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에 나와서 화제가 된 최유나 변호사의 이야기임



수년 전의 일이다. 부부 모두 외도를 저질렀다. 양쪽 다 잘못을 인정하고 이혼에는 협의했으나 양육권 다툼이 있어 소송까지 가게 되었다.


내 의뢰인은 배우자의 바람을 확인하고 머리끝까지 화가 난 나머지, 홧김에 오랜 친구와 불륜을 저지른 케이스였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주인공이 배우자의 외도를 확인하고 복수심에 불타 자신에게 평소 호감을 표시해 오던 지인과 하룻밤을 보내는 장면이 나왔을 때 이 사건이 떠올랐다. ‘복수심에 저지른 맞바람’이란 주제는 드라마에서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매우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양쪽 모두 외도를 했을 때는 법적으로 파탄 책임이 비슷하다고 평가된다. 다만, 부부가 완전히 이별하기로 하고 관계가 파탄 난 상태에서 어느 한쪽이 이성을 만났다면 그 만남은 외도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양쪽의 주장을 듣고 재판부에서 증거와 상황을 면밀히 따져본 후 결정한다). 이런 법리에 입각, 우리는 첫 번째 열린 조정기일에 출석해서 ‘상대방의 외도가 먼저였고 그로 인해 이미 혼인이 파탄 난 상태에서 외도를 한 것’임을 주장했다.


출석 전, 우리는 상대방이 이런 주장을 펼칠 것이라 예상했다.


“어차피 한 번씩 외도했으니 위자료는 서로 없는 걸로 하고, 양육권이랑 재산 분할 이야기나 하죠.”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이런 말 말고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조정기일에는 늘 상식을 뛰어넘는 말을 듣게 되는 법이다. 그 무엇도 섣불리 예측해선 안 된다.


변호사도 없이 출석한 내 의뢰인의 배우자는 우리 주장을 듣더니 또박또박 이렇게 말했다.


“재판장님, 저는 바람이 난 것이지만 상대방은 바람을 피운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위자료를 받아야 합니다.”


너무 신선한(?) 말이 나와 호기심이 일었다. 뻔하고 지루했던 조정실의 공기가 색다르게 바뀌기 시작했다. 당황한 조정위원들의 갈 곳 잃은 눈동자가 내 눈동자와 마주쳤다. 우리가 같은 감정으로 이어졌다는 게 느껴졌다.


“도대체 바람난 것과 바람피운 것이 어떻게 다른 겁니까?”


잠깐의 침묵을 지나, 한 조정위원이 입을 뗐다. 그러자 또 한 번 등장한 신선한 대답.


“저는 어쩌다 실수로 바람이 ‘난’ 거지만, 상대방은 제 바람을 알고 일부러 바람을 ‘피운’ 것이니 훨씬 큰 잘못인 거죠.”


법적으로 고의범과 과실범의 차이를 논하고 있는 건가. 순간 나는 그의 변론 능력에 진심으로 감탄할 뻔했다.


그의 태연한 태도와 말은 도저히 웃음소리가 흘러나오기 어려운 공간에서 모두의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진기록을 세웠지만, 그뿐이었다. 그의 주장은 묵살당했고, 위자료 없이 양육권과 재산분할 부분만 합의하며 두 사람의 관계는 원만히 정리되었다.



법정은 정말이지, 세상의 모든 다양한 가치관이 표출되는 곳임을 다시 한 번 느꼈다.


- <혼자와 함께 사이>- (최유나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