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깊은 유배의 숲.


 극형을 받아 마땅한 죄인이 마지막으로 떨어지는 장소. 강력한 결계에 의해 그 어떤 강력한 전사도, 고명한 마법사도 나올 수 없다고 하는 세상에서 가장 멀고 깊은 숲.

 사람들은 말한다.


 '그 숲에 들어가지 마라'라고.

 그 숲에는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 살고 있다고.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라고? 하하. 그렇네."


 숲속 깊은 곳, 오두막.


 마치 가을 낙엽빛깔 같은 칙칙한 금발을 늘어트린 작은 소년. 그 소년은 화로에서 물을 끓이고 있었다. 털가죽과 덩굴을 엮어 어설프게 지은 야만인 같은 옷차림. 그 소년의 귀는 보통 사람과 다르게 뾰족하게 옆으로 길게 뻗어나와 아래쪽으로 쳐져있었다. 나이 든 엘프였다.


 "너희들 입장에서는 그렇겠네. 나는 너희를 먹었으니까."


 소년은 그렇게 말하며 냄비의 물을 국자로 퍼 찻잔에 담는다. 찻잔에서 수증기가 올라오자 달콤한 캐모마일 향기가 퍼진다. 그는 찻잔을 화로 맞은 편에 앉은 여자에게 내어준다.


 "사람은 넣지 않았으니 안심하고 마셔도 좋아."


 화로를 사이에 두고 맞은 편에 정좌로 앉아있던 여자. 검은 머리를 길게 기르고, 전신에 낡고 해진 지저분한 로브를 두른 인간 여자다. 마치 유배를 온 죄인 같은 옷차림이다. 죄인 같은게 아니라 죄인이 분명하겠지. 소녀는 살짝 겁에 질린 표정으로 소년의 눈치를 본다. 소년은 하하, 하고 유쾌하게 웃음소리를 낸다.


 "이름이 뭐냐, 신참."

 "레나입니다, 카르넬님."

 "세번째 레나로군. 여긴 넉넉한 곳은 아니지만 부족한 곳도 아니다. 상납만 제대로 해."

 "상납이라는건..."

 "나무열매나 약초, 고기, 그 외에도 쓸만한 것들. 할당량만 잘 채우면 넌 나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나를 거역한다면..."


 엘프가 화로 곁에 놓여있는 작은 두개골을 하나 들어올린다.


 "두번째 레나처럼 되겠지."

 "그 뼈가 설마..."

 "그래. 레나라는 이름을 지닌 여자는 항상 맛있더군."


 레나가 부르르 떠는걸 보고 엘프가 웃음을 터트린다.


 "거짓말이다. 이게 레나인건 사실이지만 먹진 않았어. 병으로 죽었다."

 "어째서 뼈를 곁에 두고 계시는거죠?"

 "두번째 레나가 일년 정도는 곁에 두어달라고 했거든. 버리기도 뭣해서 이대로 두고 있다."


레나는 의외라는 듯 엘프를 바라본다.


 엘프 카르넬.

 100년 전, 이 유배의 숲에 추방당한 엘프다.


 죄명은 식인.


 100년 전, 카르넬은 용사 파티에 소속되어 있었다.


 용사 브룩스.

 마족성녀 티파.

 늑대술사 아일린.

 엘프마법사 카르넬.


 모두 당대의 유명한 영웅들이다. 하지만 마왕조차 쓰러트릴 수 있다 받았던 이 팀은 어이없는 최후를 맞았다. 던전 최하층에 고립되어 모두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유일한 생존자는 카르넬이었다. 구조대를 지휘한 기사단장은 이런 기록을 남겼다.



 '입구를 막은 암석을 치우고 우리를 반겨준 것은 지옥의 악마였다.


  엘프 카르넬은 반쯤 썩어가는 브룩스의 머리를 씹어먹으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며 사정을 물으며 다가가도 그는 브룩스의 머리를 씹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는 그제서야 우리의 존재를 깨달았는지 당황하며 브룩스의 머리를 뒤로 집어던졌다.'


 '식량과 물이 없는 가혹한 고립상황에서 식인이 일어난게 틀림없었다. 부패한 상태로 볼 때 가장 먼저 죽음을 맞이한 것은 아일린이었다. 그 다음은 티파였다. 마지막은 브룩스였다. 살아남은건 엘프 카르넬과 아일린이 기르던 늑대 뿐이었다. 카르넬은 물을 마신 뒤 멍한 얼굴로 늑대를 바라보았다. 그는 늑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운이 좋은 녀석이네. 너는 먹히지 않아도 되겠어.


 나와 구조대는 혼란에 빠졌다. 식인까지는 어떻게든 이해해볼 수 있다. 하지만 어째서, 어째서, 아일린의 늑대가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것인가? 카르넬은 어째서 늑대를 마지막까지 먹지 않고 믿고 의지하던  동료들을 먼저 먹었는가? 이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레나는 어린시절 이 내용을 책에서 읽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


 엘프 카르넬.


 늑대를 먹는다는 선택지가 있는데도 망설임없이 동료를 먹어치운 괴물. 얼마나 흉측한 모습을 한 괴물일까. 하지만 그 두려움은 카르넬을 보고 당혹으로 바뀌었다.


 낙엽을 닮은 칙칙한 금발머리. 수수한 생활감이 감도는 가죽 옷. 그 누구도 해치지 못할 것 같은 가녀린 팔과 종아리, 작은 몸집. 이 남자가 정말로 당대 최강의 영웅들을 전부 먹어치운 맹수가 맞단 말인가. 레나는 묻는다.


 "카르넬님은 사람을 먹었다고 들었서요."

 "하하! 새로 온 녀석들은 늘 그것부터 묻는군. 바깥에서는 아직도 유명한가보지?" 

 "역시 거짓말이죠? 누명을 쓴거죠? 사실은 마족성녀 티파가 꾸민 음모였던거죠?"

 "오? 이건 새로운 음모론인데? 전부 티파가 꾸민 짓이라. 그 애가 들으면 울겠는걸."

 "저도 누명을 쓰고 들어왔어요. 카르넬님도 틀림없이 그럴거라 생각해요. 진실을 말해주세요."

 "재미있네, 너. 하지만 나는 누명 따위 쓰지 않았어."


 카르넬이 어깨를 으쓱여보인다.


 "아일린을 가장 먼저 먹었고,

 그 다음에는 티파를 먹었고,

 마지막에는 브룩스를 먹었다.

 이것이 진실이다."


  그저 옛 추억을 말하는 것처럼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당황한건 레나였다.


 "하지만 그건 이상하잖아요."

 "뭐가 이상하단거지?"

 "당신과 함께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건 아일린의 늑대였어요."

 "그게 뭐가 이상하단거지?"

 "그 상황이라면 늑대부터 먹어야 하잖아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그런데 어째서 늑대가 마지막까지 살아남은거죠?"

 "넌 사람잡아먹는 괴물에게 이상한 질문을 하는구나. 위협이 되는 자들부터 먼저 죽였다는 발상은 없나? 그런 소문도 밖에선 돌거같은데."

 "네. 돌고 있어요. 하지만 그 기준이라면 브룩스를 가장 먼저 죽이는게 맞는 순서 아닌가요? 왜 아일린부터 죽였죠?"

 "...예리한 지적인걸. 안그래도 고립되어서 짜증나는데 그 여자는 너무 말이 많았어. 나는 말 많은 여자가 싫어."

 "아일린은 성대가 망가져 말을 하지 못하는 여자였잖아요? 늑대가 대신 짖어서 아일린의 감정을 표현했다고 들었는데요. 그 전설이 잘못된건가요?"

 "너는 너무 많이 알고 있군. 짜증나."


 카르넬의 표정에 처음으로 감정이 서렸다.

 쓰디 쓴 엉겅퀴 뿌리를 씹는듯한 고통스러운 얼굴.


 "내가 사람 잡아먹는 괴물이 아니라고 믿고 싶은건가?"


 그 처연한 얼굴에 레나는 순간 말문이 막히고 만다. 상대가 유배의 숲을 지배하는 식인괴물이라는 걸 깨닫고는 그만 고개를 숙이고 만다.


 "저어, 죄송합니다. 제가 건방졌습니다."

 "하아. 그렇지, 이해할 수 없겠지. 아일린, 티파, 브룩스, 이 셋이 차례로 죽고 나와 늑대가 살아남았다. 어째서 이런 순서가 된 것인가.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것인가.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이냐. 나조차도 납득하지 못하는데."


 오랜 울분과 억울함을 토해내는 듯한 말투였다.


 "이 이야기를 하는 건 처음이다.

 너는 모든 진실을 알게 된 첫번째 레나가 되겠군."


 카르넬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이 이야기는 우르반 던전에서 탈출할 방법이 없음을 모두가 깨달았을 때, 내가 아일린의 늑대를 해체하려 할 때부터 시작된다. 나에게 그래서는 안된다고 말한건, 티파였다."


 





 진상을 먼저 상상해보세요.

 상상이 끝났으면 아래에 블럭을 씌워 진상을 확인하세요.


 마족성녀 티파가 늑대를 잡아먹자고 하는 카르넬의 선택에 이의를 제기했다. 늑대를 이종족이라는 이유로 가장 먼저 죽이는 것은 마족인 자신으로써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티파 "만약 여기에 늑대가 없었다면 마족인 저부터 잡아먹었을건가요?  극한상황에서 망설임없이 다른 종족을 잡아먹는다? 그건 저희 마족에게 있어서는 식인이나 다름없습니다! 마족은 다양한 종족으로 구성된 민족이니까요! 여기서 늑대를 잡아먹어서는 인간과 마족의 화합은 절대로 이룰 수 없어요!"


 카르넬은 무슨 개소리냐며 티파를 비난하지만 용사 브룩스가 티파를 감싸며 늑대를 잡아먹지 않기로 결정한다. 용사 파티의 모험은 마족을 절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마족의 평화를 위한 모험이라고. 식량은 모든 생명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제비뽑기로 결정하기로 한다.


 카르넬은 제비 뽑기를 거부하고 늑대를 도축하려 한다. 그러나 브룩스와 티파, 아일린 세사람이 카르넬을 제압하여 늑대를 죽이지 못하게 된다. 카르넬과 늑대의 제비는 가장 마지막에 남은 제비 둘을 분배하여 결정하기로 하고 제비뽑기가 시행된다.


 제비뽑기 결과 아일린이 첫번째 식량으로 선택된다. 아일린은 이 결과를 납득하지 못하고 살려달라는 듯한 몸짓으로 애걸복걸하지만 티파와 브룩스는 눈을 돌릴 뿐이었다. 아일린이 첫번째 식량으로 결정된다. 도축은 브룩스가 직접 했다. 카르넬을 제외한 용사파티 전원 울면서 아일린을 먹었다.


한달이 지나 두번째 제비뽑기를 하기로 했다. 브룩스는 늑대나 카르넬이 식량이 되기를 원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제비를 뽑은 건 티파였다. 브룩스는 이 제비는 무효라며 늑대를 죽이려 한다. 하지만 티파는 자신은 다른 생명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않고 싶다며 눈물을 흘리며 자해한다. 카르넬은 이 광경에 재차 충격받고 식인을 거부한다. 하지만 브룩스가 티파의 희생을 헛되게 할 것이냐며 억지로 카르넬의 몫을 먹인다.


 한달이 지나 세번째 제비뽑기를 하게 되었다. 카르넬은 말한다. "이봐, 브룩스. 티파가 틀렸어. 우리는 늑대를 먹어야만 했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늑대를 먹자." 하지만 이 말이 브룩스를 몰아붙였을 줄은 카르넬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브룩스는 늑대를 먹으면 티파의 희생이 무의미해진다는걸 깨닫는다. 그래서 카르넬과 늑대에게 생존 제비를 주고 자해한다. 그리고 늑대를 잘 부탁한다고 말한다.


 카르넬은 멍한 얼굴로 아작아작 브룩스를 뜯어먹는다. 그리고 늑대를 살리는 것이 옳은지 죽이는 것이 옳은지 고민한다. 그 고민이 끝나기 전에 구조대가 도착한다. 감옥에 수감된 카르넬은 감옥을 파괴하고 늑대를 해방시킨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역시 늑대를 사람보다 더 중요하다 생각한 식인괴물이라 카르넬을 비난하며 깊은 숲으로 유배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