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2화까지 나온 블루 아카이브 애니인데, 아는 놈들은 알겠지만 블아 유저들의 반응은 좀 뭔가뭔가함. 

전투씬 묘사가 이상하다, 게임 설정에 맞지 않는다, 중요한 스토리 요소들이 누락되었다 등등. 

근데 그걸 잘 생각해보면 좀 특이한 현상이라는 것. 



기존 "표현력"에 있어서는 활자 매체 >>>>> 영상 매체라는 대략적인 큰 틀이 있었지. 활자는 순수히 저자와 독자의 상상력으로만 표현이 제한된다는, 무제한의 영역이고 영상은 그걸 "묘사"하는 것에 그치는 형태였으니까. 

하지만 영화도 영화 나름대로의 문법과 법칙, 영화만의 표현 방법 들이 발달되면서 활자의 하위호환으로만 머무르는게 아니라 독자적인 "문학적 아름다움"의 지위를 누릴 위치까지 올라오게 된거야. 

그리고 그런 문화적 기반에서, 마찬가지로 영상매체인 애니에 대한 기대도 클 수 밖에 없어. 내가 조작하던, 상상만 하던 장면들이 영상이 된다고? 움직이고 소리가 난다고? 하는 것은 당연히 신나고 재밌는 일이야. 

그렇기에 영상매체가 그런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에는 실망이 커지는 것이 아닐까. 20세기를 거쳐서 살아온 우리들에게는 무의식 속에서 아직 영상이라는 매체가 "오락"이라는 매체보다는 우월하게 느껴지니,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묘사나 스토리텔링 요소들은 흥분보다는 실망에 가까우니까.


하지만 그런 점에서 게임도 활자, 영상에 못지 않는 주류 매체, 심지어 "문학적 가치"까지 부여해도 될 듯 해. 이제는 게임이 그냥 배경 설정은 장식이고 오락적 재미만 제공하는 것은 아니거든. 게임이라는 매체 안에서 나름대로의 독창적인 스토리 텔링, 묘사 방법, 게임만이 가지는 유저와의 공감 요소 등이 있으니까, 영화가 문학의 지위를 차지하게 된 것 처럼 게임도 그런 방향으로 향할 수 있는거야. 예를 들자면, 게임은 영화와는 달리 1인칭의 표현이 유용하고 쉬워. 그렇게 되면 등장인물의 감정 묘사나 상황 연출을 전부 "묘사"해서 관객에게 주입시키는게 아니라, 유저가 스스로의 판단과 상상속에서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갈 수가 있는거야. 마치 활자매체에서의 묘사를 읽으며 느꼈던 감정들을 게임이라는 매체에서도 느낄 수 있게 되는거지. 세리카가 행방불명되고, 선생과 호시노가 학교 중앙통신망에 접속해서 세리카 위치를 찾은 다음 하는 말, "안들키면 돼." 자체에는 감정이 묘사되어 있지 않아. 하지만 그걸 선택지로 마주하는 유저들은 선생에게 이입되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학생들을 구하려는 선생의 감정을 머리속에서 그려나가는거야. 그런데 그런 감정이입에 익숙해져있는 유저들이 똑같지만 다른 그 상황을 마주했을때 처음 플레이시 느꼈던 감정과는 아주 다를 수 밖에 없어. 결국 누가 "떠먹여주는" 감정 묘사에 거부감과 괴리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야. 그리고 그것은 자연스러운 영상 매체와 게임 매체의 괴리감이라고 볼 수 있어. 


("안들키면 돼."라는 대사의 감정은 전혀 묘사되어 있지 않다. 그걸 해석하고 이입하는건 순수한 유저의 상상력의 문제이고, 그게 게임 매체의 장점이 되고 있는 것.)


블루아카이브는 캐릭터 일러스트를 잘 그렸다기 보다는 스토리가 강한 게임이야. 게임성? 사실 조작 캐릭터 위치 이동도 안 되고 만져지지도 않고 상호작용도 없고 게임성은 그냥 그저 그래. 하지만 유저들이 감정을 이입할수 있는 스토리들의 연계, 일차원적이지 않은 캐릭터 발달, 틀에 박히지 않고 어느정도 독창성있는 캐릭터성 등이 강점이었고, 지금까지도 뉴비들이 생겨나고 올드비들이 붙어있는 이유가 되고 있지. 그리고 그런 요소들 속에서 충분히 "문학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매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보이고 있고, 이번 애니에 대한 유저들의 반응은 게임이라는 매체의 특징과 독창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을듯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