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접전끝에 당선된 정희왕은 장면정부가 남긴 숙제인 경제개발계획을 이어받아.

공약 중 하나가 경제를 일으키겠다는 거였거든.

아무것도 모르는 데,

미리 준비되어있는 계획이 있다?

당연히 낚아채가지.

정희왕은 경제기획원을 통해 조금 손보긴 했으나 틀은 거의 비슷한 경제개발계획을 시행했고 결과는 좀 우연이 겹쳤어.


일단 우파진영논리대로 장면내각 경제개발계획이 농촌위주인 건 사실이야.

다만 틀린 게 있다면 농촌을 진흥시켜 쌀 같은 거 수출해서 그 돈으로 공업을 발전시키자는 개념이었어.

경제계획을 수정했으니 다르다고 하지만,

정희왕네 친구들도 수출목표만 수정하고경 제계획은 그대로 따라갔어.

맞아.

그냥 그대로 쓴거야.


정희왕이 그대로 실시한 장면의 경제계획은 결론적으로 운지했어.

자영농 지원금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실시했던 화폐개혁은 대차게 망하여 물가에 혼란을 일으켰고,

농촌도 흉년이 들어 수출은 커녕 자기 먹고 살기에도 바빴지.



 .

정희왕 : 망했노.



경공업 : 돈이 복사가 된다고?



 

정희왕 : 뭐노?



하늘이 무너져도 쏟아날 구멍은 있다고,

농업이 운지한 마당에 경공업 수출은 계획치 목표를 상회했고,

성적표를 받아든 정희왕은 유레카를 외치며 경제개발계획을 순식간에 개조해 앞으로 대한민국을 이끌 수출주도산업화 노선을 만들었어.


잠깐? 경공업?

대한민국은 정희왕이 즉위할 때 까지 똥세권이 아니었던거야?



런승만 : 응 아냐.



우리 생각과 다르게 대한민국은 나름 공업체계가 잡힌 상태였어.

런승만은 공업테크를 타야지 국가가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가발로 대표되는 경공업이 발전하는 중이라 인천에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등 힘을 좀 쏟은 편이야. 

참고로 대한민국 수도권 집중화의 시발점이기도 해.


공업 뽕을 맞은 정희왕은 중공업을 본격적으로 유치하려 했어.

문제는 돈이 존나게 필요했다는 거지.

공장설계하고 기자재 사가지고 오려면 달러가 필요했어.



정희왕 : 하 씨발 달러를 어디서 구하냐?



서독 : 하 씨발 노동자 좀 싸게 못 구하냐?



한국전쟁 특수와 루르지방을 되찾은 서독은 빠르게 경제회복을 하고 있었어.

다만 석탄 광부가 더 필요했고,

정희왕은 실업문제 해결 및 달러 벌 기회라고 여겨 파독 근로자 및 간호사 등 인력을 보내게 돼.

게다가 월남전까지 일어나 정희왕은 파병으로 외화를 더 확보하고 전쟁특수를 낭낭하게 얻어 공업은 더 성장하게 됐어.


무엇보다 김종필이 런승만 때부터 질질 끌어온 한일기본조약을 마무리 지으며 무수한 외화를 얻었고,

이렇게 끌어온 외화는 대한민국 산업화의 기틀이 됐어.


대학가는 어땠을까?

대학가는 장면내각 때에 비하여 얌전하긴 했지만, 

종종 시위를 일으키긴했어.

한국전쟁 영향으로 사라졌던 반미감정도 주한민국이 일으키는 사건이 계속되면서 조금씩 자리잡았지.


여기서 대한민국과 일본이 국교를 정상화한다는 이야기가 돌아.

식민지 탈출한 지 얼마 안됐고,

런승만이 반일을 정치적으로 사용한 지라 일본에 대한 감정은 당연히 좋지 않았고 결국 서울대학교를 중심으로 시위가 일어나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관악을 보게 하라는데,

이때부터 싹수가 보였던 것 같아.


미국은 이때 정희왕을 밀어줬어.

한일국교정상화야 미국 입장에서는 맥도널드 지사끼리 화해한다니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었고,

정희왕이 시위 막기위해 군대 동원하는 것도 눈감아 줘.

시위에 참석했던 대학생들은 민주주의 화신이라 여겼던 미국이 저러니 배신감이 몰아쳤고,

이는 대학가에 반미감정이 유령처럼 돌아다니는 계기이면서 민족주의 정신이 자리잡는 계기가 돼.


그렇다면 북한에 관해서는 어땠을까?

솔직히 말하면 정희왕이 등극하기 이전부터 평화통일론은 존재했어.

평화통일? 

빨갱이 새끼들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지금 평화통일을 주장하는 이들과 좀 달랐어.

비록 평화통일을 주장했던 조봉암이 해방 전에 공산세력을 이끌긴 했지만,

박헌영의 우덜식 공산주의와 딱히 맞지가 않았고,

종전에는 사회민주주의자로 전향을 해버려.


조봉암은 여운형을 따라 좌우합작운동에 몸을 담았지만,

좌우합작운동은 빨갱이와 친일파의 극렬한 반대로 인해 좆망하고 말지.

여기서 빨갱이와 친일파는 누구냐고?

누구긴 누구야 하나는 북괴고 하나는 더불어민주당 본체 한국민주당이지.

두 새끼 다 도움이 안되는 건 해방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아.


결국 좌우합작운동이 나가리되고 미소공동위원회도 나가리 되면서 한반도는 남한만 단독선거를 치루게 돼.

다시말해 평화통일론은 해방 때부터 존재했던 유서깊은 종가라고 보면 돼.

따지고보면 단독선거보다 근본있는게 평화통일론이야.

미국은 좌우합작을 바랬거든.


서술이 길었지만,

결론적으로 평화통일론이 공산주의를 추종하는 건 아니었어.

하지만 운동권이 본격적으로 성장하면서 좆되버리는 건 시간문제였지.


이미 민족주의 갬성을 탑재한 운동권에게 결론적으로 빨간물이 유입되기 시작한 건 노동문제였어.

다들 알겠지만,

산업화시기 대한민국 노동환경은 엠창이었고,

런승만이 하야하면서 탄생한 노조들은 정희왕에 의해 강제로 한국노총에게 합쳐지게 돼.


정희왕 시기,

한국노총은 어찌되었든 임금상승을 위해 시위도 했지만,

단체행동보단 개별산업체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았고 횟수도 많지 않았어.

의외로 대학생과 지식인조차 민주화만 생각할 뿐,

노동자에 대한 삶은 무지 그 자체였지.


이때,

모든 키를 가진 사람이 등장해.

그 이름은 전태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