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오면 한국에선 서로 선물을 주고받는 문화가 있습니다. 선물의 종류는 정말 다양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많이 오가는 것이 과일과 인삼 종류 건강식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의 경우엔 인삼 종류의 선물을 제일 많이 받습니다.


그냥 인삼 그대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인삼으로 가공된 제품을 보내는데, 쪄서 말린 홍삼으로도 만들고, 진을 짜서 각종 액상으로 가공한 것도 있습니다. 아무튼 그 종류를 꼽으면 수십 가지 이상이고, 또 가공하지 않고 인삼으로 김치를 만들어 먹는 곳도 있습니다.


저는 인삼 선물을 받을 때마다 늘 떠오르는 추억이 있습니다.


1982년에 북한은 김일성 70주년 생일 선물이라고 학생들에게 인삼 한 뿌리씩 준 적이 있습니다. 나무통에 들어있는 작은 인삼 하나를 받느라고 하루 종일 김일성 장군 노래, 김정일 장군 노래를 부르고 순서대로 주석단에 올라가 인사하고 받느라 엄청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게 기억이 나는 것은 그때 제가 인삼이란 것을 처음 봤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엄청 귀한 것을 장군님이 학생들에게 선물해줬다고 선전했습니다.


실제로 그 이후에 저는 인삼을 먹어보진 못했습니다. 북에서 파는 개성고려인삼주에 인삼 뿌리가 들어있는 것을 한두 번 봤지만, 북한에선 어른들이 술 마시고 병 안에 있는 인삼은 다 씹어 먹으니 저에게 돌아올 일이 없었습니다.


아무튼 저는 인삼이란 제가 거의 먹어볼 일이 없는 아주 비싸고 귀한 것이란 생각을 갖고 살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개성 인삼은 세계에서 다른 비교 대상이 없는 압도적으로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국에 와서 몇 년 있다가 강화도 농수산물 시장에 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글쎄, 그 귀한 인삼이 축구장보다 더 큰 시장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인삼 크기도 어찌나 큰지 홍당무 정도 크기가 많았습니다.


가격을 보고 더 깜짝 놀랐습니다. 그 때 기억으로는 하루 번 돈으로 인삼을 두세 키로 정도는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이 방송을 하기 전에 다시 요즘 인삼 가격을 봤습니다. 인삼 중에서 제일 비싼 것이 6년근 인삼입니다. 6년째 되는 해에 인삼은 머리가 제일 든든하고, 뿌리도 길고 무게도 많이 나가는 등 상품성이 가장 좋다고 합니다. 7년째 되면 잘 자라지 않을뿐더러 못생겨지고, 껍질은 나무껍질처럼 딱딱해지고 가공했을 때 속이 비거나 또는 속이 하얗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6년째에 수확해서 파는 경우가 가장 많고 또 이게 제일 비싼데, 한국에서 지금 6년근 인삼은 1㎏에 38달러~46달러(5만~6만원) 합니다. 요즘은 어느 건설현장이든 나가 안전요원을 하면서 8시간 깃발만 흔들어도 155달러(20만원)는 받는데, 하루 8시간 일하면 6년근 인삼은 4㎏ 정도, 못생겨서 상품성이 떨어지는 것은 10㎏도 넘게 살 수 있는 겁니다. 


북한에서 제가 머리를 몇 번이나 조아리며 받았던 인삼 크기를 떠올리며 그걸 찾으니 좀처럼 찾기도 어렵고, 정작 찾아보니 1년 정도 재배했을 새끼 인삼 크기였습니다. 이런 인삼은 한 뿌리에 1달러도 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하루 일하면 그런 인삼 200뿌리 이상 살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 싸구려를 주면서 장군님의 은혜라고 어찌나 생색을 냈는지를 떠올리면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습니다.


그럼 북한에서 재배하는 것은 세계 최고의 개성인삼이니 더 비쌀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것도 아닙니다. 일단 전 세계에서 인삼 생산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가 중국인데, 전 세계 생산량의 50% 이상이 중국산이고 한국이 30% 이상 차지합니다. 즉 중국과 한국이 전 세계 인삼의 80% 이상 생산합니다.


한국에선 풍기, 금산, 강화, 파주가 유명 인삼 산지입니다. 그런데 개성 인삼은 인삼의 유래가 알려진 것이 없지만, 풍기 인삼의 경우 삼국사기에 당현제에게 선물을 한 기록이 있을 정도로 역사가 오랩니다. 그러니까 개성 인삼이 풍기나 금산 인삼보다 더 역사적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개성 인삼이 유명해진 것은 고려 시기 수도가 개성이라 수출하는 고려산 인삼에 자동으로 개성의 이름이 붙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개성 인삼은 꼭 개성에서 생산된 것은 아니고 38선 근처의 포천, 연천, 파주, 강화 이런 곳에서 난 것도 다 예전엔 개성 인삼이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남쪽 포천과 연천을 중심으로 한 개성인삼농협이 있습니다. 북한에선 개성 삼포 인삼이 최고라고 치지만, 남쪽에선 소백산 아래 경북 풍기나 충남 금산이 최고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작은 한반도에서 지역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없어서 못 먹는 것도 아니고 마음만 먹으면 김치로 막 만들어 먹는 것인데 사소한 성분 차이가 중요할까요.


한국에는 인삼공사라는 공기업이 있는데, 작년에 소속 농가들이 정보당 7.8톤의 인삼을 수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물론 대개 6년에 한번 수확하긴 하지만, 정보당 생산량이 7.8톤이면 상상이 되십니까. 북한 논밭에서 벼나 옥수수 2~3톤도 내기 힘든데, 한국에선 인삼을 정보당 7.8톤 생산합니다. 작년에 한국에서 생산된 인삼은 모두 2만 4000톤 입니다.


여러분 세상이 이렇습니다. 한국에선 쳐다보지도 않을 연필보다 가는 인삼을 선물이라고 주고 온갖 생색을 내던 김 씨 일가나, 또 인삼을 그렇게라도 한 번밖에 구경 못했던 저는 인삼 선물만 받았다 하면 과거가 떠오릅니다. 아마 아직도 북한에는 인삼 구경 못한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언제면 북한 인민도 인삼을 흔한 야채처럼 마음대로 소비하는 세상이 올까요.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https://www.rfa.org/korean/weekly_program/joosungha/seoullife-1208202309575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