굵은 대리석 기둥 밑으로 여러 사람이 모여있었다. 무역 중개업자부터 시작해 용병과 지주로 보이는 사람의 고성이 이리저리 퍼지고 있었는데 이때 누군가 계단 밑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깔끔해 보이는 정장에 황금으로 만든 뱃지를 왼쪽 가슴에 단 중년의 남성이었는데 무언가 전할 소식이라도 있다는 것처럼 발걸음이 급해 보였다. 그래서 다들 그 사람 주위에 몰려들었다.


황제의 식민지 정책에 개혁이 있을 거라는 소문이 사실이냐고 추궁하는데 그중 가장 많이 소리 지른 건 지주와 용병이었다. 노예제 폐지가 제국 의회에서 거론되고 있다는 정보가 있다며 자리를 떠나려는 남자의 길을 막아섰는데 당연히 소란스러워지는 만큼 경비원이 상황을 통제하고 남자가 떠날 수 있도록 가까스로 길을 만들어주었다. 덕분에 그곳에선 탐욕스러운 외침이 크게 울렸다.



" 아니 이 사람아!! 노예제 폐지가 말이 되냐고!! 나라 망치려고 작정을 했네!! "


" 그 노예 법 하나로 주둥이에 풀칠하는 사람이 몇인지 알고는 있는 거냐고!! 당신들!! "


" 이래서 위정자는 안 된다니까!! 세금이 누구 주머니에서 나오는지 전혀 모르고 있잖아!! "



노예제, 기원전부터 인류가 사회를 조직한 이례 꾸준히 유지된 법으로 상위 계급이 하위 계급의 권리를 박탈하고 사실상 가축으로 취급하며 부를 축적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절대적인 규칙이었다. 그러나 제국이 이루어지고 몇 세기가 지난 현재, 이 나라의 황제를 포함하여 몇몇 정치인이 식민지 확장 정책에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면 노예제의 부는 특정 계층에게만 뿌려지는 단비와 같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아니라 개인의 재산이기에 노예 소유주의 입장에선 현존하는 가축 중 가장 똑똑하고 가성비 좋은 존재이니 노예제는 최고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국가의 입장에선 이야기가 달라졌다. 그렇게나 개인의 소유물로 묶여만 있다면 그만큼 병역의 의무도 없고 납부의 의무도 없는 것들에게 식량을 소비하고 관리하는데 적잖은 유지비용이 사용되니 이들에게는 다르게 보였다. 



" 예정대로 간다면 아마 다음 국정 회의 때 노예제 폐지가 정식으로 발의될 겁니다. 참석하는 인원 중 적잖은 사람이 동조하고 있으니 올해 안으로 집행할 수 있을 겁니다. 폐하. "


" 그래야지, 망할 그 섬나라의 함대에 맞서기 위해선 우리 역시 인력 확보가 필수적이다. 배 한 척 띄우려고 할 때마다 병사 수 백 명이 사용된다는 걸 감안하면 노예제는 기생충과 다를 바 없다. 심지어 세금도 안 내잖아. "


" 그리고... 사업가 대표단이 말했던 내용이기도 하지만 노예를 전부 노동자로 전환하면 노예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유동성 높은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겁니다. "



심지어 노예는 재산이기 때문에 건강부터 시작해 식사까지 꼼꼼히 확인해 봐야 한다. 하지만 노동자는 그럴 필요가 없다. 몇 푼 안 되는 인건비 좀 던져줘 그걸로 본인 의식주 문제를 전부 감당하게 하고 세금도 걷을 수 있으니 지금의 황제는 노예보다 노동자가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노예였다면 작업 중 다쳤을 때 주인이 치료를 해줘야 하고 인력 공백에 쩔쩔매야 하지만 노동자는 그냥 해고하고 다른 사람을 모집하면 되니까.


그러니 황제를 제외하더라도 적잖은 사업가들이 이 개혁에 적극적으로 후원해주고 있었다. 극한까지 비틀어서 이윤을 챙기고 그 당사자들에게 자유를 줬다며 생색도 낼 수 있다니, 그야말로 일거양득이었기에 식민지 정책 개혁, 그중에서도 노예제 폐지는 소문이 구름처럼 퍼져 큰 화제가 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소식은 당연하게도 제국의 깊숙한 곳에서부터 썩어가던 쾌락의 교단에도 알려졌다.



" 으음, 그러면 곤란한데... 노예제가 폐지되면 우리의 종교 활동이 살인이 되는 거잖아... 그러면 안 되지~ 요즘 시대에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는 건 구시대적이라고. "


" 그러고 보니 황궁에 우리 신도 몇 명이 최근에 들어가지 않았던가요? 걔들에게 지령이라도 내리시죠. 굽든지 삶든지 알아서 바깥으로 유인할 거예요. "


" 음... 그럴까? 그러고 보니 황제가 무슨 맛일지 생각해 보지는 못했네. "



쾌락의 교단, 이름 그대로 쾌락을 지양하는 종교 집단이었는데 헌금만 지불하면 암암리에 불법적인 쾌락까지 주선해주는 곳이기 때문에 옛날부터 말이 많았던 조직이다. 특히 이들은 노예 시장에서 적잖은 외국의 노예를 사들여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짓을 망설이지 않았기에 만일 노예제가 폐지되면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게 불 보듯 뻔했다. 그래서 이들 역시 식민지 정책 개혁에 개입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특히 최근에 교단의 세력을 확장하다가 황궁 소속의 사람도 개종하는데 성공했으니 이참에 황제까지도 건드려 보기로 했다. 우선, 하녀에게 지령을 보내 일정표를 확보하고 건강 상태를 조사해 보았는데 흥미롭게도 지나친 업무량 때문에 상당한 스트레스에 지쳐있었다는 보고서가 올라왔다. 아무래도 식민지 전쟁 문제로 제대로 쉬지를 못하는 눈치였기에 이것을 기회 삼아 새로운 지령을 보낸다.



" 폐하, 호출하신 안마사가 지금 대기 중입니다.  "


" 하... 이 나이에 마사지를 받는 건 애늙은이 같아서 좀 그런데... 정말로 그래야겠느냐? "


" 하지만 온종일 피곤하시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시지 않습니까? 딱 한 번만 해보시죠. "



황제의 피로를 이유 삼아 교단 소속의 안마사를 황궁에 잠입시키는 것인데 당연하다고 해야 할지 황제는 이 상황을 그다지 좋아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언뜻 봤을 땐 하녀들이 돈을 모아 본인의 건강을 챙겨주는 것이니 기특하기는 하나 아직 30세도 안 된 그에게 마사지는 늙은 사람이나 받는 일종의 치료로 보였으니까, 그렇기에 괜히 마사지 좀 받았다간 건강 이상설이라는 소문이 퍼질까 그게 더 걱정됐다.


하지만 하녀들의 이러한 호의를 계속해서 거절할 수는 없었는지 결국, 일단은 비밀리에 안마사를 만나보기로 했다. 적당히 상대해 주고 내쫓을 생각이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이때 방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조금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딱히 아무도 그런 말은 안 했지만 나이 좀 있는 늙은이가 왔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소파에 앉아 기다리고 있던 건 본인과 비슷하거나 어려 보이는 여자였다.



" 안녕하세요~ 페하... 이렇게 직접 목도하게 되니 영광입니다. "


" 그... 그래, 그렇겠지. 듣자 하니 그대가 실력 좋은 사람이라던데 한 번 믿어보겠다. "



갈색 머리에 담백한 미모를 자랑하는 미녀였는데 처녀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웃음기 하나하나가 유리를 보는 것처럼 맑고 깨끗했다. 그래서 황제는 살짝 불그스름해진 뺨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며 의자에 앉는데 이윽고 한번 주물러 보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그러한 반응에 안마사는 폭소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아이 마사지도 아니고 성인을 상대로 돈 받고 하는 일인데 겨우 그런 수준을 할 리가 없었다.


그러니 안마사는 살며시 옆에 놓인 작은 침대에 손을 내밀며 이곳에 엎드려야 한다고 대답했다. 팬티 차림으로, 그러자 황제는 잘 익은 토마토처럼 새빨개지는 몰골로 경악하는데 어찌나 당황하는지 안마사의 손과 침대를 수차례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침대는 살짝 낮은 높이에 얼굴을 파묻기 좋게 끝에는 적당한 넓이의 구멍이 있어 엎드리기에는 좋아 보였다.



" 지, 진심으로 말하는 거이냐...?!! 우리는 사귀는 사이도 아니지 않느냐... 어찌 생판 모르는 남녀가 속살을 보인단 말이냐... "


" 혹시, 마사지가 처음이신가요? "


" 당연하지...!! 이 몸은 건강하고 젊은 사람이다!! "



안마사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황제를 달래듯이 설득했다. 속옷을 제외한 모든 옷을 잠시 벗어두고 침대에 엎드려야 진행할 수 있다고, 필요하다면 벗을 때만큼이라도 두 눈을 가리고 있겠다면서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는데 그러면서도 손가락 사이를 벌려 움찔하며 놀라는 황제를 바라보았다. 금빛 곱슬머리에 매혹적인 붉은 눈동자를 가진 황제는 은근히 남자보단 여자처럼 느껴졌다.


특히 부끄러워하며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가까스로 옷을 벗어 던지는 모습은 겁탈당하는 계집애만큼이나 무력해 보였는데 하나하나 벗겨지느라 노출되는 뽀얀 피부는 아기처럼 보이기도 했다. 심지어 분홍빛 젖꼭지를 애써 가리려고 한쪽 팔을 밀착시켜 간신히 가리는 몸부림이라든가 볼록하게 튀어나온 성기를 짓누르며 보여주지 않으려고 몸을 꽈배기처럼 꼬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남성스럽지 않았다.



" 다, 다 됐다...!! 이제 누우면 되는 것이냐...? "



애초에 귀엽고 아름다운 외모로 오래전부터 성별 논란이 있었던 황제였으니 이러한 상황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러니 안마사는 가까스로 성욕을 억제하며 차분히 황제를 침대로 안내하는데 그렇게 그가 엎드린 자세로 바닥을 보자 가방에서 향초를 꺼내 들었다. 향기로운 냄새가 나도록 제작된 그 양초는 보라색부터 주황색까지 색깔이 다양했는데 색깔만 다르지 사람을 흥분시킨다는 효과는 동일했다.


그런 향초를 황제 주변에다 불붙이며 이번에는 마사지용 오일을 꺼내 드는데 신경 세포를 민감하게 해주는 효능이 함유되어 있어서 그런지 안마사는 흠칫흠칫 놀라면서도 손가락 사이사이까지 골고루 묻히더니 이윽고 황제의 어깨부터 시작해 골반을 거쳐 종아리까지 흘러 내려가듯이 전신을 도포했다. 이 행위를 대략 3번 정도 더 해주는데 횟수가 누적될수록 황제는 부끄러운 소리를 흐느꼈다. 



" 아흐흐흣...!! 흐그그극... "



추위에 떠는 것처럼 어깨까지 오싹오싹해 하던 황제는 안마사의 손가락 움직임 하나하나에 허리를 양옆으로 움직였다. 간지럽기도 하고 척추를 따라 올라오는 강렬한 쾌락에 뇌가 아픈지 은근히 목덜미와 머리털을 움켜쥐고 있었는데 그러한 뒷모습이 제법 먹음직스러웠는지 안마사는 혓바닥으로 말라가는 입술을 가볍게 핥더니 엉덩이로 손을 뻗었다. 엉덩이는 방금 구운 식빵처럼 따뜻한 열기와 말랑말랑한 촉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안마사는 그런 엉덩이를 움켜쥐다가 살며시 흔들어댔는데 실수인 척 황제가 바닥에 놓은 구두를 발끝으로 쳐 침대의 구멍 밑으로 향하도록 했다. 당연히 구두는 곧장 황제의 면전에 놓이게 됐는데 덕분에 깔창 사이로 은은하게 올라오는 고약한 악취를 맡아볼 수 있었다. 구두는 비록 겉면이 깔끔할 정도로 잘 닦여있어 윤기가 흘렀지만 그 내부는 썩어 문드러진 제국의 정치만큼이나 부패해 있었다.



" 으읍...? "



분명히 새하얀 깔창이었을 텐데 어느새 닳고 허름해진 것인지 누렇거나 짙은 갈색의 색깔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회색빛으로 때 탄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밀가루 반죽 위로 쿠키 외형을 잡기 위해 틀을 찍어놓은 것처럼 구두 사이의 깔창은 두툼함과 깊이가 동시에 느껴지는 발자국이 습기를 머금은 채 익어있었다. 그러니 황제의 이마는 주름이 깊어졌다.


처음에는 인식하지 못해서 그저 은은하게만 올라오던 고약한 발꼬랑내가 점차 코끝이 얼얼할 정도로 지독하게 얼굴을 때리니 눈물까지 났다. 그러나 동시에 전신에서 스며드는 미약에 뇌가 절여지고 있던 황제였기에 분명히 평소 같았다면 거북해서 멀리했을 구두를 그저 바라보며 움찔하고 있었다. 어느새 자신의 성기가 잔뜩 부풀어 올라 허벅지 사이로 튀어나왔다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 폐하~ 뭉친 곳이 생각보다 많네요... 오일을 좀 더 도포하겠습니다. "


" 그, 그렇게...!! 하라아핫?!! "



그 정도로 황제는 흥분한 상태였다. 고약한 자기 발냄새에 헛구역질이 올라오기도 하지만 동시에 전신에서 올라오는 근질근질한 쾌락이 너무 달콤해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어느새 몸은 가만히 누워있지 못하고 반쯤 웅크린 자세로 흐느낄 정도인데 안마사는 그 모습에 나름 만족했는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성기에 오일을 살며시 얹혀주더니 안마에 집중해 주었다.


충분히 애태운 다음에 방치하여 자발적으로 협조하게 할 생각인지 이다음부터는 무난하게 뭉친 부위나 혈자리만 자극해 풀어주었는데 이 때문에 쾌락이 가라앉을수록 황제는 겉으로 멀쩡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엄청난 갈증에 지쳐갔다. 불끈불끈해진 성기가 시원하게 배출되지 않고 알아서 사그라들었을 정도이니 아마 오늘 밤이 되면 엄청나게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괴로워할 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 자, 오늘 마사지는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혹시 모르니 제 명함은 여기 위에 올려놓겠습니다. 폐하... 부디 즐거우셨길 바랍니다... "


" 자... 잠깐...?!! 생각보다 이 몸에 뭉친 부위가 많은 거 같은데 벌써 끝이란 말이냐...!! "


" 지나친 마사지는 몸에 무리를 주거든요. 아마 내일 아침이 되면 지금 짓눌렸던 모든 부위에서 엄청난 통증이 올라오겠지만 그걸 며칠 버티시면 상쾌하실 거랍니다~ "



그러니 적당히 진행한 다음에 물건을 챙기고 돌아갈 준비를 했다. 겉으로는 피로가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고 불평하면서 속으로는 쾌락을 갈구하는 황제의 애절한 몸짓을 음미하면서 말이다. 황제는 여전히 젖꼭지와 가랑이 사이를 가리며 추한 모습으로 안마사를 맨발로 쫄래쫄래 따라갔는데 그런데도 안마사는 더 큰 계획을 위해 그가 속옷 차림이라는 사실을 각인시키고 곧장 복도로 걸어 나섰다.


그렇게 잔뜩 달아오른 상태로 내팽개쳐진 황제는 쓸쓸한 모습으로 몸을 닦으며 주섬주섬 벗어 던졌던 옷을 다시 챙겨입는데 그러다가 자신이 벗어 던진 구두를 다시 보게 됐다. 길거리 바닥에 으깨진 은행 열매의 과즙처럼 지독한 악취가 흘러나오는 그 구두는 보는 것만으로도 눈살이 찌푸려지지만 조금 전의 일로 새로운 영역에 눈을 뜬 황제는 잠시 망설이다가 두 손으로 집어 들었다.



" 우웁...!! 내 발냄새지만 지랄 맞게 역겹네... "



그러다가 이내 바닥에 떨어트리고 발끝을 구겨 넣었다. 아직은 코를 처박을 정도는 아니겠는지 미약이 닦아지고 향초가 없어지자 발바닥에 대한 성욕이 사그라들었는데 그래도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던 것인지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차갑게 식어서 축축해진 깔창의 촉감을 느껴보았다. 찝찝하기도 하지만 미묘하게 끈적거리기도 하는 느낌에 어떤 발냄새가 누적되고 있을지 상상하며 명함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주변에서 이상한 일들이 펼쳐졌다. 주마다 찾아오는 안마사는 점점 노골적으로 성희롱하고 하녀들은 수상할 정도로 식단 메뉴에 냄새가 심한 치즈를 시작으로 발효된 음식을 적극적으로 제시했다. 식성이 은근히 까다로웠던 황제였기에 당연히 그럴 때마다 반찬 투정을 부렸지만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라는 말이 있듯이 점차 그 악취에 익숙해지며 생활이 바뀌었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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