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시리즈(유럽/북미. 메인 시리즈)

19세기 생활상(중류층)

19세기 하류층 생활상

19세기 상류층 생활상

19세기의 겨울 생활상

19세기의 여름 생활상

19세기 사람들의 생활상 - 의학 편(이 글)


19세기 시리즈(유럽 외)

미작성


외전

고대 로마제국의 생활상

북한 평양시민의 생활상



작성 예정

19세기 군인들의 생활상

장교편

사병편

식민지 파견 군대편

19세기 뱃사람 생활상

19세기 식문화

19세기 조선 생활상

유목민 생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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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한의사협회을 중심으로 의과대학 정원을 기존 3000명에서 5000명으로 늘린다는 정부의 발표에 반대하여 단체 사직서를 낸다니, 동맹휴학을 한다니 하는 말들이 많다.


누구는 의사를 지지할 수도 있고 누구는 의사를 깔 수도 있으나, 나는 이 뉴스를 보곤 문득 19세기 당시 사람들의 의학에 대해 써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럼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본문으로 들어가 보자

그리고 나는 원래 사회적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그닥 안 좋아하기에 의협 관련 의견은 표출하지 않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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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1. 병원의 실상

2. 약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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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까지는 그래도 외형적으론 기존 중세시대와 비슷한 면도 있었지만, 19세기는 18세기 이전보다는 20세기, 21세기에 훨씬 가까운 시대다. 급변하는 시대도 엄밀히 따지면 19세기부터 시작하고, 생활상의 본격적인 변화, 자본주의, 자유민주주의, 공산주의 등 우리가 아는 거의 모든 근대 사상 또한 19세기를 뿌리로 두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의 병원 또한 19세기에 그 기반이 만들어진다.












1. 병원의 실상


19세기에는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가다 오히려 감염되어 죽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병원은 온갖 토사물과 소변, 여러 채액으로 가득했다. 또한 소독 개념도 거의 없어 의사들이 씻지 않은 맨손으로 살균도 하지 않은 칼로 외과수술을 하는 건 덤이었다.


그래서 기껏 수술을 해서 나았다 한들 세균 감염으로 도로 죽어버리는 경우도 꽤 많았다.







이그나스 제멜바이스는 오스트리아 빈의 한 산부인과에서 손 씻기로 사망률을 낮출려고 노력하였으나, 동료 의사들로부터 악마라 취급받아 실패로 끝났다.


사실, 이들의 반응은 당연했다. 당시에는 소독 개념은 커녕 세균이 뭔지도 몰랐다. 당시 사람들은 공기의 냄새가 병을 전염시킨다 믿거나 조금 더 나아가면 19세기 중반부터 '독기'라는 부식성 물질 입자가 공기 중의 유독한 증기를 타고 전해지면서 질병이 퍼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병원의 위생 상태가 감염에 이바지한다는 생각 또한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후 파스퇴르가 1861년 세균을 발견하고, 1870년대에 세균이 병의 원인이란 게 밝혀진다.

여기에 파스퇴르의 영향을 받은 영국 의사 조지프 리스터가 손씻기를 포함한 수술 전 소독 절차(무균법)을 만들며 이 손씻기를 포함한 살균 절차는 19세기 후반에 뿌리를 잡게 된다.









당시 소독은 페놀의 일종인 석탄산을 이용하였다.










한편 일반인에게 병원 입원이란 공포 그 자체였다. 

예를 하나 들면 크림 전쟁 당시 영국의 간호사 나이팅게일이 전쟁터에 오기 전만 해도 야전 병원의 사망률은 38%였다.

그리고 그 원인 중 상당수는 위생 문제였다.


그리고 이는 일반인들이 접할 병원이라고 사정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따라서 무의탁자나 죽음을 앞둔 자가 치료를 받는 곳이란 인식이 당시 사람들에겐 확 박혀있었다.

특히 수술은 더 무서워했고, 거의 이런 중환자였기에 대부분 누워 지냈다 한다.








19세기 초반에는 우리에게도 유명한 사망률 300퍼센트 수술 일화*처럼 마취없이 생살을 찢으니 최대한 빨리 해주는 의사들을 선호하였다.


그런데 무척 다행스럽게도 중반부터는 서서히 아산화질소, 에테르, 클로르포름(에테르의 문제**를 개선한 물질)  등 초기 마취제가 발명되었다.

마취제의 아버지가 누군지는 아직도 논란 속에 있지만, 1844년에는 최초로 마취제를 이용한 치과 치료가 있었으며 1847년 1월부터 제임스 심슨은 에테르 무통증 분만을 시작했다.

산모의 고통은 신의 섭리라는 등 종교적 입장에서의 반대 의견도 종종 나왔지만 이 의견은 빅토리아 여왕도 분만 시 마취제를 애용함으로서 쑥 들어갔다.

이후 효과가 더 좋은 클로르포름이 에테르의 뒤를 이어 빠르게 19세기 마취제의 주류가 된다.


재밌는 점은 1880년대 통계에 따르면 에테르는 사망자가 1000명당 3명, 클로로포름은 14명이 나옴으로서 아이러니하게도 수치상으론 에테르가 조금 더 안전하단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실제로 클로로포름은 후에 심장이 뛰지 않거나 호흡기가 막히는 등 사망에 이르는 사례가 발견되어 다른 마취제로 대체된다.

 




*거짓말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에테르는 역한 냄새와 인화성, 폭발의 위험이 있다.










이 중 아산화질소, 에테르는 1830년대 대학생들에게 유행한 "에테르 파티" (지금의 마약처럼 환각상태를 즐김)와

25센트를 주고 웃음가스(아산화질소)를 마신 후 취해 같은 청중들에게 바보짓을 해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등 단순히 유흥, 오락거리로 썼던 물질이었다.


애초에 당시 마취제의 발명도 이를 보고 깨달은 거라 한다.









마지막으로 이 그림은 19세기 병원의 조리실을 묘사한 삽화다.










2. 약품들


19세기는 의학의 과도기였다. 따라서 당시 개발한 약품들은 대부분이 처음 만들거나 시도해보는 것이었으며, 당연히 부작용이나 마약같다는 것도 당시의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이 글의 대부분은 약품 중 당시에 합법이었던 약, 또는 약이라 믿었던 식품들을 다루며 20세기 초까지 그 시간대를 공유한다.








1. 헤로인


헤로인. 그러니까 지금은 마약인 이 약은 1898년에 처음 제조되어 기침억제제로 널리 쓰였다.


나오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이유는 폐렴, 감기등에 매우 효과적이란 소문이 나서 그렇다.


결국 이 약이 시판된지 1년만에 내성을 가진 사람들이 나타나고, 당연히 더 많은 헤로인을 원하게 되었다.


즉, 호흡기 질환에 쓸려고 구매하다 마약 중독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10년 넘게 잘 팔아먹다가 1913년에 제조 중단, 1924년에는 미국에서 마약으로 지정되었다











2. 코카인(코카인 치통완화제)


코카인 치통완화제는 1885년 뉴욕에서 "즉각적인 치료"를 약속하는 광고로 불티나게 팔렸다.


당시 코카인은 국소부위 마취제, 강경식품 등으로 쓰였으며, 이 제품은 치과에서 마취제에 주로 쓰였다.






얼마나 코카인이 인기였냐면 코카인을 넣은 와인 뱅 마리아니, 그리고 금주법이 시행되자 1886년에 술 대신 탄산을 넣은 코카콜라 등의 상품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코카인은 우리가 알다시피 마약이다.


결국 코카인 또한 중독 등 부작용으로 1900년대에 사용이 중지된다. 그러나 일부 병원에서는 아주 제한적인 경우에 쓰인다고 한다.(국소마취제)







3. 윈슬로 여사의 통증 완화 시럽


1849년, 윈슬로 여사는 미국 메인 주에서 아이들을 위해 통증을 완화시키는 시럽을 개발한다.

이 시럽은 아프거나 잠자지 않는 애기들에게 큰 효과가 있었다.


다만 문제는... 이 시럽의 성분 중 하나가 모르핀이라 1930년대에 판매 금지를 당한다.

실제로 이게 합법였던 시절에도 가난한 사람들이 하루종일 일은 해야 하고, 애기는 배고프거나 울고불고 할 것이 걱정되어 이 약을 먹이다 영원히 잠들었단 뉴스가 종종 떴다고 한다.


참고로 아편 또한 애기를 잠재우기 위해 먹였다 한다.








4., 클로로포름 기침시럽


클로로포름은 위에서 말한 마취제로, 천식 증상에도 그 효과를 보였다 한다.


당시 천식은 치료하기 매우 힘든 질병이었으니 이게 불티나게 팔리는 건 당연한 운명. 이에 따라 심장이 뛰지않거나 호흡기가 막혀서 사망에 이르는 사례가 속출하자 의학계는 이를 멀리하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클로로포름은 입안을 세척하거나 연고에 쓰이는등 여기저기에서 사용되다가 1970년대가 되서야 법으로 사용이 금지된다.







5. 히로뽕(메스암페타민)


1893년 나가이 교수가 개발한 마약으로 당시에는' 최신항피로각성제', '피로의 방지와 회복에, 히로뽕 정!' 이란 광고를 붙히고 지금의 박카스처럼 쓴 약이다.


이 마약은 2차 세계대전까지 독일,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군인에게까지 쓰이다 이후 금지된다.










6. 모르핀.


1805년 독일에서 발견되고, 1827년 독일 약국에서 처음 판매가 시작되었으며 19세기 중반에는 주사기가 개발되면서 모르핀을 혈관으로 주입할 수 있게 되었다.


통증과 기침을 멎게 하며, 암, 우울증 등 온갖 병을 치료하는 기적의 약물로 취급되었지만, 역시나 마찬가지로 금지를 당한다.










7. 아스피린


독일의 호프만이 1897년 개발에 성공하고, 2년 후 1899년부터 판매를 시작했다.


아스피린은 지금도 진통제, 해열제, 항혈전제(혈소판의 응집을 억제하여 혈전을 막는 약품) 등으로 자주 쓰인다.









8. 케첩


토마토는 설사와 소화불량 등에 효능이 있다. 그래서 1830년대에 미국에서 약으로 특허를 받아 상비약으로 쓰이기도 했다.







9. 담배


Cigares de joy 라는 담배는 독말초의 성분이 있어 천식, 기관지염, 고초열, 기침, 독감, 감기 및 호흡곤란에 효과가 좋다고 나와있다.


1875년 Medical Times와 Gazette에 따르면 담배는(정확하게는 흡연) 폐에 약물을 전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여겨졌다 한다.











10. 촌충


다이어트용으로 촌충을 쓰기도 했다.





맘껏 먹고 날씬하게 유지하세요!


다이어트, 목욕, 운동은 이제 그만!


단명의 원인인 비만, 이제 내보내세요! (광고 문구 중 일부)












11. 리스테린


그 구강청결제 리스테린 맞다. 

1860년, 위에서 무균법을 개발했다고 서술한 조지프 리스터는 수술 중 감염을 막기 위해 공기 중에 살균액을 분사했다. 이로서 그는 세계 최초로 살균된 수술실에서 수술을 한 의사가 되었다.

그리고 1876년 리스터는 수술의 근대화을 위한 두 사람의 노력을 공개적으로 인정했는데, 그 중 한 명은 바로 조지프 로렌스다.

이후 그에게 영감을 받은 조지프 로렌스는 1879년 외과 수술 및 상처 소독을 위한 소독약으로 리스테린을 개발했으나, 1914년부턴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구강청결제가 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엄청 많네


암튼 이번 글은 여기까지 쓰겠다. 난 의학 전공이 아니니 만약 의대생이고 오류나 보충할 정보 있음 댓글로 지적 바람.

그리고 어쩌면 유챈에서의 연재를 중지하고 장챈에서 이어나갈 가능성이 있으니 참고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