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한국 총선을 보니 선거 관련 공무원분들이 너무나 고생하시는거 보고


몇년 전 일본에서 개표작업을 했던 썰을 풀어보려 한다


당시 선거는 아마 2016년 참의원(일본의 상원) 통상선거였던거로 기억함

너무 오래 전이라서 다를 수도 있음, 당시는 알바 계약서를 실물 종이로 주고받는 미개한 시대라서 이메일 뒤져봐도 기록이 안보이네


난 그때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 개표알바 공고를 보게 됐음

외국인도 응모할 수 있고 급여도 좋아서 괜찮은 기회다 생각하고 바로 지원했어


근데 국회의원 선거면 민주주의 정치의 기본이 되는 아주 중요한 요소인데, 여기에 나같은 외국인이 껴도 되는건가? 싶긴 했어

일본 친구들한테 느그들 표는 외노자들이 개표한거래요~하니까 좀 벙찌긴 하더라ㅋㅋㅋㅋ

우리나라도 외국인들이 개표알바에 참가하는건 제한이 없으려나?


여하튼 여기서 일본 선거제도를 잠깐 소개하자면, 원조 아날로그국답게 "기명식" 투표를 한다는게 특징이야

투표용지는 이렇게 생겼음


후보자나 정당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있는 한국과는 다르게 일본은 투표용지가 매우 단순해

저 비어있는 사각형 안에다가 뽑고 싶은 후보명/정당명을 펜으로 직접 적어야함

어찌보면 참으로 일본스러운 투표방식이긴 한거같다


자, 이걸 개표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챗지피티도 없던 시절인데 기계식 개표는 당연히 꿈도 못꾸겠지?

이 투표용지들을 하나하나 읽어서 후보별/정당별로 정리하는게 우리 알바들 역할이었음

대충 업무가 3단계로 나뉘어 있어서

1. 선거용지를 후보별/정당별로 분리 (수작업)

2. 표가 묶음별로 제대로 정리 되었는지, 무효표는 아닌지 검수 (수작업)

3. 최종적으로 각 묶음의 표가 몇장인지 확인, 득표수 집계 (기계 사용)

마지막 단계에서 기계를 쓰기는 함. 하지만 한국과 같이 자동화는 되어있지 않아서 개표 결과 기다리는 후보자들은 아마 속이 엄청 탔을거같네


여기서 1단계를 맡은 알바생들은, 실제 개표를 하기 전에 유효표/무효표 구별 지침을 전달받음

아무래도 사람 손으로 쓰는거다 보니까, 오류가 날 확률이 굉장히 높은데 그때문인지 유효표 판정이 굉장히 널럴했음

예를들어 후보자 이름이 ”小泉 進次郎”라고 하면

”小泉 進次朗” (마지막 한자가 틀림) -> 유효표

”こいずみ しんじろう” (전부 히라가나로 씀) -> 유효표

”小泉” (성만 적음) -> 유효표


만약 비례대표 투표에서 "자유민주당"을 뽑는다 하면

"자민당" "자민" 이렇게만 써도 유효표 취급이 됐음

사실상 일반적인 일본인 기준에서 투표자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다면 유효표로 집계해주는 느낌이었지


물론 기상천외한 투표지가 없는것은 아니라서, 후보자 이름을 써야하는데 "자민당"이라 적혀있는 경우도 있었고

이런건 무효표 바구니에 던져서 검수자한테 보내는 식으로 처리했어


여튼 이런 식으로 개표작업을 했는데, 내가 갔던 개표소에서는 5시간 정도에 개표가 끝났던거 같음

지루한 반복작업이긴 했는데, 일본인들도 경험해보기 힘든 거라고 생각하니 나름 해볼만한 가치는 있었던거 같아


써놓고 나니까 별 내용이 없긴 한데, 여튼 불철주야 고생한 선거 담당자들한테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이렇게 평범한 개표작업도 어떤 시대에는 전혀 평범하지 않았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할거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