憲機第八三六號

京城測量學校를 졸업한 한국인이 이곳에 와서 지금 열심히 사유 토지 측량에 종사하고 있다.
들은 바에 의하면 그들은 原州·橫成·寧越·旌善의 각 郡을 위해서 측량수 30명을 배치하였다고 한다. 또 그들은 이 기회에 측량해 두지 않으면 후일 일본에 몰수될 것이라는 말을 무지한 양민에게 퍼뜨리며 수수료를 징수하고 측량을 행한다고 하기에 주의 중이다.
原州郡에서는 그들은 군수에 대해 인민은 이 기회에 자진해서 측량을 받도록 명령을 내리도록 하라고 신청하였다고 한다.
이상.
明治四十二年四月二十二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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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42년은 1909년,토지조사사업은 1910년


일본이 토지를 몰수한다는 구라로 조선인들이 양민들 토지를 수탈하고 다녔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