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났던 건, 열흘 전 시내의 광장에서 행해졌던 영원의 횃불 제막식 때였다.

 

그 행사는 재작년 있었던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야당 후보가 공약 이행을 선언하는 자리기도 했었다.

 

선거철 당시 가장 큰 화젯거리는 지하철역 준공작업 도중 발견된 지난 전쟁의 유물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였다.

 

말이 좋아서 유물이지 사실상 다 녹슨 전차의 잔해였던 그것을 좋게 바라보는 이들은 없었고, 다만 상이군인 출신이었던 어느 야당 후보만이 이것의 복원과 함께 시민광장 조성을 약속했었다.

 

그리고 지금. 그 약속은 끝내 지켜졌고, 전쟁의 상흔이 아문지도 꽤 시간이 흘렀건만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광장에 모여 제막식 행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지역 출신 십자훈장 수훈자와 그 손자의 주도로 점화 행사가 이루어진 뒤, 시장을 비롯한 각계 인사들의 연설이 이어졌다.

 

 포토타임 이후에는 한산해진 광장에는 몇몇 시민들만이 남아 한산한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검은색 육군 정복을 차려입은 한 노인이 나타나기 전까진 말이다. 

 

이미 하얗게 센 머리를 개리슨모로 눌러쓴 그녀는 횃불 뒤에 자리한 오래된 전차를 향해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겨우 그 앞에 도착한 노인은 떨리는 손으로 탄흔이 가득한 전차의 차체를 쓸어 보더니, 이윽고 그 자리에 주저앉은 채로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그걸 지켜본 몇몇 시민들은 그저 입을 모아 웅성대기만 했고, 일부는 카메라를 꺼내 들어 사진을 찍어대고 있었다. 

 

그 노인에게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는 그녀가 차려입은 제복과 가슴께에 달린 훈장들을 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거기서 본능적인 이끌림을 느낀 나는 조심스레 다가가 거수경례를 붙이며 말을 걸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소령님.” 

 

내 물음에 눈물을 흘리던 노인은 눈가를 한 번 소매로 훔치더니, 여전히 붉게 충혈된 눈으로 나를 흘겨봤다.

 

 그녀는 일반적인 신문사 기자들과는 다른 나의 행색에 경계심을 푼 건지, 무뚝뚝한 말씨로 대답했다.

 

“신경 끄고 가던 길 가게. 총각.” 

 

불편한 내색을 숨기려 하지 않는 그 태도는 결코 긍정적인 반응이라 할 수 없었지만, 나는 그 말대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 자리를 비킬 수 없었다.

 

이렇게 굳이 인파가 지나간 뒤에야 나타나 감상에 젖는 걸 보면 무언가 사연이 있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었고, 지금껏 내가 해온 일의 무게를 생각하면 이분을 그냥 보내드리고 싶지 않았다.

 

“저는 그저, 소령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을 뿐입니다.”

“널리고 널린 게 나 같은 노병인데, 그런 이야기 들어서 뭘 하려고.”

“대조국전쟁의 흔적을 보존해 두는 것이 저의 사명입니다.”

 

내가 진지한 얼굴로 그리 답하자, 노인은 무언가 마음의 변화라도 있었던 건지 긴 한숨을 내쉬더니 나직이 입을 열었다.

 

“…일단 자리부터 옮기지.” 

 

노인의 뒤를 따라 발걸음을 옮긴 지도 이십여 분, 교외에 자리한 소형 임대아파트 단지에 다다르자, 오줌 지린내가 코를 찔렀고 단지 내 곳곳에는 곡식 낟알이나 향신료 따위를 말리는 풍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빈말로라도 참전용사에 대한 대우가 좋다고는 할 수 없는 게 이 나라의 사정이었지만, 막상 현실과 마주하게 될 때마다 반발심이 치솟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집안 꼴이 이래서 변변찮은 것밖에 못 내주네.”

“괜찮습니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노인은 그렇게 운을 떼며 부엌에서 찻주전자와 컵 두 개를 쟁반에 받쳐 내왔고, 노인 특유의 향취와 세숫비누 냄새에 섞인 발효차의 내음이 코끝을 자극했다.

 

그녀가 차를 따라주고 그것을 입에 대는 동안 나는 찻잔을 든 채로 집안을 둘러봤고, 열 평을 조금 넘는 아파트 내부에는 혼자 사는걸 감안하더라도 지나치게 적은 살림살이가 내 이목을 끌었다. 

 

“누추한 집구석 뭐 볼 게 있다고 두리번거리나.” 

“이거, 육군 동성 훈장 아닙니까?”

 

침대를 겸하는 대형 소파와 그 앞에 있는 브라운관 텔레비전, 베란다에 자리한 빨래걸이, 아랫집과 굴뚝을 공유하는 벽난로까지.

 

그 중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벽난로의 옆에 걸린 흑백사진과 조촐한 모양새의 훈장이었다.

 

동성 훈장 자체야 상이기장 다음으로 많이 풀린 물건이었지만, 그 뒤에 있는 훈장 수여의 순간이 담긴 흑백사진의 배경에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물건이 피사체로 담겨있었다.

 

“…그 훈장은, 포크빌 공방전 때 받은 거라네.”

“313 중전차 대대였군요.”

“그래, C중대 1소대였지.”

 

나의 물음에 그립다는 듯 애수 어린 미소를 지어 보이는 노인의 얼굴에선 아주 잠시였지만 그 시절의 형형함을 엿볼 수 있었다.

 

그것 외에도 전차병용 정복에 붙어있는 수많은 참전 기장과 부대 표창들은 그녀가 전쟁 당시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를 짐작케 해주었고.

 

포크빌은 이곳의 옛 지명이었다.

 

그리고 사진에 담긴 피사체가 전쟁 당시 준 전략무기 취급을 받던 노라드제 M1 중전차임을 생각하면 그녀가 복무했던 부대를 유추해 내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어진 감정은 끝없는 채무감과 숙연함이었다.

 

“…죄송합니다.”

“됐네, 벌써 50년도 더 된 일이야.”

 

나와 같이 대조국전쟁의 전쟁사로 밥을 빌어먹는 사람들 중에서도 알고 있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은 전투. 

 

당시 수도로 이어지는 길목 중 하나였던 41번 축선의 최남단에 위치한 마을인 포크빌은 적군 입장에선 보급선 안정을 위해 반드시 차지해야 했던 전략적 요충지 중 하나였다.

 

 반대로 말하면 우리 군에겐 적군의 공세 종말점 단축을 위해서라도 꼭 사수해야 할 거점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래, 그날도 오늘과 같이 햇살이 따뜻한 날이었지.”

 

이야기를 시작한 노인‥ 아니, 마리아 세모벤테 소령님은 두 눈을 꼭 감은 채로 그때를 회고하고 있었다.

 

학계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이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대조국전쟁 기간 전체를 통틀어 가장 치열했던 전투를. 

 

 

 

2.

 

4041년 4월, 토르니아 주 오렌지 카운티 포크빌 

 

국지전을 가장한 유스토니아 군의 전면적 침공에 토르니아 전역이 열린 지도 5주.

 

 일선 부대의 분전에도 패퇴를 거듭하던 동부 방면군은 보다 못한 육군성 장관에 의해 지휘부가 교체됐고, 새로이 사령관으로 취임한 제프리 틸먼 상급대장의 주도로 이전까지의 작계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작전을 실행하게 된다.

 

국경선 사수만을 목표로 하던 경직된 전략에서 벗어나 필요에 따라 토르니아 산맥 이북의 국토를 일시적으로 포기하는 대신 해당 지점에 견고한 방어선을 구축하고 장기지구전을 벌이는 한편, 우방국의 참전을 전제로 반격을 도모하는 '제비꽃 작전'은 수많은 육군 내 원리주의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강행되었고, 그 첫 번째로 행해진 건 개전 직후부터 소모되어 사실상 속 빈 강정이나 다름없었던 일선 사단들을 통폐합 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그런 조치는 기존 사단들이 작전 중이던 지역에 투입할 예비병력의 존재와 즉응성이 전제되어야 했다.

 

그리고 그 역할은 몇몇 직할대를 제외하면 전력을 거의 그대로 온존하고 있던 알몬드 중장의 3군단이 떠맡게 되어, 작전 개시 이튿날에는 대부분의 군단 직할대와 예하 사단들이 일선에 배치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 부대 중에는 당시 막 임관하여 전면전 직전에 행해진 유스토니아 군의 기만 공격에서 첫 실전을 경험한 313 중전차 대대 C중대 소속 마리아 세모벤테 소위의 1소대도 포함되어 있었다.

 

“소대 주목!”

“됐어, NCO들 말고 하던 일 봐.”

 

조금 전 중대장으로부터 작전 개요를 하달받은 그녀는 한창 전차를 정비 중인 소대원들에게 향했고, 막 병사들에게 구령을 붙이던 부소대장의 행동을 제지했다.

 

기본적으로 절차보단 행동을 우선시하는 습관이 든 만큼 마리아는 조금이라도 빨리 명령을 하달하고 전투를 준비하는 쪽을 선호했고, 그건 지난 전투에서 소대장인 그녀의 성향을 파악한 전차장들도 잘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이번엔 뭐라고 하셨습니까?”

“지난번하고 별 다를 것 없어.”

“그것 참 귀찮게 됐네요.”

“그러게나 말이다.”

 

소대 3번 차량 전차장인 사이먼 중사는 그런 그녀의 대답에 못 말리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난번 전투와 같은 조치를 취한다는 건 강도 높은 보전합동전투를 준비해야 한다는 걸 의미했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종심이 훨씬 짧고 차량호를 구축할 만한 공간이 심각할 정도로 부족하다는 것.

 

포크빌 일대를 방어하기 위해 배치된 병력은 그녀가 속한 C중대 외엔 1개 보병 대대가 전부였으며, 그건 마을의 위치가 전선으로부터 꽤 떨어져 있다는 걸 감안해도 해당 거점의 전략적 중요성을 생각하면 지나치게 부족한 숫자였다.

 

“부소대장은 사이먼하고 마을 동문에서 사주경계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소대장님.”

“잭슨 너는 차량 정비 끝나는 대로 시가지 동쪽 종탑으로 차량 이동하고.”

“소대장님은요?”

“난 중대망 유지해야 되니까 여기 남아야지.”

 

마리아의 마지막 대답에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잭슨은 부소대장 일행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전차에 탑승했고, 그녀는 그녀대로 자리에 남아 전차장 해치 뒤에 자리한 중대급 무전기의 안테나를 펼쳤다.

 

원래라면 이렇게 소대 차량 배치를 비효율적으로 흩어놓으면서까지 통신망을 유지할 필요가 없었지만, 군단 창설 이래 최초로 행해지는 대규모 전선 교대로 인해 군단 통신대대로부터 제대로 된 통신 지원을 받지 못했고, 그건 비단 마리아가 속한 C중대 뿐만 아니라 313 중전차 대대 전체에 해당되는 얘기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리아는 중대 내의 다른 초급 장교들과 마찬가지로 당장의 명령을 수행하는 데에 여념이 없었고, 그건 곧 언제 연락이 올지 모르는 무전을 기다리는 지루하고도 긴 싸움을 시작했다는 걸 의미했다.

 

“소대장님은 좀 쉬세요. 망대기는 제가 하고 있겠습니다.”

“...그럼 신세 좀 질게, 레이첼.”

 

하지만 그러기도 잠시, 포탑의 전차장 석에 쪼그리고 앉아 무전기 상면에 붙은 점멸등을 주시하고 있던 소대장의 모습이 불편하다는 듯, 1호 차량 탄약수였던 레이첼 상병은 무전대기를 자처했다.

 

 마리아도 전날 오후부터 진행된 부대 이동 준비 및 병사 인솔로 인해 피로가 누적될 대로 누적되어 큰 고민 없이 그 배려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쪽잠을 자기 위해 자세를 잡은 마리아는 이 마을에 주둔하고 있는 다른 군인들과 같이 별일 없이 오늘 하루가 지나가기를 바라며 두 눈을 감았다.

 

 

 

3.

 

‘쿵!’

 

그런 낙관적인 생각으로 잠자리에 든 지 얼마나 지났을까, 마리아의 기대를 비웃듯 전방에서 들려온 폭음에 잠에서 깬 그녀는 곧바로 상황 파악을 위해 주위를 둘러봤고, 곁에서 무전대기 중이었던 레이첼 상병이 막 무전기의 키를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적군의 포격입니다, 소대장님.”

“부소대장 연결해 줘.”

“알겠습니다.”

 

대답과 함께 무전기의 레버를 돌려 중대망에서 소대망으로 전환한 레이첼 상병은 무전기의 키를 마리아에게 건넸고, 그것을 받아든 마리아는 최대한 차분함을 유지하려는 목소리로 부소대장을 호출했다.

 

“찰리, 에이블. 에이블 1이라 알리고, 에이블 2는 현재 상황 파악했는지.”

“에이블 2 입감, 현재 산발적인 포격에 노출된 상황입니다.”

“추가상황 발생 시 바로 회신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소대장님.”

 

그렇게 대답하는 부소대장의 목소리는 마리아 이상으로 담담하게 들렸고, 간간히 무전기의 키 너머로 들려오는 폭음이 이쪽과 동일했던 걸 보면 그녀로 하여금 현재 쏟아지고 있는 이 포격이 동일한 포병부대에서 행해지고 있음을 짐작케 했다.

 

“사단‥ 아니, 군단 포병인가.”

“야전군 직할 포병사단일 수도 있습니다.”

 

마리아의 혼잣말에 심드렁한 어조로 답한 병사는 포격이 시작될 때부터 관측창 너머로 바깥을 주시하고 있던 운전수 카일 병장이었다.

 

“지근탄에 2층짜리 적벽돌 건물이 무너진 걸 보면 최소 200밀리 이상입니다.”

“하긴, 그 정도 중포면 군단 포병에서 동원할 만한 건 아니겠네.”

 

마리아는 짧은 시간 내에 그런 분석을 마치고 의견을 내비친 카일의 모습에 감탄하며 그 의견을 긍정했고, 한편으론 지금의 이 포격으로 집을 잃었을 포크빌 주민들의 처지가 눈에 밟혔다.

 

이미 주민 소개가 끝났다곤 하지만, 집이 저런 식으로 무너지면 국가적 손실이니 지역경제에 끼칠 악영향이니 하기 이전에 집주인과 그 가족들이 받을 충격이 적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것도 돌아올 고향 땅의 주인이 바뀌지 않았을 때 해당 될 얘기겠지만.

 

“정문의 2소대가 적 전차와 교전 중이라 합니다!”

 

그러는 동안 무전기를 잡고 있던 레이첼은 중대망을 통해 전달된 내용을 마리아에게 알렸고, 그걸 전해 들은 그녀는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들었는지 자기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중대장님 브리핑하고 달라도 너무 다른데….”

“중대장님이 뭐라셨습니까?”

“적 주력은 보병사단이라 전차 상대할 일은 없을 거라 하셨거든.”

“그것참 믿을만한 얘기네요.”

 

어디에 근거를 두고 그런 판단을 내린 건진 모르겠으나, 그 황당하기 그지없는 브리핑의 내용을 전한 마리아에게 카일은 비아냥거리듯 그리 답했고, 그녀로서도 조금만 냉정하게 생각해 봐도 야전군 직할 포병부대의 엄호를 받는 보병사단이 순수 보병 전력만을 가지고 머리를 들이밀 리가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문제는 그걸 자각한다 해도 이젠 아무런 전술적 이점 없이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는 적과 맞서야 한다는 것.

 

이제 겨우 한 번, 그것도 교과서와도 같은 상황에서 실전을 경험한 마리아로서는 상정 외의 일이었다.

 

“찰리, 에이블. 에이블 1이라 알리고, 에이블 전 차량은 시동을 걸고 교전을 준비하라.”

 

하지만 언제까지나 고민만 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잠시간 생각을 정리하던 마리아는 레이첼에게 무전기의 키를 건네받은 뒤, 호흡을 가다듬고 소대 전 차량에 명령을 내렸다. 

 

얼마 안 가 그녀의 1호 차량을 필두로 소대 전 차량이 트림하는 소리와 함께 경유를 태우는 매캐한 매연을 뱉어내기 시작했고, 그걸 신호로 마리아의 1소대를 엄호하기 위해 마을 동부에 전개된 보병중대의 병사들도 저마다 개인화기와 공용화기의 상태를 점검하는 등 임전태세를 가다듬었다.

 

‘우르릉!’

“소대장님, 들으셨습니까?”

“어, 곧 이쪽으로 오겠네.”

 

그렇게 전투를 준비하느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마리아의 귓바퀴에 디젤엔진 특유의 묵직한 중저음과는 다른 톤의 소음이 날아와 꽂혔다.

 

“여기 베이커 3, 지금 당장 지원 바람! 빨리!”

“으아악! 으아아아악!!!”

 

그리고 그걸 뒤따르듯 무질서하게 중대망에 울려 퍼지는 2소대 병사들의 절규. 

 

무전기의 키 너머에서 병사들의 비명 사이로 들려오는 이글거리는 소리로 미루어 보건데, 2소대의 전차들은 전투 불능을 넘어 전소 중이었고, 그건 곧 해당 전차 승무원들의 죽음을 의미했다. 

 

“레이첼, 그냥 소대망 고정해.”

“알겠습니다.”

 

물론 전투를 앞두고있는 마리아 일행에게 있어 그런 절규는 사기를 깎아 먹는 불안 요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고, 소대장인 그녀로선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며 소대망으로 전환해 다른 소대원들의 동향을 살피는 게 최선이었다.

 

“전방 두 시 방향, 적 전차!”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동안 침묵을 유지하고 있던 포수 레너드 상병은 적 전차와 조우했음을 알려왔고, 그를 뒤따르듯 전방에 위치한 기관총 진지가 불을 뿜기 시작했다.

 

완만하게 각진 차체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두텁게 튀어나온 포탑. 유스토니아 기갑사단의 주력인 43D 중형전차였다. 

 

“쏴!”

‘쿵!’

 

마리아의 명령과 동시에 포탄을 쏟아낸 전차포의 포연이 포탑 내부로 밀려 들어왔고, 화약 지린내 섞인 자욱한 연기를 내보내기 위해 벤틸레이터를 켜고 전차장 큐폴라를 열어젖힌 마리아는 불행히도 방금 발사한 포탄이 적 전차의 포방패에 부딪혀 수직으로 튀어 오르는 걸 목격했다. 

 

“레너드, 포탑 말고 차체를 노려!”

“저도 노력하고 있다고요!”

 

소대장으로서 나름대로 조언을 해보려 했던 마리아였지만, 악에 받힌 대답과 함께 포수 조준경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는 레너드의 모습은 현재 누구보다도 전투에 집중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장전 완료!”

 

어느새 탄약수 석에 선 채로 폐쇄기를 열어젖히고 자기 몸의 절반만 한 철갑탄을 밀어 넣고 있던 레이첼은 상황 보고와 함께 레너드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렸고, 명령을 주저할 이유가 없었던 마리아는 다시금 레너드에게 사격을 지시했다.

 

“쏴!”

‘펑-!’

 

적 전차의 차체 우측에 자리한 기관총 사수석 상단을 빨려 들어가듯 관통한 92밀리 철갑탄은 차체 내부에서 작열하며 유폭을 일으켰고, 그 전차는 승무원들이 탈출할 새도 없이 포탑이 솟구치며 대폭발을 일으켰다.

 

“좋아, 다음은 1시 방향에서 후속해 오는 중전차 2량! 똑같이 차체를 노려!”

“소대장님, 지금 교전 거리 확인하고 계신 거 맞습니까?” 

“빗맞혀도 상관없으니까 일단 쏴!”

 

마리아의 다소 무리한 명령에 대답 대신 하아, 하고 짧게 한숨을 내쉰 레너드는 마지못해 오른손에 쥐고 있던 트리거를 당겨 사격을 재개했고, 평균 교전 거리를 훌쩍 뛰어넘어 발사된 포탄은 적 중전차의 차체를 맞혔음에도 불구하고 맥없이 아래로 고꾸라졌다.

 

“레이첼, 고속철갑탄!”

“장전 끝났습니다!” 

“쏴!”

‘…쿵!’

 

고속철갑탄이라는 이름답게 일반 철갑탄보다 반 박자 늦은 포성과 파공음은 마리아가 비교적 자세히 해당 표적을 관찰할 수 있게 해주었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는 듯 차체 전면 장갑에 주먹만 한 관통흔이 난 걸 확인한 마리아는 쉬지 않고 지시를 이어나갔다.

 

“표적 효력사! 레이첼, 동일 탄종! 레너드도 같은 놈을 노려!”

“알겠습니다!”

 

차체를 관통당한 중전차는 여전히 포탑을 움직이며 이쪽을 조준하고 있었다. 

 

7식 중전차. 장난감 상자를 쌓아놓은 것 같은 단순한 외형이었지만, 두꺼운 장갑과 그 장갑마저 뚫어버릴 정도로 강력한 전차포는 무시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장전 완-”

‘퉁-!’

 

레이첼의 보고를 가로막듯 울려 퍼지는 마찰음은 포방패가 적 전차의 포탄을 튕겨냈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었으나, 전차 내부를 뒤흔드는 충격파까지 막아내지는 못했다.

 

“씨발….”

“표적 침묵!”

 

그 충격에 왼손으로 머리를 감싸쥐며 욕지거리를 내뱉은 마리아는 방금 전의 충격에도 아랑곳 않고 충실하게 직무를 수행한 레너드의 보고에 감탄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것을 표출하기보단 후속하는 전차를 노리라는 손짓을 보이는 게 전부였다.

 

“고속철갑탄 부족!”

“차탄 탄종 피모철갑탄! 카일, 전차 전진!”

“소대장님 제정신이십니까?”

“그럼 여기선 이빨도 안 먹히는데 가만 앉아있어?!”

 

카일의 반론에 일갈하듯 그리 답한 마리아는 전차장 큐폴라에 턱을 괸 채로 한 대 남은 7식 중전차의 동향을 살폈고, 전차가 전진하는 동안 포신이 착실하게 이쪽의 측면을 향하고 있다는 건, 적 전차장도 보통내기는 아니라는 걸 증명했다. 

 

“카일, 직선 말고 1시 방향! 사선으로 움직여!”

“젠장, 알겠다고요.”

 

마리아로서는 최대한 측면을 내보이지 않기위한 조치였으나, 전차장만큼 시야를 확보하지 못한 카일에겐 이쪽에서 먼저 적을 향해 다가간다는 명령 자체가 불합리하게 다가왔다.

 

그런 본인의 의사와는 달리 핸들을 틀고 가속페달을 밟자 마리아의 전차는 우르릉! 하는 굉음과 함께 앞으로 나아갔고, 이젠 쌍안경을 통해 큐폴라 밖으로 얼굴을 내민 적 전차장의 표정을 식별할 수 있는 거리까지 간격을 좁힌 상황이었다.

 

“레너드, 준비하고 있다가 내가 지시하면 바로 당겨.”

“안 그래도 계속 조준 중입니다!”

 

그렇게 누가 먼저 포구에서 불을 뿜는지를 두고 촌각을 다투고 있는 찰나,

 

‘쾅-!’

 

갑작스레 9시 방향에서 날아든 포탄 한 발이 7식 중전차의 옆구리에 작렬했다.

 

그 포탄은 얼마 안 가 측면 탄약고를 유폭시켰고, 적 전차는 불기둥이 치솟으며 포탑과 함께 승무원이었던 것들의 육편을 공중에 흩뿌렸다.

 

“소대장님, 괜찮으십니까?”

“잭슨, 네 담당은 이쪽이 아닐텐데.”

 

생각지도 못했던 구원에 형식적인 대답을 하는 와중에도 입가에 걸린 옅은 미소를 지우지 않은 마리아는 그대로 잭슨의 전차를 한 번 훑어봤다. 

 

차체 전면, 그것도 운전수 관측창 근처에 집중적으로 난 도탄흔들은 잭슨의 2호 차량도 불과 몇 분 전까지 치열한 전투를 벌였음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종탑쪽은 경전차들 뿐이라 금방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무사해서 다행-”

“당소 에이블 3! 에이블 4가 당했다! 신속히 증원 바람!”

 

하지만 그렇게 한 숨 돌릴 새도 없이 전황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고, 사실상 부소대장의 사망을 알리는 사이먼의 보고에 간담이 서늘해짐을 느낀 마리아는 곧바로 무전기의 키를 잡고 명령을 내렸다.

 

“에이블 2는 지금 당장 에이블 3과 합류하라.”

“하지만 소대장님-.”

“됐으니까 빨리 이동해!”

“…알겠습니다.”

 

마리아의 강압적인 지시에 마지못해 대답한 잭슨은 그 즉시 전차를 돌려 사이먼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마을 동문으로 향했다. 

 

“찰리 에이블, 에이블 1이라 알리고, 에이블 3은 현재 상황 보고 바람.”

“에이블 3 입감, 현재 전방 적 중전차, 보병, 돌격포 가릴 것 없이 다수 육박 중! 이쪽이 적 주력인 것 같습니다!”

 

멀어져 가는 2호 차량의 뒷모습을 쳐다보는 것도 잠시, 마을 동문의 상황을 파악한 마리아는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애써 무시하며 무전기의 레버를 중대망 쪽으로 돌렸다. 

 

“당소 에이블 1이라 알리고, 찰리 리더 응답 바람.”

“찰리 리더 입감, 무슨 일인가, 에이블 1”

“현재 로미오-델타 5237 포인트에 적 주력으로 추정되는 부대 접근중. 증원 바랍니다.”

“각하한다. 이쪽도 2소대의 공백을 메우고 있는 게 고작이다.”

 

당연히 도와줄 것을 기대하고 보낸 무전이었지만, 중대장은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일언지하에 마리아의 지원 요청을 무시했다.

 

그렇다면 이제 마리아의 1소대에게 남은 선택지는 단 하나.

 

“계속해서 에이블 1이라 알리고, 로미오-델타 8756 포인트까지 후퇴 요청합니다.”

“이쪽도 중과부적이다. 후퇴는 불허한다. 반복한다. 후퇴는 불허한다.”

 

그 하나 남은 선택지마저 부정당했을 때 마리아의 머리를 지배한 건 끝없는 절망감과 분노였다. 

 

애당초 적 전력을 보병 위주의 소부대 운운하며 근거 없는 낙관론을 펼쳤던 게 누구인가. 전투가 시작된 지 이제 겨우 한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중대 전력의 3할이 증발했고, 같이 주둔 중이던 보병대대는 연대 예비전력까지 끌어와서 겨우 전선을 형태만 유지하고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야, 이 개새끼야! 이러다 우리 애들 다 죽는다고!”

“명령이다, 마리아 세모벤테 소위! 귀관은 당 거점을 끝까지 사수하라!”

 

마리아의 일갈을 똑같은 수준으로 받아친 중대장은 일방적으로 무전을 끊었으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학사장교 소집교육 기간은 물론 지난 국지전에서도 배우지 못한 마리아는 그야말로 패닉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당소 에이블 2! 피탄, 피탄!”

“적이 방어선을 넘고 있습니다!”

 

아비규환이다. 무전기의 채널을 소대망으로 돌려봐도 들려오는 건 소대원들의 비명과 이글거리는 화마의 울부짖는 소리.

 

전차장 석에 틀어박혀 몸을 웅크린 채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은 마리아는 호흡을 가다듬으려 했지만, 과호흡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게 고작이었다. 

 

“소대장님, 명령을 내려주세요!”

“3시 방향 적 전차 출현!”

 

정신을 붙잡고 있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단계까지 몰린 마리아는 귓가를 울리는 1호차량 승무원들의 말소리마저 제대로 전해들을 수 없었고, 이윽고 처음 적의 포격이 진행될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굉음이 지면을 울리기 시작했다.

 

“소대장-”

 

마리아를 흔들어 깨우려는 레이첼의 손길이 그녀를 향했지만, 그 손길이 끝까지 닿는 일은 없었다. 

 

마치 벼락이 떨어지는 듯한 폭음이 마리아의 1호 차량 옆에서 울려 퍼졌고, 미처 닫지 못한 큐폴라의 해치 너머로 튕겨져 나간 마리아는 잠깐의 부유감과 함께 머리에 강한 충격을 받는 것을 끝으로 흐려져 가는 정신의 끈을 놓아버렸다.

 

 

 

4.

 

“정신 차렸을 땐 야전병원의 침대 위였어.”

“그럼 그때 그 포격은….”

“그거야 나도 모르지. …확실한 건 포크빌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은 나를 포함해도 고작 열다섯 명뿐이었어.”

“……”

 

그런 끔찍한 사실을 마치 남의 일 얘기하듯 담담히 풀어내는 소령님을 눈앞에 두고, 나는 무어라 말을 붙여야 할지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틸먼 그 양반은 처음부터 우리 군단을 소모품으로 써먹을 작정이었던 게지.”

 

침묵하고 있는 나를 앞에 두고 소령님은 그렇게 그 일을 술회했다.

 

소령님의 그 말씀이 꼭 틀리지만도 않은 것이, 전후 연구에 따르면 제비꽃 작전 당시 동부 방면군 최전선에서 소모되던 전위부대들은 도합 10개 사단을 훌쩍 넘었었다.

 

그런 상황에서 틸먼 상급대장은 비교적 전력을 그대로 온존하고 있었다곤 하나, 그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의 사단을 두고 있는 3군단에게 전 전선에 걸쳐 방위를 맡겼었던 거고.

 

아무리 제공권과 제해권을 아군이 쥐고 있었다고 해도 그게 두 배 넘게 차이 나는 수적 열세를 극복할 만한 요소는 아니었다.

 

그러니 당연히 알몬드 중장이 지휘하던 3군단은 작전 실행 이후, 단 1주 만에 누적된 손실을 버티지 못하고 부대를 해체할 수밖에 없었겠지.

 

“참 우스운 거야. 살아남은 자의 영광이라는 놈이.”

 

훈장 너머에 자리한 액자를 쓸어내리며 말을 덧붙인 소령님의 얼굴엔 애수 어린 미소가 걸려있었다.

 

어떻게 웃을 수 있는 걸까. 처음부터 끝까지 죽으라는 걸 강요받았던 게 그 전투였는데 말이다. 

 

“억울하지 않으신 겁니까. 그런 일을 당하신 것이.”

“별 수 있겠나. 명령에 죽고 사는 게 군인인데.”

 

아니, 웃는 게 아니었다. 이젠 어쩔 수 없는 지난 날의 재앙. 당연히 화도 나고 억울함을 토로하고 싶으셨겠지만, 지금껏 그런 얘기를 들어주려 한 사람이 없었던 거였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영웅 이야기를 듣고싶어 한다.

 

에이스 파일럿 누구가 적기 몇 대를 격추시켰네, 저격수 누구가 적병 몇 명을 사살시켰네 하는 이야기에 주목하고 열광한다.

 

정작 가장 중요한 때에 시간을 벌기 위해 불가능한 일을 수행하다 산화한 수천, 수만 명의 병사들은 그저 전몰자 내지는 참전자로 뭉뚱그려져 잊혀진다.

 

그런 대우가 이젠 익숙해지신 거다.

 

“그 양반들은 그냥 자기 일을 한 거야. 나와 소대원들은 우리 일을 한 거고.”

 

담담하게 그리 말하는 소령님의 입가가 파르르 떨려왔다.

 

투명지 위에 그은 선 하나로 헤아릴 수 없는 수의 병사들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던 그 때. 

 

말씀은 그렇게 하셨지만 상관과 지도부의 안이했던 판단으로 치부하고 넘기기엔 너무 많은 수의 사람들이 죽어나갔으니 학을 떼실 만도 했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어.”

 

그러니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 않기로 했다.

 

이 이상 캐물어 봤자 주제넘은 소리에 지나지 않을 테고, 소령님이 지금껏 어떤 일을 겪고 어떤 자세로 살아오셨는지는 이미 충분히 들었으니 말이다.

 

정말로, 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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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