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여러분은 황금박쥐의 날개가 됩니다.”


태별이 뚜벅뚜벅 걸으면서 말했다.


“여러분이 오늘부터 세우는 모든 격추기록은 황금박쥐의 기록으로 전속될 것입니다. 모든 훈장과 기사도 황금박쥐를 조명할 것입니다.”


네 명의 파일럿이 태별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 있었다. 태별이 쓸쓸한 눈빛으로 말했다.


“지금 한국의 백성들에게는 기적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기적을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역사에 기록되지 못할 것이고, 황금박쥐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파일럿 중 하나로 남을 것입니다.”


“우리가 왜 그래야 합니까?”


하미진이 짜증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저희가 저희 공적을 단지 그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몰아줘야 하는 것입니까?”


“당신들은 기사에 나지 않았고, 황금박쥐는 이미 기사에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태별이 뒷짐을 지며 다시 말했다.


“영웅은 여럿인 것보다 하나인 게 좋습니다.”


그러자 권성이 질문했다.


“거절한다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뒷문이 우지끈하고 열리더니, 구둣발 소리와 함께 김민현이 뚜벅뚜벅 걸어들어왔다. 그를 본 파일럿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경례했고, 태별이 그의 앞에 조아렸다.


김민현이 권성을 보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극락왕생하는 거지.”


“하지만 대통령 각하!”


하미진이 항의했다.


“이런 일이 어디 있사옵니까? 소관들이 어찌하여 그 여자를 영웅으로 만들어야 한단 말입니까?”


“첫째. 싫다면 과인이 그대를 죽일 것이기 때문이네.”


김민현의 단도직입적이고 직설적인 말에 하미진의 말문이 막혔다. 김민현이 덧붙였다.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이유로, 둘째, 적기 몇 대 더 격추시키는 것보다 영웅을 만들어 민심을 다독이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네.”


권성이 조아리면서 대답했다.


“대통령 각하, 각하의 깊고도 깊으신 뜻은 소관들이 다 헤아릴 수가 없어 실로 따를 수밖에 없사오나, 이는 실로 불합리하고도 부정한 일이옵니다. 차라리 전공을 부풀려 기록하심이 옳은 줄로 아뢰옵니다.”


“전공을 부풀리면 작전 전체에 타격이 온다.”


김민현이 눈을 찌푸렸다.


“전체적인 적에 대한 피해 규모는 정확히 기입하되, 그것을 낸 사람의 이름만 바꿀 수밖에 없다는 뜻일세. 자네들 네 명만 희생하면 모두가 편해질 수 있네.”


그러자 정찬욱이 비아냥거리듯이 대답했다.


“각하께서 편해지는 것이 아니고요?”


권성, 하미진, 유결훈이 일제히 새파랗게 질렸다. 그리고 김민현의 눈빛이 차갑게 정찬욱을 향했다. 권성이 급히 엎드려 조아리며 말했다.


“각하, 저 친구가 뒷생각을 못 하는 편이옵니다. 부디 너른 아량으로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틀린 말이 아니다.”


그가 차갑게 웃었다.


“과인이 편해지겠지.”


파일럿들이 덜덜 떨었다. 김민현이 눈을 찌푸리면서 뒷짐을 지고 말했다.


“과인은 만백성의 투표를 통하여 선출된 인물이다. 백성의 뜻에 따라 이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따라서 과인은 곧 국가다. 과인이 곧 이 나라이니라.”


김민현이 천천히 돌아서면서 말했다.


“따라서 과인이 편해지는 것은 곧 나라가 편해지는 것이고, 곧 백성이 편해지는 것이다. 그것을 기억해라.”


태별이 그 독재자의 뒤통수를 따갑게 쏘아보았다. 김민현이 천천히 걸어나가며 한마디 더 흘렸다.


“과인은 백성의 뜻을 받은 사람이다.”


누가 뭐라 할 수 있으랴. 이제까지 단 한 번도 공화정에서 살아 본 적 없는 인물이, 대통령을 선거로 뽑힌 임금으로 이해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과인의 뜻을 받들지 않는다면, 그대들을 기다릴 것은 교수대뿐이다. 황금박쥐를 영웅으로 만들어라.”


태별이 한숨을 쉬고 한마디 했다.


“본디 영웅이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인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