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7년 바그다드.


"몽골에서 사신단이 도착하였다고?"


바그다드의 지배자이자 아바스 왕조의 37대 칼리파인 알 무스타심은, 간만에 반갑지 않은 손님을 맞이해야 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얼굴이 찌푸려졌다. 몽골의 사신단이 그의 궁정에 방문한다 했기 때문이었다.


'영 기껍잖은 놈들이 갑자기 왜..'


칼리프는 사실 처음부터 그들을 기꺼워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계속하여 바그다드를 노리던 괘씸한 호라즘 놈들을 한순간에 철저히 무너뜨린 자들이었고, 


그들이 호라즘을 침략한 덕에 술탄의 젖비린내 나는 아들이 할아비와 아비의 원수인 자신에게도 도움을 구걸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타인의 집이 무너졌다길래 구경을 가면 나의 집도 무너져있는 법이 아니던가.


북쪽의 룸 술탄국이 그들의 침략을 받아 변변찮은 저항조차 한번 해보지도 못하고 그들에게 굴복하고, 그들의 일부 부대가 그의 도시 바그다드를 공격했다 퇴각한 이후에는, 호라즘의 술탄 무함마드 2세가 느껴야 했던 공포를 그도 느껴야 했다.


비록 그들을 격퇴하긴 했어도, 그들의 힘은 그대로 느낄 수 있었으니, 겨우 작은 분견대를 격퇴했다 하여 축제를 열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숙이고 들어가며 전쟁의 명분 자체를 주지 않아야 했다.


그리하여 칼리프는 그들에게 조공을 바치고, 그들의 대관식에 사신을 보냈다.


이만하면 그럭저럭 그들이 침략할 걱정은 덜었다 생각했지만, 막상 그들의 사신이 직접 찾아온다 생각하니 불안감이 다시 생겨나기 시작했다.


"대체 저들이 무엇 때문에 오는 것인지.."


"바치는 재화의 양을 더 늘리라 하는 것일까요?"


"차라리 그런 것이면 다행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아예 나라를 바치라는 걸지도 모르오."


그러한 것은 대신들도 별반 다르지 아니한지라, 서로 귓속말을 주고받으며 불안한 마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몽골 사신단이 도착하였습니다!"


그러던 새에, 몽골의 사신단은 마침내 그들의 궁정에 도달하였고, 이에 대신들도 서로 속삭이던 것을 멈추고 다시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렇게 몽골 사신단이 도착하여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들은 그동안 경험한 승리로 도취된 것인지, 뒷짐을 지고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당당한 걸음을 걷고서, 칼리프가 앉아 있는 옥좌 방향으로 향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본 대신들은, 잠시 조용해졌던 것이 온데간데없이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저저저...야만인 놈들 하고는..'


'감히 칼리프 폐하의 앞에서 무기를 차고 들어와? 저런 건방진 것들이 있나!'


'저런 것들을 사신이라고 보낸 놈은 대체 뭐하는 족속이야?'


그러나, 몽골의 사신은 그것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은 채 당당한 걸음걸이를 유지하며 걸어나갔다.


아니, 사실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30초 간을 걸은 몽골 사신단은, 이윽고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칼리프를 향해 고개를 약간 숙이고 두 손을 모으며 인사했다. 다만 사신은 그대로 고개를 꼿곳이 서 있었고, 통역관만 예법에 맞게 그리 하였을 뿐이었다.


"예케 몽골 울루스의 훌레구 전하께서 보내신 사신이, 바그다드의 주인이신 칼리프께 인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몽골 사신이 몽골어로 말하자, 통역관이 그 말을 아랍어로 통역하며 칼리프에게 크게 말했다. 


사실 이 통역관이 통역한 몽골 사신의 말은 매우 순화된 것으로, 실제 어투를 따지자면 몽골 사신이 한 말은 '바그다드의 주인 칼리프는 일어나 예케 몽골 울루스의 사신을 맞으라' 였다.


그리하여, 이 사신은 졸지에 거만한 태도로 예의를 차리며 말하는 꼴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 꼴을 퍽 우습게 여긴 칼리프였으나, 그는 그것을 드러내지 않고 자연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사신단에게 말했다.


"먼 길을 오셨으니, 바그다드의 좋은 경치를 보며 여독을 풀고 마음껏 즐기다 가길 바라오."


통역관은 칼리프의 말을 몽골어로 통역했고, 몽골 사신은 잠시 어리둥절해 했으나, 이내 표정을 풀며 말했고, 통역관은 그것을 통역해 칼리프에게 말했다.


"말씀은 감사하오나, 저희는 단지 훌레구 전하께 이 글만을 전하라는 말만 받았으니, 오래 상주할 수 없습니다,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물론, 이것 역시 통역관이 최대한 순화한 것이었다.


"아, 그러하오? 이거 참, 귀측을 환대하고자 여러 준비를 했소만...참 아쉽게 되었구려."


통역관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 몽골 사신이 곳바로 미소를 지으며 다른 일행들에게 무어라 말을 했으나, 다른 이들이 고개를 젓는 통에 결국 아쉬운 티를 팍팍 내며 한숨을 쉬었다.


"아무튼, 훌레구 전하께서 내게 전하고자 하는 글이 무엇이오? 그대들이 갈 길이 바쁘다 하니, 어서 내게 가져와 주시오."


칼리프의 말이 통역되자, 몽골 사신은 굳게 봉해진 서신을 풀고는, 그것을 양손으로 펼쳐 집어들었다.


이 갑작스러운 행동에 칼리프는 물론 대신들까지 당황하자, 서둘러 통역관이 나서서 말했다.


"서신이 몽골어로 되어 있어 칼리프께서 읽기에는 부담이 있으실 터라, 사신이 글을 직접 읽고 제가 그것을 통역하기로 했습니다."


"...뭐, 그리하도록 하시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칼리프는 살짝 불쾌감을 느꼈으나, 일단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하도록 했다.


이윽고 몽골 사신이 몽골어로 글의 내용을 낭독하자, 통역관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며 통역하기를 주저했다.


"#^&#*>>×@, #<×<*@*@@?"


"+÷>#>÷&☆##, ++>÷>~>@&."


몽골 사신은 몽골어로 통역관에게 뭐라 말했고, 통역관은 마치 호소하듯이 몽골어로 말했다.


통역관이 하라는 통역은 하지 않고 갑자기 통역을 중단하자, 칼리프와 모든 대신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의문을 품었다.


"#&~>÷>×**#, @@<×>>*+#☆! @@, ×&#&*#<@!"


하지만 몽골 사신은 그런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통역을 독촉했고, 얼굴이 더 새파래진 통역관은 울상을 지으며 통역을 시작했다.


"예케 몽골 울루스의 번왕이자, 칭기즈 카간의 후예인 훌라구는 대칸의 명을 받들어 바그다드의 주인자 칼리프인 알 무스타심 그대에게 글월을 보낸다, 


그대는 칭기스칸 이래 몽골군이 세상에 어떤 운명을 가져다 줬는지 알 것이다.


영원한 하늘의 은총에 따라 호라즘의 샤를 비롯한 여러 왕조의 왕들에게 어떤 굴욕이 덮쳤던가? 


항복을 거부한 룸의 지역들이 어찌 되었으며, 그 주민이 어찌 되었는가?


네가 다스리는 지방이 비록 광대하고 또 다스리는 주민이 많다 하나 어찌 우리 울루스가 정복한 땅보다 넓고, 또 우리 울루스가 죽인 무수한 사람보다 많겠는가?


네가 비록 귀한 피를 타고나 권력을 누리며 평안한 삶을 살고 있으나 하늘이 부여한 숭고한 힘을 지닌 우리 나라에 어찌 비기겠는가?


그러한 힘과 권력을 가진 우리가 이 도시에 들어가는 것을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는가? 


너는 대항하기 위해 무기를 잡지 않도록 조심하여, 우리 군사들이 너희의 성 안에 주둔케 하고, 우리가 서쪽의 땅을 정벌하는 데에 아무 지장이 없게 군량과 말의 먹이를 준비하도록 하라.


네가 이것을 거절하면 우리는 너의 도시를 불태우고 너의 백성을 죽일 것이니, 너는 부디 잘 생각하여 결정하라."


통역관의 말이 끝나자, 궁정 안의 분위기는 더없이 차가워졌다.


칼리프든 대신이든, 모두 몽골 사신단을 노려보며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러한 분위기를 몽골 사신단도 느꼈는지, 그들은 살짝 주변을 경계하는 듯 했다.


"...너희는, 너희 주인에게 이 말을 똑똑히 전하거라."


1분이 1시간같이 흘러가는 듯한 기나긴 침묵은, 칼리프가 말을 하며 깨졌다.


"이제 겨우 자신의 경력을 시작한, 그리고 열흘 성공을 축하해 축배를 든, 모든 세상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젊은이여, 


너는 동쪽에서 마그레브까지 알라의 모든 숭배자들은 국왕이든 거지든 내 조정의 노예이며 내가 그들에게 소집을 명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가?


비록 너희가 죽이고 정복한 자들이 많고, 그 정복한 땅이 광대하다 하나 나를 따르는 영토와 주민 수의 반의 반에도 미치리라 보느냐?


만일 너희가 이 땅을 치고자 한다면  마그레브와 이라크까지, 알라를 성심껏 섬기는 모든 무슬림들이 도우러 올 것이니, 너희는 알라의 성스러운 군세 앞에 철저히 짓밟히리라.


너희가 오고자 한다면 오라, 그러나 만일 싸움을 두려워하며, 다시금 나와의 평화를 원한다면, 너희의 군주가 나의 발아래 엎드리고, 너희 군주가 이슬람교로 개종하도록 하라.


누가 옳으신지는, 오로지 알라께서 그것을 정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