접 꽹가리를 치며 호소하는 격쟁이 대세가 되었다



물론 격쟁도 일단 맞고 시작한 걸 보면 조선은 스팽킹국가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