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가 특정 자본에 종속 의탁하고, 대신 자본은 국가와 협업해 생활을 책임진다'는, 산업혁명식 근로계약 형태가 얼마나 오래 갈까?


1980년대 형성된 586의 노동인식(정규직, 블루칼라, 노동조합의 틀 안에 있는 노동인식)이 지금도 유효할까?


더 적은 비용, 더 적은 노동으로 동일한 양의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것이 목적이 된 디지털 시대에 산업시대의 인재교육은 고용효과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까?


당장은 코로나 사태 대응과 불황 탈출에 온 힘을 쏟아야 할 때이기 때문에 국가재정의 역할이 중요한 때이고, 재정준칙, 기본소득, 고용보험 같이 장기적인 통찰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의제에 재정의 역할이 발목을 잡혀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에는 새로운 산업구조에 맞게 제도의 현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새로운 취업 형태를 포괄하며, 다수의 노동자를 위한 새로운 노동 기본법을 만들어야 하고, 기본소득과 전국민고용보험도 이 문제와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뿌리부터 변화하는 노동과 복지의 패러다임에 대응해야 할 것입니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자동화가 코로나 사태로 생각보다 훨씬 빨라지고 있고, 앞으로 노동시장 변화를 예측해 보았을 때 불확실성 제거를 위한 추가 자동화는 불가피합니다. 이런 일터의 변화가 고용계약 형태 일반의 변화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죠. 온라인 거래가 오프라인 거래 규모를 넘은지는 꽤 됐습니다만, 앞으로 디지털 기술이 폭발적으로 확대되면 '플랫폼 경제'가 확고한 대세로 자리잡을 것입니다. 이에 따라 풀타임 고용에서 파트타임 고용으로, 플랫폼에서 계약을 맺고 일하는 플랫폼 노동 및 긱 노동(Gig; 원하는 일을 원하는 시간에 하는 '개인 사업자' 형태의 노동자)으로 고용 형태는 점점 변화해 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유노동자들은 다양한 사회보험으로부터 배제되어 있고, 고용계약을 맺지 않고 일하는 데 대한 사회적 인정체계가 없습니다. 여기에 플랫폼 기업의 독점화가 가속되면서 소득의 불균형과 불안정은 필연적입니다. 따라서 자유노동자가 늘어난다면, 정책의 기조를 달리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고용안정을 기조로 삼아 안정적인 일자리를 늘리려는 정부 정책은, 소득이 불안정한 새로운 노동자들의 생활 안정을 기조로 하여 전면적으로 방향을 틀어야 합니다.


또 안정적 일자리를 가진 사람의 숫자가 줄어들수록, 고용 안정 대책의 대상도 줄어듭니다. 일감이 있을 때만 일하는 자유노동 종사자들은 상당 부분 고용 안정 대책과 관련이 없기 때문이죠. 마찬가지 맥락에서, 기업을 통해 전달하는 복지는 이미 안정적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에게만 전달되므로 자유노동자가 늘어나는 사회에서는 불평등을 낳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졸속으로 논의된 기본소득 제도와 전국민고용보험이 재정건전성을 해친다는 우려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우리 세대에서 빚을 내 마련한 재정을 낭비한다면 미래 혹은 다음 세대의 조세부담을 증가시키거나, 향후 정부 서비스 공급에 차질을 초래하는 후과가 너무도 크기 때문입니다. 또 일률적인 기본소득만으로는 자유노동 종사자들의 삶을 안정시킬 수 없을 것이며, 현대 사회에서 주거, 교통, 의료, 교육 등 다양한 서비스를 공급받지 않고서 인간답게 살기 어려운 것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큰 정부를 피할 수(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시대일지 모릅니다. 정부와 슈퍼여당이 이걸 졸속으로 밀어붙이는 순간 또 다른 적폐가 시작되는 것이고, 야당도 언제까지고 이 어젠다를 회피하기는 어렵습니다. 정치권이 기본소득과 함께 육아·학자금·주거·의료 등 사회서비스를 종합적으로 재설계하는 것을 본격적으로 검토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현명하고 책임 있는 국가 재정의 역할을 구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서 역시 핵심은 정치입니다. 여야 따로 없이, 같이 고민해야 할 공동의 과제로 생각하길 바랍니다. 제도의 핵심 경쟁력은 실용성입니다. 야당도 얼마나 국민들이 빠르게 현실에 적용해 쓸 수 있는가, 얼마나 지속가능한가, 재원조달이 얼마나 원활하게 가능한가 등을 포인트로 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주자는 건 옳지 않다'는 입장을 뚜렷이 하되, 사회안전망에서 누락되는 국민들을 위해 맞춤형으로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하이브리드’ 방식의 접근을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