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인류는 원딜의 민족이었다. 원시인의 짱돌부터 현대의 기관총까지 원거리 무기는 그동안 초월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일반인은 무시하긴 쉬운데 생각보다 대단히 위력적인 무기가 있다. 바로...

슬링이다.

우리말로 투석구, 무릿매라고도 부르는 물건인데, 끈 두개 사이에 투척할 돌멩이가 들어갈 주머니가 부착된 심플한 물건이다. 사용법 또한 간단한데, 적당한 사이즈 짱돌 하나 주워다가 끼우고 양쪽 끈을 잡고 돌리다가 한쪽을 놓으면 된다. 그러면 원심력으로 가속된 돌멩이가 날아간다. 구조가 간단해서 그런지, 유럽, 아프리카, 잉카, 한국, 호주 등 어디서나 활처럼 슬링 유물이 발견된다. 



그런데 걍 던지면 될걸 왜 이런 물건까지 써서 던짐? 이란 말이 나올 수 있다. 


물론 그냥 짱돌 주워다 던지는 것도 인간이라는 동물의 어깨 구조상 대단히 위력적인 공격이다. 오랑우탄같은 애들이 팔힘이 더 세서 잘 던질 수 있을것 같지만 아니다. 던진다는 행위 자체가 복합적인 근육과 관절의 움직임이 필요한 활동인데, 인간만이 이 활동을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다. 

애초에 원시시대 인간의 사냥방식이 투창이나 짱돌투척으로 체력을 뺀 다음에 사냥감이 지쳐 죽을 때까지 추적하는 거였다.


조금 딴길로 샜는데 아무튼 슬링을 쓰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걸로 던지면 말 그대로 총알급의 위력을 낼 수 있다. 기본적으로 투척은 팔의 원심력이 작용하여 물체에 운동량을 부여하는데, 이 팔의 길이가 늘어나면 그에 비례하게 가속도가 증가하게 된다. 즉, 슬링의 길이만큼 팔이 늘어난 상태가 되는데, 그 때문에 돌의 속도가 경이로울 정도로 올라간다. 납으로 만든 럭비공 모양 슬링 탄환을 쓰면 숙련자가 던질 시 160km/h라는 정신나간 속도가 나오는데 이 탄환에 맞으면 1570J이라는 더 정신나간 운동에너지가 나온다. 이게 실감이 안 나는 사람을 위해 예시를 가져왔다.

.22 long riffle 탄환 193J

.45 ACP, 9mm 파라블럼 탄환 ( M1911, K5 권총 ) 500~800J


.44 매그넘 탄환 ( 데저트 이글, 콜트 파이썬 ) 1400~1700J


5.56×45 mm NATO 탄 ( M16시리즈, K2 소총 ) 1700J

보면 알겠지만 어지간한 권총탄은 명함도 못내밀고 데저트 이글같은 괴물이나 소총 정도는 가야지 비빌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거 화약 같은거 없이 그냥 던진거다.


이 투석으로 유명했던 부대가 로마에서 고용했던 발레아레스 투석병들인데, 지금으로 치면 스페인 지역이다. 토마토 던지는거 보면 이 양반들도 선천적으로 뭔가 던지는건 타고난 양반들 같다. 이 부대 전적이 아주 끝내주는데, 200m 이상 떨어진 사람 크기 표적을 자유자재로 맞히는 것은 물론 철 투구를 쓴 사람의 두개골을 으깨고 청동 정강이받이를 한 장정의 정강이뼈를 분지른 경우도 다반사(...)이며, 조금 더 큰 돌을 써서 소나 말을 일격에 쓰러뜨린 사례도 있다. 이쯤 되면 인간 대포라 해도 될 정도다. 기록에 따르면 저 머리띠 용도의 짧은 투석구랑 허리띠 용도의 긴 투석구를 번갈아 가면서 상황에 맞게 장거리·근거리·직사·곡사 사격을 자유자재로 소화했다고 한다.


또 슬링으로 유명한 사람으로 성경에 나오는 다윗이 있다. 다윗은 원래 양치기였는데, 지금은 뭔가 연약한 이미지가 연상되지만 현실에서 양치기는 양떼를 끌고 풀밭과 연못을 찾아 길도 없는 험지를 하루에 수십 km 주파하기를 밥 먹듯 하는 고대판 카우보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카우보이한테 권총이 있듯이 양치기들은 슬링을 가지고 다녔는데, 가벼운 데다 돌멩이 한둘 있으면 양을 노리고 접근하는 늑대나 들개를 어렵지 않게 쫓아낼 수 있어서 여러 모로 활보다 편했다. 성경에서의 묘사를 보면 


불레셋 장수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자, 다윗은 재빨리 대열에서 벗어나 뛰쳐나가다가 주머니에서 돌 하나를 꺼내어 팔매질을 하여 그 불레셋 장수의 이마를 맞혔다. 돌이 이마에 박히자 그는 땅바닥에 쓰러졌다. 이리하여 다윗은 칼도 없이 팔매돌 하나로 불레셋 장수를 누르고 쳐죽였다. 다윗은 달려가서 그 불레셋 장수를 밟고 서서 그의 칼집에서 칼을 빼어 목을 잘랐다. 불레셋 군은 저희 장수가 죽는 것을 보고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 사무엘기 상권 17장 48 ~ 51절 (공동번역성서)


그냥 한방으로 뚝배기를 땄다. 아까도 말했지만 슬링의 달인이 던진 돌은 총알이랑 비교가 가능할 정도인데 저게 이마에 꽂힌 거다. 안 죽은게 이상한 수준이다. 


참 역동적이게도 찍혔다.

우리 조상님들도 투석구 하면 한가닥 하시는 양반들이었다. 마을 단위로 서로 돌 던지면서 겨루는 석전이라는 놀이가 있었는데, 그냥 눈싸움처럼 하하호호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서로 머리가 터지고 뼈가 부러지는 난투극에 가까웠다. 이때도 그냥 던지기도 했지만 전문적인 석전꾼들은 투석구를 애용했다. 그 덕인지 단련된 석전꾼들은 임진왜란 같은 전쟁에서도 적들 머리통을 여럿 깨부쉈다.


이렇게만 보면 만들기도 쉽고 위력도 끝내주는데 왜 금방 활로 대체되었는지가 의문일 거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한데 숙련되기가 더럽게 어렵다. 

앞에서 투석구로 유명한 발레아레스에서는 어린아이가 첫 발에 표적을 맞히지 못할 경우 밥을 안 줄 정도로 가혹한 훈련을 10년 넘게 한 짱돌리스트 천지였기 때문에 저런 위력이 나올 수 있던 거였다. 활은 시위를 겨누고 있으면 어느 정도 원하는 타이밍에 발사할 수 있지만 슬링은 빠르게 돌리는 와중에 타이밍을 잡는 것이 어렵기도 하고, 곡사나 직사 등의 기예는 더더욱 어려웠다. 그래서 슬링은 활에 밀려 빠르게 쇠퇴했고, 지금은 스포츠나 취미 정도로 근근히 버티고 있다.

여담으로 슬링의 탄환에 글씨가 새겨져 있는 유물이 자주 발견되는데...

"이거나 쳐먹어라!"

"이거 맞고 임신이나 해라", "옥타비아누스 엉덩이 맛 좀 보자.", "옥타비아누스 자지는 물렁자지."

"루키우스는 대머리." 등등... 고대로부터 이어진 대머리 드립과 섹드립의 깊은 전통을 알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