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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일본에 핵 투하한 거 갖고 징징거려서 그런 게 아님



오펜하이머는 핵폭탄 위력이 어느 정도이고 얼마나 많은 사상자를 야기할 것인지에 대해 대강 예측하고 있었음


그리고 그럼에도 확실하게 전쟁을 끝내고 그 피해자를 줄이려면 불가피하다고 생각했기에 오펜하이머 자신이 의회에 일본 본토에 직접폭격을 가해야 한다고 건의했으며(기존에는 도쿄만에 위력 과시를 하는 방안이 고려됨) 피해를 최대화하기 위한 투하 방식과 폭발 고도도 직접 계산해서 알려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폭격 목표로 설정된 이유도 핵폭발 효과가 얼마나 멀리 뻗어나가는지 확인하기 수월한 평탄한 도시라서



물론 그 파괴력에 자괴감을 느꼈기에 오펜하이머는 나가사키를 목표로 한 2차 핵공격을 주저하는 등 핵무기 추가 사용에 반대했고 공식 석상에서는 절제했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함(바가바드 기타를 인용한 것은 말년에 아무런 직책도 없는 상황에서 인터뷰한 것)


이 사적인 자리에서 괴로워한 모습 중 하나가 1945년 10월 트루먼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자신의 손에 피가 묻어있다고 발언한 것

이 말에 트루먼은 결단은 자신이 내렸으니 손에 피가 묻었으면 손수건 주는 걸로 닦으라고 빈정거렸으며 훗날 '손에 피를 묻혔다고, 젠장! 그녀석은 내 손에 묻은 피의 절반도 손에 묻히지 않았어!'라고 불같이 화를 냄



아무튼 오펜하이머가 정치보복을 당한 것은 그렇게 징징댄 것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이었음


바로 수소폭탄 개발을 방해한 것


미국은 핵폭탄 개발에 성공한 뒤 곧바로 더욱 위력적인 수소폭탄 개발에 착수하려 했으나 오펜하이머는 자신의 원자탄 개발 자문 위원회장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이 개발을 최대한 지연시킴


이로 인해 미국의 수소폭탄 연구는 1951년까지 답보 상태였고 그 사이 소련이 1949년에 핵폭탄 개발에 성공하고, 1952년에는 수소폭탄을 완성시키는 등 핵무장 능력 면에서 미국을 따라잡아버림


이로 인해 오펜하이머는 졸지에 미국의 핵 우위 확립을 방해한 반핵주의자 겸 공산주의자로 낙인찍혀버렸고 이후 1953년 모든 핵 관련 정보 열람 권한을 박탈당하고 공직에서 쫓겨나는 등 수모를 당하게 됨



요약

1. 오펜하이머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히로시마/나가사키 폭격을 필요악으로 여김

2. 이후 자괴감을 느껴 징징대긴 했지만 공식 석상에서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음

3. 정치보복을 당한 거는 수소폭탄 연구 방해하다가 소련이 핵기술 따라잡아버려서 연관된 인사들이 전부 빡돌 만한 상황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