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가끔 눈팅좀 하다가 이쪽 전공은 아닌데 자주 접하는 중이라 간략히 풀어봄.


최근 무슬림 얘기가 핫해지면서 프랑스 얘기가 사례로 자주 활용되는 경향이 있음.

실제로 현대 프랑스 사회문제 중 가장 심각하다고 평가되는 부분이 이 무슬림과의 공존 문제이기도 함.

문제는 이게 프랑스가 통상 '무슬림을 탄압' 한다고 알려진 것의 맥락이 좀더 복잡하다는 것.

그 복잡한 상황 중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프랑스의 대표적 전통 중 하나인 라이시테임.


라이시테laîcité란? = 프랑스적 정교분리 정치개념 / 체제 그 자체를 일컫는 말임. 

영어로는 Secularism / 세속주의 등으로 번역되지만 아주 정확하지는 않음.


이 라이시테라는 정교분리/세속주의 개념의 특징은 '프랑스'라는 국가가 특정 종교의 우위를 거부하는 정교분리 및 종교의 자유 보장에 있음

실제로 프랑스 헌법에는 '프랑스는 분리될 수 없는 비종교적, 민주, 사회적 공화국이다',

'(국가는) 출생, 인종, 종교의 구분 없이 모든 시민이 법 앞에서 평등함을 보장한다'고 밝히고 있음.


이건 국가구성원의 요건에서 상대적으로 혈통('독일 민족')을 강조하는 옆나라 독일에 비해서도, 

프랑스 사회가 갖고 있는 독특성이라고 볼 수 있음. 

대충 너가 엘랑의 사회문화에 동화될 수 있다면 너는 엘랑인이 될 수 있다(실제론 차별 조지게 하지만) 이런 느낌?


즉 좀더 넓은 의미에서 보면, 프랑스(공화국, 국가)가 공화국을 유지하는 조건이자 정신으로서 주장하는 강력한 정교분리, 세속주의적 원칙이 라이시테라고 볼 수 있음.


딱 봐도 무슬림, 특히 '근본주의적 무슬림'과는 상극일 것 같지? 

실제로도 그런 측면이 있다.

근데 문제는 이 원칙은 본래 무슬림을 겨냥한 게 아니라는 점에 있음. 


이건 라이시테가 길게는 프랑스 혁명 이전부터 쭉 있어왔던 '종교적 압제'인 카톨릭을 배제하기 위해서 종교의 자유와 정교 분리를 국가의 원칙으로 삼은 데서 출발하기 때문.


느그나라 보면 목사들이 정치적 발언 하고 그래서 이슈가 되던 걸 생각해볼 수 있는데, 프랑스에선 이미 수백년짜리 전통이었던 셈.


그래서 라이시테에 따른 몇 가지 원칙이 적용된 사례가 있다면(한국에서 종종 언급됨) 이건 무슬림 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다른 종교에도 당연히 해당된다는 걸 전제로 깔아야 됨.


1) 공적 영역에서의 비종교성의 원칙

- 공립학교, 정부기관에서의 비종교적인 태도 견지 / 정교분리

- 종교적 교육, 종교적 상징물 등 금지(소위 '2004년법' 등)


2) 사적 종교의 자유 인정 / 국교 및 지배종교에 대한 무인정 원칙

- 국가는 개인의 신앙의 자유를 법으로 보장함

- 그러나 국가는 종교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이며, 모든 종교에 대해 중립을 견지함


이를보면 라이시테 원칙이 결국 (종교보다) 프랑스 공화국을 우선시하는 원칙이란 걸 확인할 수 있음.



프랑스의 종교 분포(2015)

명목상으로만 카톨릭인 경우(나이롱 신자 그 이상인 경우가 많음)가 많지만 64%가 기독교라고 답변한 점에 주목,


근데 이게 실질적인 차원에선 어떨까?

나는 다른 수많은 요인들(무슬림의 사회경제적 처지, 프랑스의 인종차별 등)을 다 빼고, 그냥 근본적인 원인 하나만 지적하려고 함.


이는 대충 요약하면 다음과 같음. 

프랑스 공화국의 정체성이 정교의 분리를 원칙으로 하지만, 사적 종교의 자유가 전제된 정교의 분리이기 때문에 프랑스 사회 전반이 당연히 카톨릭적 전통 하에 세워져 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임. 즉 라이시테니 뭐니 할 때 무슬림이 '프랑스 시민'인 경우가 많이 없었던 상황이라는 점.


그리고 실제로도, 프랑스 사회의 오랜 구교도적 전통(프랑스=카톨릭의 장녀fille aînée de l'Église 운운하던 게 불과 200년도 안 됨) 하에서,

'새로운 공화국의 시민'이 된 무슬림들에게 '무슬림 차별'로 인식되고 있는 것도 사실임.


결론적으로 프랑스 내에서의 정교분리원칙인 라이시테는, 그간 공화국 유지의 원칙이자 국가정신으로 기능하는 측면이 있음.

근데 이게 실질적으로 현대 프랑스 사회에서 가장 가시적인 소수 구성원인 무슬림을 배제하는 도구가 되기도 함.


이 때문에 실제 프랑스 사회에서는 극우가 종교 배제로 읽힐 수 있는 라이시테를 목놓아 주장하고 좌파가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는 희한한 꼬라지도 접하게 됨...



참고한 글. 혹시 궁금하면 읽어보면 좋을 듯.

박선희. (2014). ‘2004년 법’과 프랑스 라이시테 원칙 적용의 문제점. 유럽연구, 32(2), 295-315.

오정은. (2021). 프랑스 라이시테(Laïcité)의 역설 - 종교중립 원칙의 무슬림 차별 -. 통합유럽연구, 12(1), 105-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