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생활상(중류층)

19세기 하류층 생활상

19세기 상류층 생활상

고대 로마제국의 생활상

19세기의 겨울 생활상



우선 댓글들 보고 장소챈에서도 글을 쓰기로 결정했음


그리고 날이 풀려서 그런가 오후엔 따뜻하길래 여름 생활상도 써보기로 했음.


그리고 시작하기 전에, 특정 지역에 한정된 여름나기 수단은 제외하며


기존까지의 글들이 그랬듯 미국/유럽 기준으로 서술함. (한국 등 당시에 비주류였던 지역은 미국/유럽을 다 다루거나 혹은 다루는 와중에 짬짬히 쓸 예정)








1. 옷을 갈아입음


지금도 더우면 반팔티로 입는 게 너무나도 당연하고, 19세기라고 예외는 아니다


미국 기준, 대부분은 겨울에 두꺼운 모직 옷을 입다가 여름에는 린넨이나 면으로 만든 옷을 입었다 전해진다.










2. 도시로부터 탈출


신분, 생활수준을 따지지 않고 여름이 되면 다른 곳으로 피난을 갔다.


MacNish의 말에 따르면, 낚시용 판잣집은 가족이 여름에 머물고 노동자들이 농지로 '통근'하는 원시적인 방갈로로 발달했다 한다.


또한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강가, 해안에서 낚시를 하거나, 돈이 있다면 별장으로 가서 쉬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무더위를 이겨냈다고 한다.


쉽게 말해 오늘날로 따지면 여행을 가든 호캉스를 하든 집에 있든 우리가 여름 휴가를 떠나는 것과 같다.










3. 부채


부채는 패션, 사교 활동, 다양한 종교 및 문화 의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19세기 대부분의 기간 동안 돈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는 1800년대 후반에 바뀐다. 종이 등으로 부채는 값싸게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으며 명분, 산업, 정치인 후보 광고 등으로 주로 쓰이면서 무료로 나눠줬다.


사용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부채질로 더위를 식히는 것이다.


덤으로, 선풍기와 부채는 둘 다 영어로 Fan이다.











4. 조리 시 열을 최소화.


19세기는 전기가 발견되었지만 후기가 되기 전까진 전기를 아직 적극적으로 쓰던 때가 아녔다.

따라서 요리를 할 때는 레인지(요리용 난로)에 불을 붙히고 유지하는 게 필수였다. 공간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집 근처에 "여름 주방"이라는 별도의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이것은 집 부엌을 쓰지 않기에 온도를 시원하게 유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여름 주방"이 없거나 부득이하게 집 안의 부엌을 써야 할 경우, 그 날의 음식을 이른 아침에 준비하거나 전날 밤 해가 진 후에 준비했다 한다. 그리고 당시 부엌은 열 문제로 최대한 격리되게 만들었다 한다.










5. 야외 생활


폭염이 지속되어 열대야 현상이 일어날 경우 오늘날 우리가 그러는 것처럼 야외로 나섰다. (가족들이 매트리스를 가지고 야외로 가서 아에 자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처럼 강 등 여러 근처 야외로 나가는 경우도 많았지만, 개인 주택일 경우 현관으로 가는 경우도 많았다.


당시 현관은 단순한 현관이 아니었다. 더위를 피할 휴식 공간과 동시에 직사광선으로부터 방을 보호하기 위한 공간이었다.


현관이 있는 집들은 야외에서 저녁 식사를 하거나, 가족끼리 이야기를 하는 등 이 곳에서 더위를 피했다.


20세기 초 뉴욕 경찰 법원의 기록에 의하면 공동 주택에 살았던 사람들 중 일부는 여름에 비상 탈출구에서 잠을 잤고, 주택 조사관은 매트리스로 화재 탈출구를 막고 있다는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벌금을 먹였다 한다. 그리고 20세기 초와 별반 차이 없는 19세기에도 이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6. 창문을 적극 활용


19세기부터 창문의 가격이 싸졌기에 이때 많은 사람들은 창문을 되도록이면 높게 만들려고 했다. 그 이유는 창문이 높으면 높을수록 공기 흐름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었다.


또한 측풍을 활용함과 동시에 겨울철 바람을 막기 위해 집의 방향을 고려하기도 했다. 따뜻한 지역에서는 창문과 문이 집의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정렬되도록 주택이 지어졌으며, 바람이 통과하여 공간을 식힐 수 있었다 한다.












혹은 이런 식으로 창가에 식물을 두거나 커튼을 치거나







Awning 이란 걸 설치해 차단했다 한다. (Awning은 대충 그늘막이나 테라스 천막, 차양막 같은 거라 함)












7. 공기의 흐름을 최대한으로 만든 건축 설계.


일부 집은 창문이 많아 환기의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었고, 이 공기 흐름의 효율성을 더 높히기 위해 천장을 높혔음.

그렇게 된 결과 천장의 높이는 10피트(3.048미터)가 표준이 되었음.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경우 *transom window를 설치하여 공기의 흐름을 유도함 


*사진에서 창문이랑 문 위에 있는 창문. 한국어로 뭐라하는지 모르겠음.












8. 선풍기(전기로 돌아가는 그 선풍기)


선풍기 자체는 원래 있었으나 산업용, 광산용으로나 쓰였음. 그랬는데 Schuyler Wheeler가 1886년 최초의 가정용 선풍기를 개발했음.

그러나 전기가 본격적으로 가정에 공급될려면 20세기 중반까진 기다려야 했고 가격 또한 만만치 않게 비쌌기에 소수만이 쓸 수 있었음.










고전 하면 자주 보는 천장 선풍기도 비슷한 시기에 발명되었음.


참고로 에어컨도 19세기에 있었으나 너무 커서 상업용으로나 썼고, 가정용으론 20세기에 캐리어라는 사람에 의해 발명되므로 19세기 사람들은 에어컨 천국이 뭔지 알기 힘들거임.










10. "천연 에어컨"(적합한 단어가 생각 안남)


물론 에어컨처럼 드라마틱한 효과는 없지만, 열린 창문 에다 젖은 수건이나 커튼을 걸어놓든가 하는 방법으로 공기를 최대한 식혔다.

또한 얼음을 구할 수 있었다면 선풍기를 이용해 그 차가움으로 더위를 식히거나


창문 환기 대신 부채로 직접 환기시키는 방법도 있었다.(자신에게 직접 펄럭이는 거 말고)










11. 양산


바깥으로 나갈 때 양산을 들고 외출하기도 했다.










12. 기타


아이스크림, 얼음, 수박, 오이 등 "차가운 성질"의 음식들로 버티기도 했음.


여름에는 카펫을 제거해서 따로 보관함.




모기의 경우 모기장을 썼다 함. 그 외 모기 대처법은 잠깐 검색해봤지만 정보가 안나옴








이 글은 작성했을때 정보를 대부분 https://www.history.com/news/11-ways-people-beat-the-heat-before-air-conditioning 에서 참고하였으며, https://www.quora.com/How-did-people-handle-extreme-heat-in-XIX-century 에서도 일부 참고함.

일부 중복되는 거나 중요하지 않은 글은 뺐음.



앞으로 장챈에다도 연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