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장님의 승리셨다.

     

왜 심정이 바뀌셨는지는 잘 모르겠다. 2차관님도 별도로 찾아 뵙고 설득했었기에 마음이 변하셨던 거라는 말도 있었고, 당시 과거 국채과장을 역임하셨던 K 정책실장님께서 직언했었던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바이백 취소로 국채시장이 뒤집혔었던 것도 관계가 있었을 것이다.

     

어쨋건 결정적인 것은 국장님의 보고였다. 가만히 계셨다면 2017년 12월. 4조 원의 적자성 국채가 추가 발행되었을 것이니까.

     

발행하지 않기로 결정되면서 모든 것은 잘 끝났다. 비록 바이백 취소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지만 말이다.

     

국장님 이하 공무원들끼리 잘 끝났다고 애써 위로했다. 바이백 취소도 잘했던 것이라 재평가했다. 바이백 취소로 인한 언론 보도와 마찰이 없었다면 부총리가 절대 고집 꺽지 않았을 거라 하면서. 하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국채 시장을 한 번 망가뜨려 놓고 그 때 안 망가뜨렸다면 더 크게 망했을 것이라 위안하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

     

난장판 : 청와대의 개입

     

적자성 국채의 추가 발행은 없는 것으로 결정났다. 대통령 월례보고 자료도 그에 맞추어 다시 수정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추가 발행하지 않기로 결정된 것이기에 보고안건에서 빠질 수도 있다 하였다.

     

그 때 즈음 청와대에서 국장님을 소환했다고 하였다. 왜 발행하기로 했던 적자성 국채 추가 발행이 취소된 것인지 소명하라는 요청이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분위기를 보니 청와대 입장이 생각보다 강경한 것 같았다. 적자성 국채의 추가 발행을 강하게 요구해 왔다.

     

어처구니없는 지시였다. 실상을 알고 보니 더 그랬다.

     

대통령에게 보고하려 하는 경우 부처에서는 청와대에 보고안건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 청와대는 안건을 보고 그 경중에 따라서 대통령 보고 일정을 잡는다.

     

이번에도 부총리가 대통령 월례보고를 요청하자 청와대는 보고안건을 요구했다. 그리고 난 후 보고 안건에 따라 소관과에 개별 연락을 하여 안건 자료 내용을 취합 하였다고 했다. 그리고 수석보좌관회의를 열어서 안건 내용을 회의했고 부총리의 이번 보고건은 대통령님께  대면으로 보고할 필요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보고 안건들은 수석보좌관회의를 한번 더 거쳐 안건 마다 다시 결론을 내린 후 대통령에게 경제관련 보고라 하면서 이미 보고를 끝마쳤다고 들었다. 그 후 부총리에게는 이미 보고된 건이니 대통령 보고가 필요 없다고 말하였다 한다.

     

자주 있는 일이었다고 했다. 청와대에서는 부총리가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것을 최소화하길 바란다고 들었다. 부총리가 직접 대통령께 보고하는 것은 최소화하고 청와대에서 안건을 자체적으로 검토하여 수석이나 정책실장 등이 대통령께 관련 내용을 보고한다 들었다.

     

따라서 국장님의 직언으로 마지막에 결정이 바뀐 적자성 국채 추가발행계획은 이미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심도 깊은 논의를 거쳐 추가 발행을 하는 것으로 결정된 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된 사안이었던 것이다.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는 무슨 자료로 논의를 하고 어떤 토의를 거친 것일까. 거기에도 내가 모를 또 다른 정무적 판단이 있는 것인가. 이럴거면 부처는 왜 있는 것일까. 나는 혼란스러웠다.

     

청와대에서는 이미 결정되어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된 이 사안은 되돌릴 수 없으니 기존 계획대로 발행하라고 요구하였다. 나는 이 꼴이 우습고 어이가 없었다. 국민들은 이런 의사결정 방식을 알까 싶었다. 이런 일처리 방식도 공무원이 알게 된 직무상 비밀인 것인가. 외부로 알리면 안될 비밀은 비밀일 것 같았다. 외부로 알려지면 아무도 정부의 의사 결정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니. 4조 원 내외의 국채 추가 발행 여부는 청와대에서 이렇게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우리 역시 부총리님께 보고하여 컨펌을 받은 사안이었다.

     

그리고 대통령께 보고했는지 여부를 떠나서 적자성 국채는 발행하지 않는 것이 맞았다. 돈이 많은데 빚을 낼 필요가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실무선에서는 청와대가 뭐라고 하건 신경쓰지 않았다. 국채과 사무관 선배는 부총리님께 보고한 내용에 따라 적자성 국채 추가 발행이 없는 것으로 12월 국고채 발행계획을 수립하였다. 기자들에게 보도 1시간 전 엠바고를 걸고 보도자료를 배포하였다. 보도자료만 나가면 이제 모든 것은 끝나는 일이었다.

     

그러나 보도자료를 배포한 이후 국회에 있는 간부님들 전화가 요동치며 울리기 시작했다. 청와대였다.

     

당장 국채 추가 발행을 안 하기로 한 12월 발행계획 보도를 취소하라는 지시였다. 엠바고를 걸긴 했지만 이미 기자들에게 배포된 내용이다. 발행 계획 내용은 국채시장 구성원들 대부분이 거의 아는 상황이었다. 금융권은 어느 조직보다 소문이 빠른 곳이다. 청와대가 생각이 있는 것인가 싶었다. 만약 여기서 언론 보도를 취소한다는 것은 국채발행 정책에 대한 국가 신뢰를 정말 땅으로 처박는 것이었다. 금융시장은 이렇게 다루어서는 안 되는 곳이다.

     

청와대의 기조는 매우 강경했다. 따르지 않으면 직접 나설 것 같은 분위기였다. 현장 분위기는 혼란스러웠다. 누군가는 국회 복도에서 언론사들에 연락을 돌리면서 보도를 취소할 수 없을지 사정했다.

     

그 때 국채 과장님이 나섰다. 청와대가 뭐라 그래도 적자성 국채 추가 발행이 없는 것으로 보도한 12월 발행계획은 절대 취소할 수 없다고 하셨다. 위기 때 진면목이 드러나는 법이다. 부총리께 보고를 하고 발행하지 않기로 결정한 사안이었기에 실무진 의지만 확고하면 아무리 청와대라고 하여도 결정을 뒤바꿀 수는 없었다.

     

보도자료가 나오고 난 후에도 청와대의 요구는 멈추지 않았다. 국채 발행에 대한 재공고를 내서 발행을 추가하라 했다.

     

청와대 경제수석과 부총리가 전화로 싸웠다고 했다. 부총리가 ‘내가 대통령께 보고 하겠다고 할 때 시켜주지도 않더니 이제 와서 말도 안되는 요구를 하고 있다’고 화를 내었다고 하였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난 정권 때 당시 유일호 부총리에게 대통령 대면보고 한 적 있냐고 캐물었던 것이 지금 정권의 주축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제를 총괄한다고 말하는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대면보고를 한다고 했을 때 청와대에서 스크린 한다는 것이 합리적인 일인지 나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정책의 합리성 여부를 떠나서 대통령에게 보고된 사안이라 하면서 이건 무조건 지켜져야 한다는 식의 청와대 조직은 정말 국민을 위한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인가? 더구나 나중에 들어보니 대통령 보고조차 서면보고였다 들었다.

     

촛불시위에 나갔던 국민의 한 명으로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런 행태를 문제 삼아서 ‘이게 나라냐’라고 외치면서 정권을 바꾼 것이 아닌가? 바뀐 정권도 왜 정책 의사 결정 방식은 바뀐 것이 없을까? 국민을 위한 정부라고 했지 않은가.

     

공무원을 그만두고 이 현실을 알리고 싶었다. 이런 업무 처리방식은 잘못된 것이다. 바뀌어야 한다.

 

이번 정권의 문제는 아니다. 매 정권 그랬다고 한다. 바꾼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왜 바뀌는 것은 없는 것인가. 글을 읽는 당신이 바꾸어 줬으면 좋겠다.

     

청와대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나,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나 청와대는 둘 다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때도 실제 경제 수장은 경제부총리가 아니라 청와대 경제수석인 안종범이었었고 그건 문재인 정부 때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기재부 공무원들은 중요 정책을 다룰 때 부총리 뿐만 아니라 청와대에도 보고한다. 청와대 보고는 부총리 보고와 같은 중요도로 여겨진다.

     

청와대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 특히 인사 결정에 그렇다. 주요 간부인사는 사실상 부총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청와대에서 진행하는 것이기에 간부로 가면 갈수록 부총리보다 청와대의 의중을 많이 신경 쓰는 것으로 보였다. 사실 청와대의 각 비서관은 차기 부처 차관으로 유력한 자리이기도 하다.

     

왜 얼마전 KBS뉴스에서 보도된 적도 있지 아니한가. 기재부 국장들이 여러 경로를 통하여 안종범 당시 청와대 수석에게 인사와 관련한 부탁을 했던 것을. 이번 정권도 다르지 않다. 그건 청와대 조직과 일처리 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계속해서 반복될 것이다.

     

이럴 거면 부총리, 그리고 장관을 왜 두는지 모르겠다. 수석들이 대통령을 만나고, 부처 장관의 대통령 보고는 청와대에서 스크린해서 못오게 하고,중요 결정들은 수석보좌관회의를 열어 처리한다면 말이다. 그렇게 내려진 결정이 꼭 합리적인 것도 아니다. 부총리, 장관은 무엇인가. 그저 국회 상임위를 상대하기 위한 방패인 것인가. 국민들은 부총리와 장관이 해당 분야의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라 믿고 있는데 말이다.

     

대학시절에 대통령학이라는 과목이 있었다. 청와대 구조를 배우는 행정학과 전공과목이었다. 그때 교수님께서 미국의 경우 재무부장관은 언제건 원할 때 대통령에게 보고가 가능하다고 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 재무부 장관은 백악관 바로 옆에 위치한 재무부 건물로 와서 직원들에게 대통령의 지시를 설명하고 그 지시에 대해 논의하고 의사결정을 내린다.

     

한국은 왜 이 당연한 것이 안 되는 것인가.

     

청문회 때문일 수도 있다. 정말로 대통령이 함께 일하고 해당 분야의 정책 수립을 맡기고 싶은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청문회를 통과하기는 쉽지 않으니까. 그러니 진짜 실권은 청문회 없이 대통령이 원하는 인물을 앉힐 수 있는 청와대 수석에게 주는 것일지 모른다. 그리고 장관은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용으로 국회 통과가 쉬운 사람 위주로 물색해서 앉히는 것이다. 친구들로부터 몇몇 작은 부처의 경우 장관들조차도 실제 의사결정을 미루고 청와대만 바라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세종시 때문일 수도 있다.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과 행정부의 거리가 너무 멀기에 지근거리에 위치해 있는 청와대의 역할이 커지고 행정 각부의 장관보다는 청와대 수석들의 보고에 더 정책 영향력이 커지는 것일 수 있다.

     

어쨋건 그로 인하여 세종에 있는 행정부는 지금 제대로 된 업무지시 및 보고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행정 집행은 청와대가 아닌 개별 부처에서 한다. 정보도 개별부처에 우선적으로 모이고 정책페이퍼도 이곳에서 작성된다.

     

정책 페이퍼를 쓰고 나면 이걸 청와대에 보고해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 것인지 고민한다. 청와대에 보고를 하기로 결정 하더라도 청와대 지시와 부처 명령체계 내의 지시가 다르면 재차 고민한다. 누구말을 따라야 하는 것인가. 청와대도 수석들이 관장하는 업무범위가 중첩되어 있어서 복잡한 건은 여러 수석들마다 목소리가 다르기까지 한다.

     

의사결정은 늦어진다. 무언가 정책 아이디어를 내고 추진해보고자 할 경우 부처 내부 뿐만 아니라 청와대에도 뛰어 다녀야 한다. 세종에서 청와대를 갔다 오면 하루가 걸린다. 업무협의에만도 하루가 지날 것이다. 그럴 바에는 그냥 새로운 일을 만들지 않고 청와대만 바라보는 것이 낫다.

     

청와대는 청와대대로 공무원이 지시해도 움직이지 않는다고 한다.

     

개별부처의 특정과에 특정업무를 지시할 수 있는 권한은 공식적으로 청와대 조직에 없다. 그러니 지시를 받으면 비공식적으로 처리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다시 부처 내부의 보고 루트를 따라 처리해야 한다. 그 사이 수많은 반발점들이 다시금 발생한다. 정책은 어딘가로 표류하게 된다. 청와대의 지시가 비합리적인 사안이거나 현행 법령에 비추어 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그러면 그걸 검토하고 다시 보고하는데 다시 한 세월이 걸린다.

     

기형적인 구조가 아닌가. 행정부 내부에서 정책의사의 결정 권한은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미국 재무부와 비교해 보자. 사건 A가 터졌고 재무부 혹은 기획재정부에서 이를 인지했다면 미국은 재무부 장관이 그냥 바로 옆 건물인 백악관에 가서 대통령께 보고하고 지시 받고 다시 백악관 옆에 위치해 있는 재무부 건물로 가서 논의하고 업무처리를 하면 된다.

     

우리나라와 비교해 보자. 사건 A가 터졌다. 기획재정부에서 해당사건을 담당하는 과는 부총리께 까지 내부보고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러면서 청와대에도 보고 해야 할 사건인지부터 일차적으로 고민한다. 사실 내부보고부터가 어렵다. 기획재정부는 세종에 있지만 기획재정부 장관인 부총리는 항상 광화문 서울청사 집무실에서 근무하고 있기에 내부 보고를 위해서도 세종에서 서울까지 올라와야 한다. 사실 부총리님 이전에 국장님이나 차관님만 하더라도 세종에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서울에 분산되어 있는 집무실을 돌면서 보고를 해야 한다. 여기서 최소 하루. 꾸역꾸역 보고를 마치고 결정을 받았다면 이제는 부총리가 대통령 보고를 위해 청와대에 미리 안건을 통보해서 보고 일정을 받아야 한다. 통상 청와대는 부처 장관의 대통령 보고가 있기 전에 부처 국장이나 과장을 들어오게 하여 관련 내용을 설명하게 한다. 여기서 최소 이틀.

     

내가 경험한 것처럼 이 과정에서 청와대가 이미 내부 결정을 끝내고 보고한 건이라고 보고를 물려버릴 수도 있다. 아니면 그 과정에서 부총리 결정과는 다른 내용을 업무를 담당하는 과에다가 지시할 수도 있다. 그러면 정책 결정은 다시 산으로 간다. 여기에 정치권까지 개입하기 시작하면 그 사건이 어떻게 해결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 되어 버린다. 합리성은 그때부터 없어진다. 이러한 시스템 속에서 합리적인 의사 결정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 이상한 것 아닌가.

     

당시 사건으로 돌아가면 어찌 되었건 간에 부총리는 대통령 보고를 꼭 하고자 하셨다. 며칠 뒤 혁신성장 전략회의가 있어 대통령과 부총리가 함께 행사에 참석하는 일정이 있었다. 대외적인 행사를 할 때는 부처 장관이 얼굴을 내밀어야 하니까 말이다. 그 기회를 활용해 대통령께 관련 내용을 보고하기로 했다 들었다. 쉬는 시간을 활용해서 대통령께 보고하기로. 청와대는 모르게 해야 하니 정보가 청와대로 흘러 들어가지 않도록 각별하게 주의하라고 당부가 있기도 했었다. 코미디였다.

     

그리고 사건은 완전히 끝났다.

     

나는 의문이었다. 국가는 과연 지난 정권보다 나아진 것인가. 공무원으로 계속 일해 나갈 때 나는 행복할까.

     

이런 사건들이 반복되는 걸 계속 보면서 일을 하다 보면 나도 과장이 되고 국장이 되어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국가 일이란 원래 이런 거라며 합리화시킬 것 같았다. 그러려고 공부를 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아니 그런 것보다 이런 업무처리 구조는 옳지 않다. 극단적인 말로 세월호 사태도 업무처리 시스템이 부재한 데서 생긴 일 아닌가? 만약 유사한 일이 다시 발생한다고 하면 이번 정부는 다르게 행동할 수 있을까? 이번 정부는 일선 공무원이 다르게 업무처리를 할 수 있도록 국가 행정시스템을 바꾸었는가?

     

이국종 교수님이 말씀하셨던, 석해균 선장을 한국으로 이송하기 위한 에어 엠뷰런스 조달이 다시 필요해진다고 했을 때 이번에는 이국종 교수님이름이 아니라 국가 이름으로 적절한 시간에 에어 엠뷰런스 조달이 가능할까?

     

나는 알 수 없었다. 아니 알고 있다. 여전히 똑같다. 바뀌지 않았다.

더 늦기 전에 바꾸어야 한다. 정권이 아니라 시스템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