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 나는 일베충임. 새벽갬성에 쓰는 글이니까 길면 넘겨라 3줄 요약 달아둠.

 

언어가 내면의 거울이고 인간 개인의 모든 행동이 역사적 정치적 함의를 담고 있는 거라지만,

인터넷에서까지 그런 제약 받긴 싫다는 이유로 존나 초창기 때부터 일베를 했었다. 그딴거보단 그냥 말초적 즐거움을 충족시키는 걸 택한 거지.

그리고 이따금씩 뉴스에 일베가 일으키는 문제? 혹은 이슈?들에 대해서 보도될 때도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도 않았었음.

당시엔 워낙 게이들이 신고정신이 투철해서.. 지들도 보고 좀 아니다 싶은 건 수사기관에 신고 때린 걸 또 일베 보내고 그러더라... 그게 존나 한참 전의 일이었지.

어쨌거나 "나도 이건 좀 아닌 거 같은데..." 싶은 문제들에 대해서는 그저 침묵만 하면서 그렇게 개인적인 방종을 "즐겨" 왔었음. 대다수가 그랬을 꺼야 아마.

근데 어느 순간 이게 과연 개인적일 뿐이기만 한 방종이었을까 하는.. 존나 회의감이 찾아오더라.

 

그러다가 결국 일베를 탈출하게 된 계기는 공교롭게도 이번에 터진 5.18 이슈 때문임.

물론 그전부터도 점점 전체주의적인 성격이 짙어지는 일베를 보면서 점점 노답이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문득 저쪽에선 무슨 얘기를 하나, 내가 그저 수긍만 하던 것들이 실제로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평소에는 별로 관심 없었던 것들에 관심을 갖다보니 "나는 이제껏 무엇을 떠들고 놀고 있었던 것인가"라는 생각으로 뒤돌아보게 되더라.

 

니들도 그렇겠지만 사람들 누구나 내 자신이 정답이길 원하고, 나 또한 나의 의견이 팩트와 일치하는 균형잡힌 시각이길 원하잖냐.

나도 그러길 바랬지, 근데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나도 결국은 내가 보고 싶은 팩트만 봐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과거경험, 성장환경, 감정적 선호 등등에 의해) 내 시각으로 봤을 때 좀 꺼림칙할 수도 있는 것들에는 눈을 감아왔구나 하는.

그건 내가 "본" 게 아니지. 그저 남들이 보여준 것들 뿐이었던 거야. 진짜 어떤 생각을 할려면 내가 직접 뭔가를 봐야만 하는 건데.

그런 피동적인 수긍이나 동조가 보수파 전반에서 일어나고 있다라고 얘기하고 싶은 건 아냐. 내가 말하는 건 일베지.

 

그간 이런 문제들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도 않았었어.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행동"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도 생각해보지 않았었고.

어린 시절 나에게 있어 (혹은 어쩌면 아마도 정게글을 싫어하는 대부분의 일게이들에게 있어) "광주는 폭동이야" "김대중 개새끼"라는 구호는, 말하자면 일종의 카지노칩 같은 거니까.

알량한 집단의식에 동화되어 일베가 생산하는 여러가지 컨텐츠를 "플레이"하기 위한 도구 이상 이하도 아닌..

그리고 그게 아마 나 뿐만은 아닐 꺼야. 그래서는 안 되는 문제들에 대해 무관심하고 무책임한 녀석들이 일베에든, 혹은 여기에든 더 많을 꺼라고. (혹은 반대진영에도 물론...)

 

어쨌건 결국 "순종 전체주의자들만 살아남을 수 있는 괴물 커뮤니티"는 이미 완성형이야.

커질만큼 커져버린 괴물은 결코 개인의 개성이나 자유, 권리 같은 것들을 보장해주지 않아.

그들이 말하는 "팩트에 기반한 도그마"에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일종의 "반동"이니까. (이 간악한 반동분자새끼! 참수대로 끌고 가라우!)

산업화로 풍요로워진 우리 사회가 민주화를 갈망하게 된 이유도 그런 게 아니었을까.

(그러고보면 결국 지금의 나는 진짜 문자 그대로 ㅁㅈㅎ 당한 거구나. ㅋㅋㅋㅋ)

 

공산사회주의를 극도로 혐오하고 이른바 '방종일지언정 극한의 자유를 존중하노라' 라고 단언했던 커뮤니티(아직도 그렇게 믿고 있는 애들이 있음)가

결국 사상검증, 인민재판과 같은 소위 그들이 혐오하는 "빨갱이"들이 구현했던 시스템을 답습하며 유지되어 온 걸 생각해보면 참 오싹한 일이야.

심지어 ㅇㅂ/ㅁㅈㅎ 수와 압도적인 다수의 비난을 통해서 오랜 시간 강화되었기 때문에, "순수혈통(?)만 남은 내부"에서 더는 돌이킬 방법도 없지.

 

자신들이 옹호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지만원발 안면인식AI든 기독교식 성경무오설이든 세계정부와 일루미나티든 뭐든 가져오는 녀석들과 그에 동조하는 녀석들까지 보다보면

어느새 이건 애국보수가 아니라 그야말로 꼴통보수로 전락한, 구시대에만 호환가능한 가치관을 지키기 위해 남은 최후의 십자군 요새란 생각까지 들더라.

 

물론 일게이들 중에서도 나름의 근거들을 조합한 결과, 어떠한 논리를 분명히 갖고 특정한 결론에 도달해 외치는 녀석들도 있을 꺼야 분명.

하지만 그 외의 종자들이라고 한다면 그저 나처럼 "(왠지) 재밌으니까 = 자신이 동조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는데 자세히 알고 싶지도 않으니까"

혹은 "그렇게 하면 일베 안의 아무도 나에게 뭐라하지 않으니까", "그들이 요구하는 '사상검증'의 암구호를 팔아서 설득력 내지는 그들의 우호도를 구매한다."와 같은

한심한 원리로 작동하는 기계일 뿐인 거니까. 그런 건 분명히 잘못됐다고 생각해. (그리고 요 최근 짤게 보다보니 이런 고민을 하는 녀석들도 부쩍 많아졌더라.)

 

어쨌거나.... (어떤 커뮤니티든 정치적 편향이 존재한다고는 할지라도) 일베는 이미 커뮤니티로서의 생명력을 잃었다고 봐.

혹시 모를 예외, 오류의 정정, 혹은 적극적인 반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뚜까맞다 못해 아예 사라져버린.. 선동집단에 불과한 거지.

그런 커뮤니티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 철저하게 친목 밴, 여자인증 밴을 때렸지만... 과연 그게 일베가 커뮤니티로서 가진 가치를 보장해줬을까.

 

무튼 그래서 결국 나무라이브로 옮겨왔는데, 여기도 일게이들이 많네.

하지만 여기도 "아직은"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짤방들이 나름 ㅈ노잼까진 아닌 거 같고.

보아하니 좌파든 우파든 제법 식견 높은 애들도 드문드문 찾아 오는 거 같은데,

애용하면서 나도 니들한테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일베를 등졌으니 칭찬해주세요, 라던가 진보로 전향하겠습니다, 같은 뉘앙스는 아님.

어쨌건 좌파는 날 일베충이라고 욕할 꺼고, 우파는 빨갱이 홍어새끼라고 얘기할 꺼 이미 충분히 예상하고 있으니까.

근데 어떻게 보면 그 중간의 애매한 회색분자가 올릴 수 있는 수백만가지 테크트리 속에 진짜 중요한 의미가 존재하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3줄 요약-

1. 일베도 이제 더는 못 해쳐먹겠다

2. 하지만 좌파랑은 또 아다리가 딱히 잘 안 맞음

3. 어찌됐건 반갑다 얘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