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모두가 밝은 미래를 꿈꿨다. 지금이야 상상하기 어려울 테지만, 이때 광화문 하늘을 수놓은 폭죽과 세종로 한복판에서 우주시계추를 둘러싸고 펼쳐진 군무란 새천년에 대한 모든 이의 기대이자 삼 년 전 외환위기라는 혹한을 이겨낸 후 처음 맞이하는 따뜻한 순풍이었다.

새천년이 한 발 가까이 오자 광화문과 세종로 일대는 조명이 꺼지며 어두워졌다. 세종로를 메운 군중의 함성도 잦아들자 잔잔한 반주가 울려 퍼지며 성악가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카운트다운 직전, 지난 천년과 작별하기 위하여 마련된 행사였다.


하얀 입김을 불며 감상에 젖은 인파 속엔 곧 다섯 살을 앞둔 동현이 아버지 목말을 타고 카운트다운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린이라 피곤하여 부모에게 떼를 쓸 법도 했지만,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동현의 눈빛은 반짝거렸다. 오늘이 아니라면 다시 볼 수 없는 순간이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노래가 끝나자 가만히 있던 우주시계추가 진자운동하는 것처럼 좌우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대중 대통령께서 터치 버튼을 누르시겠습니다."


사회자가 안내하자 김대중 대통령은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과 김한길 정책기획수석비서관이랑 짤막한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의 앞에 놓인 버튼을 누른다. 이내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어 우주시계추 상단에 숫자가 보이자 이어령 새천년준비위원장은 흡족하며 김대중 대통령에게 우주시계추를 가리킨다. 그 사이에 사회자의 목소리가 장중에 울려 퍼진다.


"새천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다 함께 외치겠습니다."


잠깐 잠잠했던 세종로가 금방 군중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사회자가 십을 외치면 30만 명에 가까운 인파가 따라 했다. 우주시계추에 표시된 숫자가 낮아질수록 사회자와 군중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곧 정각이 되어 우주시계추가 새로운 시대를 알리자 사람들은 와아 소리를 질렀다. 이에 어울려 보신각에서도 타종행사를 시작했는지 사람의 외침과 공연의 노랫소리에 묻혀 선명하게 들리지 않았지만, 종소리가 은은히 퍼졌다. 


"아빠, 종소리 들린다!"


동현은 자그마한 종소리가 귓가에 맴돌자 아버지에게 말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동현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축하공연만 감상했다. 그는 묵묵부답한 아버지를 보며 처음에는 자기가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종소리가 분명해지자 기이하게 여겨 어머니를 불렀다. 하지만 어머니도 미동조차 없이 전방만 주시할 뿐이었다. 동현은 천천히 위화감에 휩싸였다. 더군다나 외침이나 공연의 노랫소리가 더 들리지 않아 이질감을 더했다. 그는 덜컥 겁이 나 어머니를 찾았으나 이미 시야가 흐려져 어머니도 불분명한 형태로 보일 뿐이었다. 이윽고 눈앞을 노이즈가 가리더니 얼마 가지 않아 암전되었다. 그제서 동현은 모든 것이 꿈이란 걸 깨달았다. 


동현이 눈을 떴을 땐 이미 해가 중천이었다. 여느 때라면 지각이라 헐레벌떡 일어났을 테지만, 종강을 한터라 침대에서 늦게까지 뒤척거려도 상관없었다. 그리고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켰다. 그는 페이스북이나 유튜브를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렇다고 자신이 셀러브리티라 소통한다며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건 아니다. 동현에게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란 어디까지나 어린 시절 부모님이 아침마다 보던 뉴스처럼 세상의 소식을 전하는 매체에 불과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페이스북과 유튜브를 차지하는 건 대부분 영양가 없는 유머 게시물이란 것이다. 현 정국과 관련된 글도 종종 올라오긴 했지만, 동현의 관심 외였기 때문에 방역패스 의무화 같은 굵직한 사안을 빼면 넘어가 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나 어린 시절 추억 같은 것이 꿈으로 몇 번 나타난 후에는 변화가 조금 생겼다. 비록 꿈을 꾼 날로 한정되나 자그마한 단서라도 찾기 위해 네이버 같은 포털사이트나 나무위키에 검색한다는 거다. 


동현은 한 번 찾고자 하면 반드시 찾아야 직성이 풀렸다. 하지만 꿈속 내용을 찾는 덴 번번이 실패했다. 네이버의 검색엔진은 과거와 달리 광고용으로 전락하여 제대로 된 정보를 찾기 어려웠고 나무위키에도 꿈과 관련된 문서가 존재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무위키는 적절히 시간도 때울 수 있던 터라 하던 일을 두고 다른 길로 빠지기에 십상이었다. 그래서 부모님에게 물어보기도 하였으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며 시원찮은 대답이 전부였고 내년에 졸업하니 일자리나 알아보란 잔소리는 덤이었다. 


오늘도 꿈에 대한 단서를 찾는 데 큰 수확은 없었다. 그는 일찌감치 조사를 포기하고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기 위해 책상에 앉는다. 한글을 키고 몇 자 끄적였을까, 텅 빈 자격증과 수상경력을 보자니 자괴감이 들어 작성을 그만둔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평범한 사회초년생이라면 자신과 같을 것이라 스스로를 위안한다.


이게 공백제외 1700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