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시간을 돌려 조선시대 말기로 가보자. 조선 말기는 정말 헬게이트가 따로 없었다. 실제로 남아있는 통계나 기록 등의 객관적 자료를 살펴보면 조선 말기에는 평균수명이 30세를 넘지 못했다고 한다. 대기근으로 수백만의 백성들이 죽기도 했다. 대원군 때는 경복궁을 증축한다고 국가재정이 거의 파탄에 갈 정도가 되었으며, 목재 수송 등을 위해 수많은 백성들을 강제노역시켰다. 이런 것들이 쌓여 백성들이 못살겠다며 일으킨 동학농민운동을 외세를 끌어들여 진압하게된다. 이 과정에서 외국인들의 힘을 빌어 백성들을 학살한 이씨조선 왕족과 민씨일가에 대한 분노도 극단으로 치닫게 된다. (국사시간에도 배우지만 초기의 동학농민운동의 성격은 절대로 반외세가 아니었다.) 대한제국이 들어오면서 뭔가 좀 바뀌나 했더니, 전제군주정이 그대로 계승되고 경제개혁들은 모조리 실패로 돌아가며 백성들을 또 비참하게 만들어버린다.
맨 위 사진은 전후로 비교한 서울의 일반적인 풍경이다. 일제가 들어오자 여러가지가 많이 바뀌게 된 것이 사실이다. 우리 교과서엔 안나오지만 평균수명과 인구 모두 두 배 가량 늘어났다는 객관적인 통계가 존재하며 굶어 죽는 사람들의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전엔 여가활동이라곤 알지도 못했던 백성들이 조금만 아끼면 화려한 서양식 건물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었고, 문학등의 예술도 이때 엄청나게 발달한다. 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점중 하나로, 일본은 근대적인 법제도를 도입해서 공정한 재판을 조선인들에게 선보였다. 과거 무조건 '주리를 틀어라!' 식의 말도 안되는 전근대적 사법제도와 고문을 전면폐지한다. 고문을 아예 안했다곤 볼 수 없긴하지만 적어도 조선시대에 비해서는 확실히 나아졌다. 전두환 시절까지만해도 한국도 고문을 했으니까. 무조건 주리를 틀고 자백을 받아내는 전근대적인 사법제도는 사라지고 돈 없고 힘 없는 국민들도 판사들에 의해 어느정도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남녀평등을 확립시키기 위한 제도의 일환으로 여권도 크게 신장되어 여성들이 과거보다 더 인간다운 삶을 살게 된다. 초등교육과 대학 등 고등교육도 이때부터 등장한다. 거의 강제로 일만 할줄 알던 백성들이 예술에 관심을 갖고 아래 사진처럼 휴가를 갖고 놀러다닐 수 있게 된 것도 일제시대부터다.


정작 백성들의 입장에선 자신들이 더 먹고 살만해지게 되었으니 조금씩 일본에 더 안주하게 된다. 조선이나 대한제국의 권력을 빼앗긴 구 기득권층이 주도한 사건들은 몇몇 더 있긴 했다만, 35년 동안 "민중"들에 의한 집단, 조직적 대규모 항의는 3.1 사건뿐이다. 조선 말기에는 이런 항의가 계속해서 일어났었다. 조선이 외국 군대를 끌어들여 백성들을 진압한 것과 일제가 경찰력을 동원해서 진압한 것들 중 어느 쪽이 더 낫다고는 섣불리 말하기 어렵다. 수탈의 증거라고 말하는 산미증식계획도 여러 통계와 기록이 '수탈'이 아닌 정식 '수출'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농민들이 돈을 벌기 위한 일환으로 일본에 수출한 것을 무조건 수탈로 교과서에 기록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왜곡이다. 정신병환자에게 경을 읽어주며 복숭아 나무로 때리면 치료할 수 있다고 믿는다거나, 폐병에 두개골을 먹으면 낫는다고 믿어 도굴이 횡행하는 등의 얼토당토 않은 미신들로 인한 폐단을 막기 위해 강제로 집행한 법, 지나치게 비싼 가격을 요구하는 무당들의 횡포를 막기 위해서 수수료의 상한을 제한한 법 등을 무작정 민족문화말살이라고 교육하는 것도 왜곡이다. (위의 예들은 20세기 초에 신문기사로도 기록이 남아있는 것들이다.)
이런 사실들을 믿기 어려우시면 도서관 등에서 직접 당시 자료를 찾아보고, 귀찮으면 그냥 그때 살았던 할아버지들에게 물어봐라. 교과서를 보면 노인들에게 일제시대는 지옥이고 일본은 악마들이어야 한다. 하지만 노인정 같은데 가서 봉사활동하면서 물어보다보면 의외로 일제시대에 대한 감정이 없단 걸 알게된다. 이른바 전두환 시대가 소문으로 대공분실이니 광주힉살이니하면서 듣던거와는 달리 살기가 매우 좋았던  거랑 맥락이 비슷하다. 강제징용도 오해가 많다. 실제 강제징용은 징병제와 별로 다를 것이 없었으며 위안부를 소집한 것들도 주로 "조선인" 포주들이었다. 그렇다고 애초에 왜 조선인 포주들에 대한 책임은 묻지 않고 일본에만 책임을 묻는 것인가? 물론 일제시대 끝무렵 (44년~45년) 정도 가면 일본이 여러 방면에서 수탈한 것은 사실이다. 다만 조선에만 한것이 아니라 대만을 포함한 모든 식민지, 일본 본토 내까지 전쟁을 위해 총동원을 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때는 조선인뿐만 아니라 내지인, 즉, 일본인들도 엄청난 수탈을 격어야만 했다. 조선인만 한정해서 괴롭힌게 아니란 뜻이다.
사실 이런면에서 보면 한국 교과서 왜곡은 심한편이다. 역사적 사실에 가치를 개입해서 "의의"랍시고 우리에게 유리한대로 해석하는 것도 엄밀히 말하면 왜곡이자 선동이다. 유청년 시절의 기억은 일생을 결정한다. 나이가 어릴때 학교에서 주입받은 교육으로 길들여진 정보는 뇌 속에 강렬하게 각인되어 이성뿐만 아니라 감성에까지 영향을 주게 된다. 그런 측면에서 일본을 악마화하면서 정치적인 세뇌교육이라는 표현이 극단적이긴 해도 적절한 용어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얼마나 그 세뇌가 쉬운지도, 한번 걸린 반일 세뇌를 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도 심각하게 따져볼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