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중립화: 대화에서 의견이 한쪽으로 치우친다 싶으면 반대편을 두둔해서 대화의 중립을 맞추고자 한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신이 생각하는 대화에 결론으로 이끌어가기 위한 행위이다.


그 결론이 제3자가 같은 정보를 봐 결국 같은 의견(결론)을 만들어 냈더라도 상대에 의견에 반박하기 시작하면 그에 대한 반격, 결국 둘은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더라도 대화 속 대립이 인물의 대립으로 사람의 대립으로 결정한다. 대화속 사람들이 동의하는 부분은 국어 시간에도 배웠듯 토론 중에 동의한다고 바로 드러내 주는것이 좋다.


그런데 커뮤니티 속 사람들은 동의하는 바가 있더라도 대화의 결론을 조금이라도 넘겨주기 싫은지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결국 동의하는 의견이라며 상대에게 자신과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같다는 것을 이야기 할 때에도 "내말이 그말이잖아"같이 감정에 집중해 이기고자만 하여 서 둘이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화를 내는 것도 봤다. 감정을 추스르고 대화의 방향성이 본래 자신이 말하고자 했던 방향성과 다르다면 어느 근거가 옳고 어느 근거가 그른지 생각을 고치건 의견을 이어나가건 하면 이러한 사회의 걸쇠는 쉽게 풀 수 있다.


다만 끝없는 대화 끝에 항상 의견이 같아지진 않는다. (사회 전체적으로 이득을 가져오기 위한 두 사람)이 아닌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상대방을 꺾어야 하는 경우) 상대방은 내가 될 수 없고 나는 상대방이 될 수 없다. 새로운 사실을 알아내기 위한 대화로써는 무의미 하다.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것이란 직접적으로 이득인지 간접적으로 이득인지를 따져볼 수 있다. (더 직접<-직접<-덜 직접<-덜 간접<-...) 합의점이 보이지 않더라도 상대를 이해하고자 하는 대화는 간접적인 이득부터 자신을 허물어가며 진정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을 찾아 나서곤 한다.


간접부터 직접까지 '좋아함' '좋아 하는 것에 이끌리는 사고'를 때어내면 사람은 영혼만 남게 된다. 그냥 이 글에서 '좋아함'이라 불리우는 것을 다 땐걸 영혼이라 부르기로 했으니 다른 설화와 엮어서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영혼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같다.《(바로 이 문장은 일반적인 관념과 가장 이질적인것 같다.) 영혼은 모두, 좋은 것을 좋아하며 나쁜것은 싫어한다. 차이를 만드는 것은 그것을 둘러싼 것일 뿐이다.


성별도 영혼을 둘러싼 것일 뿐이다. 그런데 마치 그것이 근본인 양 스스로를 대표하는 개념이 되어서 물러서지 않는다. 혈액형처럼 단지 사람간 신체의 차이를 구분하기 위한 것이기에 무시해도 될까 싶지만 그 신체적 차이가 커서 실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구성 비율도 장애인 비장애인처럼 명백한 다수와 소수이지 않기에 언제나 불문/명문으로 제도에서 차등이 주어지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다.


성평등은 고대부터 근대까지, (사회가 정상 인간으로 분류하지 않던 여성) 의 지위를 사람들에 의견이 뒤바뀜에 따라 바꾸고자 한 사람들이 외친 구호다. 성평등의 실현을 위한 개념인데 상반된 구호는 성보호, 성해방이다. 이 둘을 범죄와 억압의 도구로 사용된다면 마땅히 비판해야 한다. 어디부터가 범죄이고 어디부터가 억압인가를 따지기 전에 자신, 그리고 자신의 성을 위해 스스로 윤리를 속이는 것들의 주장이 모순되었다는 것에 동의해주길 바란다. 자신의 성에서 벗어나 자유와 보호 사이의 투쟁이 되기를


같은 글을 밤새도록 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