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 진급


소위부터 시작해서 평범하게 진급해서 대령을 지나 준장에 이르면 됨

제일 무난하지만 또 제일 어려움



임기제 진급


대령에 이른 후 정기 진급을 모두 실패한 이후 추가 진급 찬스인 임기제 진급에 붙으면 됨

추가 진급이 원칙적으론 불가하고 준장 진급 2년 후 퇴역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지만 이보다 더 큰 보상은 없음

보통 여군들은 임기제 진급으로 장군에 진급하곤 함



사관학교 교수부장


사관학교 교수는 정년 60세가 보장되지만 단 하나의 예외를 제외하면 장군 진급이 불가능한데 그 단 하나의 예외가 사관학교 교수부장 직위임

대신 진급 2년 후 퇴역해야 하기 때문에 정년 보장이 깨져 약간은 선호도가 갈린다고 카더라



의사가 된 후 교정부이사관 임용


엄밀히 말해 장군은 아니긴 한데 준장과 동격의 자리라 함께 서술함


법무부에서는 10년 경력의 의사를 3급 교정부이사관으로 특채하고 있는데 추가 승진도 불가능하고 교도소에서 근무하는 특성상 지원자가 많지는 않다 카더라



엄청난 전공을 세우기


2차대전 당시 특공대의 지휘관으로 1200km를 날아가 도쿄를 폭격하고 돌아온 제임스 둘리틀 중령은 작전 이후 2계급 특진하여 준장이 됨


재밌는 사실은 둘리틀 장군은 중령 진급도 그 해에 해서 1년에 소령에서 준장으로 진급하는 케이스가 되었다는 점



대령 진급 후 전사


故 오영안 대령은 강릉 무장공비 침투 당시 기무부대를 이끌다 공비의 기습을 받아 교전도중 장렬하게 전사하여 사후 준장 계급을 추서받으심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왕의 마음에 들기


이순신 장군은 충청도 절도사의 부관(현재의 대위)을 하다 선조의 눈에 들어 발포 만호(현대의 전단장, ☆)에 오르게 됨


이후 별과 백의종군을 왔다리 갔다리 하는 밀당의 시작점



타군에서 장군을 달고 국군에 입대하기


김홍일 장군의 경우 중화민국 국민혁명군에서 중장에 진급한 후 귀국하여 대한민국 국군에서 준장 계급장을 수여받음


이후 국군에서도 중장 자리에 오른 그를 농담삼아 국군의 유일한 5성 장군이라 하기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