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몽골국 삼한등처행중서성 경기로 서울부 제1서울공립고등학교.



"오늘 수행평가 치는 날인거, 다 알지? 지난번엔 끝번호부터 시작했으니까, 이번엔 1번부터 한다."


한몽합병 이전 아쉬운 소리를 한껏 내며 불만을 대놓고 드러내었던 모습과는 대비되게, 교사의 말에 학생들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수행평가를 다 외우지 못한 몇몇 학생들은 순식간에 얼굴이 백린보다 하얘지며 땀이 온 몸을 적셨고, 수행평가를 외운 다른 학생들조차 긴장한 기색을 떨쳐내지 못했다.


"1번, 나와서 발표해라."


"예, 옛!"


적막은 교사에 의해 깨어졌다. 지명을 받은 학생은 급히 정신을 차리며 교탁 위로 올라갔고, 부동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너무 긴장한 탓인지 학생이 입을 좀처럼 떼지 못하자, 교사는 그런 학생을 재촉하며 입을 열기를 종용했다.


"뭐해? 발표하지 않고."


"아, 옙!"


잠깐 정신을 놓았던 학생은 교사의 말에 번뜩 정신을 차렸고, 곧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보, 봉영원천황제(奉永遠天皇帝, 영원한 하늘에 의해 봉해진 황제, Тэнгэрийн мөнхийн хүчээр тушаасан эзэн хаан)는 다음과 같이 이르노라, 


짐, 짐이 생각하건대, 우리 태조(칭기즈 칸)께서 몽골을 통일하시고 통(統)을 이으사 수백여 년이 되었으니 이는 실로 우리 열성조의 교화와 덕택이 인심에 젖고 우리 신민이 능히 그 충애를 다한 데 있도다. 그러므로 짐이 한량없이 큰 이 역사를 이어나가고자 밤낮으로 걱정하는 바는 오직 조종의 유훈을 받들려는 것이니, 너희 신민은..."


좋게 이어지던 학생의 말은 갑자기 멈추어졌고, 학생은 땀을 뻘뻘 흘리며 불안한 티를 팍팍 내었다.


"너희 신민은, 뭐? 계속해."


"너, 너희 신민은..."


교사는 그런 학생의 말에 어떻게든 다음 말을 생각하려 했으나, 머리가 하얗게 되며 도저히 다음 내용이 생각나지 않았다. 


"새끼 못 외웠네, 엎드려 뻗쳐."


그동안의 폭력이 몸에 단단히 각인된 학생은, 또 두들겨 맞기 전에 교사의 말을 순순히 따르며 재빨리 그 자리에 엎드렸다. 


"야, 내가 지지난주에 오늘 황제 폐하의 [교육조서] 외우는 수행평가 친다고 했어? 안 했어?"


"하..하셨.."


"근데 뭐? 못 외웠어? 야 이 호로새끼야, 황제 폐하의 조서 하나 못 외울거면 학교를 왜 다녀? 그러고도 니가 우리나라 신민이냐? 어?"


몽골이 왜 우리나라야, 학생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이 말을 내뱉는 순간, 그 자신은 물론 어머니, 아버지, 동생, 할머니까지 모두 목이 잘려 학교 정문에 대역죄인이라는 팻말이 걸린 채 효수될 테니까.


말 잘못해서 그렇게 된 주변의 급우들을 여럿 본 그는, 결코 그들과 같이 되고 싶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교사가 학생에게 폭언을 하며 폭력을 휘두르는데도, 그 학생은 그저 묵묵히 고개를 숙이며 연신 죄송하다고만 할 뿐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았다.


다른 학생들도, 그저 안타까운 표정으로 동정하거나, 아니면 곧 자신도 저리 되리라 생각하며 공포에 질리거나, 나는 아니라는 것에 안도할 뿐 그 학생을 돕지 않았다.


"일어서."


다만 이번에는 교사의 기분이 좋았는지, 오늘은 폭력이 딱히 길게 동반되지 않았다.


학생은 곧바로 일어났고, 교사는 그 일어난 학생을 쳐다보며 말했다.


"다음주까지 무조건 다 외워서 따로 검사맡아. 아니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예, 알겠습니다!"


"들어가."


마치 군인이 상관에게 말하듯, 학생은 교사를 향해 크고 짧게 외쳤다. 이 정도로 끝냈으면, 정말 천만다행이었다.


다른 날이었으면 어디 하나쯤은 부러뜨리고도 남을 선생이었으니, 단지 폭언 정도로 끝냈으면 정말 나은 것이었다.


1번 학생은 그리 생각하며, 무언가 또 트집을 잡히기 전에 재빠르게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다음."


교사는 그런 학생을 잠시 쳐다보고는, 이내 다음 순서로 넘어갔다.


교탁에 선 다음 순서인 2번 역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계속 심호흡을 내쉬며 긴장을 풀려 했다.


"시작해."


"옙!"


2번 학생은 선생의 말이 떨어지자, 하던 심호흡을 멈추고서는, 이내 입을 열며 발표를 시작하였다.


"봉영원천황제는 다음과 같이 이르노라.


짐이 생각하건대, 우리 태조(칭기즈 칸)께서 몽골을 통일하시고 통(統)을 이으사 수백여 년이 되었으니 이는 실로 우리 열성조(列朝)의 교화와 덕택이 인심에 젖고 우리 신민이 능히 그 충애를 다한 데 있도다. 그러므로 짐이 한량없이 큰 이 역사를 이어나가고자 밤낮으로 걱정하는 바는 오직 조종의 유훈을 받들려는 것이니, 너희 신민은 짐의 마음을 본받을지어다.


너희 신민의 선조는 곧 우리 조종이 보유한 어진 신민이었고, 너희 신민은 또한 선조의 충애를 잘 이었으니 곧 짐이 보유하는 어진 신민이로다. 짐과 너희들 신민이 힘을 같이하여 조종의 큰 터를 힘쓰지 아니하면 나라가 공고하기를 바라기 심히 어렵도다.


내외의 형세를 살펴보건대 부강하여 독립하여 국력이 강성한 모든 나라는 모두 다 그 인민의 지식이 개명하였도다. 이 지식의 개명은 곧 교육의 선미(善美)로 이룩된 것이니, 교육은 실로 국가를 보존하는 근본이라 하리로다. 그러므로 짐은 군사(君師)의 자리에 있어 교육의 책임을 지노라. 또 교육은 그 길이 있는 것이니 헛된 이름과 실제 소용을 먼저 분별하여야 하리로다. 독서나 습자(習字)로 옛 사람의 찌꺼기를 줍기에 몰두하여 시세(時勢)의 대국에 눈 어둔 자는, 비록 그 문장이 고금을 능가할지라도 쓸데없는 서생에 지나지 못하리로다.


이제 짐이 교육의 강령(綱領)을 보이노니 헛이름을 물리치고 실용을 취할지어다. 곧, 덕을 기를지니, 오륜의 행실을 닦아 속강(俗綱)을 문란하게 하지 말고, 풍교를 세워 인세의 질서를 유지하며, 사회의 행복을 증진시킬지어다. 다음은 몸을 기를지니, 근로와 역행(力行)을 주로 하며, 게으름과 평안함을 탐하지 말고, 괴롭고 어려운 일을 피하지 말며, 너희의 근육을 굳게 하고 뼈를 튼튼히 하여 강장하고 병 없는 낙을 누려받을지어다. 다음은, 지(知)를 기를지니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추궁함으로써 지를 닦고 성(性)을 이룩하고, 아름답고 미운 것과 옳고 그른 것과, 길고 짧은 데서 나와 남의 구역을 세우지 말고, 정밀히 연구하고 널리 통하기를 힘쓸지어다. 그리고 한 몸의 사(私)를 꾀하지 말고, 공중의 이익을 도모할지어다.



이 세 가지는 교육의 강기(綱紀)이니라. 짐은 정부에 명하여 학교를 널리 세우고 인재를 양성하여 너희들 신민의 학식으로써 국가중흥의 대공(大功)을 세우게 하려 하노니, 너희 신민은 충군하고 위국하는 마음으로 너희의 덕과 몸과 지를 기를지어다. 황실의 안전이 너희들 신민의 교육에 있고, 국가의 부강도 또한 신민의 교육에 있도다. 너희 신민이 선미(善美)한 경지에 다다르지 못하면 어찌 짐의 다스림을 이루었다 할 수 있으며, 조정이 어찌 감히 그 책임을 다하였다 할 수 있고, 또한 너희 신민이 어찌 교육의 길에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였다 하리요. 아비는 이것으로써 그 아들을 고무하고, 형은 이것으로써 아우를 권면하며, 벗은 이것으로써 벗의 도움의 도를 행하고 분발하여 멎지 말지어다.



나라의 분함과 한을 대적할 이 오직 너희 신민이요, 국가의 모욕을 막을 이 오직 너희 신민이니, 이것은 다 너희 신민의 본분이로다. 학식의 등급으로 그 공의 고하를 아뢰되, 이러한 일로 상을 좇다가 사소한 결단(缺端)이 있더라도, 너희 신민은 또한 이것이 너희의 교육이 밝지 못한 탓이라고 말할지어다. 상하가 마음을 같이 하기를 힘쓸지어다. 너희 신민의 마음이 곧 짐의 마음이니 힘쓸지어다. 진실로 이와 같을진대 짐은 조종의 덕광(德光)을 사방에 날릴 것이요, 너희 신민 또한 너희 선조의 어진 자식과 착한 손자가 될 것이니, 너희 신민은 힘쓸지어다."


교사는 잠시 감탄하는 시선을 보내더니, 곧 다른 학생들을 보고는 말했다.


"박수."


짝짝짝짝짝짝짝-


기계처럼 딱딱 박자를 맞추는 박수소리가 교실 전체에 울려퍼졌다. 


교사가 사용한 쇠몽둥이가 참으로 효과가 좋았던 모양이었는지, 장난을 치며 박수를 치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이내 박수소리는 점점 줄어들고, 마침내 완전히 멎게 되자, 교사가 2번 학생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학생들에게 말했다.


"다들 봤지? 이래야 니들이 우리나라 신민이라 할수 있는거다, 황제 폐하의 조서 하나 못 외우면, 그건 사람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이 녀석처럼 토씨 하나 안 틀려야 신민으로써 교육도 받고, 보건 혜택도 받고, 직장도 구할 수 있는 거다.


황제 폐하의 은혜를 항상 잊지 말도록 해라."


""""예!!!""""


있던 나라를 멸망시킨 것도 은혜라니, 참으로 전례가 없는 은혜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 생각을 입에 내지 않았다.


그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시키는 대로 할 뿐이었다.


죽기는 싫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