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대로 머릿속에 정리해 놓은 분량은 길지만, 간단히 축약해보자면
보수 - 약육강식의 논리를 법으로 합법화 하려고 함.(찌질이는 자연히 도태되어야 하고, 대기업과 재벌이 돈줄을 더 공고하게 쥘수있게)
진보 - 평등의 논리를 법제화 하려고 함. (그렇기때문에 극단으로 치달으면 자연히 공산주의니 하는 논란이 일게 됨)
보수의 가치는 좋게 말하면 자유이고, 진보의 가치는 좋게 말해 평등인데..
대한민국은 약간 다름
한국 보수는 대기업 재벌 옹호 + 안보팔이에 치중되어 있는 반면
한국 진보는 대기업 재벌 견제 + 평화팔이에 치중되어 있음. 진보와 보수로 나눌게 아니라고 봄
보수가 역설하는 이 자유란게 참 웃긴데, 자유는 기본적으로 구성원들간에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실현될 수 있는 가치임.
자연상태 방임만으로 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 개인은 피라미드 꼭대기의 극히 일부지.
기업들이 노조를 싫어하는 이유를 생각해봐도 간단한게 개개인이 파업을 하는 손실은 기업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지만, 해고라는 재앙은 행사하기 매애우 쉬움.
근데 노조라는 형태로 나서서 단 하루 파업해도 그 달 기업의 생산량이 3ㅡ5퍼센트는 깎이는 거임. 그렇다고 전원 해고하긴 쉽진 않지. 결국 임금은 기본 생산단가와 최대이익 사이에서 분배비율이 정해지는건데 행사할 수 있는 리스크강요가 다르니 개개인 교섭은 기업이 개인에 대해 해고라는 경제적 사망선고 옵션을 일방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반면 노조와 기업의 교섭은 각 집단간 힘의 길항력도 반영하여 임금을 책정하게 하는 차이가 있음.
사람이던 기업이던 최고로망은 레드오션에서 아등바등 안하고 블루오션에서 몇배의 프리미엄으로 자기 이익을 챙기는 거임.
근데 권력의 균형붕괴는 교섭자에게 감당할 수 없는 리스크의 일방적인 강요로 굴복시켜 이익의 흐름을 일방이 취할수 있게 만듦. 힘의 차이로 창조한 블루오션이지.
한마디로 세련된 날강도짓이 가능하단 거임.
전근대 대영주들이 군사력을 휘둘러 생명의 위협으로 이익을 약자들에게서 끌어왔다면 현대 권력은 압도적인 시장지배력을 휘둘러 1차, 2차, 3차 벤더들에게 경제적 위협을 느끼게 하는 게 이익극대화에 가장 손쉬운 길임. 해서 시장의 권력도 자연적인 상태라면 항상 독과점적인 형태를 띄지. 분야를 막론하고, 약육강식에서의 생존전략은 연합, 복속으로 자기의 몸집을 키우는 거니까.
경제학 원론만 봐도 자유무역체제 최대의 효용이 발생하려면 완전경쟁시장임이 전제되고, 독과점체제는 시장질서를 왜곡하기 쉽다 되어있는데, 입발린 가짜보수들은 이런 기초적인 상식도 없이 그냥 두면 잘 된데 ㅋㅋㅋㅋ
자기 스폰서가 잘되는 거지 무슨 ㅋㅋㅋㅋ
진보에서 말하는 평등이란 것도 결국 대부분은 자기 이익의 극대화방안이 평등이니까 외치는 거라 봄. 실제로 평등이라는 윤리적 가치를 숭앙하는 게 아니라.
누구는 날때부터 아무런 노력도 없이 금권을 쥐고 누구는 생계유지도 치열하게 해야하는 이 불합리함을 성토하는 사람치고, 국가간 국민간 불평등도 같이 외치는 사람 본적이 없음.
선진국의 국민은 날때부터 우수한 인프라를 향유하고, 후진국 국민은 부조리한 무질서에 내던져지는데 정말로 평등이란 가치를 믿는 다면 난민에 대한 무제한 입국, 이민허가를 내줘야지. 이 일부만이 진짜진보고 나머지는 입만 진보임.
금수저가 자기가 일군 재산을 환원안하고 솜털난 자식에게 배타적으로 물려주는 것과 대다수 시민들이 외국인, 난민 입국으로 물흐리는 걸 경기일으키는 차이가 뭐야?
나는 그 차이를 알 수 없음.
의견정리
보수와 진보의 차이는 국가라는 국민을 위해 기능하는 최상위권력의 개입을 부정하는가 긍정하는가이다.
보수는 현재 십분 누리고 있는 전횡기득권 방어 논리에 유리한, 무제한적 자유를 추구하고
진보는 대다수 구성원의 이익확보에 유리하게 금, 자신을 대리하는 최상위 권력의 견제기능 행사를 희망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윤리적 측면에서 질적 차이는 없다.
만약 우리나라가 북유럽같은 보편복지국가가 된다면, 그건 결코 불합리에 대한 정의의 승리같은 건 아님.
주권재민에 대한 적극적 주인의식을 바탕으로 권력의 축이 시민으로 이동했을 뿐인 사건인 것. 나는 그래도 이게 훨씬 긍정적이라 봄.
생물학자가 생태계 먹이사슬의 종 다양성을 염려하는 이유는, 멸종하는 생물에 대한 연민따위가 아님. 단순화된 먹이사슬은 조그마한 변화에도 전체가 교란, 붕괴될 수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지.
마찬가지로 다원화되지 못한 거대권력의 과점적 구조는 왜곡이 발생할 확률이 높고 사회 전체의 효율이 떨어짐. 사람은 모두 평등해야한다는 꽃밭논리가 아니더라도 유인이 충분함.
플레이어가 다자화된 르네상스 유럽과 플레이어가 하나뿐이었던 청나라의 차이를 표상하면 이해가 쉬울듯.
자기 모험의 이익이 대부분 상위권력이 아닌 자기에게 돌아오고 그런 모험을 해도 사회적으로 죽지 않는다는 사회안전망에 대한 신뢰가 있으면 다음 세대는 전인미답의 혁신을 모색하는 빈도가 극적으로 늘어날 것이라 봄.
곧 기술적 격변기가 다가올 시기엔, 100명이 실패해도 1명이 성공하면 사회 전체는 이익임. 중앙집권화된 소수 주도 권력구조는 20세기엔 후발주자에게 규모확보, 목표달성을 빠르게 해내게 만드는 일리있는 형태였음.
그러나 누구도 정답을 제시하지 못하는 미래 기술선도는 결국 개미들의 참신한 시도횟수와 성공률이 비례한다고 봄.
이제 21세기로에 적합한 권력구조의 전환이 필요하다 진단함.
근데 생각해보면 보수와 진보의 지향점이 주제와 이슈에 따라 서로 교차한단 말이지... 예를들어 보수=자유, 진보=평등 이라고 말 하지만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와 같은 이슈는 진보측에서 선호하지. 그리고 보수=개인, 진보=공동체 라는 도식으로 봐도 대기업을 국가 세금으로 지원하는걸 보수측에서는 '국가 공동체를 위해'란 논리로 지지하잖아. 옛날엔 보수와 진보가 분리될 수 없는 굳건한 흑과 백이라 생각했는데, 요즘엔 보수와 진보는 그냥 무수한 스펙트럼 위에 누군가가 임의로 붙인 이름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보수는 옛날의 전통을 중시하고 잘못된 관행도 점진적으로 바꾸거나 수정하잔거고
진보는 현재의 잘못된 체제를 바로잡고 그걸 급진적으로라도 밀어붙여 사회변혁을 꿈꾸자
이걸 특징적으로 볼수있는데
우리나라가 자유민주주의 기치로 건국이 됬지만
민주주의가 잘 올바르게 돌아가는지는 글쎄?라고 말해야할듯 합니다
왜냐하면 서양에선 민주주의를 곧 민심=천심으로 해서 무조건 표심으로만 밀어붙여서 하려는
그런 부분은 어느정도 부정하고 새로운 민주주의로 가기위해서 변화가 되어가는 과정들로 가고 있어서
우리나라는 솔직히 정치쪽에선 아직 과거 남북분단이후 좌우익으로 나뉘던 때에서 의식들이
크게 못벗어난거같다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