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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내 환경 문제


1-1. 작은 내수시장

안 그래도 인구가 일본의 40% 수준인 한국은 자연스레 만화시장의 체급이 작을수밖에 없고 이 때문에 '잘 팔리는' 상위권 작품이 아닌 이상 작가들의 생존을 어렵게 만들고, 새로운 도전을 불가능하게 만듬.


거기다가 급격한 저출산 노령화로 웹툰의 주 수요층인 10~20대가 박살나고 있는 상황이라 미래가 암울함.


1-2. 서브컬쳐에 적대적인 정치권과 기성세대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지만, 현재 한국의 정치권의 높으신 분들은 50~60년대생으로 문화컨텐츠 전반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으며 만화 같은 서브컬쳐 영역에는 무척 적대적인 세대임. 옛날 한국 만화계를 박살낸 한 축으로 꼽히는 악명 높은 YMCA가 딱 저 세대에서 나왔지.


그렇다고 그 다음 세대, 현대 사회의 주축이라 할 수 있는 60~70년대생들은 괜찮은가 싶으면 그것도 아님. 이 세대는 정치적인 문제로 일본에 대해 매우 적대적인 세대로, 일본에 영향을 많이 받은 서브컬쳐 영역 전반에 걸쳐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함. 소위 "만화 그거 애들이나 보는 유치한 거 아니냐. 너 나이가 몇인데 아직까지 그런거나 보냐" 소리가 나오는 세대임.(물론 겉으론 그러면서도 보는 사람은 다 봄)


이러한 이유로 겉으로나마 만화에 적대적인 사회적 분위기와 정치적 인식은 웹툰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어렵게 만들고, 지속적인 관심을 저해시킴.


다만, 그나마 최근 들어서는 네이버 카카오같은 공룡기업이 들어와서 시장을 키우고 해외에서 좋은 성적도 거두고 드라마 영화화로 크게 터지는 작품들이 생기면서 기성세대도 국뽕충전하며 좋아하는 한류열풍의 한 끄트머리라도 차지한 덕에 인식이 많이 나아진데다 조금씩 관심도 기울이는 중이라 이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개선될거라 생각함.


1-3. 순수문학계

큰 문제는 아니지만 문단으로 흔히 일컬어지는 순수문학계는 시장규모가 큰 웹툰/웹소설에 지속적으로 빨대를 꼽으로 하는 중. 그나마 웹툰은 플랫폼과 업계인들이 합신해 잘 막아내는 중(웹소설 쪽은 아슬아슬하더라)


2. 시스템 문제


2-1. 웹툰 수익구조의 근본적 한계

웹툰은 태생이 인터넷에 간단하게 올리는 짧은 꽁트형 만화에서 시작했음. 당연히 그런 짤만화에 돈을 내는 거는 있을 수가 없는 이야기고, 카카오의 기다리면 무료 체제 등장 이전까지 웹툰은 트래픽으로 광고수익이나 빨아먹는 '공짜' 컨텐츠였음. 당연히 거기서 형성된 웹툰 독자층은 '내가 보는 만화에 정당한 값을 치르고 구매한다' 가 아니라 '웹툰은 공짜로 보는거'라는 인식이 생겨버림.


시장에 도는 돈이 적어지고, 그나마 발생한 수익은 플랫폼이 다 떼먹고 창작자에겐 적은 비율만이 들어감. 당장 먹고살 돈이 안 된다보니 재능있는 사람은 웹툰작가를 떠나고,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는 양산형을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할수가 없음.


현재는 카카오의 기다리면 무료 시스템의 등장 이후로 네이버에도 쿠키 미리보기 시스템이 생기면서 어느 정도 수익구조가 개선되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웹툰은 공짜'라는 인식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음. 이벤트 쿠키(카카오 선물함)의 존재 때문임.


이벤트 쿠키는 작품에 독자를 끌어들이는 일종의 미끼상품으로, 플랫폼 측에서 비용(쿠키는 땅에서 솟는게 아님)을 부담해서 독자들에게 뿌리는 것임. 그리고 그 이벤트 쿠키를 만드는 비용은 플랫폼이 혼자 부담하는게 아니라 작가들에게 전가시킴.


이러한 이벤트 쿠키는 당장 매출을 올리기엔 좋지만, 결국 작가들에게 부담이 돌아가는 동시에 독자들에게는 '아 웹툰은 여전히 공짜로 볼 수 있구나'라는 인식을 주게 됨. (물론 기존에 자리잡혔던 웹툰은 완전무료라는 인식 때문에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타협을 볼 수밖에 없었다는건 인정하긴 함)


어느 나라나 만화 불법사이트들이 존재하지만, 유독 한국에서 불법 만화에 관대하고 너나할것없이 보는 데에는 이러한 인식이 큰 몫을 차지함.(이런 인식의 형성에는 일본 출판만화가 한국에 정발이 안되거나 늦게 되면서 해적판이 범람한 것도 큰 비중을 차지함)


그나마 한때 레진코믹스의 등장으로 작품에 정당한 돈을 내고 소비하는 문화가 어느정도 정착되나 싶었지만... 여전히 논란이 많은 '그 사태'로 플랫폼이 개박살이 나면서 영영 떠나가버림.


2-2. 인력을 갈아넣는 웹툰 제작공정

한국 웹툰은 퀄리티 요구량이 높음. 작품성이나 재미 같은 비정량적인 요소를 말하는 게 아니라, 컬러나 화려한 이펙트 같은 추가 요소들이 많다는 소리임. 이 말을 바꿔 말하면 제작단가, 즉 코스트가 높다는 소리가 됨. 같은 분량이라고 해도 일본 흑백 출판만화에 비해 한국 웹툰은 제작에 들어가는 비용이나 노동력이 많이 들어감.


여기에서 잘 모르는 사람은 '그 퀄리티에?'라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음. 하지만 흑백으로 '와 그림 잘 그린다' 소리가 나오는 고퀄리티의 출판만화를 그리는 것과 컬러로 '평범한 수준이네' 소리를 듣는 웹툰을 그리는 데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과 노동력은 후자가 더 큼.


다만 흑백으로 고퀄리티를 그리는 건 그만한 실력을 쌓기까지 훨씬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웹툰은 숙련기간이 훨씬 짧다는 차이가 있음. 쉽게 말해서 흑백이 주류인 일본식 출판만화는 작가 개인의 숙련도와 실력에 크게 영향을 받는 반면, 한국식 웹툰은 자본력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할 수 있음.


이와 같은 근본적인 방향성의 차이는 한국 웹툰 업계의 발전을 일본 출판만화와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음. "더 많은 분량, 더 화려한 이펙트." 일본 출판만화는 일주일에 연재할 수 있는 절대적인 분량에 물리적인 한계가 있음. 하지만 한국 웹툰은 돈을 때려박으면 그 물리적인 한계를 돌파할 수 있음.


'자본을 박으면 더 길고 화려한 작품을 만들 수 있고, 조회수를 더 빨아먹을 수 있으며, 승자독식 구조의 현재 시장에서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이와 같은 논리는 시장이 커지고 자본이 들어오는 한국 웹툰업계에 웹툰 스튜디오라는 개념을 탄생시킴. 많은 자본을 기반으로 만화 제작공정을 잘게 분화시켜 공장식 대량생산 체재로 만들고, 능률이 떨어지는 파트는 직원(담당어시)를 교체해서 효율을 높인다. 라는 개념이 생긴 거임.


이와 같은 대량생산 시스템 덕분에 한국 웹툰은 양산형 소리를 들으면서도 압도적인 분량과 화려한 채색 퀄리티로 부흥하며 모바일 친화적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국내/해외 시장에서 나름의 자리를 잡을 수 있었음.


문제는 그 대량생산시스템이 점점 고도화 되면서 생김. 아무리 작품의 제작공정을 잘개 쪼개서 분업화 시켰다고 해도, 결국 작품을 만들고 이끄는 것은 메인 작가의 몫임. 그리고 그 메인 작가는 스토리와 연출, 대사 등을 직접 컨트롤해야 하는 일종의 프로듀서 역할을 하게 됐지. 문제는 점점 한 편에 요구되는 분량이 많아지면서 이게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거임. 돈을 때려박으면 선화/밑색/명암/이펙트 같은 문제는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지만, 그 기초가 되는 토대는 돈으로 해결이 안 되는 문제거든.


때문에 안그래도 노동집약적인 만화라는 장르에 안그래도 노동력 많이 들어가는 웹툰을 하는 메인작가들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분량을 강제받음. 당연히 스토리는 박살이 나고, 토대가 되는 그림 퀄리티는 대충 그리며, 별 의미없는 내용으로 때우거나 내용복붙이 많아짐. 독자들은 당연히 뿔이 나고, 작품에 대한 압박은 강해지며, 작품의 퀄리티는 더욱 하락하게 되는거지.


여기에서 커뮤니케이션과 계약, 인력관리는 담당PD가 맡고 스토리는 웹소설 원작이나 각색작가에게 맡기는 방식으로 메인작가의 부담을 덜어낼 수는 있음. 근데 그러면 문제는 메인작가에게 돌아가는 몫이 크게 줄어들어서 여전히 노동량 대비 수입이 줄어들게 된다는 거임.


스튜디오가 아닌 개인작가의 영역으로 가면 더욱 처참해짐. 개인작가들은 자본이 충분하지 않은 만큼 아무리 돈을 벌어도 죄다 어시비용으로 빠져나가거든.


현재 환경에선 사실상 신인 개인작가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게 업계의 전반적인 평가임.


3. 플랫폼의 문제


3-1. 플랫폼의 개선의지 부족

위에 말한 시스템의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건 결국 플랫폼의 의지에 달려있음. 하지만 현재 웹툰업계를 이끌고 있는 네이버와 카카오는 그런 시스템의 개선에 관심이 없음. '당장 돈이 잘 벌리고 있는데 굳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업계를 이끌고 있는 선두주자로서 가져야 할 철학도 없고, 미래에 대한 식견도 없음. 이들에게는 당장 만들어지는 매출 그래프와 내년 매출 전망 그래프 뿐임. 당장 약간의 손해를 보더도 미래의 이득을 생각해야 하는데, 절대로 당장의 이득을 포기할 수가 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음.


사실 카카오는 멀쩡한 업계에 자본을 앞세워서 쳐들어간 다음 생태계를 황폐화시키는 모기업의 악명이 워낙 드높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결과였음. 사실 얘네도 다음 만화 시절에는 나름 철학과 방향성이 제대로 잡혀있었지만, 카카오가 다음을 먹은 후로는... 어쨌든 카카오는 개악이면 몰라도 개선시킬 여지는 없다고 봐야 함. 


네이버는 그나마 카카오보다는 상태가 나음. 웹툰의 근본기업이기도 하고, 그나마 조금씩이라도 장르 쿼터를 두거나 새로운 작품을 발굴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하고는 있으니까. 하지만 그런 네이버도 현재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뭐 하나 얻어걸릴때까지 기다린다는 전략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음. 당장 카카오에서 나혼렙이라는 로또가 얻어걸리는 모습을 보면서 그 생각은 더욱 굳어졌을 테고.


결국 좋은 작품이 나오는 토양을 만드는것보다는 지금의 척박한 환경에서 제발 뭐라도 나와달라고 고사를 지내고 있는 상황이라고 봐야 함.


3-2. 업계 실무진의 전문성 부족

이건 웹툰작가들 사이에서도 끝도 없이 성토되던 문제지. 담당 PD와 그 위의 실무진들의 무능은 이미 다른 곳에서도 여러 번 언급된 이야기라 길게 설명하지 않겠음. 쉽게 말해서 만화나 서브컬쳐에 대한 이해도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 실무진을 장악하고 있다는 소리임.


웹툰업계는 웹소설 같은 타 분야에 비해 특히 PD등의 권한이 큰 편임. 작품의 방향성에 직접 관여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어느정도 작가에게 갑질을 할 수 있는 여건도 있음. 물론 일본도 편집자들이 작품의 방향성에 직간접적인 관여를 하긴 하지.


그런데 일본 편집자들의 역량과 웹툰 PD들의 역량이 과연 같다고 할 수 있을까를 묻는다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음. 능력이 부족한데 권한은 크고, 갑을관계도 있는데 멀쩡한 작품이 나올 수 없는 건 당연한 이야기임. 


거기에 좀 민감한 문제지만, 실무진의 여초화 또한 분명하게 악영향을 끼치고 있기도 함. 실제로, 공적인 일과 사적인 취향을 구분할 수 없는 사람들은 유독 '무리지어진' 여초 환경에서 많이 나오기 때문임. 여성 실무진 개개인이 그렇다고 단언하는 건 억측이라고 할 수 있지만, 무리지어진 여초 환경은 확실히 문제가 많다 볼수 있음. 이건 남초에서만 지적하는 게 아니라 여초들도 어느정도 인정하고 있는 문제임.


3-3. 경쟁이 아닌 간택 방식의 진입환경

웹툰은 기본적으로 여러 작품들이 있으면 독자가 아닌 플랫폼이 작품을 간택하는 방식임. 그리고 이런 방식은 필연적으로 시장의 편향성을 조장함. 플랫폼은 독자의 수요를 숫자로 분류하기 때문임. 독자들의 취향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중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의 취향만 반영해서 거기에 맞는 작품을 뽑게 될 수밖에 없거든.


이것이 지금 네이버 웹툰판이 학폭물에 망상대리만족물로 점철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임. 이런 작품들만 뽑게 되면 당연히 플랫폼을 이용하는 독자들도 그런 취향에 맞는 이들만 남게되고, 다른 성향의 작품은 기껏 런칭해 봐야 이미 테라포밍이 완료된 플랫폼 독자들에게 외면받고 저조한 성적으로 끝맺을수밖에 없게 됨.


이런 웹툰 시장과 완전히 반대의 결과를 낸 게 바로 옆동네 웹소설 시장임. 거기는 말 그대로 누구나 들어오는 치열한 경쟁 환경에서 독자들에게 거르고 걸러진 작품들만 선택을 받아 계약을 하게 됨. 말 그대로 '재밌는' 작품을 내기만 하면 설령 시장의 니즈와 다른 작품이라도 얼마든지 치고 올라와서 대박을 낼 수 있고, 트렌드를 바꿀 수 있음.


반면 웹툰은 그만한 포텐셜이 있는 작품이라고 해도 플랫폼의 간택 단계에서 걸러질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에 그러한 케이스가 불가능에 가까움.


※물론 웹소설의 경우는 낮은 진입장벽과 웹툰 대비 적은 노동력과 자본 요구, 한 작품의 사이클이 1~2년 내로 완결을 낼 수 있는 빠른 컨텐츠 생산속도 등의 여러가지 요인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긴 함.


사실 간택 방식이 완전히 나쁜 건 아님. 웹소설 시장과 달리 웹툰 시장은 방금 말한 여러가지 기반여건과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웹소설식 정글형 경쟁을 고수하기 어렵기 때문임. 그런 의미에서 웹툰 쪽은 간택 방식이 좀 더 좋은 결과를 낼 수도 있음. 단, 플랫폼이 다양한 작품풀을 만들 의지와 능력이 있다는 전제 하에서. 그리고 아쉬운 이야기지만, 현재 네이버는 의지도 능력도 부족함. 솔직히 카카오는 언급할 가치도 없고.


3-4. 노블코믹스(웹소설 원작 웹툰)
흔히 노블코믹스로 일컬어지는 웹소설 원작 웹툰들은 대부분 독자들에게 양산형이라고 욕을 쳐먹음. 그렇다면 실제로 웹소설판이 구제불능의 양산형 판이라서 그런 걸까?


사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긴 함. 웹소설 시장은 양산형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시장이긴 하니까. 까놓고 웹소설 최고 아웃풋으로 꼽히는 나혼렙과 화산귀환과 전독시 모두 양산형 작품들임.


하지만 웹소설 시장의 상위권~최상위권에는 충분히 개성있고 경쟁력 있는 작품들이 많음. 그리고 그런 작품들이 트렌드를 주도하고.


그런데 그런 작품들은 웹툰화가 잘 되지 않음. 왜? 가성비가 안 나오기 때문임. 개성있고 작품성 좋은 작품들은 당연히 결과물의 기대치가 높음. 그리고 그만한 퀄리티를 내려면 자본을 많이 투입해야 함. 거기에 양산형 세계관이 아닌 독특한 세계관을 가진 작품들은 그 많은 웹툰 작업량을 커버하기 위한 필수요소인 3D 에셋을 활용하기가 어려워서 직접 그려야 하는 경우도 많음(=노동력이 올라감=인건비가 올라감) 그리고 그렇게 돈 들이고 잘 만들어서 낸다고 해도 대박을 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음. 웹소설 시장과 웹툰 시장의 독자층은 또 성향이 미묘하게 다르기 때문임.


그래서 결국 남는 건 양산형 웹소설임. 양산형 웹소설은 만드는 데 돈이 얼마 안 들어감. 원작IP를 가진 웹소 매니지먼트도 별 기대가 없으니 판권 가격을 낮게 부르고, 작가도 대충 방사에서 아무나 주워온다음 가성비 어시들 구해다 붙이면 되고, 에셋도 적당히 사서 때우면 그만이니 인력도 덜 들어감.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서 내도 평타는 침.


양산형은 대충 만들어도 평타는 치니까 양산형이라고 불리는 거임. 저비용 고효율로 뽑을 수 있는 극한의 가성비. 그게 바로 양산형 웹소원작 웹툰임.


물론 최근에는 양산형의 범람으로 독자들도 피로감을 느끼면서 가성비가 많이 줄었고, 그 덕분에 나름 개성 있는 작품들도 하나둘 나오고는 있지만 여전히 양산형이 가성비 픽임은 변하지 않음.


그리고 추가적인 문제를 언급하자면, 웹툰화 작업을 하는 작가들의 열의 부족도 있음. 사실 이렇게 들어온 작가들은 사실상 월급만 보고 대충 들어왔다고 보면 되는데, 이런 월급작가들이 웹툰화로 좋은 작품을 만들 열의가 있을까? 계약하고 나서 작품을 막 보기 시작했는데 딱 봐도 상태창 따위나 나오는 양산형 꼬라지고, 뭣도 모르는 PD는 이래라저래라 고나리질을 해대고, 딱 봐도 이건 한계가 보인다 하는 작품이면 작가도 의욕이 없을 수밖에 없음.


그리고 보통 웹소원작 웹툰화의 경우는 출판사와 스튜디오 측에서 원작자와 웹툰작가의 직접적 커뮤니케이션을 막아버림. 명목적인 이유는 만화에 대해 뭣도 모르는 원작자가 웹툰작가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고 하고 있고,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사실 중간에 껴서 갑질을 하기 위한 목적도 큼.


그러니 당연히 결과물도 양산형 커트라인을 간신히 채우는 초라한 몰골로 나올 수밖에 없지. 양산형에 영혼을 불태운 나혼렙의 장성락 작가같은 특이케이스가 아닌 이상 양산형 원작으로 좋은 작품은 나올 수가 없음.


4. 작가들의 문제


4-1. 부족한 역량

까놓고 말해서 고점이 아닌 평균 기준에서 보면, 일본 출판만화에 비해 웹툰 작가들은 순수하게 역량이 부족하다는 걸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거임. 특히 인체, 구도, 연출 등의 만화적 기본기 관점에서.


이 부분에서 차이가 나는 이유는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음. 일본 출판만화는 일부 개그만화가 아닌 이상 기본기가 부족하면 아예 기회가 주어지지 않지만, 한국 웹툰은 기본기가 부족해도 재미만 있으면 작가가 될수 있기 때문임. 한때 논란이 많았던 한 웹툰 아카데미의 광고 '못그려도 돼, 웹툰이니까!'는 그 문제점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는 상징과도 같은 표어임.


근본적으로 한국 웹툰은 인터넷에 재미로 올리던 짤막한 꽁트만화가 그 시초였고, 그래서 굳이 기본기를 쌓을 이유가 없었음. 이런 만화들은 사실 그림실력은 상관없고 재미만 있으면 그만이니까. 그래서 나온 결과가 그림 잘 모르는 독자들도 인체비례를 지적하는 수준의 웹툰들이고.


일본 출판만화는 어지간한 재능충이 아닌이상 학창시절에 그림을 그리든 뭘 하든 해서 10년은 노력하면서 기본기를 쌓고 만화에 도전함. 그정도가 아니면 취급을 안해주니까. 반면 한국 웹툰은 말 그대로 팔다리만 그릴 줄 알면 일단 만화를 그릴 수 있음. 만화 기본기 관련 책을 1권이라도 뗐으면 노력 많이 한 거임. 그리고 그 정도 실력으로도 충분히 도전할 수 있음.


현재 웹툰에서 탄탄한 기본기를 가지고 있는 작가들은 대부분 멸망한 한국 출판만화 계보를 이어오는 사람들이나, 혹은 원화나 일러스트 등 유사업계 등에서 일하면서도 자기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은 사람들임. 만화에 대한 기본기 자체가 부족한데 좋은 작품이 나오는 건 당연히 무척 어려운 일 수밖에 없음.


4-2. 스토리의 부재

작품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건 작화지만, 장기 연재에서 작품의 흥행을 좌우하는 건 스토리(그리고 연출)임. 하지만 현재 웹툰 작가들은 스토리에 대한 역량이 무척 빈약함. 이건 작가 능력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앞서 말했던 인력을 갈아넣는 방식의 시스템 문제이기도 함. 당장 마감이 코앞에 닥쳤는데 스토리를 고민할 생각이 어디 있겠음?


오히려 옛날 웹툰들을 보면 스토리 쪽은 비교적 준수한 경우가 많았음. 그림작업에 대한 압박이 비교적 덜한 시대였다 보니까 스토리에 충분한 고민을 할 시간이 있었기 때문임.


하지만 그게 현재 웹툰 작가들의 스토리 역량 부족에 대한 면죄부는 되지 못함. 현재 웹툰들 중 스토리적 요소도 준수한 작품들은 웹소설 원작인 경우가 많음. 앞서 말한 것처럼 웹소설 원작들이 대부분 양산형 작품들에서 기인한 것을 감안하면, 현재 오리지널 작품들의 스토리텔링 역량이 그 양산형 작품들조차 넘기 힘들 정도로 낮다는 것을 의미함.


물론 양산형 작품들의 스토리 역량은 결코 낮은 게 아니긴 함. 걔들은 너나할것없이 양산형이라는 무기를 들고 오는 웹소설 시장이라는 정글에서 배틀로얄 끝에 살아남았을 정도니, 나름 양산형 중에서도 고퀄리티라 할수 있기 때문임. 그러나 오리지널 작품 작가들은 충분히 차별화될 수 있는 소재와 스토리를 가지고 그 양산형 스토리들과 맞붙어서 이기질 못함. 기본적으로 소재는 반짝할 수 있어도 스토리를 제대로 연구하는 작가들이 거의 없으니까.


쉽게 설명하자면, 개인 공방에서 만든 작품이 어지간히 잘 하지 못하면 공산품을 이길 수 없는 것과 같은 논리임. 그런데 그 상황에서도 여전히 많은 작가들은 스토리에 대한 중요성을 깨우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음. 그나마 연재를 좀 해본 작가는 스토리의 중요성을 알지만, 뭣도 모르는 지망생들은 스토리고 나발이고 대충 양산형으로 그리면 되겠지 하고 작화에만 신경을 쓰거든.


근데 그렇다고 따로 스토리 작가를 구하기엔 업계에서 나 스토리 작가요 하는 사람들의 꼬라지가 처참한 수준임. 방구석에서 혼자 설정놀이 하는 놈, 웹소설 시장에서 도태된 놈, 드라마판이나 순수문학판에서 기어들어온 놈, 철이 덜 든 씹덕 등등, 멀쩡한 스토리 구상 능력을 가진 사람은 천연기념물이나 마찬가지지.


하다못해 웹소설 출1신 작가 정도면 스토리작가 지망생 중에서도 상위권이라 할 수 있음. 작가의 스토리 역량 자체가 부족하고, 스토리의 중요성도 잘 모르고, 그렇다고 전문 스토리작가를 구하기도 어려운 환경에서 메가히트를 할만한 웹툰이 나오지 못하는 건 필연적일 수밖에 없음.


5. 독자의 문제
인구가 적은 한국 서브컬쳐 시장의 크기는 코딱지만함. 그리고 그중에서 웹툰 시장은 더욱더 먼지만함. 그런데 정작 그 독자층의 구매력도 형편없다는 게 문제임.


서브컬쳐 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구매력을 가진 건 매니아층임. 이들은 가성비를 따지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컨텐츠에 돈을 아낌없이 쏟아붓거든. 그런데 문제는, 한국 웹툰시장의 주요 독자층은 매니아층이 아니라는 거임.


한국 웹툰시장의 주요 독자층은 10~20대층의 "비씹덕 일반인" 독자들임.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음. 이건 웹툰의 근본이 출판만화가 아니라 인터넷에 연재되던 짧은 공감만화들에서 기인했다는 데에도 원인이 있음. 이 일반인 독자들은 매니아층에 비해 규모는 훨씬 크지만 개개인의 구매력은 매우 적음. 하지만 워낙 숫자가 많으니 총 구매력이 크고, 네이버와 카카오는 그 커다란 총 구매력에 포커스를 맞췄음. 거기에 매니아층은 일본 출판만화라는 막강한 경쟁자가 있는 반면에 일반인 독자들은 경쟁자가 없는 블루오션이었지.


그런데 문제는 충성도임. 일반인 독자층은 무척 쉽게 변심해서 떠나가기 때문에 끊임없이 새로운 독자층을 수혈해야 함. 네이버와 카카오가 저출산으로 박살나는 한국 시장에서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려서 기를 쓰고 확장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음.(다만 해외에서는 서브컬쳐 자체가 마이너로 못박힌 상황이라 해외의 일반인 독자들을 유치하는 것도 생각처럼 잘 되지 않는 상황임. 현지 작가들과 계약해 한국처럼 공감툰으로 저변을 넓히려고 해도 걔들 자체가 씹덕 매니아층이라 일반인 독자를 겨냥하는 만화는 안 그리기 때문임. 한국에서 웹툰이 성장한 건 한국의 출판만화 멸망과 인터넷 보급이라는 타이밍과 잘 맞아서 가능했던 일임)


거기에 부족한 충성도는 불법스캔본의 유혹에 쉽게 빠지기도 함. 매니아층은 내가 좋아하는 작품이면 불법판을 배척하고 정당한 대가를 주려고 노력함. 하지만 일반인층은 작품에 대한 애정이 적은 만큼 공짜로 볼 수 있다면 불법이라고 해도 거부감이 덜함.


거기에 독자층의 주요 연령대가 돈이 없는 10~20대의 저연령 층이기 때문에 구매력도 많이 부족하고, 취향도 무척 편향적임. 네이버 웹툰에서 간간히 나오는 좋은 퀄리티의 작품들이 순위권 중하위권에 처박히고 쿠키수익이 안나와서 허덕이는 데에는 그런 환경도 한몫함. 아무리 좋은 작품을 그려도 플랫폼의 독자층이 원하는 니즈가 아니거든.


또한 이런 라이트한 독자층들은 양산형에 대한 거부감이 비교적 덜함. 서브컬쳐라는 분야를 처음 접하는 경우가 많으니 양산형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거든. 그래서 처음에는 이만큼 재밌는 것들이 없음. 그런데 그렇게 몇년정도 지나서 양산형이 질리는 시점이 오게 되면 충성도가 없으니 웹툰 시장에서 다른 작품을 발굴하기보단 그냥 유튜브나 다른 재미있는 곳으로 떠나가는 거고.


5-2. 떠나간 매니아층

웹툰에도 매니아층이 존재하던 시절이 있었음. 한때는. 흔히 지금도 많이 언급되는 옛날 명작들이 잘나가고, 레진코믹스가 다크호스로 떠오르던 시기에는 웹툰판에도 충성도가 높은 매니아층이 꽤 존재했음. 그들은 자기들이 재밌게 보는 작품들이 잘 돼서 언젠가는 애니도 만들어지고, 해외에도 뻗어나가고 하는 희망찬 미래를 꿈꿨음.


하지만 옛날 명작들은 폼이 무너지면서 연금화가 돼버리고, 업계는 점점 공장화가 되어가며, 레진코믹스 사태로 웹툰작가들에 대한 인식까지 악화되어 버리자 매니아층들은 하나둘 등을 돌리기 시작함. 레진코믹스 사태의 연장인 예스컷 운동은 업계의 검열로부터 작가들을 지지키던 매니아층 독자들이 작가와 업계에 등을 돌리게 된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음.


그때를 기점으로 웹툰 업계에서 매니아층 독자들은 점차 떠나가게 됨. 그리고 그렇게 떠나간 이들 중 적잖은 수는 웹툰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냉소적으로 변함. 웹툰이 메가히트를 하고 해외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려면 그만큼 코어 팬층이 두터운 게 유리함. 이런 코어팬층은 가성비를 따지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작품을 위해 계속해서 관심을 환기시키고, 유무형의 마케팅적 이점을 주기 때문임.


그런데 현재 웹툰 시장에는 그런 코어 팬층이 형성될 매니아층 자체가 전멸한 상태고, 거기에 웹툰을 싫어하는 기류마저 흐르고 있는 상황임.


5-3. 불편한 그분들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부분임. 누구나 알고 있을테니까. 특히 웹툰 판에 남아있는 매니아층 중에서 특정 사상에 영향을 받는 이들이 많은 편이기도 함. 독자들 중에서 작품을 재미로 보지 않고 사상을 투영해서 보는 경우가 많음.


이건 현대 사회의 문제점이기도 함.이것도 불편하다, 저것도 불편하다 하면서 독자들이 창작의 자유를 옥죄면 플랫폼은 작가를 옥죄고, 당연히 재미를 추구하는 작가들이 움츠러들 수밖에 없음. 그러면 결국 좋은 작품은 나올수가 없지.


또한 그런 특정 사상 문제는 앞서 말했던 여초화된 실무진 문제와 시너지를 일으켜 더 심각한 상황을 초래해버리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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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에 대해 억까라며 반박글을 쓴 사람도 있었음. 예스컷 운동이 진행되던 16~17년과 24년 현재의 웹툰 시장을 보면 그 시절보다 크게 성장한게 사실이고, 심지어 그 펨코에서조차 포텐에 올라올 정도로 호응을 얻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웹툰이 몇개 있으며, 애니화되는 웹툰도 몇개 나왔고 드라마나 영화화된 작품까지 합하면 훨씬 더 많은데, 그렇다면 매니아층도 떠나간게 아니라 그 시절보다 더 많아졌고, 예스컷 운동도 동인계 신고운동도 업계에서 별 영향력을 못끼친거 아니냐는 반박을 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