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대표적인 인기 잡지였던 '삼천리' 창간호(1929)에선 조선의 여러 명사들에게 '만약 10만원이 생긴다면 하고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라고 물어봤습니다.


이 10만원은 지금으로 따지면 약 10억 - 15억 정도인데, 이런 거금이 쥐어진다면 어느 일에 쓰고 싶은지 물어본 것입니다.



역시 사회 명사라 그런지 사익을 따지기보다는 주로 사회공헌을 위해 쓰겠다는 대답이 많았는데, 어디 한번 볼까요?


"조선에서 수재라고 일컫는 인물 삼사십 명을 뽑아서 영, 미, 불, 독, 러시아, 이탈리아, 애란[愛蘭, 아일랜드], 토이기[土耳其, 튀르키예], 인도, 서서 [瑞西, 스위스], 스위스, 체코, 호주 등 각국에 두세 명씩 파견하여 그 나라의 국가나 사회의 제도라든지 인정풍속이라든지 산업상태, 국민정신 등을 정밀하게 조사 연구케 하겠습니다. 



가령 일본에서 토이기 같은 나라에도 매년 유학생을 많이 보냅니다. 일본이 토이기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이 있어 그러겠습니까마는 그 나라 독특의 무엇이 있으므로 그것을 알려고 그러는 것이외다. 더구나 내가 각국을 돌아다니며 본 바에 의하면 노농 노서아[소비에트 러시아]에서는 매년 우수한 조선소, 기계공장의 기술자 수십 명을 영국, 미국에 파견하여 연구케 합니다. 



더구나 우리같이 모든 것이 뒤져있는 처지에 있어서는 각국의 문명 정도를 정확히 알아둘 필요가 시급이 있는 동시에 우리 형편도 저쪽에 충분히 알려주어야 할 터인즉 그런 인물을 각국에 파송하는 것이 아주 급무인 줄로 알고 그런 돈이 생긴다면 준재 파견에 다 써버릴까 합니다.


-허헌(사회주의계 독립운동가, 2대 김일성대 총장)



"오늘날 우리 조선에는 약 사백만 명이란 일자무식이 있는 줄로 압니다. 즉 사백만 명이라면 전 민족의 2할인데, 이 사람들을 어떻게든지 교육하여 놓는 것이 경세가(經世家)의 가장 급히 하여야 할 일인 줄 압니다. 



나는 십만원의 돈이 내 손에 들어온다고 하면 온전히 이 문맹 타파 운동의 자금으로 쓰고자 합니다. 그 방법은 약 백만 부의 독본을 인쇄하여 널리 배포하는 동시에 농촌의 지식 계급적 청년들을 모두 동원시켜서 우리글을 가르치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얼른 들으면 십만 원이라면 큰돈같이 생각되나 실상 큰 사업에 쓰자면 그것이 여간 부족하여야지요.


그러므로 가장 기본적 사업인 문맹타파 운동에 그 돈을 완전히 써버리고 싶습니다."


-이상엽(언론인)



"누가 돈 십만 원을 내 손에 쥐여 준다면 나는 조선의 불우한 천재들을 교육하는 사업에 쓰겠습니다. 이 말은 지금 새삼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고 나는 언제나 돈이 있어지는 날에 기어이 경영하여 보려고 복안을 꾸며가지고 있던 것이외다. 



오늘날 우리 형편을 돌아다보면 급하게 하여야 할 일도 많지마는 이 천재교육의 사업도 실로 중하고 긴급한 일 가운데 하나인 줄 압니다. 학자[學資, 학비]가 없어서 훌륭한 천품을 타고난 청년들도 공부를 못하는 사람이 조선에 얼마나 많습니까?



중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못 가는 이, 소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못 가는 수재, 이 모든 사람들을 교육시켜주는 것이 민족적 큰일인 줄 압니다. 물론 문맹 타파나 사회 교육화 같은 일도 좋으나 수만, 수십만으로 헤아릴 수 있는 불우 수재를 구제하는 것도 우리 앞에 큰 광명을 던져주는 좋고 시원한 사업인 줄로 압니다."


-한기악(언론인,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원)



"영화와 연극운동은 온갖 예술운동의 부문 중에서도 민중에게 가장 큰 효과를 끼쳐 주는 점으로 보아 우리들이 반드시 전력을 다하여 하지 않으면 안 될 길인 줄 안다. 



그런데 겨우 십만 원 돈을 가지고 그렇게 큰 사업을 완전하게 해나갈 수 있으랴마는 우선 그 돈이면 극장은 남이 지어 놓은 것을 세를 주고 빌려 쓸 셈을 잡고 그중 몇만 원쯤을 떼어 우수한 연출자, 무대 배우, 기타 모든 기술자의 양성을 하는 동시에 극작가를 물질적으로 우우(優遇, 후하게 대접)하여 시대 민중을 지도할만한 역작을 내게 할 것이요. 



또 그중 수만 원을 들여 실제 연출의 비용에 쓴다면 몇 해 동안은 훌륭하게 극운동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근소한 비용으로라도 할 수 있는 이동 극반을 여러 반 조직하여서 공장, 어장 등 근로대중의 집단처로 돌아다니면서 연출하여도 좋을 것이다.



그러고 나머지 수삼만 원을 가지고는 얌전한 스튜디오나 설치하고 영화배우나 양성하여 크게 영화를 제작하여 그 제작된 영화를 가장 효용이 있을 방법으로 널리 대중에게 전하고 싶다. 이 운동은 돈만 있으면 되는 일들이다. 나는 확신을 가지고 그날이 오기를 바란다."


-박영희(소설가, 문학평론가, 이후 친일로 변절)



블로그 출처: 무수천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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