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1세기 경 마케도니아의 붕괴로 짧은 독립을 맞았던 유대왕국은 로마의 동방원정으로 사실상 로마의 속국이 되어버린다. 물론 형식상의 지배는 헤로데 왕조가 유대왕국을 지배하였으나 실질적인 유대왕국의 통치는 로마 총독에게 있었다.

 


헤로데-유다 왕국

 

 

이시기 유대교는 가장 보수적인 기득권층인 사두가이, 율법학자층 이었으나 사두가이보다는 진보적이었던 바리사이, 극단적 종말론자 였던 에세네파, 유대 독립주의자이자 극단주의자였던 열심당원 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때 세례 요한 이라는 자가 등장하여 지금의 유대왕국과 로마를 뒤엎고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선지자의 등장을 예언하였고 이 예언은 로마와 헤로데왕국이 뒤집어지길 바라던 에세네파와 열심당원들의 큰 지지를 받았으나 헤롯왕에게 사전에 체포되어 세례 요한은 처형당했다.

 

 


세례 요한

 

하지만 문제는 세례 요한따위가 아니었다. 이미 세례 요한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하는 예수 라는자를 예언의 선지자로 지목했고 여기에 예수가 기적을 일으켰다는 소문까리 흘러나오면서 예수는 순식간에 세례요한의 지지자들을 모두 흡수하여 엄청난 세력을 가지게 되었다.

 

더군다나 예수는 단순히 예언만을 반복한 세례 요한과는 달리 민중들을 이끌며 그들을 돕거나 바리사이, 사두가이와 언쟁을 하며 스스로의 신학관과 신념을 드러내는것에 주저하지 않았고 이런 예수의 모습에 에세네파와 열심당원들은 예수를 로마를 전복시킬 차세대 유대왕국 지도자로 낙점하였고 민중과 일부 바리사이들 또한 예수를 유대인의 지도자로 치켜세우기 시작했다.

 

 


에수와 민중들

 

그와중에 예수는 계속 활동을 이어나가 끝없이 세력을 불렸고 단순히 세력을 불리는 것만이 아닌 12제자라는 직속 수하들을 선별해 효율적인 집단관리를 시작, 이제 예수의 세력은 단순한 집단이 아닌 예수라는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 아래에 체계적인 조직을 갖춘 반 로마- 반 유대왕국 세력으로 성장하였고 여기에 로마 백인대장, 베드로 등 군사나 무장에 자신있는 자들까리 흘러들어와 반 군벌화의 조짐까지 보이게 되었다.

 

 


예수와 12제자

 

 

여기에 결정타는 예수의 에루살렘 입성이었다. 이미 스스로를 공공연하게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하고 기존의 교회를 박살내고 새로운 교회를 세우겠다던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은 혁명과 종말을 바라던 열심당원과 에세네파 들에게는 혁명의 신호탄이자 로마와 로마의 돼지였던 헤로데-유대 왕국을 향한 선전포고라고 해석되기 충분하였다.

 

이에 그들은 예수를 "호산나, 이땅의 왕이 되실분." 이라 공공연하게 소리치며 이미 예수를 왕으로 맞이할 준비를 했고 예수의 손가락질 한번이면 로마를 뒤엎어버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예수의 에루살렘 입성

 

 

하지만 그들의 바램과는 달리 예수는 군사적 활동을 하지 않은채 예루살렘 내부에서 제자들과 같이 밍기적 거리고만 있었다. 사실 예수는 율법학자와 현 유대왕국에 비판적이었던것과는 달리 로마에게는 "카이사르의것은 카이사르에게로" 라는 말을 할정도로 그리 적대적이지 않았다.

 

거기다 예수는 무력활동을 그리 선호하지 않았고 결국  에세네파와 열신당원이 바라고 있던 혁명은 시작되지 않았다. 이에 예수에게 실망한 일부 에세네파와 열심당원들이 탈주하기 시작했고 이때에 맞추어 사두가이들은 눈엣가시 같았던 예수를 조지기 위해 로마를 끌여들었다.

 

안그래도 예수의 이해하기 힘든 행보에 분열되고 있었던 예수의 세력들은 로마가 개입됬다는 정보가 입수되자 급격하게 흔들렸고 마침내 12제자중 한명인 유다가 예수를 배신, 예수를 로마에 반역한 반역자로 지목하였고 예수를 체포하기 위해 로마의 군대가 진군하였다.

 

이 와중에도 예수는 무대응으로 일관했고 제자들중 일부가 무력시위를 감행하려했으나 실패하여 결국 예수의 세력은 사분오열되고 예수는 체포되었다.

 

 


체포되는 예수

 

 

하지만 로마 입장에서는 예수를 손쉽게 체포했다고 해서 끝난게 아니었다. 비록 예수의 세력이 분열되고 흩어졌다고는 하나 아직 그 세력은 강대했고 예수가 있는한 언제다시 집결하여 로마를 위협할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섣불리 처형한다면 그거야말로 이미 충분히 무르익은 유대인의 반로마감정을 폭발시키는 일이었고 줄기차게 예수의 사형을 주장하는 유대 기득권층을 무시했다간 이건 이거대로 혁명이 터질 각이었다.

 

결국 유대총독 빌라도는 영리하게 이 문제를 해결했다. 바로 예수의 처형 책임을 유대 기득권층에게 떠넘기는 것으로 자신은 도장만 찍고 진행과정은 모두 유대인 기득권층을 얼굴마담으로 내세움으로서 모든 예수세력의 분노의 화살을 유대 기득권층으로 돌린후 재빨리 예수를 처형하여 예수의 잔존세력을 와해시켰다.

 

 


십자가에 처형당한 예수

 

 

 

하지만 처형후 예수가 다시 부활했다는 소문이 예수의 직속 제자들로 부터 시작되었고 이건 빌라도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여기에 사두가이를 비롯한 유대 기득권층의 안일한 대응까지 겹쳐지면서 순식간에 예수의 추종세력들은 다시 집결하였고 이는 초기 기독교 세력의 근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