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어딘가에서 굴러다니는 야사인가본데 그런 소문 적는거 제일 좋아했던 수에토니우스도 그런 얘기는 안적었음
게다가 안토니우스는 애초에 신장이 거구여서 카이사르가 살아있을 당시 호위대장을 자처했을 정도였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위압감이 들 정도의 인물이었다고 기록돼있음.
반대로 옥타비아누스는 끈기와 지력이 있으나 몸이 너무 허약해서 카이사르가 군사적 재능은 있으나 야심은 적은 평민 병사인 아그리파를 부관으로 붙여줬던 거고
개판이라기보단 최고지도자로서의 자질이 없었지.
일단 내가 아는 바를 서술한다면 카이사르가 후계자로 생각했던 인물이라고 당대 역사가들이 말하는 이들은 총 셋인데,
카이사르 휘하에서 갈리아 원정부터 내전기에 이르기까지 쭉 해군대장을 맡았던 데키무스 브루투스
역시나 갈리아 원정부터 함께 했고 내전기에는 로마 통치를 맡았던 안토니우스
마지막이 옥타비아누스인데
이 중 데키무스 브루투스는 결국 비중이 전쟁 이후 떡락한거로 보아 평시에 필요한 재능이 없었을 거로 보이고(우리가 아는 그 세르빌리아의 아들 브루투스가 아님.)
그다음이 안토니우스였을 것으로 보는데 옥타비아누스로 바뀐 이유는 내전 당시 로마를 관리하는데 있어서 자기가 결정했다가 잘못되면 책임질 만한 일들을 죄다 보류하고 처리를 안한거임.
즉 건드려서 망칠바에 아예 안건드려야지 하고 냅둔거
그러다보니 카이사르가 내전이 끝나고 알렉산드리아에서 이집트 내분까지 해결해주고 왔을 때 카이사르가 내전 도중 항복해온 적들을 석방해줬었는데 걔들이 죄다 이탈리아반도 남동쪽의 브린디시움에 묶여서 아무것도 못하고 카이사르만 기다리는 웃긴 일이 벌어짐. 거기다 알렉산드리아에서의 문제를 해결한 뒤에 먼저 로마에 가서 쉬고 있으라고 했던 10군단이 월급인상을 노리고 마르스 광장에서 제대시켜달라고 파업하고 있는데 그것도 해결안하고 내버려둠.
그러다 카이사르 오니까 미주알고주알 다 얘기하면서 해결해달라고 함. 그러니 카이사르는 여기서 아 얘는 최고지도자로서는 자질이 모자라구나 하고 포기한 것. 그리고나서 결정한 게 스페인으로 폼페이우스 파 군벌을 토벌하러 갈 당시 몸도 허약하면서 끈기있게 행군 행렬을 따라왔던 종조카 옥타비아누스였던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