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https://arca.live/b/singbung/85737757

2편 https://arca.live/b/singbung/85860274






반가르 - 인도, 자이푸르

(Bhangarh, भानगढ़)


한 때 웹상에 돌았던 세계 13대 마경을 기억하는가?

세계에 존재하는 대충 으스스하고 기괴한 지역들 13곳을 모아놓은 거였는데

대부분은 박물관, 시장 등등 그냥 테마 좀 으스스한 관광지 정도였기 때문에

우와 진짜 들어가면 뒤지는 곳인가봐!하고 설렜던 필자의 쥬지는 글을 내리면서 빠르게 식어갔다

저주가 어쩌고 저쩌고 흑마법이 어쩌고 하던 텔레마 사원조차도 사진만 으스스하게 찍었다 뿐이지

그냥 그 동네 흔한 관광지였을 뿐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3곳이 있었으니

들어가면 진짜 뒤지는 프리피야트와 조심 안하면 뒤질 수도 있는 카타콤

그리고 이 반가르였다

다른 곳들은 왜 들어가면 안 되는지, 혹은 왜 으스스한지 대략적인 설명을 해 줬지만

이 반가르만큼은 그냥 흔한 인도 유적지 모습에, 단 하나의 설명만이 있었다

'이 곳에 일몰 이후에 들어가지 마라'



반가르는 그 세계 13대 마경 중에서도 1등을 한 1573년부터 그 역사가 시작되는 유서깊은 유령도시 유적지로

인도에서 가장 큰 사막과 핵실험장이 있는 것으로 유명한 라자스탄의 자이푸르라는 동네에 있다

반가르 요새(Bhangarh Fort)라는, 악바르 대제 휘하 장군 중 하나인 만 싱 1세의 남동생 되는 바그완트 다스의 둘째 아들 마도 싱의 거주지로 지어진 출신 성분이 존나 복잡한 요새 건물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된 형태로

오랜 옛날에 파괴된 채 현재까지 재건되지 않아 폐허로 남아 있는 곳이다.

세계 13대 마경 원본 글에 의하면 많은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이 반가르를 최악의 마경으로 꼽았다고 하며

현지인들 사이에서도 저주받은 땅으로 불린다고 한다



반가르에는 '일몰 후 출입금지'라는 표지판이 당당하게 붙어 있으며

실제로도 일몰 후 출입 시 법적으로 처벌되는 곳이다.

심지어는 이 곳을 연구하는 ASI(인도 고고학 조사) 소속 사무실도 여기서 2km 정도는 훨씬 멀리 떨어져 있으며 이들도 밤에는 반가르에 접근하지 않고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의 방목 역시 엄격하게 금지된 곳이다.

근처 사람들도 자세한 이유는 모르고 그저 예로부터 내려오는 금기의 일종으로, 밤에는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할 뿐이다.


그렇다면 이 반가르에는 어떠한 사연이 있는 것일까?

반가르에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반가르가 지어진지 한 세기 정도가 지난 17세기 경, 반가르에는 주술사 하나가 살고 있었다

위에 있는 새끼는 이라크 새끼지만 일단 비슷하게 생겼으니 인도 놈이라 하자


주술사는 마을에 살고 있는 미모의 귀족 처녀에게 홀딱 반해, 시녀가 처녀에게 전해주는 향유 통에 몰래 주술을 걸어

처녀가 몸에 향유를 바르면 자신에게 구애하도록 하는 최음제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니까 고대 최면어플 비슷한걸 이 친구가 처음으로 만든 것이다

고백할 생각은 안 하는 걸 보니 어떻게 생겼는지 감이 온다

주술사는 오고곡하며 자신에게 달려들어 안길 도내최고쿨뷰티처녀를 상상하며 신나게 거사를 치를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작전이 워낙 허술했는지 이미 이를 알아챈 처녀는 인남충 죽어! 하면서 향유를 냅다 옆에 있던 존나 큰 바위에 뿌려버렸다


그렇게 도내최고쿨뷰티미녀 대신 도내최고중량바윗덩어리가 주술사에게 날아가게 되고

결국 인남충 주술사는 헤으응하고 달려오는 미녀 대신 부와앙하고 날아오는 바위를 안으며 장렬하게 산화하게 된다



스스로 불러온 재2앙에 짓눌려~

바위에 깔려 해병호떡이 되어버린 주술사는 꼴에 억울하다면서

이 도시에서는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저주를 내린 후 죽는다

그리고 몇 년 후, 반가르는 정말 큰 전쟁에 휘말리면서 초토화되었고

생존자는 단 한 사람도 남지 않았으며 그 저주가 아직도 이 땅에 남아있다는 이야기...


인남충 새끼가 아주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

하도 찌질하게 들려서인지 다른 버전 이야기도 있다


위의 이야기보다 더 옛날...

반가르 마을이 생기기 전 반가르 자리에는 지역 터줏대감이자 사두인 바바 발락 나스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사두(Sadhu)는 존경받는 힌두교 성자를 일컫는 말로 대충 저 당시에는 동네힘쎈사람도 겸하고 있었다

어느 날, 반가르 자리에 자기 집을 지으러 온 왕이 찾아오자 발락 나스는 왕에게 찾아가 한 가지 부탁을 했다

그 부탁 내용인 즉슨, 반가르에 마을을 세우는 것을 막지는 않겠지만, 자기 집에 그림자가 지지 않도록 높은 건물은 짓지 말아달라는 것이었다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큰 재3앙이 오리라는 당부를 듣고, 왕은 절대 사두의 집을 건들지 말고 그 주위에 높은 건물을 짓지 말라는 말을 후손들에게 남겼다

그러나 성자와 왕이 세상을 떠난 먼 훗날 17세기, 이를 까먹은 왕의 후손 중 하나가 반가르에 높은 건물을 지었고, 결국 반가르는 큰 전쟁에 휘말려 마을이 초토화되고, 마을에는 저주가 내려 지금까지도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더라~ 하는 이야기이다.


공통적으로 전쟁 때문에 마을이 멸망했다는 이야기가 있고, 지금까지 이 땅에 저주가 내려 있다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그 전설의 내용처럼, 현재도 야밤에 이 마을에 진입하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괴한 일들이 일어난다는 증언이 많다

대표적인 경험담으로는 해가 진 후 이 마을에 진입하면, 사방에서 여자 울음소리, 애들 울음소리, 누가 울부짖는 소리 등등 온갖 괴음이 들리고

야밤에 반가르에 갔다가 겨우 도망쳐 나온 사람들은 인사불성이 되어 다들 말조차 제대로 못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를 필시 옛날부터 내려온 저주 때문이라고 여기고 있다. 얼마나 무서우면 제대로 서 있는 건물들이 저렇게 많음에도 근처에 부대시설 하나 제대로 없으며, 재건하거나 보수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인도에서 제일 귀신이 많이 나오는 곳으로 뽑히기도 했다.

때문에 일몰 후에는 이 땅의 원래 주인이었던 원숭이들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대체 얼마나 저주가 빡세면 정부에서 출입을 불법으로 지정하면서까지 막는 것일까?

그 옛날, 13대 마경 원본 글이 돌아다닐 때는 별다른 설명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저주 때문이구나~ 하고 넘겼지만

최근에 알아본 바로는 이 반가르에 위험한 존재가 있기 때문에 인도 정부에서 법적으로 출입을 막은 것은 확실한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 반가르에는 저주만큼 무서운 존재들이 분명히 기거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이길래 정부에서 법적으로 출입을 막는 것인가?

그 첫 번째 존재는 바로...








호랭이이다

아 범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그렇다. 반가르는 호랭이 보호구역과 그 위치가 겹친다

근대화하면서 대충 맹수들을 총포로 때려잡은 느그나라나 동조선과는 달리

인도는 그 너무 넓은 면적 때문에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많아 아직도 심심하면 호랑이가 사람을 물어가는 호환 핫플레이스이다

때문에 조금만 구석진 외지로 가면 호랑이들이 라이브로 사람들을 쫓는 일이 지금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반가르 역시 정말 구석진 외지에 위치한 폐허로, 몇백년간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동안 그 자리를 원숭이와 호랑이들이 다 먹어버려 고고학자들이 나중에 이 곳을 다시 찾아냈을 때는 그야말로 자연의 보고 상태였다고 한다. 따라서 반가르는 호랑이 보호구역에 포함되게 되었다.


때문에 어느 정도는 반가르를 자연에게 양보한 셈이라고 볼 수 있다.

반가르는 지금도 인공 조명이 하나도 없고, 편의시설도 잘 안 보이는 편이다. 이 역시 야생동물들을 배려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이다.

야밤에 인간의 출입을 금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일부러 조명을 빼버려서 관광객들이 일몰 전에는 모두 나가게 만들고, 야밤만이라도 야생동물들에게 공간을 내주는 식으로 자연을 존중해 주는 것이다.

조명도 하나도 없는 시컴컴한 곳에 맨몸으로 인간이 들어왔다면 나이트비전을 끼고 다니는 호랭이에게 수육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래서 환경도 보호할 겸 인명피해를 막기 위해 함부로 들어가면 법적 처벌을 내리는 것이다.

가축 방목을 금지하는 것도 생태계 교란을 막기 위해서 금지하는 것이다.


그럼 두번째 이유는 뭐냐?






바로 돚거 형님들이다

사실 호랭이 파트에서 얘기한 인도의 특징은 도적들의 활동지에도 정말 적합한 특징들이기도 하다

구석져서 행정력이 미치지 않고, 편의시설도 없고, 인공 조명이 하나도 없어서 뭐가 좆도 안보이는 지역...

관광객도 많이 오고, 야밤에는 희귀 야생동물과 흉흉한 소문 때문에 담력시험 하겠다고 오는 호구새끼들이 넘쳐나기까지

내가 현지 돚거라도 군침이 아주 싹 돌것이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인도는 그 존나게 큰 면적과 그를 감당하지 못하는 병신같은 행정력 때문에 이런 토착 돚거들이 무기만 추가로 낀 채 아직도 곳곳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돚거들의 주 수입은 노상강도와 희귀 야생동물 사냥이다

위에 있는 양반은 비라판이라는 양반인데, 저 총 한 자루로 별의별 야생동물을 사냥해다 밀매하는 몬스터헌터로 유명했던 인간이다

나중엔 본인이 경찰에게 몬스터헌팅을 당함으로써 스스로 콜렉션을 완성하는 기합찬 모습까지 보여주고 갔다

호구 관광객들과 희귀한 호랑이, 원숭이들이 한가득 몰려 있는 반가르는 그야말로 돚거들의 발할라나 다름없는 곳인 것이다

또한 유적지이기 때문에 겸사겸사 도굴까지 해 갈 수 있다

그래서 정부에서 일몰 후 여기 들어오는 새끼들은 높은 확률로 도적이겠거니 생각하고 법적처벌을 하는 것이다


돚거들뿐만 아니라 인도답게 호구들을 노리는 양아치들도 엄청 많이 서식한다

위 글은 쿼라에 올라온, 담력시험을 하러 간 공대생의 경험담인데

반가르에 들어가니 귀신은 없고 웬 병신들만 한무더기가 있어 시비를 걸어대는데

그 병신들이 손에 쥔 무기를 발견하고는 황급히 빠져나갔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새끼들은 제3세계의 오늘만 사는 양아치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일단 퍽치기나 강간부터 하고 물건을 뜯어가므로 잘 대처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위의 이유 둘 다 대부분 인도라서 생긴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인도가 인도한 것이다

저주 때문이 아니라 그냥 반가르가 인도에 있어서 위험한 것이었다

어메이징 인디아


다른 흉흉한 소문들도 생각해 보면 금세 이해할 수 있다

야밤에 들었다던 귀신 소리는 여기 많이 사는 원숭이들 울음소리를 잘못 들었을 확률이 매우 높고

인사불성으로 도망쳐 나온 관광객들은... 호랑이, 총든 돚거를 만났는데 제정신이겠노?

고고학 사무실이 2km 이상 떨어져 있는 것도 야밤에 호랭이나 돚거에게 습격당하지 않기 위한 나름의 최선책이다


양아치 썰의 맨 밑에 보면 반가르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나는 곳이 아니며 이는 정부의 상술이라고 써 놨는데


사실이다. 위는 라자스탄 주정부에서 운영하는 관광 사이트인데 대놓고 심령스팟이라고 적어놨다

세계 13대 마경 이야기가 웹상에 퍼진 후, 반가르는 이전보다 더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그 때문에 관광객이 꽤 많이 늘어난 편이다

그래서 정부도 이것이 반가르에 대한 흉흉한 소문 때문임을 알고 물 들어올때 열심히 노를 젓기 시작했다

그래서 최근에는 무너진 건물들을 재건하기 시작하고, 근처에 편의시설도 슬금슬금 설치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애시당최 여기는 전쟁 때문에 버려진 게 아니라 기근 때문에 버려진 거라 전설 자체도 구라에 가깝다



그래서 지금은 해질녘 직전까지 사람이 아주 썩어넘치는 형편이다

마케팅이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위와 같은 연유로 지금도 야밤에는 출입할 수 없다

불빛도 없는 곳에 야밤에 출입해봤자 호랑이한테 먹히거나 도적에게 따이거나 둘 중 하나겠지만

그래서 지금도 야밤에는 들어오지 말라는 표지판만이 입구를 굳게 막고 있다



하여간 사람이 문제다





그린란드 - 덴마크

(Greenland, Kalaallit Nunaat, Grønland)


이름값을 못 하는 것으로 유명한 세계 최대의 섬, 그린란드

그 옛날 바이킹 탐험가 레이프 에이릭손이 부동산 사기를 치기 위해 별로 초록색도 아닌 이 섬을 그린란드라고 이름붙였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뒤지게 추운 이 섬은 그 아름다운 자연 풍광으로도 굉장히 유명한 곳이다

그 당시에는 진짜 초록색이었다는 말도 있지만 정작 동네에 숲이 없어서 나무 구한다고 빈란드까지 생고생을 하면서 가야 했으니 아무래도 부동산 사기가 맞긴 맞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제목으로 개봉한 <월터 미티의 비밀스러운 삶>이라는 영화에도 주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했고


<그래비티>에서도 아닌가크라는 이누이트 아재가 출연하는 배경으로 나오기도 한다

주인공은 우주에서 조난당해서 피가 말리는데 정작 이 아조시는 상대가 HAM 동호인인줄 알고 만담을 펼치는 내용이다


위 영화들을 둘 다 재밌게 본 필자 역시 추운 동네를 좋아하는데다가 그 풍광에 꽂혀서 한동안 그린란드 가는 법을 검색하고 다녔지만

애석하게도 영화와 달리 우리가 그린란드에서 쉽게 방문해볼 수 있는 곳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린란드의 지역 과반수 이상이 출입 금지 지역으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린란드 정부에서 운영하는 공식 사이트에 따르면, 현재 그린란드 영토의 대부분은 행정 명령에 따라 방문 시 추가적인 허가가 필요하다.

외국인이 그린란드에 방문해서 허가 없이 갈 수 있는 곳이라고는 해안가 일부분 도시 지역에 불과하고, 내륙 대부분 지역은 허가 없이는 절대 방문할 수 없다

우리가 그나마 아는 누크같은 동네는 다 해안가에 있어서 허가 없이 접근이 가능한 것이다

그나마 24시간 미만정도만 머무른다면 어떻게 허가 없이 방문해볼 수는 있지만 24시간 이상 체류한다면 얄짤없다.

그래서 저런 회색 지역에는 가끔씩 방문하는 기상관측자나 사냥꾼들을 제외하고는 인간 거주지가 일체 없어 사실상 무주지로 기능하고 있다. 저 지역에서 3해리 이내 지역에서 항해하는 것 역시 허가가 필요하다.

그나마 낚시나 사냥으로 잠깐 있다 가는 것 정도는 덜 빡세게 잡는다곤 한다

왜 그린란드는 이런 조치를 시행해 가면서 내륙의 출입을 막는 것일까?




극지라는 점에서 예상했겠지만 사실 별 거 없고 저 회색지역 대부분이 자연보호구역이라 그렇다

남쪽에 남극이 있다면 북쪽엔 이 그린란드가 있는 것이다

특히, 허용 지역이라고는 코빼기도 안보이는 북동부 지역은 아예 그 큼지막한 지역이 통째로 '북동 자연보호구역'으로 묶여 있는데

이 북동구역은 그린란드의 그 어느 행정구역에도 속하지 않는, 사실상 인간의 손에서 벗어난 지역으로 가끔 가다 보이는 기상관측기지를 제외하고는 인간의 흔적을 정말 눈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곳이다. 이 북동구역에서는 위의 24시간 제한 룰도 통하지 않고 무조건 어떤 일이 있어도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만 진입할 수 있다.

그린란드에는 이런 인간의 손을 타지 않은 생태계가 정말 많이 존재해서, 내륙의 대부분을 환경 보호 구역으로 지정해놓고 있다. 회색 지역은 대부분 거기에 속하기 때문에 특별 허가가 필요한 것이다


환경 보호구역인지라 사람의 손길은 정말 거의 닿지 않아서, 저런 데를 함부로 들어가면 조난당하기 십상이다

특히 북동구역은 이누이트도 얄짤없이 출입금지이기 때문에 저런 데에서 길을 잃었다면 얼어죽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거의 없을 것이며

설령 살아나온다 해도 그린란드 감옥에서 썩을 확률이 월등히 높다

또한 그린란드 역시 남극만큼은 아니지만 한 추위 하는 곳인지라 별 다른 채비를 안 하고 가면 뒤진다

비록 남극보단 사정이 좋아서 눈 퍼먹고 동물을 잡아먹으며 살아갈 순 있다고 해도 인간의 땅으로 돌아오는 순간 그 킬수가 니 복역년수로 변한다

그래서 굳이 허가를 안 받고 갈 이유는 없는 곳이다. 가봤자 사서 고생하니까


이 곳은 투어고 뭐고 정말 철저하게 자연보호를 위한 곳이기 때문에 남극처럼 함부로 투어도 못 한다

합법적으로 즐기려면 무조건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린란드의 이러한 정책 때문에 캐나다 앨즈미어 섬의 일부 지역도 캐나다의 허가를 받고 들어가야 하는데

제일 메이저한 이유는 얼마 전까지 이 곳이 캐나다와 덴마크의 국경분쟁지역이었기 때문이지만

국경분쟁이 대충 마무리된 현재는 앨즈미어와 그린란드의 접경지역은 대부분 무주지에 가까운 곳인지라 생각 없이 길을 가다가 무심코 그린란드의 이 출입제한구역에 들어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번외로 앨즈미어 자체에도 그린란드와 비슷한 자연보호구역이 꽤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캐나다와 덴마크의 국경분쟁은 그 땅에 서로 술 묻고 튀었다더라 하는 이야기가 맞다


별도로 북서쪽의 카낰(Qaanaaq)은 미군의 툴레 공군 기지가 위치한 곳이다

초록색으로 칠해져 있지만 함부로 접근하면 로씨야 간첩으로 오인받아 사살당할수도 있으니 여기도 사실상 허가가 필요한 지역인 셈이다


아무튼 원래도 환경이 빡세서 사람이 많이 없던 그린란드는 저 회색 지대가 통째로 무주지로 유지되다 보니 인구밀도가 지금도 세계에서 제일 낮은 축으로 유지되는 편에 속한다

저 뒤지게 넓은 그린란드 전역에 사람이 사는 마을은 100곳도 되지 않으며 인구가 2만명을 넘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이런 개빡센 환경 정책은 원래 인구가 없는 그린란드라서 가능한 정책일지도 모르겠다




아라라트 산 아르메니아 방면 - 튀르키예

(Mount Ararat, Ağrı Dağı, Արարատ, Çiyayê Agirî)



캅카스 근처 민족들의 영산으로 유명한 아라라트 산

노아의 방주가 대홍수 끝에 이 산의 꼭대기에 올랐다는 전설로 유명하며

현재도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이 산을 굉장히 신성시하고 있다


성산? 그러면 여기도 미정복 봉우리인지 뭔지 그건가보네!


그건 아니다. 이미 1829년 등반가가 다녀간 적이 있고 현재도 등정을 막진 않는다



찾아보니까 화산이라던데 그거때문인가요?


그거도 아니다. 화산 활동이 살아 있긴 한데 에트나 화산처럼 관광객들을 막을 정도는 아니다



아니 등정도 하고 관광객도 받는거면 출입금지가 맞긴 함?


그렇다. 사실 여기는 지금까지 출입금지 구역인 것은 아니다.

근데 꽤 최근인 1998년까지는 산 전역이 출입금지였다.

왜냐고? 이 아라라트산을 둘러싼 주변국들의 역사가 영 순탄치 않기 때문이다...



오 아르메니아... 비극의 땅...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아라라트산은 원래 아르메니아 민족의 영산 중 영산이었다.

근데 지금은 개뜬금없게도 아르메니아의 원쑤 중 원수 케밥들의 손에 넘어가있는 상황이다

다른 동네로 따지면 백두산 전역이 중공에 넘어가거나 올림포스산이 불가리아에 넘어가있는 상황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사실 아라라트 산은 아르메니아가 멀쩡히 살아있을 적에는 당연히 아르메니아의 영토였다

애초에 아르메니아인들의 거주지 자체가 아라라트산 동서로 뻗어있는 형태였다

하지만 아르메니아의 이후 거지같은 역사에 힘입어 아라라트산의 주인장이 여러번 바뀌기 시작하는데

이 곳을 거쳐간 곳은 일 칸국, 사파비 왕조, 카자르 왕조 등이 있었고, 이들의 말발굽 아래 아라라트 근처에 사는 아르메니아인들의 수는 하루가 다르게 줄어갔다

특히 동부지역, 그러니까 지금의 아르메니아 본토 지역의 상황이 심각했다.


몇천년의 원수 아제리인들이 여기서 혐성짓을 한 것은 기본이요, 페르시아의 이란인들은 아르메니아인들이 꼴뵈기 싫다고 저 멀리 강제이주를 보내거나 후궁 컬렉션 채우고 싶다고 한 동네 여자들을 죄다 징발해서 데려가버리기도 했다

이런 좆같은 꼬라지를 보다 못한 대부분의 아르메니아인들은 다른 곳으로 이주를 떠나버리고 아라라트산에는 소수의 아르메니아 사람들만이 남아서 그들의 역사를 근근히 이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다행히 서쪽 지역, 그러니까 지금의 튀르키예 동단 지역은 상황이 더 나아서 아라라트 동부 지역보다는 훨씬 많은 수의 인구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지금 이런 얘기 하면 아르메니아인들에게 칼 맞을 소리이지만, 돌아버리기 전의 근세 오스만 제국에서는 아르메니아인들도 나름대로 제국의 신민 정도로 봐서 임의로 강제이주를 시키거나 징발을 함부로 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스만이 아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돌아버린 제국의 최후반 말기, 결국 아르메니아 대학살이라는 대사건이 터지고 말았고, 아라라트 산 서부 지역은 이 대학살의 마수가 아주 심하게 뻗친 지역 중 하나로 지금도 기억된다

아주 맛이 간 사람이고 또 무슨 짓을 할 지 모르는 오스만인들을 피해 어떻게든 대학살을 피하는 데 성공한 사람들은 아라라트를 넘어 러시아가 지배하던 강역, 즉 동부 지역으로 다시 피난을 가기 시작했고, 

결국 상황이 역전되어 서부의 아르메니아인들이 대부분 빠지고 동부로 이주하게 된다.

당대 러시아는 그래도 아르메니아인 입주도 권장하고, 적어도 학살은 안 했기 때문이다


오스만과 로씨야가 동반자살하고만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아라라트 산은 신생 아르메니아 민주공화국의 영토가 되었다.

그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면 좋겠다만 아르메니아 굴지의 전통인지 스스로 또 똥볼을 차는 바람에 아라라트는 아르메니아의 손을 영영 떠나게 된다

아르메니아는 학살의 원수를 갚겠다면서 영국과 프랑스의 편을 들어 튀르키예 독립전쟁에 참여한다. 야심만만한 아르메니아는 오스만의 시체를 방금 찢고 뛰쳐나온 튀르키예를 공격했지만 체급 차이를 이기지 못했고, 개처럼 쳐맞는 사이 튀르키예 독립전쟁이 끝난다.

그렇게 개처럼 쳐맞고 있던 사이 아르메니아가 초반에 겨우겨우 먹어놨던 튀르키예 동단 지역이 다시 튀르키예의 수중에 떨어지고 말았고

그 동단 지역 안에는 아라라트산이 있었다



아르메니아는 좆됐다는 것을 뒤늦게 감지했지만 때는 이미 늦어서, 프룬제가 이끄는 소련군에게 응딩이를 맞고 이에 호응한 아르메니아 자체 공산세력이 프룬제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남은 영토마저 소련에 흡수당하게 된다

그리고 소련과 튀르키예는 영토협정을 맺어 아라라트는 튀르키예 땅이라고 인정하고 우호관계를 맺음으로써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되었다. 

이미 소련에게 자캅카스 SFSR로 세뇌절정조교를 당한지 오래였던 아르메니아는 눈물을 흘리며 영산이 원수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한편 아르메니아인과 별개로, 쿠르드인들 역시 이 아라라트산을 민족의 영산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스만 소속으로 아르메니아인들을 제일 먼저 때려잡던 쿠르드인들이었지만

오스만이 붕괴하고 소속 국가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상황에서 쿠르드인들은 민족 영산 아라라트산을 노려 재빨리 이 산 근처에 쿠르드인 독립국가를 세울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1926년, 아라라트 산에 있던 튀르키예군을 내쫓아버리고 아라라트 공화국을 세우게 된다



물론 당시 튀르키예 머통이었던 아타튀르크가 이를 가만 보고 있을 사람이 아니었고

아라라트 공화국은 튀르키예의 전면침공에 홀로 맞서야 했다

아라라트 측은 국제사회에 어떻게든 도움을 청했지만 국제사회는 내전이라면서 개입을 거부했고

튀르키예측은 공군을 동원한 끝에 3년만에 한 줌도 안되는 아라라트 세력을 치워버리고 아라라트를 완전히 자기 영토로 굳히는 데 성공한다. 

아라라트의 대통령이었던 비로예 헤스키 텔리는 가족을 튀르키예군의 학살로 잃고, 남은 추종자들을 데리고 이란으로 도피했지만, 이란도 이들을 싫어해서 이란군을 시켜 텔리와 그 가족, 추종자들을 전부 사살해버렸다

국방장관인 이흐산 누리는 테헤란으로 정식 망명하여 쿠르드족 독립을 위해 노력했지만 1976년 의문의 암살을 당하고 만다

그 외 다른 아라라트 수반들 전부 해외에서 객사하거나 암살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고, 아라라트의 기록은 이 아라라트 공화국을 국치로 여겨서 관련 기록물을 죄다 없애버리거나 비공개로 돌려서 현재도 아라라트 공화국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얻기는 정말 어렵다.


덧붙여 아라라트 공화국 내에는 아르메니아인들도 상당히 많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쿠르드인들을 꼴보기 싫어해서 의도적으로 내부에서 분탕질을 치며 아라라트 공화국의 붕괴를 은근히 부추겼다

역시 피도 눈물도 없는 캅카스답다



아무튼 이런 일련의 사건 이후 튀르키예는 이 빌어먹을 산에 어떠한 반동분자도 발을 들이지 못하도록 할 준비를 시작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협정까지 맺어놓은 소련이 뜬금없이 튀르키예가 꼽다고 아라라트산에 대해 '내놔'를 시전하기도 했고,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추종하는 PKK, 즉 쿠르드 저항세력을 은근히 지원하기 시작했다

미국응디의 힘으로 소련의 입을 닥치게 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PKK를 비롯한 쿠르드족 무장세력이 꾸준히 아라라트산 주위에서 분탕질을 치고, 아르메니아가 자캅카스에서 아르메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떨어져 나오면서 은근히 아라라트산을 의식하기 시작하자 결국 튀르키예는 아라라트산 전역을 군사지역으로 선포하면서 모든 민간인의 출입을 금하고 군대를 주둔시켜버렸다

이 통제가 얼마나 빡셌는지 한때 느그나라의 일부 교회에서는 튀르키예가 노아의 방주를 발견한 것이 틀림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당연히 이를 보고 있던 아르메니아가 아니었던지라 수도 예레반 남쪽에 아라라트 주라는 행정구역을 만들고, 현지 유명 와인이나 맥주 등에도 아라라트라는 이름을 첨가해 가며 어떻게든 아르메니아의 상징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소련 역시 이런 아르메니아를 은근히 불쌍하게 봤는지 국장에 아라라트산을 넣도록 허락도 해 주고, 튀르키예가 이를 가지고 따지자 그럼 초승달은 느그 땅이라서 국기에 넣은거냐고 쉴드도 쳐 줬다.



하지만 소련 응디에라도 붙을 수 있었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시절과는 달리, 독립 이후 아르메니아는 나고르노카라바흐 등 아라라트 이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들에 당면하고 말았고, 지금도 그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아르메니아가 이렇게 정신 못 차리는 사이에 튀르키예는 아라라트 산을 완전히 자기 영토로 굳히는 데 성공했고, 자신만만하게 1998년 아라라트 산을 관광객들에게 개방하게 된다.

물론 아르메니아 방면은 지금까지 출입금지로 남겨둠으로써 인성질을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지금도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한참 치고박고 싸우면 튀르키예 측에서 아르메니아 방면 아라라트 산에 무기를 배치해놓고 '와 이리 씨끄럽노?'하고 한마디씩 해 준다


지금도 아르메니아와 튀르키예의 체급 차이는 너무도 커서 호주머니 손넣고 대화하는 관계 근처도 못 가는 형편이고

아라라트 산이 다시 아르메니아의 영토가 될 날은 요원해 보인다

그나마 쿠르드 사람들은 아르메니아인보단 출입이 덜 빡세니 조금 나은 형편이다.


현재도 아라라트 산의 아르메니아 방면은 외국인 포함 전면 출입금지 지역으로 남아 있다.

아라라트 산은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에서도 잘 보이는 위치에 있지만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그저 아라라트를 바라보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






라스코 동굴 - 프랑스, 도르도뉴

(Lascaux)



흔히 우리가 역사책에서 자주 목격했던 위와 같은 동굴 벽화

이 동굴 벽화는 기원전 17000년~15000년경 후기 구석기시대, 이 지역에 살던 크로마뇽인들에 의해 그려진 그림, 라스코 동굴벽화로

그 당시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상을 잘 보여주는 역사의 명작으로 유명하다


라스코 동굴은 1940년 동네 잼민이들에 의해 발견된 이후 역사의 보고로 떡상하여 엄청난 수의 관광객이 몰려들게 된다

문제는 공개 후 한 20년정도 지난 1960년부터 발생했다



그 이유는 바로 몰려든 관광객들이었다

관광객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오운으로부터 시작된 이산화탄소와 습기, 그리고 열은 동굴의 석회암 암벽에 밀착하기 시작했고, 이는 푸른곰팡이들이 살기 딱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일부 관광객들은 벽화에 직접 손대며 지랄 옘병을 하기도 했다


동굴 곳곳에 푸른곰팡이들이 피어나며 혐성질을 하기 시작했고, 이후에는 이끼류까지 가세하여 벽에서 번식을 하기 시작한다

이윽고 푸른곰팡이들이 만든 얼룩이 동굴 벽화에까지 미치기 시작하자 결국 관리측에서 라스코 동굴의 공개를 1963년부터 금지하게 되었다

그 이후에는 정부기관의 추천장이 있는 전문가에 한해서, 그것도 하루에 6명만 라스코 동굴에 진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빡세게 관리한 덕분에 라스코 동굴의 훼손은 어느 정도 멈출 수 있었던 편이다

안에는 에어컨을 설치해놔서 온습도를 철저히 규제할 수 있도록 해 놓았고

특히 매일 모니터링을 실시하면서 어디가 어떻게 훼손되었는지를 철저히 감시하고 있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그러한 그들의 노력이 바래진 않았는지 라스코 동굴은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었다


이렇게 빡세게 관리함에도 현재까지 여전히 곰팡이 문제가 잊을만하면 터지는 편인데

대표적으로 위에 상술한 에어컨 설치 작업 당시 인부를 통해 유입된 흰색곰팡이가 에어컨을 타고 동굴 전체로 퍼져나가는 대형찐빠가 있었고

2008년에는 검은 곰팡이가 기승을 부려 아예 전문가들까지 전면 출입을 금지시킨 사건도 있었다. 당시에는 추천장이고 뭐고 그 누구도 들어갈 수 없었으며 오직 동굴 내 상태를 조사할 단 한 명만, 그것도 20분 동안만 활동할 수 있게 했다.

2018년에는 아예 신종 곰팡이가 라스코에서 처음 발견되기도 했다

라스코측은 현재도 이러한 곰팡이 침공을 막기 위해 주기적으로 심포지엄을 개최하는 등 갖은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다


현재 라스코 옆에는 라스코 동굴을 본딴 모조 동굴이 생겨서 관광객들을 받고 있다

하지만 라스코 동굴은 여전히 전문가들 외에는 출입이 굳게 닫혀 있다


비단 라스코뿐만 아니라 이러한 선사시대 유적이 있는 곳이나 독특한 자연환경이 존재하는 동굴은 외부인의 출입을 최대한 통제하는 편인데 이런 동굴들로는


비슷하게 선사시대 그림이 존재하는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 (Altamira)과


아름다운 종유석으로 유명한 뉴멕시코의 레추기야(Lechuguilla) 동굴이 있다.


알타미라 동굴은 라스코와 비슷하게 관광객으로 인한 동굴 환경 변화로 1977년 이래로 폐쇄된 곳이다. 여기엔 라스코보다도 오래 된 3만년 전 구석기 시대 우가맨들의 벽화가 있다

이후 1982년 관광수익을 포기할 수 없었는지 한 번 예약하면 3년을 기다려야하는 철저한 예약제로 운영하는 식으로 다시 열었지만, 2002년 또 다시 곰팡이가 발견되면서 결국 전면 폐쇄되고 만다.

알타미라는 방문객의 접근을 전면 폐쇄한 이후 동굴 내 상황이 더 안정되었다는 결과 때문에 2010년 스페인 문화부의 비공개선언 이후 앞으로도 영원히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을 예정이다. 


레추기야 동굴 역시 승인된 과학 연구원이나 조사팀이 아니라면 출입할 수 없다. 레추기야 동굴은 1986년 이후에야 제대로 탐사가 시작된 뉴?비동굴이기 때문에 이런 선배들의 선례를 적극 본받아 아예 처음부터 관광객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 동굴에는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미생물군에 온갖 희귀한 자연의 산물들이 빼곡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출입이 허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아직도 탐사중인 동굴이기 때문에 무단으로 들어가더라도 사고를 당할 확률 역시 정말 높다

아직도 너티 퍼티 동굴에 잠들어 있는 존처럼 똑같이 레추기야와 한 몸이 되지 않을까 싶다

현재 레추기야 동굴은 국립공원 관리청 측에서 출입을 직접 막고 있다



서뉴기니 - 인도네시아

(Western New Guinea, Irian Jaya)


현재의 서뉴기니는 인니에서도 그야말로 개판 중 개판으로 유명하며, 가히 인니의 위구르, 인니의 티베트라고 할 수 있다

티베트나 위구르처럼 서뉴기니도 외국인에게 개방이 아직 되지 않은 지역들이 많고

심심하면 주기적으로 문이 닫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진만 보면 여기도 노스 센티널처럼 원시 주민들때문에 못 들어가는건가? 싶을수 있다

하지만 이 피비린내 나는 서뉴기니 이야기에서의 원주민들은 철저한 피해자들의 위치에 있다




파푸아뉴기니로 유명한 뉴기니 섬을 잘 보면 정말 반으로 똑 잘 잘라놓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저 가운데 선을 중심으로, 동쪽은 독립국 파푸아뉴기니

서쪽은 인도네시아 영토인 서뉴기니이다.

서뉴기니는 여러 행정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서파푸아, 파푸아, 중앙파우아, 남파푸아 등등... 다들 파푸아 어쩌고 하는 주들로 이루어져 있다. 

즉 흔히 뉴기니와 파푸아를 혼용하지만 인니에서 서파푸아와 서뉴기니는 서로 다른 존재고, 서뉴기니 안에 서파푸아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렇게 선으로 딱 잘라놓은 모습이 마치 아프리카스럽지 않은가? 

뉴기니 섬이 저 모양이 된 것 역시 아프리카와 같은 이유이다

한때 뉴기니 섬의 서쪽 영역은


네덜란드의 영역이었고


동쪽은 독궈제국과 영길리의 영역이었다


19세기만 해도 사진과 같은 여러 우가우가 원시부족들이 지배하던 뉴기니 섬은 가끔 가다가 말루쿠나 술라웨시 등지의 상인들이 방문해서 교역하는 것 외에는 인적이 뜸한 섬이었다

그래서 가끔가다 부족들끼리 서로 머릿가죽도 벗기고 식인도 때리고 하는 것 외에는 정말 평화로운 섬이었는데

위에 있는 애들이 오면서 뉴기니 섬을 삼분할하게 된 것이다

서쪽에서부터 네덜란드령 동인도를 확장해오던 네덜란드는 정확하게 서쪽을, 독궈는 동북쪽, 영국은 동남쪽을 먹게 되었다


1차세계대전 이후 독일이 전세계의 식민지를 상실하자 뉴기니의 독일세력은 맥없이 쫓겨났고 남은 뉴기니 땅은 영국이 원래 갖고있는 땅과 세트로 따까리처럼 부리던 호주에게 토스하여 호주가 집어먹게 된다

비록 백호주의의 영향으로 반 짐승 취급을 받긴 했지만 호주는 지하자원 채굴 외에는 뉴기니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후에는 태평양전쟁이 터져서 동서 둘 다 통째로 일본땅이 되는 경험도 하게 된다. 처음에는 주인을 몰아낸 일본을 반겼지만 이후 일본은 본색을 드러내 기미가요를 안 불렀다고 사람들을 수육으로 만드는 등 민심은 개나 줘버린 뻘짓을 시작했고, 결국 해방자가 아니라 날강도가 들어왔음을 깨달은 개빡친 뉴기니 주민들은 연합국에 붙어 일본 새끼들이 어디 숨었는지 제일 먼저 알려주는 든든한 협력자들이 되었다

미국응디의 힘으로 일본이 어떻게 잘 진압된 덕분에 뉴기니는 다시 주인님들 손에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전후 뉴기니를 갖고 있던 두 주인님의 속셈은 사뭇 달랐다

호주는 파푸아뉴기니에 그냥저냥 자치권을 주고 알아서 잘 살라고 놔뒀지만

네덜란드는 나치와 일제에게 나뉘어져 세뇌착정조교를 당하던 5년간 이상한 바람이 들었는지 자기들도 독립 좀 시켜달라는 인니의 가슴팍을 호랑이처럼 달려가 걷어차기 시작했다

물론 당시 네덜란드는 20만명 가량이 나치와 일제의 손에 이미 죽고 없어진 상황인데다가 전후 복구도 얼마 안되서 잿더미 국토를 놔두고 미국의 마셜플랜 돈을 빌려다가 전쟁을 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결국 인니는 미국의 눈에 들기 위해 공산당을 척결하겠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미국에 보냈고, 

비록 얼마전까지 같이 독립하겠다고 싸웠던 공산당원들이 수육이 되는 사소한 찐빠가 있었으나 이를 좋게 본 미국의 '갈' 한마디에 네덜란드는 힘 없이 인니에서 나가야 했다


그런 와중에도 네덜란드가 끝까지 쥐고 있던 것이 바로 이 네덜란드령 뉴기니이다

네덜란드는 어떻게든 이 서뉴기니만큼은 인니와 별도로 독립시키겠다는 크나큰 포부를 품고 있었지만

어쨌든 승전국이었던 인니의 강력한 요구와 그 뒤를 봐주고 있던 미국의 눈치 때문에 통치권을 울며 겨자먹기로 인니에 넘겨야 했다

서뉴기니를 넘겨받은 인니 역시도 네덜란드와 싸우면서 이상한 바람이 들었는지 갑자기 태도가 돌변해 서뉴기니 주민들에게 누칼협, 누총협을 실시하면서 자기들 맘대로 대표를 뽑는 바람에 결국 참다 못한 서뉴기니에서도 독립전쟁이 발발했고

이 상황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단 인니 안에 여러 민족들이 그렇게 많이 분포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이들은 기본적으로 말레이계 뿌리를 두고 있기라도 하다. 

인니 안 민족들은 기본적으로 이슬람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설령 이슬람이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말이 어느 정도는 통하는 편이기도 하다


반면 파푸아인들은 멜라네시아쪽 사람들이고, 언어도 전혀 다른데다가 종교도 토착신앙이 적절하게 짬뽕된 기독교가 우세하다

이렇게 차이가 나는 사람들인데도 바로 옆에 있다는 이유로 한 나라 하자고 하니 잘 섞일래야 섞일수가 없다


인니 정부에서는 어떻게든 서뉴기니를 동화시키려고 여기에 인니의 대가리급 민족인 자바인, 순다인들을 잔뜩 이주시켰다

그리고 이렇게 이주해서 간 자바인, 순다인들은 마치 중공의 한족들이 위구르와 티베트에서 그렇듯 서뉴기니의 온갖 자본들을 잠식하며 파푸아인들을 가혹하게 탄압하고 있다


특히 이들 인니 정착민들의 파푸아인에 대한 인종차별은 정말 심각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자바인, 순다인들이 파푸아인들을 지칭할 때 기본적으로 쓰는 워딩이 원숭이(Monyet)이다. 다른 곳은 그나마 깜둥이, 쪽5바리, 짱3꺠 등 일단은 사람 취급은 해주는 데 반해 여기서는 기본적으로 종 자체가 다르다면서 아예 원숭이라고 박고 들어가는 것이다. 

이 원숭이라는 워딩 자체가 파푸아인에 대한 차별의 대명사정도로 여겨져서 현지 파푸아인들도 우리는 원숭이가 아니라 인간이라면서 시위를 하곤 한다


정착민이 아니더라도 인니 내부에서 파푸아인의 취급은 바닥을 긴다. 

당장 전 부통령이라는 인간이 '파푸아인은 생산성이 낮고 사고가 단순하여 당장 먹을 음식, 당장 입을 옷만 있어도 충분하다. 술도 존나게 마신다' 정도의 이야기를 공식석상에서 자연스럽게 얘기할 만큼 파푸아인들에 대한 차별의식은 인니에 짙게 깔려 있다. 

대부분 게으르고, 술에 절어 있고, 무식하고 더러우며 무능력하다는 편견적 이미지가 많으며 이 때문에 파푸아인은 인니 고용 시장에서 은근히 차별을 받는다



아무튼 이런 차별을 보다 못한 뉴기니인들이 자유 파푸아 운동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현재까지 인니 정부에 저항하고 있으며

자유 파푸아 운동을 비롯한 여러 저항군들이 들고 일어나 서뉴기니는 준내전 상황에 빠지고 만다


하지만 인니의 앞에 이러한 저항세력들의 힘은 역부족이었고 이들은 국제사회의 묵인 속에 인니에게 패배하고 만다

결국 인니에게 패배한 이후 서뉴기니는 경제발전, 인프라 설치 등등 국가 서비스에서 철저히 배제되었고

인니 내 우범지역 1위, 남성의 48%가 강간을 한 경험이 있고 나머지는 강간을 당한 경험이 있는 강간의 왕국 등 불명예스러운 타이틀 아래 살아가고 있다


서뉴기니의 자원들은 인니가 등에 업고 온 수많은 미국, 호주, 말레이 등의 외국 기업들에게 헐값에 팔리게 되었다

느그나라의 코린도라는 기업도 이 중 하나였는데 처음에는 인니에서 다양한 사업을 벌이는 것과 코로나19당시의 선행 정도나 보도되었지만 

나중에 팜유 생산 때문에 3만~6만 헥타르의 우림을 무단으로 불태우고 개간한 사실과 인니 응디를 이용하여 파푸아 주민들의 자유를 침해한 사실이 드러나 국제산림관리협의회 자격이 박탈되기도 했다



현재도 서뉴기니 지역 깃발은 인니 국기보다 무조건 낮게 달아야 하며, 조그마한 시위라도 일어나면 인니 정부 측에서 주기적으로 대놓고 락다운을 걸어서 어떠한 외국인도 출입하지 못하게 한 후 빠따로 때려잡는 곳이다

인니에서 파견된 교사나 공무원들은 여전히 뉴기니인들을 상대로 인종차별을 하고 있으며 인터넷도 차단당했다

서뉴기니 저항세력은 망명정부를 선포하거나 뉴질랜드 민항기를 인질로 잡는 등 국제사회의 이목을 어떻게든 끌어보려고 현재도 열심히 노력 중이다


서뉴기니 지역은 2003년부로 한동안 외국인의 진입이 불가능했지만, 현재는 살짝 풀려서 분쟁 지역을 제외하고는 관련 외국인들에 한해 방문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서뉴기니의 문이 언제 또 닫힐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오늘은 컨디션이 영 안좋아서 여기까지만 적는다

재미난 소재를 저번편에 거진 다 써서 좀 누잼일수도 있는데 미안하다이기

다음에 4편으로 돌아오도록 하겠다

많이 봐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