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무카르


전투에 쓰인 슬링 점토 총알


하무카르에서 살해된 사람의 인골


우루크 무역 식민지에서 살해된 사람의 인골


https://www.sott.net/article/215503-Did-Uruk-Soldiers-Kill-Their-Own-People-5500-Year-Old-Fratricide-at-Hamoukar-Syria

하무카르는 기원전 4000년경부터 우르나 우루크와 같은 메소포타미아 남부 도시들의 영향력 밖에 있는 메소포타미아 북부의 독립된 무역 네트워크를 이루어 번성한 도시였음. 이는 수없이 발견되는 예술성이 뛰어난 밀봉된 우표 도장들과 그들이 이루고 있던 복잡한 관료 체계를 통해 알 수 있음. 나중에는 하무카르 바로 외곽에 우루크의 무역 식민지가 들어서게 되어 하무카르와의 무역으로 이익을 얻게 되었음


그러나 기원전 3500년경 하무카르와 외곽의 우루크 무역 식민지는 한 적대 세력의 대규모 공격으로 파괴되었음. 지금 발굴되는 1200여 개의 슬링 점토 총알과 120여 개의 더 큰 점토 총알을 통해 슬링을 이용하여 3m 두께의 하무카르 도시 성벽을 공격했다고 보고 있음. 공격자들의 탄약은 바닥나게 되었는데, 이는 지금 발굴되는 심하게 찌그러진 슬링 총알을 통해 당시 공격자들이 총알을 말리지도 못한 채 젖은 슬링 총알을 발사해야 했던 걸 통해 알 수 있음. 하지만 탄약 부족에도 불구하고 결국 공격자들이 이겼고, 도시는 파괴되고 하무카르의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으며, 그 후 공격자로 유력시되는 우루크의 지배 흔적 지층이 있는 걸 통해 한동안 도시를 점령했을 가능성이 큼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우루크의 무역 식민지도 파괴되었다는 점인데, 이는 이 무역 식민지가 하무카르와의 무역으로 분명히 이익을 얻고 있었고, 우루크군의 하무카르 침공에 대해 하무카르에 동조하고 우루크군에게 저항하여 똑같은 대가를 치르게 된 것으로 보는 의견도 있음


아무튼 이 하무카르 전쟁을 통해 메소포타미아 남부와 북부의 만남과 충돌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알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