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가 자신의 손가락/허벅지를 잘라 병든 부모에게 먹이면 하늘이 도와 병이 낫는다는, 식인효도 미신이 천 년에 걸쳐 행해진 곳이 한반도였음


손가락을 잘라먹이면 단지, 허벅지를 잘라먹이면 할고라고 하는데


당장 기록에 남겨진 한국사 최초의 효자인 향덕부터가 자신의 허벅지로 식인효도를 했음


기록에 남겨진 한국사 최초의 만두도 고려시대 위초라는 사람이 자기 고기로 만든 식인효도 사람고기 만두였음


조선시대가 되면 식인효도의 위상은 조선유교의 한 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높아짐


실제로 세좆마왕의 자칭 애민정신이 담긴 삼강행실도의 효자도에선 대략 10%가 식인효도를 한 효자였음


그리고 삼강행실도는 조선 유자들의 백성교화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했기에, 조선시대에 가장 많이 인쇄된 책이었음


그 결과 삼강행실도의 식인효도 미담들은 세종과 다른 유자들이 의도한대로 조선 방방곡곡으로 퍼지며 조선인들의 심성에 침투했음


그 결과 점점 더 많은 조선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식인효도를 행했음이 조선왕조실록에서도 확인됨


예컨대 중종실록 21년 7월 15일, 강원도 관찰사 황효헌의 도내 효행 보고를 보면, 왼손 무명지를 잘라 태우고 약에 타 아버지께 드린 최응록의 미담이 소개됨 (물론 아버지의 병은 치유되었음)






이후 17세기 초 동국신속삼강행실도를 보면 식인효도에 대한 집착이 광기의 수준에 이르러있음

효자도 전체가 742건인데 그중 무려 236건이 식인효도에 속함

거의 효자 셋 중 하나가 식인효자였던 것인데, 동국신속삼강행실도가 우리에게 펼쳐보이는 것은 실로 식인의 전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임


이처럼 조선왕조를 지배했던 식인효도의 짙은 그림자는 심지어 20세기에도 드리워져서


<삼강행실도 -약자에게 가해진 도덕의 폭력> 이라는 논문을 보면 저자는 지인의 어머니가 할고의 후유증으로 돌아가셨다고 쓰고 있음


효도를 절대시하고 광기어린 미신의 대상으로 삼은 결과 한반도는 그야말로 식인의 왕국이 돼버렸던 것임


  이 미개한 습관이 조선 후기에 근대화 되면서 서서히 사라져갔었고 일제강점기 때 금지하면서  표면상 완전히 사라지게 된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