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대의 해학과 위트, 유머를 담은 것 중 하나가 바로 민담이라고 생각해서,

특히나 요새같이 미쳐 돌아가는 PC 세력의 교조주의에도 일침을 찌를 수 있어뵈는 민담을 재미지게 읽었던 기억이 나서 그 중 하나를 여기에 옮겨 봄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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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심구만이라는 정승이 살았다. 정승을 살면 재산이 없어야 하듯이, 요즘도 고관이 되면 청렴결백이 우선한다지만 다 그것이 그리 자랑거리가 아니다.


심구만(沈九萬) 정승! 그는 부자였다. 만석꾼이 아니라 구만석 재산가였고 또 정승이었다.


심 정승댁에서 한번은 천하에 광고를 냈다. 그 방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며느리를 들임. 정승 아들이라 신랑감은 괜찮음. 아무나 처녀는 오오. 단 조건은 세 식구가 쌀 한 말로 한 달을 사는 시험을 통과할 것임. 세 식구는 며느리 후임과 남녀 종 둘임. 심 정승 白」


이러니까 전국에서 색시감이 구름떼같이 몰려들었다. 그까짓 한 달 고생을 해서 정승집 며느리가 된다는 데야 뭐. 가서 도전을 해 보는 것이다는 꿈을 안고 상경을 하여 정승네 집에서 내준 시험보는 집에 들어간 처녀들은 많다만은 쌀 한 말은 혼자 먹기도 적은데 군식구 같은 종 둘까지 있으니 어이 살 것인가! 다 나가떨어져 버렸다.


"아이구, 배고파서 못 살겠네. 죽 쑤어먹어도 못 살겠네. 하루 한 끼씩 먹어도 못 살겠네. 금식, 단식, 절식, 무슨 식을 해도 굶어 죽겠네. 아예 포기해 버리겠네!"


이러면서 물러나 버렸다. 처음 꿈은 결국 한 열흘 버틴 결과인 핼쓱한 얼굴로 나타났을 뿐이다. 기진맥진한 숱한 처녀가 빌빌 기다시피해서 심 정승네 문간채를 나온 것이다. 이런 소문이 파다하니 그 누가 시집을 가리요? 그러면 혼사는 영영 성사가 안 되는 것인가? 아니다.


어떤 가난한 집 처녀가 어머니 머리를 빗겨드리면서,


"어머니, 세상에 그렇게 못난 년들이 어디 있대요? 쌀 한 말을 주는데도 한 달을 셋이 못 살다니요?"


그러니까 스르르 잠이 들락말락하던 어머니가 그만 정신이 번쩍 나서,


"아가, 그 심 정승댁 며느리 뽑는 이야기 말이냐? 그럼 너는 먹고 살 수가 있느냐? 네 말을 들어보니 살 수가 있다는 것 같구나!"


그러니까 딸이 배시시 웃으면서,


"어머니. 쌀 한 말이면 족히 세 식구가 먹고 살지요. 살 수 있고 말고요. 살고도 남지요!"


"그러면 왜 진작 심 정승댁 며느리로 안 들어갔느냐?"


"어머니. 정승 보고 시집가나요? 신랑 보고 가지요? 그런데 정승댁 신랑이라는 것이 방은 괜찮다고 써붙였지만 뭐 부잣집 벼슬아치 자식인지라 그저 그런 신랑감이 아니겠어요? 그래서 시집갈 마음이 없었던 것이지요."


"아이구 신랑을 안 보았으니 뭐라고 말은 못 하겠다마는 꼭 그리 신통치 않을 거라고 단정할 수 있겠느냐? 그러나저러나 그 시험은 한번 쳐 보아라!"


"글쎄요."


"그럼 네가 응낙한 걸로 알고 내가 즉시 이웃집 이장에게 가서 추천을 해달라고 하마."


그러하여서 요즘으로 치면 이장, 면장, 군수, 도지사를 거쳐서 이제 심 정승 집까지 모처럼 시험에 응시할 처녀가 나타났다는 희소식이 당도하였다. 즉시 가마가 그 가난한 처녀네 집에 당도하였다.


이윽고 심 정승네 별채에 모셔왔다. 그 숱하게 꿈을 가지고 왔던 처녀들이 울고 굶주리다 떠나간 자리였다. 여기에 임시 한 달을 살 새 주인이 오랜만에 입주를 한 것이다. 자 어찌할 것인가?


여종이 물었다.


"저녁 진지 지어야지요? 얼마나 할까요?"


"우리 식구가 셋이니까 서 되는 해야겠지!"


"서 되 씩이나요?"


"응. 쌀 한 말을 안 주어도 살아가야 할 우리인데, 첫시작이 이만큼 많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할 일이고 우선은 먹고 기운을 내자꾸나!"


"원 세상에! 아, 예. 그리하겠나이다."


실로 겁이 없는 처녀가 들어온 것이다. 뭐 내일은 내일이고 오늘은 오늘이라고? 사람이 오늘만 살고 마는가 말이다. 이튿날 아침, 또 얼마를 밥 지을까 여쭌 여종에게,


"엊저녁에 잘 먹었으니까 오늘 아침은 두 되만 하려무나!"


하고 명하였다. 비록 두 되라 해도 벌써 닷 되, 곧 반을 두 끼에 먹어치운 것이 아닌가? 이전 처녀들은 열흘도 버티었는데 이 처녀는 단 하루이틀 만에 쌀 한 말을 다 먹고 떠나버릴 모양이었다. 이왕 일찍 심 정승댁 며느리 되기를 포기한다면 차라리 한이틀 만에 철수하는 것이 온당한지도 모르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는 남녀 종에게 드디어 가난한 집 처녀가 물었다.


"사람은 우선 든든히 먹고 나면 무엇을 해야 하느냐. 노느냐? 자느냐?"


"그야 일을 해야겠지요."


"그러면 우리 일을 하자! 일을 해야 먹고 살지. 벌어야 먹지. 산 입에 거미줄 안 치려면 나대고 꾸물거리고 움직여야 하느니라. 그런데 내가 여기는 발이 넓지 않아서 일솜씨는 있다마는 일거리를 어디 가서 얻어올 수가 없어 안타깝구나! 여종아. 너 심 정승 일가네 안방마님들을 찾아가서 빨랫감, 옷짓기, 길쌈할 것을 다 맡아올 수 있겠느냐? 남종아. 저 산이 누구네 산이냐? 보아하니 심 정승댁 산 아니면 일가네 산 같구나. 가서 나무를 한 짐 해다가 그 댁에 갖다주고서 나무값을 받아오너라. 그 집은 누가 하든 나무는 해다가 땔 것이 아니냐? 바로 네가 해다 주고 돈을 벌어야 하느니라! 나는 그 사이에 집안 청소를 싹 해두고 이제 일을 할 준비를 하겠노라!"


그러면서 벗어부치고 집안 청소를 해대는데 순식간에 유리명경같이 번쩍번쩍하게 집을 쓸고 닦고 빛을 내놓는 것이었다. 앞서 온 처녀들이 남긴 땟자국마저 씻어내버린 것이다. 그러고는 여종이 맡아온 일거리를 척척 하는데 그 날렵하고 흠잡을 것 없는 마무리라니! 못하는 일이 없었다. 신바람나게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자기도 먹고 여종도 먹이고 남종도 먹이고 고기반찬에 인물나게 먹이고... 일 잘한다고 칭찬을 하고, 잘못하면 이렇게 하라고 가르치고, 자기가 모르는 심 정승댁 살림대목은 남녀 종에게 물어서 배우고... 그러니 종들이 그저 좋아서 줗겠다는 것이다. 그뿐인가? 이 가난한 집 처녀를 존경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남자종은 그저 감격을 하였다.


"부디 한 달을 잘 채우소서!"


이런 말을 하였다.


어느 새 한 달이 갔다. 딱 한 달이 되자 이 가난한 집 처녀에게 심 정승이 나타났다.


"너는 대단하구나! 감사하며 즐거워하며 열심히 머리를 써서 사는구나! 너는 이제 합격이다. 잘 했다! 우리집 며느리다!"


"..."


"왜 말이 없느냐?"


"저는 정승에게 시집을 올 것이 아닙니다. 정승의 아드님에게 올 것인데 한 달 간 구경을 못했으니 어이 시집을 잘 간다 하리오?"


"하하하하. 그 신랑감을 한 달간 구경을, 아니 부려먹었지 않았소?"


라며 나무만 하던 남종이 호탕하게 웃으며 이 가난한 집 처녀의 손을 잡아끄는 것이었다. 이 며느리 덕분에 진짜로 심 정승은 심구만 정승이 되었다 하니까 이런 부자 어이 칭송감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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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최래옥 교수 저, 『되는 집안은 가지나무에 수박 열린다 2』, 「심구만 정승댁 며느리 선발시험」, 미투, 1993. 6, p.33 ~ p.37



p.s



요새도 이거 중고 서적 물량이 남아있을지 모르겠는데, 기회가 닿는다면 도서관에서 빌려보든 중고 서적으로 구입해서 보건 저 6권 1세트를 쟁여놓고 틈틈이 읽어보는 것도 괜찮을 거라 생각함 ㅇㅇ


술술 쉽게 읽히는데다 구어체스럽게 채록되어서 읽는 데 한층 더 맛깔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