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읽다가 작년 일 생각나서 써봄.

작년 중순 쯤인가 집에 어머니 안 계시던 날, 동생이랑 술 같이 먹으면서 이것저것 얘기했거든.

집안 꼬라지 이런 거 어떻게 생각하냐, 나중에 뭐 할거냐, 대학 생활 재밌냐. 평범한 일상 얘기.

이것 저것 얘기하다가 연애얘기까지 하게 됐어.

남자친구 만들 생각 없냐니까 괜찮은 사람 있으면 하겠지만 도통 없다는 거야.

살면서 초등학생 때 소꿉장난 치듯이 사귄 거 빠면 남자친구 사귄 적도 없고.

당연히 섹스 경험도. 섹스는 무슨 자위도 안해봤다.

솔직히 말하자면 남자랑 섹스하는 것 자체가 두렵다.

해본 적도 없는 주제에 뭐가 무서우냐 물어보니까 자기 친구 중에 벌써 속도 위반한 친구도 있고, 임신하면 어떡하냐는거.

그래서 내가 뭔 임신이냐. 콘돔 제대로 쓰면 임신할 일 절대 없다. 뭣하면 경구피임약이나 사후피임약 제때 먹으면 0프로에 가깝다라 해줬지.

근데 얘 진짜 아무것도 모르더라.

콘돔은 알면서 바부같은냔...

사후 피임약이 원리가 뭔지 내 입으로 설명하게 될 줄이야.

열심히 설명해주니까 그런 게 있었냐며, 그러면 좀 덜 무서워해도 되겠다면서 피식 웃더라. 그러더니

"근데 오빠, 콘돔 제대로 쓰는 게 뭔데? 어떻게 쓰는 데?"

사랑해 미칠 것 같은 숫처녀 입에서 저런 말이 뜬금없이 나오니까 예상도 못하고 뒤통수 한 대 맞은 것 같았음.

그 자리에서 바지 내리고 착용 시연할 수도 없고 굴러다니던 소주병 잡고 설명했다.

공기 주머니 빼고 돌돌 말아서.

진짜 콘돔 사 가지고 온 건 아니고.

손짓으로 쓰는 시늉 해줬지.

나중에 남친 생기면 콘돔 낀 고추 잘 감시해보라고 첨언하면서.

동생은 알겠다고 깔깔 웃다가 물었음.

"오빠는 여자친구 만들생각 없어?"

여자친구...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여자 사귀었던 때가 19년도 8월.

군 입대 직전 타이밍에 헤어진 사람이 제일 최근 연인임.

고등학생 때 얘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고, 동생 잊어보려고 사귄 여자.

노력했는데 역시 근친 성향은 타고난 건지 극복 안 되더라.

일부러 여자친구 있던 8개월 동안은 나도 동생을 피했고, 평소엔 거의 먼저 연락해오던 동생 쪽에서도 전화나 카톡도 잘 안 하고 해서 시간이 가면 감정이 사라질 줄 기대했는데 말이다.

애가 타서 역으로 감정이 커지기만 커졌지.

그 사람이랑 안 좋은 일로 헤어지고 나서는 동생이랑 보내는 시간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으니 전화위복인가.

"여자친구?"

이젠 바꿀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알고있지.

네가 있는 데 누굴 왜 사귀냐. 시간 아깝게.

"내가 좋아하는 여자는 당분간 너 하나. 한 명 더 해서 엄마 정도 뿐일 걸."

술 김에 동생 머리 쓰다듬으면서 너 좋아한다고 말해버렸다.

며칠 전에 누가 쓴 친남매썰 글 보니까 '사랑한다'는 너무 직설적이고 '좋아한다'는 애매한 표현이니 간볼 수 있으니까 여동생한테 고백 비스무리한 거 했다는 사람 있던데, 딱 그 생각으로 좋아한다는 단어를 채택했다.

뭐라 따져대면 적당히 간 보면서 도망치면 되니까.

근데 얘 표정이 심상찮았다.

입술주름과 미간이 좁혀지는, 그러면서도 눈은 땡그랗게 커져서는 눈싸움하듯 내 눈동자를 직시했다.

기분 나쁜 건지 좋은 건지 아리송한 얼굴.

찡그린 것도 아니고 웃는 것도 아니고.

당황한 건가?

그렇다기엔 이어지는 한 마디가 한 치의 떨림 없이 너무 침착했다.

"어? 응? 뭐? 오빠 나 좋아한다고? 좋아해?"

비단 감촉 같은 동생 머리칼 1초라도 더 만져야하는데, 손이 굳었다.

뭐지? 엄마까지 말했으니까 가족애로 해석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망설이는 것도 없이 이런 해석하기 어려운 반응을?

머리 속이 복잡했다.

확실히 당황한 건 나였다.

대충 가족애적인 표현이라고 둘러댔고 동생도 수긍하는 듯 했는데...

여자의 촉은 무섭다고 했던가.

내 속에 뭐가 있는지 본능적으로 느낀 건가?

여동생은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