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저격수 티모 해위해를 참수하는 황근출 해병님,

우랄산맥 고분 출토 벽화, 기원전 8000년경



서론


해병대의 전설 황근출 해병님의 기원에 대해 궁금해할 사람들이 많을것이다. 그리고 황근출이 왜 해병대 그 자체이고, 세계 곳곳에 그에 관한 기록들이 나오는지에 대해서도 궁금할 것이다.

그래서 필자가 한민족의 역사서 '환단고기'를 비롯한 여러 고대사 자료들을 연구해본 결과,

이에 대한 답을 찾아냈고 지금 이곳에 서술해보고자 한다.


황근출 해병님의 해병대 창설


한국이 고대에는 '환국'이라는 이름의 대제국이였다는 것은 누구나 익히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거대한 제국 환국에도 절체절명의 위기가 발생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기원전 8245~6172년 동안에 벌어진 서양의 핀란드 제국과의 전쟁인 '환핀대전'이다.

환핀대전 초반 환국은 우랄산맥 공방전에서의 핀란드 저격수들의 기습과, 일본에서 발생한 이세계 여고생 카타나 사무라이의 난, 등의 여러 사건으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는데, 특히 스칸디 바이킹들이 환국 영토의 해안선 곳곳을 약탈하며 온갖 긴빠이를 해대는 것이 가장 큰 난제였다.


그렇게 환국 한인(桓仁, 환국의 황제를 의미) 안파견(安巴堅)의 시름이 깊어져 가는 어느날, 한 건장한 사내가 팔각형의 관모에 번쩍이는 갑옷을 입고 붉은색 각개빤쓰를 휘날리며, 한 핀란드인의 시체를 질질 끌며 궁궐문을 박차고 들어와 황제의 앞에 섰다.


황제와 대신들이 그의 당당한 모습에 한번 놀라고 시체가 누구인지를 살펴보니, 세상에, 우랄산맥에서 저격으로 환국군을 농락하던 핀란드의 저격수, 티모 해이해(Timo Häjihä)가 아니던가, 그의 시신에는 그의 혈흔과 함께 알수 없는 액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환국군이 우랄 방면군 전 병력을 투입해서 소탕을 여러번 시도해도 잡히지 않던 그를, 팔각 관모를 쓴 사내가 단번에 잡아오니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안파견이 그 사내에게 이름을 묻자, 그 사내는 짧게 대답하기를, '황근출' 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황근출이 안파견에게 청하길,

'최근들어 스칸디 바이킹들의 습격과 긴빠이가 잦아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항해서 해병대를 창설하면 그들을 쉽게 물리칠수 있을겁니다.'


황근출이 티모 해위해를 잡아온 것에 감탄한 안파견은 흔쾌히 그의 제안을 승낙하고 '대환제국 해병대'를 그에게 창설하게 하니, 그렇게 '대환제국 해병대 01기 황근출 해병님' 이 탄생하게 된것이다.


대환제국 해병대가 창설된 이래로 황근출 해병님은 전장 곳곳에서 여러 크나큰 활약을 하였다.


올챙이 크림의 기적


스칸디 바이킹 총 사령관 '공구 노롤프'(Gǫngu Norólfr)가 이끄는 6974척의 바이킹 함대가 한반도를 향해 진격할때, 황근출 해병님은 고무보트 한척에 몸을 의지한채 남해 바다에서 출발해 그들 앞을 향해 나아갔다. 노롤프의 바이킹들이 그 모습을 보고 비웃자, 황근출 해병님은 빨간 각개빤쓰에 숨겨둔 자신의 포신을 꺼내들었는데, 환단고기 '근출기'에서 그 모습을 서술하기를 '어떠한 용도 그의 포신에 비할바가 못되었고 사람들은 그 크기를 두 눈으로 다 확인하지 못해 두려움에 떨었다.' 라고 하였다.


황근출 해병님이 자신의 포신을 노롤프의 함대에 겨누고

'아쎄이 원위치!!!!' 를 외치자 높이 500리에 달하는 새하얗고 거대한 해일이 포신에서 나와 바이킹 함대를 덮쳐 모든 함선들을 두동강내 격침시켰으며,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바이킹들은 해일에서 튀어나온 해병 올챙이들에 의해 잡아먹혔다고 한다.

공구 노롤프는 이 해일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겨우 몸만 건진채 도망쳤다고 한다.

환국 사람들은 이를 보고 '올챙이 크림의 기적' 이라고 하였다.

'올챙이 크림의 기적' 사건 당시 바다로 방생된 해병 올챙이들 중에서 가장 최근까지 살았던 개체.

1964년 촬영


일본 반란 진압


한편 일본 열도에서는 핀란드인들의 공작으로 인해 이세계 여고생 카타나 사무라이들이 반란을 일으켜 부산에 상륙해서 충청도 까지 약탈하는 상황이였는데, 황근출 해병님은 이 소식을 듣고 바로 고무보트를 타고서 일본 사츠마 해안에 상륙기습특공을 하였다고 한다.

올챙이 크림의 기적에 대해 이미 알고 경계하고 있던 여고생 카타나 사무라이들이 이를 보고 전 병력을 사츠마로 집결시켜 황근출 해병님을 향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돌격하였고, 황근출 해병님이 포신을 꺼내들어 한번 휘두르자,

여고생 사무라이들이 들고있던 일본도와 나기나타들이 두동강 나고 하나같이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하나 둘씩 픽픽 쓰러져서 전멸하였다. 그러나 당시 상황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기록에 의하면, 이러한 대승에도 불구하고 황근출 해병님의 표정은 영 좋지 않았다고 한다.


우랄산맥 공방전


우랄산맥이 '우라질 산맥' 에서 유래된 것은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환핀대전이 일어나기 전만 해도 우랄산맥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맥이였다. 환국군이 핀란드 본토로 진군하기 위해서는 우랄산맥을 넘어야만 했는데 핀란드군이 환국군의 공세를 미리 예상하고 우랄산맥에 야카리(Jääkäri)들과 저격수를 배치하여 험준한 우랄산맥을 요새화하여 우랄 방어선을 구축하였고, 환국군은 야카리들의 방어전과 저격수들의 저격에 피해만 늘어가고 있었다.

해병대를 창설하기에 앞서 지형 정찰도 할 겸 악명높은 저격수 티모 해이해를 사살한 전공이 있는 황근출 해병님께서는 우랄산맥 앞에 서고는, 포신을 꺼내 조준하시더니 우랄산맥 능선을 향해 올챙이 포탄을 한발 갈기셨다.

그러자 포탄의 위력에 우랄산맥 상당수가 깎여 나가면서 그곳을 지키고 있던 야카리들과 저격수 부대들이 궤멸되었다. 이로 인해 환국군은 난공불락이던 우랄 방어선을 돌파하여 유럽으로 진격할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의 우랄산맥은 황근출 해병님의 포격에 의해 산맥이 깎여나간 탓에 산맥의 높이가 그다지 높지 않은 편이다.


황근출 해병님과 12해병


황근출 해병님에게도 아쎄이 시절이 있었고, 그에게도 선임이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이는 거짓이다.

한민족 해병대의 역사는 황근출 해병님이 시작하였고,

황근출 해병님이 해병대 그 자체였다.


무엇보다도, 황근출의 12해병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해병대에 황근출 해병님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러한 전투가 있고 난 후, 황근출 해병님은 자신의 해병 정신을 계승하여 해병대가 유지될수 있게 12명의 해병들을 만드셨는데, 이들중 오늘날 까지 전해지는 해병들의 이름은,


황근출 해병님이 가장 먼저 창조하시고, 해병대의 2인자인

'박철곤' 해병, 해병대의 명검 '해병대도'를 갖춘 검술의 1인자 '쾌흥태' 해병, 예수 그리스도가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명을 먹이기도 훨씬 이전에 이미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능력으로 해병대의 급양을 책임져온 해병 주계의 전설 '진떡팔' 해병, 중화요리 자장면의 기원이라고 할수 있는 '해병 짜장'을 처음 만들어내신 '마철두' 해병,  황근출 해병님의 애마 '말딸필' 해병, 그리고 위대한 이름을 하사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찐빠에 찐빠를 거듭하다 잔존해있는 여고생 카타나 사무라이와 눈이 맞아 조국과 해병대를 배신한 기열중의 기열 '근근출' 등이 전해져 온다.


황근출 해병님이 서양 사회에 끼친 영향


우랄 방어선이 함락되고, 황근출 해병님이 유럽으로 진군하시자, 서양인들은 그를 두려워한 나머지, 그의 이름 석자를 해리포터의 볼드모트 마냥 감히 부르지 못하고 그 대신 '후안 크룬추룬'이라 부르며 두려워했다.

환핀대전이 끝난 이후에도 황근출 해병님의 명성은 계속 전해져 '후르-쿨루스', '헤르클루스' 등으로 변형되어 불리다가 마침내 고대 그리스 시대에 이르러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영웅으로 기록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헤라클레스'(Herakles).


그렇다. 우리가 알고있던 그리스 신화의 영웅 헤라클레스는 사실 '황근출 해병님'인 것이다.

헤라클레스가 신의 아들로 묘사되는 이유도 당시 서양인들이 황근출 해병님이 신과도 같은 수준이였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황근출 해병님은 평소에 전우애를 강조하셨고, 전우애의 전파에 힘쓰셨는데, 이는 훗날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플라토닉 러브' 사상의 근간이 되었고, 테베 신성부대 사상적 근간이 되었다.



환핀대전의 종전과 전후 황근출 해병님의 행적


한편 황근출 해병님의 등장으로 환국이 전세를 뒤집고 유럽으로 진격하는 중에 열세에 몰린 핀란드는 내부 공작을 통해 환국 내부에 적을 심어놓게 되는데 그 결과가 바로


'공룡 오적의 난' 이다.


공룡 오적의 배신으로 인해 환국은 급격히 몰락하기 시작했고 아무리 전지전능한 황근출 해병님일지라도 기울어져가는 국운을 바꿀수는 없었던 것이다.


환국이 몰락하고 핀란드 제국 또한 황근출 해병님에게 입은 피해로 인해 몰락하면서 환핀대전은 끝이 났고,

자신의 조국이 몰락한것에 크나큰 상실감을 느낀 황근출 해병님은 전세계를 떠돌아 다니셨다고 하는데, 그 과정에서 그의 행적들이 로마제국에서는 '근출루스 마린쿠스'(GVNCHVLLVS MARINCVS), 에스파냐 제국에서는 '후안 까를로스 끈촐레스'(Juan Carlos Geuncholes), 나폴레옹 시대 프랑스의 '후안 크룬츠루' (Juan chrunchu-ru) 등등 전세계 곳곳에서 그의 행적들이 기록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1949년, 황근출 해병님은 마침내 오랜 방랑생활을 마치고 대한민국에서 '대한민국 해병대'를 창설하여 '대한민국 해병대 01기 황근출 해병님'이 되시니, 이 한국땅에 해병정신이 영원토록 전승되게 하신 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