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와 기술 혁신으로 인한 양극화 시대에 보수는 약자를 돌보는 데 게을렀다. 미·중 데탕트(긴장 완화) 시대에 중국과 북한을 다루는 데도 서툴렀다. 시나브로 보수의 지지 기반이 무너지고 있었다. 특히 불공정한 세상에 분노한 2030세대가 4050세대의 ‘민주 동맹’에 합류하자 전세는 급격히 기울었다. 2016년 총선·2017년 대선·2018년 지선·2020년 총선까지 네 번의 승리는 굳건했던 민주 동맹 덕이다.


역경을 이기긴 쉬워도 풍요를 이기긴 어려운 게 세상 이치다. 총선에서 180석 압승한 순간 ‘진보의 몰락’이 시작됐다. 2017년 탄핵 이후 중도 보수의 이탈로 ‘보수 동맹’이 해체됐던 것처럼 2020년 총선 이후 2030세대의 이탈로 민주 동맹은 와해됐다. 2021년 4·7 재보선·2022년 대선·2022년 지방선거 패배는 2030세대 이탈 때문이다.


반면 절박했던 보수 진영은 김종인 비대위원장 체제에서 ‘보수 동맹’을 복원하고 이준석 체제에서 ‘민주 동맹’을 와해시켰다. 국제 정세도 민주당에 불리한 흐름으로 바뀌었다. 2016년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으로 시작된 ‘탈세계화’와 ‘미·중 패권 전쟁’은 홍콩 사태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거치며 냉전 시대의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의 대결 구도를 재연하고 있다. 젊은 세대가 ‘자유’의 가치를 알기 시작했다. ‘공정’에서 ‘자유’로 가치 전선이 이동했다.


탈세계화와 미·중 패권 전쟁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미국과 일본을 다루는 데 전략적으로 실패했다. 이젠 ‘평화가 경제’가 아니라 ‘경제가 평화’라고 믿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한·미 동맹은 군사 동맹을 넘어 기술 동맹으로 빠르게 밀착하고 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올린 ‘멸공’이 시대착오가 아니라 시대정신이 된 시대다.


6070세대는 ‘국민’, 4050세대는 ‘시민’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면, 2030세대는 ‘개인’의 정체성이 강한 세대다. 이들은 ‘욕구’를 넘어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더 좋은 집, 더 좋은 학교, 더 많은 돈을 가질 권리를 억압하는 것에 저항한다. 자신들은 ‘탐욕스럽게’ 살면서 ‘꿈꿀 권리’를 빼앗으려는 위선에 분노한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사실상 사회주의 방식과 다름없는 것으로 본다.


‘586세대’의 공정이 사회적 공정이라면 ‘MZ세대’는 개인적 이익이 침해받는 불공정을 견디지 못한다. 연공서열의 호봉제보다는 능력제를 선호한다. 민노총·한노총과의 연대가 더 이상 민주당에 유리하지 않다. 페미니스트인 것처럼 내세우면서도 말과 몸이 따로 노는 탓에 젠더 이슈도 2030세대를 투표에서 이탈시키고 있다.


문화 전쟁에서도 민주당은 지고 있다. MZ세대의 눈에 민주당은 닮고 싶은 사람이 없는 ‘촌스런’ 정당이다. 우파든 좌파든 강남 이미지가 있어야 ‘워너비(wannabe)’가 된다. ‘강남 좌파’ 조국의 몰락 이후 민주당은 젊은 세대에게 워너비가 없다. 국민의힘은 이준석·오세훈·안철수가 있지만 민주당은 없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은 ‘포퓰리즘’에 사로잡혀 엘리트 관료를 기득권과 적폐로 내몬 탓에 국정 성과를 낼 수가 없었다. 검찰과 감사원을 빼고는 모두 제압했으나 결국 제압 못 한 두 곳에서 사달이 났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 그리고 최재형 의원은 문재인 정권 실패의 상징이다.


검경 수사권, 공수처, 검수완박 등 문재인 정권 내내 검찰 관련 이슈가 커진 것도 당시 당청에 운동권과 법조인 출신이 많아 인적 균형이 깨졌기 때문이다. 그것밖에 아는 것이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는 것이다. ‘처럼회’가 문제가 아니라 다양성이 없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586 운동권 송영길의 참패와 경제 관료 출신 김동연의 승리를 보면서도 “중도는 없다”느니 “개혁을 밀어붙이지 못해 지지층이 떠났다”느니 한다면 총선 결과도 불보듯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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