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딴소리로 들릴 순 있지만 

사회적 신뢰라는 개념은 상호 호혜성(Mutual Reciprocity)을 기반으로 한다.

뭔 근첩단어냐면 그냥 다음절어를 좋아하는 학자들의 산물이고 별거 없다.


상호, 서로

호혜성, 베푼다는 소리다.


나라는 나라답게 국민은 국민답게,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행동하면

역할에 맞는 대접과 처우를 해 준다는 것이 사회적 신뢰란 거지.




90년대 말은 그 신뢰가 버티다 버티다 발현된 마지막 순간이다.


6.25에서 나라 지키고 베트남, 독일에 파병 파견 가고 

군부독재 하에서도 나라 말 잘 들으면 잘 살 수 있는 사회라는 믿음은 계속 유지되었지만

언제나 믿음은 통수칠 때 단기적 개꿀을 빨 수 있는 법이다.


그래서 나라는 꾸준히 개인을 배신했고

이제 개인도 나라를 믿지 않는다.




21세기가 왔고 세상은 본격 고용유연화, 양극화, 부익부 빈익빈으로 가득해졌다

이제 아무도 내가 열심히 산다 해서 누군가 미래를 보장해 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결혼해서 애만 낳으면 잘 살게 되어 있다는 환상도 깨진 지 오래다.



아무도 내가 보낸 믿음에 호응하지 않는다.

그저 'ㅋㅋㅋㅋ호구새킼ㅋㅋㅋㅋ' 하고 비웃을 뿐.

그리고 그것은 지극히 당연하며 추악한 현상이다.


신뢰는 사회적 자본으로 불리기도 한다.

흥청망청 자본을 다 까먹었으면

다시 축적하는 데 엄청난 시간이 걸리는 건 자명하다.




이제 아무도 나라를 믿지 않는다.

국방의 의무는 군캉스가 되고 사회 구성원의 재생산은 독박출산육아가 되는,

아무도 병사와 부모를 존중해 주지 않는 세상에서 

'또 배신당할 것을 감수하고' 돌반지를 내놓으란 건 정말이지 더러운 엘리트의 오만이다.



느그나라는 자신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가치가 없다고 셀프인증하고 있다.

화려한 꽃을 피우고 있지만 밑둥이 썩어 들어가는 나무를 보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