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말년이었을 때, 잠깐이었지만 생활관 하나를 통째로 혼자 쓴 적이 있었음.

근데 얼마 안 있어 신병들이 이리로 들어오더라고?

당시 나랑 다른 생활관 쓰던 동기 행정병이 좀 있으면 생활관 이동할 거니까 그때까지만 잘 써보라고 하고 나도 ㅇㅇ했지.

그리고 나서 내가 신병들한테 나 어차피 곧 있으면 나가니까 눈치 보지 말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미리 일러 둠.

ㅈㄴ 쭈뼛거리면서 그렇습니다! 그러드라.

솔직히 내가 군 선임으로써 자평을 하자면, 나는 후임 터치를 ㅈ도 안 하는 인간이었음.

똥군기 잡거나 부조리 같은 짓 안 함. 대신 챙겨주는 것도 ㅈ도 없는 인간임.

이건 진짜 장담할 수 있음. 애초에 인간 자체가 커뮤증 딸려서 대화 자체를 거의 안 했으니까.

난 진짜로 얘네들(신병이 당시 2명이었음)이 중대장실에 폭탄 테러를 한대도 가만히 있을 자신이 있어서 그냥 편하게 있으라고 했단 말이야.

근데 솔직히 그게 되나. 막말로 내가 신병인데 처음 전입와서 같은 생활관 쓰는 게 말년이라니 상상만 해도 개쫄린다ㅋㅋ

그래서 얘들이 내 눈치를 계속 보니까 나도 미치겠는거임. 난 진짜 뭐 ㅈ도 없는 놈인데 자꾸 말년이고 선임이라고 눈치를 보니까 나도 분위기가 진짜 가시방석이었음.

결국 내가 이거를 못 견뎌서 애들한테 먼저 말 걸었지.

처음에는 이름 물어보고 이것저것 생활관에서 해야 되는 규칙사항 같은 거 인수 인계 해주고 뭐 후반기나 훈련소 일 같은 거 물어봐도 되냐는 식으로 대화하기도 하고 너무 분위기상 할 말 없으면 걍 TV 틀어주고 진짜 얘네들 맘 편하게 해주려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음.

근데 그게 당연히 잘 안 됐는데, 얘네들 오고 한 1주일 됐나? 얘네들이 드디어 나를 가시방석에서 풀어주는 일이 있었는데.

그날도 나는 어떻게든 말년과 신병 사이의 어색한 콘크리트를 깨부수려고 노력하는 중이었음.

그러다가 말할 주제가 떨어져서 나는 결국 얘네들한테 VS 놀이를 시전했지.

주제는 간단하게 먹는 거였음. 뭐 쌀VS밀가루나 돼지고기VS닭고기 같이 단순한 거.

그러다가 어쩌다 피자 얘기가 나왔는데, 얘네들이 그때까지도 나랑 눈만 마주쳐도 쭈뼛거렸단 말이야.

그래서 나는 어떻게든 내가 무서운 사람이 아니고 편하게 있어도 된다는 걸 어필하려고 피자 이야기로 시간을 끌었음.

뭐 좋아하는 브랜드 있냐. 좋아하는 피자 있냐 이런 식으로.

그러다가 내가 ' 그럼 혹시 싫어하는 피자 같은 거 있냐?' 라고 물어봤지.

그러니까 신병 둘 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자긴 하와이안 피자가 싫대는 거야. 피자 토핑에 파인애플 싫다고.

근데 그 말 듣고 내가 ㅈㄴ 생각 없이 이런 말을 했음.

'어? 그래? 그럼 넌 고구마 피자도 싫어하겠다?'
'아닙니다! 고구마 피자는 좋아하는 편입니다!'
'엥? 그래? 그게 그거 아닌가?'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야? 고구마나 파인애플이나 노란색에 단맛 나는 식물성 재료라는 점에서 똑같잖아?'


솔직히, 똑같잖아?

이 말이 내 입에서 떨어지자마자 걔네들 표정이


거짓말 1도 안 하고 바로 이렇게 바뀌면서 '잘못 들었습니다!?' 이거를 ㅈㄴ게 남발하는 거임ㅋㅋㅋㅋㅋㅋㅋ

나도 당황했지. ㅈㄴ 생각없이 한 말인데 반응이 ㄹㅇ 극적이라ㅋㅋㅋㅋㅋㅋㅋ

ㄹㅇ 아무리 내가 신병이고 니가 말년이라지만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있는 거라고 ㅈㄴ게 항의하는 표정이었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심 ㅈㄴ 무서웠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나는 그 와중에 얘네들이 긴장이 탁 풀리고 진심으로 하극상(?) 벌이는 걸 보고 아 이거구나! 싶었음.

그래서 대충 무마하고 그 뒤로 얘네가 너무 눈치 본다 싶으면 종종 이 드립을 꺼내서 걔네들 놀려먹었고, 얼마 안 가서 걔들이 더 이상 날 공포의 시선으로 보지는 않게 됨.

그렇다고 딱히 무시당한 건 아니고 걔네랑 걔네 맞선임이랑도 그럭저럭 잘 지냈지. 당연히 니들이 나한텐 편하게 해도 되지만 다른 선임들한테도 이러면 진짜 ㅈ된다는 경고는 철저하게 했고.

암튼 나중에 생활관 옮긴 다음 나는 얼마 안 가 안전하게 전역했음.


이게 벌써 한 달 전이노.

빠빠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