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라이브 대부분 이용자의 고향인 파라과이
옛날 옛적 이 동네 원주민인 과라니족의 허구헌날 민속놀이마냥 일어나는 반란을 진압하다 지친 스페인 식민 정부는
가톨릭 수도회인 예수회 신부들에게 이 동네 사정을 대충 설명해준 후 관리하라고 짬처리를 하게 된다
아닌 밤에 짬을 맞은 예수회 신부들은 그래도 이 또한 하느님의 뜻일거라며 열심히 원주민들에게 신앙을 전파하고, 농지를 일구며,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온 노예사냥꾼 씹새끼들로부터 원주민들을 보호하는 등 나름대로 훌륭하게 그들이 받은 땅을 가꾼다
이러한 가톨릭 원주민 마을 연맹체를 두고 레둑시온(Reduccion)이라고 한다
이들은 이윽고 마테라는 효자 상품을 발굴해내어 이걸로 국제무역의 강호로 떠오르는 등 대박을 치게 된다
스페인은 당연히 이 레둑시온 체제에 위협을 느꼈고, 결국 무력진압을 결정하게 된다
열받은 과라니족이 전국적으로 반란을 일으키고, 예수회 신부들도 분노하여 스페인의 총칼을 온몸으로 막아세웠지만
이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파라과이는 스페인의 무력진압에 짓밟혀 다시 스페인의 품으로 돌아가게 된다 (기열 싸젯말로는 강제합병이라고 한다!)
그렇게 한동안 조용히 살던 우리나라... 1811년 돌연 독립을 선언하게 되는데...
내 이름은 크리스티아누
본래 포르투갈 사람이지만 사랑찾아 인생찾아 브라질에서 새 삶을 시작하려 배에 올랐다
근데 씨발 배가 가다가 침몰해버렸다
브라질에 딱 안착했으면 몰라 내가 광고에서 본 거랑 영 딴판인 해안가이다
여기도 남미는 남미인거 같긴 한데... 여기가 대체 어디야?
반갑다 아쎄이!
으아악! 씨ㅣ발 깜짝이야 당신 누구야!
새끼... Bienvenidos!
반갑다! 나는 파라과이의 집정관 호세 가스파르 데 프란시아라고 한다!
편하게 프란시아라고 불러라 아쎼이!
박사 학위가 있으니 프란시아 박사라고 불러도 좋다!
빨아...가이...? 나라 이름이 왜 그모양이예요? 그런 데도 있었나
아이고 시발 이럴떄가 아니지 스페인어 하는 프랑스 박사님 저좀 도와주십쇼 ㅠㅠ
무슨 일인가 아쎄이! 우리 국민의 일이라면 무엇이든 도와주겠다!
우리... 국민이요...?
그 선생님 뭔가 잘못 알고 계신데 제가 빨아가이가 아니라 브라질로 가려고 했던거거든요
혹시 브라질 가는 길이 어딘지 좀 알려주실수 있을까요...?
새끼....
어 왜그러세요
기열!
갑자기 가슴팍처럼 날아와 호날두의 호랑이를 걷어찬 프란시아
과연 무엇 때문에 그럴까?
어이쿠 씨발
아니 이게 뭔 짓이예요
새끼... 기열!
파라과이의 땅을 밟은 이상 너는 파라과이를 나갈 수 없다!
아이 뭔 개소리예요 내가 브라질로 가겠다는데 그런게 어딨어요
저 여기 배편도 있어요 보세요
네가 선택한 파라과이다
악으로! 깡으로! 거주해라!
Caralho! 아니 진짜 아까부터 지랄이네? 처음보는 사람을 갑자기 후두려 까질 않나 내가 여길 언제 선택했다고 지랄이요
있는거라곤 마테차에 모기 말라리아밖에 없는 이딴 곳에 어떻게 살아?
좋은 말 할때 브라질 보내 줘 이 씨발 스패냐드 새끼야
기열!
크아악
너 파라과이 살거야 안살거야!
...살게요
새끼... 기합!
자진입국을 환영한다 아쎄이!
그렇다! 프란시아 박사가 지배하던 당대의 파라과이는 외부인이 함부로 발을 들이면 다시는 나오지 못하고 꼼짝없이 국민이 되어야만 했던 폐쇄국가, 감히 남미의 해병성채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던 것이다!
마치 옛날 옛적 저 멀리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표류한 외국인들이 다시는 조선 밖을 나가지 못한 경우가 많았던 것처럼, 당시 파라과이에서도 표류하거나 해서 우연히 들어온 외국인들은 파라과이 거주를 강제로 요구받았던 것이다!
이는 신생국가 파라과이가 이웃의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돼지들에게 종속되어선 안 된다는 생각에 일단 국력부터 키워야 한다고 본 프란시아 박사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강직한 쇄국 정책을 펴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때 파라과이에서는 지금의 북괴가 그렇듯 여행과 우편도 전면 통제였다!
한편 파라과이는 신생국가답게 유럽에서의 이민을 적극 유치했고, 난민이나 망명자들도 곧이곧대로 잘 받았다
1820년에는 옆동네 우루과이의 독립 영웅 호세 아르티가스가 부하 200명과 함께 망명을 왔고
1839년에는 집단 탈영한 브라질 아쎄이 중대가 파라과이에 찾아와 국가 단위로 이들을 환대해 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유럽 이민자들은 출신성분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가끔씩만 받았고, 어찌저찌 들어왔다 해도 역시 이런 취급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아니 글쎄 저는 단기로 일하고 고향에 다시 갈 수 있는 줄 알았다니까요
집에는 언제 보내줘요
기열!
크아악
...그 시절답게 취업사기도 성행한 편이었으며, 이렇게 파라과이 땅을 밟고 다시는 돌아가지 못한 대식이들도 많았다
아따 시발... 거 존나게 살벌한 곳이구마
지금부터 호구조사를 하겠다 아쎄이!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
크... 크리스티아누...
기열! 지금부터 니 이름은 크리스티아'노'이다!
기열찐빠 포르투갈 이름은 버리도록!
아이 간지 안나게 노가 뭐예요 부끄럽게시리
스페인에서 독립했다면서 이래도 되는거예요?
기열!
어이쿠
시발 왜때려요!
새끼... 기열! 아무리 포르투갈 태생이라도 우리나라를 호시탐탐 노리는 브라질의 흘러빠진 모어를 사용하는 것은 반민족 행위다!
나도 비록 상파울루 출신으로 원래 이름은 프랑사였지만 스페인스럽게 프란시아로 바꾸었다!
포어를 고집하는 걸 보니 혹시 브첩인가? 브첩이라면 자네가 갈 곳이 따로 있긴 하네만...
우와 정말요? 당장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아이 프랑스 박사님 좋은분이셨네 거 마
사형장인데?
ㅋㅋㅋㅋㅋㅋ...?
아그야 니가 잘 모르나본데 이 과라니 땅에선 내가 대통령이고 판사고 니 아버지여
우리 땅에 왔으면 우리말을 써야제? 계속 느그 기열찐빠 언어를 고집하는걸 보아하니 내 눈에는 니가 브라질의 페드루 턱수염쟁이 새끼 간첩으로밖에 안보이는구마이
우리 파라과이가 요새 총알이 없어서 총검으로 푹 담가가지고 사형을 집행하는디... 어찌 편안~하게 한번 가 볼랑가?
제 이름은 크리스티아노입니다. 아버지께서 그렇게 붙여 주셨습니다.
새끼... 농담! 우리 파라과이는 언어 따위로 사람을 사형하는 흘러빠진 짓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포르투갈어는 듣기 싫으므로 대신 우리네 좋은 언어인 과라니어를 배우길 바란다!
과라니어로도 크리스티아노이니 참고하도록!
...
대신 총검으로 사형 집행하는건 진짜니까 처신 잘 하도록
하 씨발 진짜
포어를 특별히 탄압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지만, 프란시아 박사는 브라질을 꽤나 경계했다
본인도 상파울루 출신인 사실상 포르투갈 인이었지만, 프란시아는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입각한 국가를 세우겠다는 일념 하나로 파라과이 굴리기에 진심인 양반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 통합이 필수였고, 예수회의 보호를 받다가 겨우 독립한 인구의 대다수, 과라니족을 위해 과라니어 장려 정책을 펼쳤고, 과라니어가 정 안되겠다면 과라니족이 그나마 알아들을 수 있는 스페인어를 쓰도록 장려했다
포어 썼다고 죽이거나 한 건 아니지만 눈치는 많이 줬다고 한다
그건 그렇고, 자네 여친은 있는가?
갑자기 여친이요?
포르투갈에서부터 같이 온 여자친구가 있긴 하죠
약혼도 했는데 이쁘죠 ㅎㅎㅎ
헤어져라
...?
아쎄이! 파라과이에서는 유럽인과 유럽인의 통혼은 이루어질 수 없다!
유럽인은 오직 메스티소, 원주민, 흑인과의 통혼만 가능하다!
유럽 우월주의와 차별의식을 없애고 새로운 파라과이인으로 태어나는 중요한 과정이니 꼭 참여하도록!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아르헨티나처럼 크리오요 흰둥이들만 판치는 나라가 되고 원주민들과 혼혈, 흑인들은 굶어 나동그라지는 흘러빠진 국가가 되고 만다!
여기 신부의 사진이다! 잘 생각해보길 바란다 아쎄이!
자진 결혼을 환영한다!
선 넘네
야 이 씹년아 내가 얘랑 사귄게 얼만데
내가 여기 오고 싶어서 온 거도 아니고 오늘 처음 본 양반이 헤어져라 마라야 시발
당신 뭐 돼? 진짜 참자참자 하니까
데려온 것도 저런 태워먹은 나방같은 년을 데리고 와?
새끼... 파라과이성소수자!
안 헤어지면 법적처벌인데?
아이 시발 사형? 총검으로 쑤시던 말던 맘대로 하쇼 이건 절대 포기 못합니다
조강지처 버리고 지금 웬 처음보는 흑년이랑 결혼하라고?
어딜 누구맘대로 시발롬이 진짜
기열!
크아악
새끼... 기열! 흘러빠진 이민자의 생각답구나!
이 또한 파라과이를 위한 길임을 왜 모르는가!
그치만... 그치만!
당신이... 당신이 내 사랑을 알아?
어떻게 사람이 그래
솔직히 니같으면 결혼하냐?
계속해서 반국가적인 모습을 보이니 기열 중 상 기열이 틀림없구나
그런 너에게도 회개할 길을 두 가지 주겠다
죽이려면 죽여 시발롬아
내 죽어도 쟤랑은 안 간다
파라과이는 법치 국가이기 때문에 그럴 수는 없다 아쎄이!
황룡이 사로에서 부활하듯이 기열에게도 솟아날 기회를 줘야 하는 법!
그대 또한 이대로 칼에 찔려 죽고 싶지 않다는 것을 이 프란시아 박사는 잘 알고 있다!
씨발 거 들어나 봅시다
군대가기 vs 노동하기
반박시 사형
...
이씨발롬아 그런게 어딨어!
꼬우면 결혼하든가
으아악! 이럴 순 없어! 시발 차라리 죽여!
이런 기열을 군대에 보내어 국명을 위태롭게 할 수는 없지
이 아쎄이를 황무지 개척단에 '자진가입' 시키도록!
으아악 당신 꼭 내가 복수할거야 저 시발새끼
이름도 프랑스인 새끼가 시발 자기도 브라질 사람이면서
자진 노동을 환영한다 아쎄이!
당시 프란시아 박사는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처럼 소수 백인들이 다수 원주민들과 혼혈들을 찍어누르는 사회가 파라과이에 도래하지 않기를 바랬다
그렇게 내린 극약처방이 바로 유럽인들은 유럽인들끼리 통혼하지 못하게 하는 정책, 즉 파라과이-전우애(기열 싸젯말로는 강제통혼이라 한다)이었다
파라과이 건국 이전부터 거주하던 스페인인들과, 파라과이 건국 이후 들어온 유럽인들은 오직 메스티소, 원주민, 흑인과만 통혼할 수 있었다
이는 인종에 따른 사회경제적 차별을 최소화하고, 하나의 파라과이인 개념을 정립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이 인종간 통혼 정책은 법으로 제정되었고 반발 시 처벌이 기다리고 있었다
좀 빡세긴 했지만 나름대로 이유는 있던 셈이다
물론 전우애를 거부할 시 저기 멀리 있는 수용소 테베고로 추방되거나 촌구석 황무지로 추방되어 그 곳을 개척해야 했다
이런 곳은 보통 동부 늪지대 아니면 서부 그란차코 사막으로 19세기 사람들에겐 아주 살기 빡센 곳들이었다
프란시아 박사가 사망했을 때 이런 수용소에 606명의 수감자가 있었는데, 이 중 116명이 프란시아 박사의 정책에 반발하다 잡혀간 외국인들이었다
지하 감옥도 전국에 깔려 있었는데 별명이 진실의 방이었다
진짜임
파라과이 대부분의 공산품은 '자발적' 감옥 노동으로 만들어졌으며, 상술했다시피 반역자들에겐 총알이 아깝다고 일일이 총검으로 파라과이-케밥(기열 싸제어로는 칼찌라고 한다)을 만들어 버렸다
프란시아가 참고한 다른 나라는 프로이센이었다. 프란시아는 프로이센을 본받아 파라과이를 남미의 프로이센, 즉 남미의 군사 강국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국가 평등과 공동 방어를 바탕으로 연맹을 형성해야 한다고 믿었고,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자발적' 협조를 위해 잘 갖춰진 군대를 양성했다
물론 나라 경제가 말이 아니었기 때문에 적당히 뻥카도 쳐 가면서 양성했다. 한 때는 5천명 대군이 준비되어 있다고 주변 국가들에 큰소리를 뻥뻥 치기도 했지만 사실 그 때 실제 군사는 649명이었던 적도 있다. 좆만해 보이지만 그 당시엔 다 그랬다
비록 좆만한 살림이지만 한두푼씩 모아 전함도 건조했고, 카누나 슬루프 등등을 끌어 모아다 해군도 마련했다
또한 군인들의 기를 살려서 직업정신에 투철하게 만들기 위해 나머지 국민들이 군인에 대한 예를 갖추도록 했는데, 일례로 사람들은 길을 가다 군인을 만나면 무조건 모자를 벗어 예를 갖춰야 했다
질문 있습니다! 모자가 없으면 어떻게 하나요?
알면서
그래서 당시 파라과이에서는 이 법을 지키기 위해 모자 챙만 있는 모자 비슷한 무언가가 유행하기도 했다
또한, 프란시아는 의심병 역시 심했다
특히 이는 1820년의 반역 사건 이후 더 심화되었다
야 프랑사 이 씨발롬아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계급장 떼고 붙자 따라나와 이 씹새끼야
파라과이의 전 집정관이자 프란시아의 동료, 현 백수였던 예그로스를 중심으로 반란이 일어난 것이다
근데 야심차게 실행하고 나선 것과 달리 기일 전 음모 계획이 적힌 편지가 걸려서 들통난다
결국 예그로스와 다른 주동자 1명은 케밥이 되었고 나머지는 보석금 15만 페소씩을 삥뜯기고 겨우 풀려났다
형편없이 실패했지만 어쨌든 이 일로 프란시아는 마음 속 한 구석 의심병이 도지기 시작한다
사실 이 이후로도 하녀가 케이크에 독을 꼬라박는 등 워낙 그 막나가는 성격 때문에 주위의 적이 엄청 많았고 그에 따른 암살시도도 굉장히 많았다. 하지만 시초는 예그로스의 이 실패한 반란이다
프란시아... 암살 무섭다... 아무도 암살 못하게 할거다...
이 이후로 겉은 강직하지만 속은 하남자가 다 된 프란시아는 일단 모든 반정부 세력을 불법화하고 비밀 경찰대를 설립하여 기열들을 소탕했다
교회마저도 못 믿겠다면서 독립 교구로 분리된 파라과이 교구를 자기가 돚거한다. 교회 재산을 전부 몰수하고 자기 자신을 파라과이 가톨릭의 수장으로 임명하여 모든 성직자들에게 자신에 대한 충성을 맹세할 것을 강요했다
비오 7세는 프란시아를 즉각 파문했지만 프란시아의 반응은 알빠노였다. 구대륙에 있는 놈이 뭘 할 수 있는데?
아까 삥뜯긴 반역자들 기억하지? 프란시아는 국토 확장을 명목으로 이 300명의 불쌍맨들의 땅을 전부 압류하여 국유지로 만들어 버린다. 교회의 토지 역시 마찬가지로 국유지로 전환되었고, 그 이후에는 불체자나 아까 말한 죄수들이 개간한 땅을 국유지로 편입시켰다
프란시아는 직접 관저 문을 잠그고, 독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자기 누나가 만든 시가만 피웠다
마테차 먹을 때도 자기가 재료부터 다 준비했고, 베개 밑에는 항상 권총을 두고 잤다
누구도 그의 걸음 6보 안에 접근할 수 없었고, 지팡이라도 들고 있다면 바로 '기열'이었다
프란시아가 말을 타고 갈 때는 닌자들이 숨을 수 없도록 그 길에 있는 모든 나무와 수풀들을 뿌리째 뽑았고, 덧문을 모두 닫아야 했으며, 보행자들은 사무라이 지나가는 것 마냥 바짝 그 앞에 엎드려 있어야 했다
물건마저 함부로 사지 않아 프란시아가 죽은 후 남은 거라곤 담배 케이스와 과자 상자 하나 뿐이었다
소유금은 취임했을 때보다 두배 정도 늘어나 있었다고 한다
결정적으로, 프란시아는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죽었다
자기도 흑인이랑 결혼하긴 싫었나 보다
물론 나쁜 점만 있던 건 아니다
프란시아가 국유지로 만든 토지는 군대의 둔전으로 활용되거나 농민들에게 임대되었다
모든 남성들에게 의무교육을 받게 하는 법안을 만들었고, 이 덕분에 파라과이의 교사 수가 36배로 증가하고 문맹률도 크게 감소했다! 새끼... 파라과이고지능!
부국강병을 위해 전문적인 대군을 양성했고, 없는 살림에 해군도 유치하여 파라과이에게 지역강국의 타이틀을 안겨 주었고, 이를 15000여명의 예비군으로 구성된 대규모 민병대가 뒷받침했다.
평소에 군인에게 예를 지킬 것을 강조했기 때문에 군인에 대한 평판이 하늘을 찔렀다
결정적으로, 그의 '파라과이인' 개념은 어느 정도 성공하여, 현재도 파라과이는 본토 출신 크리오요라고 특혜를 받는 일이 상당히 적고, 원주민 문화가 멸절된 이웃 아르헨티나와 달리 원주민 문화가 아직도 그 명맥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지금도 파라과이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일상 언어는 스페인어도 아닌 과라니어이며, 관광객이 과라니어를 사용하면 '자네 아버지가 파라과이 사람인가' 버프 때문에 물건값이 할인된다고 한다
하여간 이 덕분에 파라과이는 남미에서 어깨 펴고 다니는 나라 중 하나로 그 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방법이야 빡셌지만 그 덕분에 파라과이 전국이 기합국가 빨아게이로 재탄생하게 되었으니 모칠좋고 톤톤좋은 일이 아니랴!
싸우면 이기고 지면은 죽어라! 과이과이 차차차! ¡Bravo! ¡Bravo! ¡Larga vida a Paraguay!
그리고 파라과이는 주제파악을 못한 채 주위 근돼들에게 싸움을 걸었다 피떡이 되고
이후 다시는 그 명성을 회복하지 못했다
파라과이는 이후 남자가 다 뒤져서 여자만 넘쳐나는 나라가 되었고, 이 때문에 여자가 강제전우애(기열 싸젯말로는 강간이라고 한다)을 당하거나, 미성년자가 여자한테 강제전우애를 당하면 땡큐썰이라고 말해야만 하는 미개한 전통이 꽤 최근까지 남아있었다. 이유는 자손을 남기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따흐앙!같은 이유였다. 지랄...
일부다처제가 공식 부활하기도 했는데, 이는 전쟁 후 80년이 넘게 유지되어 1950년대까지 남아 있었다. 현재도 수위는 약해졌지만 이런 미개한 전통들이 아직 남아있는 편이다.
인구가 그야말로 파탄난 파라과이는 쇄국 정책을 내다 버리고 이민자들을 적극 유치하게 된다. 당연하지만 그 좆같은 해병성채법은 없애 버리고 대신 정부 사람들이 발벗고 나서서 제발 파라과이에 머물러 주십시오 ㅠㅠ하고 읍소하는 방식으로 바뀌어 버렸다
얼마나 간절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덕분에 원주민들과 혼혈들은 이런 파탄난 파라과이를 살릴 수 있는 국가의 기수 취급을 받게 되어 더욱 존중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나마 있던 바닷길이 막혀 내륙국이 되는 바람에 크리스티아누 같은 사례는 더 이상 없게 되었다
파라과이는 지금도 라틴아메리카에서 제일 존재감 없는 좆밥찐따로 남아 있다
아무래도 좋은 사실이지만, 슬픈 사실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프란시아의 일대기를 비롯한 파라과이의 초창기 역사는 현재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프란시아의 치세 동안 일어난 일을 기록한 건 농담 거르고 위에 있는 게 전부라고 봐도 된다
진짜다
뭐가 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정확히는 남아 있었다
하지만 위의 삼국전쟁 때문에 삼국 국가들, 특히 파라과이와 사이가 더럽게 안 좋았던 브라질은 파라과이 수도 아순시온의 온갖 외교 문서, 유물, 역사적 자료를 아주 그냥 탈탈 털어 브라질로 가져가 버렸다
가져간 이후에는 브라질 황제가 직접 황궁에서 피아노 18대와 650명의 악기연주자를 동원한 개쩔어버리는 파티를 열면서 인성질을 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문제는 가져간 나라가 브라질이라는 것이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브라질이라는 나라는 약간 맛이 갔고 또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모르는 병신국가이다
브라질은 나라에 돈이 없던 나머지 연구비 지원을 받지 못하는 바람에 이렇게 가져간 가치 있는 역사 자료들을 국립박물관에 대충 보관만 해 놓고, '언젠간 연구하겠지 뭐' 이런 마인드로 시간이나 보내다가 축구나 보러 갔다
안 그래도 파라과이 자체의 존재감이 없는데, 프란시아와 그 후임 로페즈 부자의 이상한 짓거리만 해외에 알려져 버린 나머지 해외 국가들도 파라과이 역사에 대해 별 관심도 없었고 오히려 까기에 바빴으며, 없는 살림에 이런 곳에 연구비가 배정될 리도 없고, 이에 따라 연구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그냥 미래나 기약하며 쌓아놓은 자료가 상당했던 것이다
그리고 결국 2018년, 관리 미비 끝에 파라과이 역사 자료 거의 전부가 보관된 브라질 국립박물관에 대화재가 나고 만다
국립박물관의 유물 90%가 전소하는 대참사였고, 파라과이의 역사 자료들은 이 때 전부 최후를 맞게 된다
건져 나온 것도 없고, 하필 화재 진원지와 가까운 곳에 있어서 이 역사 자료들은 단 하나도 무사할 수 없었고, 결국 그냥 잿더미가 되었다
이렇게 파라과이의 1870년 이전 역사는 영원히, 영원히 과거에 묻히게 되었다
상술했듯, 우리는 1811년에 파라과이가 어떤 과정으로 독립했는지도 모르며, 막연하게 독립했다는 사실만 인지하고 있다
사실은 빡센 인물이 아니었을지도 모르는 프란시아의 인간적인 면모는 영영 알 수 없게 되었다
프란시아가 파라과이에 끼친 영향 역시도 미지에 빠지고 말았다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것은 얼마 남지 않은 파라과이 역사의 단편 뿐인 것이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오도기합짜세였던 우리나라의 대통령 프란시아를 기억해 보는 것은 어떨까?
'...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