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는 장부승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


장부승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졸업,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교 박사

전 외교관(주중한국대사관, 주블라디보스토크총영사관 근무)

현 간사이외국어대학 교수(연구분야 국제정치, 외교정책)

------------------------------------------------------------

이제 한국은 주요 국가들 중 세계 두번째로 인구감소국의 대열에 들어섰다. 첫번째는 일본이다. 극일도 이런 극일이 없다. 인구감소 경쟁에서 초고속으로 일본을 따라잡고 있다. 출생률은 이미 일본을 훨씬 앞서 바닥을 향해 가고 있다. 아니 이미 바닥이다. 세계 꼴지, 아니 뒤에서 세계 1등이다. 대한민국 만세! 일본을 넘어섰다!


이제 슬로모션 인구재앙의 방아쇠가 당겨졌다. 먼 바다에서 몰려오는 츠나미는 얼핏 보기에는 느려보이지만 사실은 엄청난 에너지를 담고 있다. 건물이든, 자동차든 모든 것을 휩쓸고 가버린다. 그리고 일단 츠나미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 그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도망치는 수밖에는. 인구감소의 츠나미가 이제 수평선 너머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내가 살았던 러시아의 극동지역이나 지금 사는 일본은 두곳 모두 인구가 감소하는 곳이다. 이 두곳의 사례에 비추어볼때 앞으로 우리나라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아보자.


첫번째, 폐허가 되는 도시들이 등장한다.


러시아 극동지역 소도시에 가보면 '여기서 전쟁 났었나'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도시들이 많다. 무슨 폭격이라도 맞은듯이 건물과 집들이 여기저기 주저앉아있다. 전쟁은 없었다. 사람들이 집을 버리고 떠났을 뿐. 사람의 관리를 받지 못하는 집은 몇년만 지나면 길도 엉망에 벽도 무너지고, 창문은 다 깨진다. 무슨 귀신 나올것 같은 동네가 된다. 일본도 마찬가지. 빈집들이 엄청 늘어난다. 그리고 일단 빈집들이 생겨나 폐허촌으로의 변화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소도시는 순식간에 전쟁터처럼 폐허가 되어버린다.


둘째, 사회 인프라가 엉망이 된다.

시베리아나 극동 지역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러시아 와서 잠깐 수박겉핥기 하고 가서 무슨 고속철이 필요하다는 둥, 고속도로가 필요하다는 둥 뻘소리를 한다. 극동러시아 최대도시가 블라디보스토크고 그 다음이 하바로프스크인데 두 도시 인구 합쳐봐야 120만이 채 안된다. 두 도시 거리가 750km인데 이 두 도시 사이에는 인구도 거의 없다. 허허벌판. 고속철이든 고속도로든 깔아봤자 유지가 안된다. 채산성이 안 맞으니. 도로도 곳곳에 구멍이 뻥뻥 뚫려있고 가로등은 애시당초 없다. 사람이 없는데 도로며 가로등이며 왜 필요한가?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는 사회 인프라 투자의 효율성이 점점 떨어진다. 물론 정부가 나서서 강제로 도로 깔아주고 고속철 놔줄수도 있지. 근데 그 돈은 어디서 나오나? 국채? 세금? 결국 사회 인프라 투자가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을 통해 회수되지 못하면 그 돈은 정부부채로 남고 국민들이 다 갚아야 하는 돈이다.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민간투자로 지어서 비싼 교통비, 통행료 내던가. 이것이 바로 일본의 현실이다. 인구는 줄어드는데 사회 인프라 투자를 하려니 세금이 올라가고 국가부채가 늘어난다. 곳곳에 유료도로가 늘고, 교통비는 올라간다.


셋째, 탈출이 시작된다

극동러시아에는 젊은이들이 없다. 그나마 있는 젊은이들에게 물어보면 꿈이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 가서 공기업 취직하는 거다. 아니면 유럽으로 이민가든가. 똑똑하고 유능할수록 탈출을 꿈꾼다. 영어공부 열심해 해서 미국이나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로 가는 꿈을 꾼다. 의사들도 좀 솜씨 좋다 싶으면 몇년 못가 다 도망친다. 인구가 줄어드는 곳에는 젊은이들을 위한 기회가 줄어든다. 젊은이들은 탈출을 꿈꾼다.


일본의 경우에는 조금 다르다. 젊은이들이 탈출하지 않는 대신 체념 상태가 된다. 임금은 오르지 않지만 그래도 취직은 잘 되니 그냥 안분자족 하며 체념 상태로 살아간다.


대신 자본이 탈출한다. 더 이상 국내에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는 기업가들은 생산기지와 연구소를 해외로 이전한다. 아니면 중국 기업들이 와서 비싼 돈 주고 일본 기업을 사버린 다음 기술이며 인재며 다 데리고 가버린다. 그렇지 않아도 어차피 망할거 같은 기업, 중국 사람들이 와서 기술이며 기계며, 인재며 다 사주니 일본인들은 좋아라 하며 고마워한다.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수십조 들여서 미국에 공장을 짓겠다고 하던데, 이것이 바로 인구감소 사회의 특징이다. 이미 일본에서는 3~40년 전부터 세계 곳곳으로 자본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덕분에 세계 최대 해외자산 보유국가가 되었지만 국내경제의 활력은 떨어질수밖에 없다.


내 생각에 앞으로 <인구감소 한국>의 미래 시나리오는 일본 쪽이 더 가깝지 않을까 싶다. 인구 탈출보다는 자본 탈출이 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인구감소 사회의 가장 중요하면서도 무서운 특징. 변화와 혁신이 점점 어려워진다.


인구가 줄어든다는 것은 단지 세대간 비율이 유지되면서 사람의 전체 숫자만 줄어든다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인구감소에는 극심한 고령화와 유소년 인구의 격감이 동반될 것이다. 일본이 40년간 겪은 것을 아마 앞으로 10~20년 내에 압축적으로 경험할 것이다.


고령자가 늘어나면 생산성이 떨어진다. 일본이 그렇다. 일본 경제를 보면 실제로 일하는 근로자의 1인당 생산성은 상승해왔다. 실제로 여기저기 들여다보면 개별기업들은 아직 그래도 멀쩡한 곳이 많다. 그런데 나라 전체로 보면 생산성이 올라가지 않는다. 고령인구가 너무 많고 또 급격히 늘고 있기 때문이다.


노인도 기회가 주어지고 노력하면 취직도 하고 변화와 혁신에 적응할 수 있지 않냐고?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60대, 아니 70대 초반 정도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이후로 넘어가면 쉽지 않다. 하물며 80대? 90대?


내가 일본 학생들에게 일본 고령인구의 취업 확대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다 한방 먹은 적이 있다. 한 여학생이 손을 들더니 왈, 선생님은 일본의 현실을 잘 모르시는것 같아요. 저희 고향에 가면 할아버지, 할머니들 많으신데요, 일 못해요. 하루종일 누워있어요. 계속 아파요.


틀린 말이 없어 뭐라 반박을 못했다. 일본 고령자들의 상당수는 요양원에 있거나 자택 대기 상태다. 요즘 코로나가 수십만명씩 감염자가 나오는데 이에 따라 사망자도 조금씩 늘고 있다. 4분의 3 정도는 70대 이상이다. 대개 영세 요양병원에 있다가 집단감염되는 경우가 많다. 몸이 너무 쇠약한 상태라 바이러스의 위험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70대 이상 노년이 되어 건강을 유지한다고 해도 이미 시력, 청력 등은 많이 저하되어있다. 70대 중반 이상이 되면 자연친화적인 노화과정의 일부로써 시력, 청력이 떨어지고 체력, 두뇌회전을 비롯해 신체 전체의 활력이 감소한다. 운동이나 건강관리를 통해 이러한 과정을 늦출수는 있지만 거기에도 한계가 있다.


원래부터 변화와 혁신에 익숙해져있는 일부 소수의 사람들은 70대 이상이 되어도 변화와 혁신을 계속 해나갈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나머지 대부분은... 글쎄, 일본의 사례를 보면 쉽지 않을거 같다.


그래도 열심히 노력하면 노인도 변화와 혁신의 주체가 될수 있다고? 아니 지금 70대 중반 이상, 80대, 90대 노인분들 같은 경우를 얘기하고 있다니까? 눈도 잘 안보이고 귀도 잘 안들린다니까? 여기저기 몸이 계속 아프다니까? 변화와 혁신?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고령화에도 불구하고 고령인구 증가에 못지 않게 청년과 유소년 인구가 늘어나 사회적 변화와 혁신을 이끌고 사회 전반적인 노동생산성 제고를 이끌어주면 괜찮다. 그런데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고령화사회는 유소년, 청년 인구의 격감과 함께 온다. 현재 일본이 지난 수십년간 경제성장을 시켜보려 갖은 노력을 동원했는데 결국 실패했다.


한국은 좀 달라야 할것 같은데, 쉽지 않아보인다. 저기 수평선 너머에 이미 츠나미가 몰려오고 있다. 지금이라도 방파제를 쌓아볼까? 아니면 도망쳐?


방파제라는게 지금 쌓기 시작해서는 츠나미를 막을 수 없다. 도망을 친다는 것도 말이 안된다. 극동 러시아의 젊은이들이야 나라가 넓으니 서부로 가면 되지만 우리 젊은이들은 어디로 가란 말인가?


결국 방법은 두가지인데, 하나는 세대간의 책임과 권리를 재조정하는 것이다.


이대로 인구감소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면 지금 10대, 20대 한국인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한 사람이 부담해야 하는 세금, 기여금, 건강보험기여금, 사회 인프라 비용 등이 어마어마하게 올라갈 것이다. 아마도 이들은 취업후 40년 정도를 등골이 휘어져라 일해야 한다. 그래도 자기 손에 남는 것은 얼마 없을 것이다.


이 상태를 방치하면 우리 젊은이들도 결국 일본 젊은이들처럼 체념 상태에 빠져들게 될것이다. 돈 벌면 뭐 하나? 다 빠져나가는데. 라는 생각을 수백만의 젊은이들이 하기 시작하는 순간 인구감소의 슬로모션 폭탄이 터지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장기침체의 늪에 빠질 것이다.


지금이라도 연금수령 세대들의 자기 이익 자제를 설득해야 한다. 그리고 젊은 세대들에게 희망을 보여줘야 한다. 과거 인구가 성장하던 시대의 마인드를 가지고 나도 젊은 시절에 세금 내고 연금 기여금, 건강보험 기여금 내고 하면서 기여할만큼 했으니 나도 이제는 좀 누려야겠다는 생각을 해서는 곤란하다. 이제는 인구 감소 초고령사회를 향해 가고 있다. 예전 방식대로 세금 내고 기여금 내라 하면 지금 젊은 세대들은 등뼈가 부러져버릴 것이다.


또 하나의 대안은 외국인재 도입이다. 이미 일본은 코로나 이전에 출입국관리법 개정을 통해 그 방향으로 전환했다. 코로나 때문에 다소 주춤하고는 있지만 코로나 시대가 끝나면 다시 해외로부터의 인구 유입 추세가 코로나 이전으로 복귀할 것이다.


국내적으로 출생율을 높이는 것은 이제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리고 가능하다 해도 이미 너무 늦었다. 지금 애를 낳는다고 해도 성인이 되어 취직하려면 최소 20년은 걸린다. 그 때는 이미 한국은 초초고령사회로 진입해있을 것이다. 일본의 사례를 면밀하게 관찰하면서 이제는 우리도 외국인재의 도입에 보다 전향적인 자세를 취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