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희생자를 만든 2차세계대전은 미국 - 소련 - 영국이 주축이 된 연합국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추축국을 구성해 연합국이 만든 기존질서를 붕괴시키려 했던 독일 - 일본 - 이탈리아의 전력도 만만치 않았다. 전쟁종전 2년전까지만해도 추축국은 5대양 6대주에서 연전연승을 했기 때문이다.

결국 2차대전은 추축국이 이겼을 수도 있었던 전쟁이었던 셈이다. 여기서 만약 추축국이 이겼다면 전 세계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당연히 아래부터 전개되는 내용은 모두 가정(If)이며 개인적인 생각이다. 2차대전 종전이 1945년이 아니라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벌어졌던 1943년 2월이고 독일의 승리로 끝났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위키피디아에 있는 게르만 제국의 가상 영토
독일

우선적으로 게르만족 - 독일어권 국가들을 모두 독일영토에 포함시켰을 것이다. 히틀러는 언제나 게르만 우월-순혈주의를 주장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한 동유럽 평원도 독일영토에 들어갔을 확률이 높다. 히틀러는 자신의 저서 <나의 투쟁>을 통해 독일인이 살기에 현재의 영토는 너무 좁으며 하루 빨리 동유럽 평원으로 거주지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일은 오늘날 미국의 지위를 누리면서 초강대국으로 거듭났을것이다. 히틀러의 책 <나의 투쟁>이 현실화가 되는 셈.

일본의 최대영토
일본

일본이 추축국에 합류한 이유는 대륙진출 - 자원확보다. 일본은 진주만 공습에 성공한 것을 시작으로 석유, 고무, 목재등 천연자원이 풍부한 동남아시아 전역을 석권했다.

고로 일본은 일본인들의 생활공간 - 자원확보를 위해 동남아시아를 고스란히 일본의 영토에 포함시켰을 것이다. 더 나아가 영국의 식민지인 인도, 그리고 연합국 중 하나였던 호주에도 영향력을 미쳤을 수도 있다.

단 일본이 중국까지도 삼켰을지는 미지수다. 중국은 국공합작 후 일본을 끊임없이 괴롭혔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본이 중국과의 전쟁에서 병참선이 길어짐을 문제삼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일본이 2차대전의 승전국이 되었어도 중국을 삼킨다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탈리아의 독재자 무솔리니
이탈리아

이탈리아는 추축국의 민폐와 같은 성격의 나라였다. 전쟁초반만해도 에티오피아, 소말리아등을 점령하며 승승장구했으나 이후 연패를 당하면서 추축국 중 가장 먼저 항복하게 된다.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벌어질 당시에도 이탈리아가 연패를 한다는 사실은 변함 없었다.

하지만 추축국이 2차대전에서 승리했다는 가정을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에티오피아, 소말리아는 물론이고 북아프리카에 대한 지배력, 그리고 사보이와 같은 프랑스 남부를 이탈리아 영토로 편입했을 확률이 높다.

단 독일 - 일본과 비교해 분명 승전이나 전과가 확연하게 적다. 고로 승전 이후에 따른 이득 분배에 크게 손해를 보면서 불만을 가졌을 확률은 충분하다.

연합국의 풍자만화
영국과 소련

영국은 본토를 독일에 빼앗기진 않았을 것이다. 히틀러는 독소전을 일으키기 직전에 영국과의 화의를 원했기 때문이다. 단 상당수의 식민지를 추축국에 내줬을 수도 있다.

반대로 소련은 모스크바 서쪽의 영토를 모두 독일에 내줬을 수도 있다. 앞서 말한대로 히틀러는 언제나 소련의 영토를 미래 독일인이 거주해야 할 영토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곡창지대이자 소련에 적대적이었던 우크라이나, 발트3국등은 독일의 영토에 편입되었을 것이다. 고로 소련은 동토의 땅만 보유하게 될 것이다.

또한 두 나라는 전쟁을 주장했던 처칠과 스탈린이 종전과 함께 모두 권좌에서 내려왔을것이다. 전범재판까지는 아니더라도 자국의 따가운 눈총으로 인해 미국, 캐나다등으로 망명해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을 확률이 높다. 주변의 멸시와 조롱, 그리고 패배의식에 젖어서 말이다.

단 2차대전 이전부터 공포정치를 펼치며 수많은 반대파를 갖고 있었던 스탈린이 멀쩡하게 망명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는 미지수다.

성조기
미국

최근 방영되고 있는 미드 <높은성의 사내>는 2차대전에서 승리한 독일 - 일본에 의해 미국이 동서로 분열된 가상의 역사를 그려나가고 있다.

허나 당시의 정황을 볼때 2차대전에서 추축국이 승리했더라도 미국 본토를 점령했을 확률은 낮다. 당시 군사기술로는 대륙을 넘어 전면전을 한다는 것은 무리였기 때문이다.

독일이 미국 본토를 치려면 대서양을 가로질러야 하며 일본이 미국을 점령하려면 태평양을 횡단해야한다. 이는 지금도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추축국은 영국과 마찬가지로 미국과 평화조약을 맺었을 것으로 보인다. 조약내용은 독일과 일본의 유럽 - 아시아 점령을 인정하며 다시는 해당 영토에 대한 간섭을 하지 않겠다는 것 이주가 될 확률이 높다.

미국은 자신들의 본토는 보전하겠으나 오늘날과 같은 초강대국의 지위를 누리긴 어려웠을 것이다.

파리 에펠탑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는 히틀러
프랑스

2차대전이 추축국의 승리로 끝난다면 가장 암울할 것 같은 나라가 바로 프랑스다. 히틀러가 2차대전을 일으킨 이유 중 하나가 프랑스의 완전한 파괴였기 때문이다.

히틀러 개인적으로도 프랑스를 상당히 미워했다. 독일이 1차대전뿐만 아니라 유럽 역사에서 기를 펴지 못했던 것은 프랑스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히틀러는 비씨정부를 프랑스전역으로 확대해 파리를 수도로 하는 새로운 비씨정부를 만들었을 확률이 높다. 이는 곧 프랑스가 독일의 괴뢰국가가 전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될 경우 프랑스의 기름진 영토는 독일인들을 배불리 먹이기 위한 대형 곡물창고로 변하게 된다. 반대로 프랑스인들은 먹을 것이 없어 예전 보불전쟁처럼 키우던 강아지는 물론 동물원의 코끼리까지 잡아먹는 비굴한 신세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게르마니아의 상상도 및 조감도
세계의 수도 게르마니아

히틀러는 전쟁이 승리로 끝나면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을 게르마니아로 변경해 세계의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실제로 히틀러는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를 게르마니아 건설 총담당자로 임명해 계획을 실행시켰다. 

국민대회당과 세계의 랜드마크들과 비교한 그림

게르마니아의 랜드마크는 국민대회당이다. 바티칸의 성베드로성당을 모티브로 한 국민대회당은 높이 320m의 엄청난 규모로 계획되었다. 이 곳에는 히틀러의 집무실와 전당대회장등이 들어설 예정이었다.

또한 국민대회당을 중심으로 4개의 고속도로가 지나가며 광장앞에는 높이 110의 1차대전 위령비가 세워질 계획이었다고 한다.물론 유태인 및 2차대전에 잡은 연합국포로들이 인부로 동원되었을 것이다. 

다카우 수용소의 유태인들
유태인들의 운명

유럽에 거주하는 유태인들은 완전히 사라졌을 확률이 높다. 히틀러는 전쟁을 하는 와중에서도 유태인을 학살한 인물이다. 전쟁이 승리로 끝났다면 기세가 올라 유태인학살에 더 열을 올렸을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유럽의 유태인들은 미국, 남미, 그리고 제 3세계 국가로 떠나지 못한다면 다카우, 아우슈비츠와 같은 강제수용소에서 독가스를 마시고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대동아공영권 홍보 포스터
대동아공영권의 현실화

일본이 꿈꾸던 일본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즉 '대동아공영권'이 현실화된다. 수도는 도쿄, 주요 도시는 서울, 하노이, 자카르타, 홍콩, 싱가포르등으로 한 아시아 - 서태평양 제국이 건설된다.

이는 한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당연히 해당된다. 한국인은 일본에 완벽하게 동화되어 자신이 한국인이었는지도 모르고 살게 될 것이며 당연히 한글 대신 일본어를 쓰게 될 것이다.

실제로 광복이 되자 많은 한국인들이 "황군이 패하고 말았다"면서 슬퍼했으며 태극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는 사실은 일본의 식민지배가 한국인의 정서 깊숙하게 박히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유엔 로고
독일을 중심으로 한 국제기구탄생

연합국을 중심으로 한 유엔(UN)이 2차대전 후에 탄생되었다. 추축국이 승리했다면 그들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국제기구를 탄생시켜 추축국을 필두로 세계평화를 모색했을 것이다.

이렇게 되만 당연히 추축국의 국제기구가 위치할 도시는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 건설될 국민대회당 근처가 될 확률이 높다.

상임이사국은 승전국인 독일 - 일본 - 이탈리아, 그리고 비상임이사국은 당시 비슷한 파시즘 국가였던 스페인과 독일과 손잡고 소련에 저항한 핀란드가 유력하다.

뱅골대학살의 주인공인 처칠
20세기 최악의 학살자로 그려졌을 처칠

우리는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을 배우면서 히틀러는 20세기 최악의 학살자라는 역사를 배우고 있다. 하지만 추축국이 승리했다면 우리는 히틀러가 아닌 처칠의 뱅골대기근과 학살을 더 크게 배웠을 것이다.

처칠은 2차대전 당시 일본의 인도 침략을 막기 위해 일본의 예상경로 중 하나였던 뱅골의 식량과 물자를 모두 불살라버린다. 이 과정에서 무려 700만명의 뱅골인들이 죽는다.

사실 처칠의 뱅골대기근 - 학살은 실제 있던 일이다. 다만 연합국이 승리했기 때문에 우리가 일부러 찾지 않는다면 알 수 없다. 게다가 처칠이 인도에서 이런 만행을 저질렀다는 것이 밝혀진 것도 얼마전의 일이다.

결론은 히틀러 - 처칠 모두 승리만을 위해 살아온 사람들이고 그 과정에서 사람의 목숨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한 시대의 인물들이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