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한계령 전투에서

전 소대원은 함성을 지르며 일제히 고지를 향해 돌격을 감행했다. 고지에는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둥글게 파 놓은 호 속에는 다리를 쇠사슬로 한데 묶인 7-8구의 시체가 있었고 그 뒤쪽에는 개인호 하나가 있었다. 그 호에는 도망가지 못하도록 독전하던 지휘관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인정이 많은 우리 분대장은 묶은 쇠사슬을 풀어주려 애를 썼지만 쉽게 풀리지 않자 개머리판으로 이음쇠를 끊어 버리고 반듯이 눞힌 다음 담요를 덮어 주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나이 어린 소년들로 얼마나 쇠사슬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쳤는지 발목이 벗겨지고 피투성이가 되어 목불인견이었다. 나는 그 처참한 모습을 보고 아무리 총부리를 맞댄 적이라 할지라도 이마가 찌푸려지고 애처로운 생각이 들어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부하를 쇠사슬에 묶어놓은 채 도망 간 그들의 잔악성에 치를 떨면서 한계령을 향해 진격했다.    <호국용사 6.25 참전 전투수기 제 1집>의 수도사단 1연대 1대대 수색대 방계룡  


  B. 원산 전투에서

"와아"하고 고지로 뛰어 올라가는 전우들의 발 밑에는 적의 시체와 버려진 총기가 나동당이쳐 발길에 채였다. 그런데 적의 시체를 보니 20세기 전사상에 이렇게 악랄하고 잔인한 독전법이 또 있으랴 싶었다. 죽은 시체의 손목이 나팔통 같이 둥그런 것이 달린 체코제 기관총에 철사로 꽁꽁 동여매져 있지 않은가.

무거운 기관총을 들고 도망도 못치고 죽을 때까지 사격하라고 이렇게 묶어 놓았으니 죽어가면서도 그들은 기관총 방아쇠를 당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잔인하고 악랄한 지휘관이 또 어디 있겠는가. 죽으면서 고기값이나 하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중대장은 어이가 없어 "허"하면서 "우리 중대가 아무리 공격을 해도 악착같이 기관총을 쏴 대더니 이렇게 묶여서 그랳구먼"하며 기가 막힌 모양이다. 세익스피어의 펜으로도 이 죽은 적군 병사의 심리를 그려내지 못 할 것 같았다.   <匠人이 버린 돌들>의 26연대 소총수 최원진


  C. 인제전투에서

선임하사의 말에 의하면 북괴군은 전세가 불리하거나 후퇴를 할 때는 반드시 주력부대가 후퇴하여 다음 반격진지를 구축할 때까지 아군의 공격을 둔화시키기 위해서 사수병을 남겨 두는데 도주하지 못하도록 쇠사슬로 발목을 묶어 놓는다는 것이다.    <호국용사 6.25 참전 전투수기 제 1집>의 35연대 박격포 사수 이복우


   D. 홍천 인근 전투에서

산비탈에서 전신을 노출시킨 채 사격을 하고 있을 때 위에서 우리 소대원이 사람을 모포에 싸서 미끄럼을 태우며 끌어내리고 있었다. 가까이 가 보니 적탄에 맞아 후송되고 있는 사람은 바로 우리 소대장이었다. 얼굴빛이 파래지고 입에는 거품을 내 뿜으며 이미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이 소대장도 부임한 지 20일 만에 전사하고 말았다.

교전은 불과 10분 만에 끝났다. 적 고지에서 사격이 멎었을 때 중대장이 다시 명령했다. "진격해라! 진격해!" 우리들은 사격을 받지 않는 상태에서 우글우글 고지로 밀고 올라 갓다. 그 때 그 고지에서 보게 된 참혹한 광경이 우리를 격분시켰다.

정상에 죽어있는 적군의 시체는 단 2구였다. 한명은 경기관총을, 다른 한명은 우리 BAR같은 자동화기를 안고 죽어 있었다. 꽤 굵은 쇠사슬로 발이 묶인 채 죽어있는 시체는 처참하고 가련했다. 무슨 중죄를 범했다고 이렇게 당해야 하는지, 다만 죄가 있다면 졸병이라는 죄뿐일텐데...... 우리들은 이구동성으로 저들의 지휘관을 질타했다. 저들이 도주한 눈 위의 발자국으로 보면 불과 30여명 밖에 안 되는 것 같은데 이 두명이 그들의 희생물이 된 것이다.

"동무들은 조국과 수령님을 위해 여기서 싸우다 죽기요. 동무들은 영웅이오" 이렇게 말했을까? 설마 이렇게까지는 말을 못했을 것이고 저들이 이 사람들을 묶으며 뭐라고 말했을지가 여간 궁금하지 않았다. 부하를 이렇게 죽여도 되는지, 이에 대한 군법상 규정은 어떠한지 우리 졸병들은 모른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원칙을 무시한 살인행위라고 믿고 싶다. 이것은 쇠사슬로 발을 묶었기 때문에 명령이 아니고 폭행이다. 사람이 천대받고 억울함을 당하는 것은 전쟁중인 군대라는 특정지역에서는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죄도 없이 처형당하는 것은 묵과할 수 없는 범죄행위라고 본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사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고 강병의 조건이다. 내가 살겠다고 부하를 죽음의 구덩이로 처넣는 지휘관은 자격미달은 물론이고 나라까지 망칠 수 있다. 이 일은 인민군 군관이 자기 생명을 구하기 위해 부하를 결박해서 아군을 저지케한 파렴치한 사건이었다. 이런 군관들이 어떻게 자기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며 이렇게 죽음을 두려워 하는 자가 어떻게 용감할 수 있고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을 지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인민군 제 10사단 잔당들이었다. 이것으로 태백산 일대의 적은 완전히 괴멸되었다.

나는 기원한다. 우리 국군이 앞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그런 상황과 맞닥뜨리면 전원 옥쇄로 끝낼 수 있는 군인이 되기를......<살아남은 자의 일기>에서 28연대 소총수 이종운



  한국전쟁에 관한 책들을 읽다보면 공간사이던 개인적 수기이던지 간에 위와 같은 사례가 참 많이 나오는데 이런 경우를 당하여서는 장교들 보다는 병사들이 더 격분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50년 7월 진천전투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하여( 그 이전에는 일단 확보한 고지를 다시 빼았길 일이 거의 없었으니까) 중후반까지 계속 이런 잔인한 모습을 많이 보여 주는데 중공군만 해도 이렇게 기관총 사수를 쇠사슬로 묶어놓고 도망치는 독전법을 사용한 경우를 아직까지는 제가 한 번도 본 적이 없기에 이것이 북한군만의 전술인지 아니면 소련군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궁금합니다.


출처: https://m.dcinside.com/board/war/35878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