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내가 강조하려 했던건 애덤 스미스는 도덕성의 구현을 기업인들에게 전부 맡기는 것이 아니였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임. 애덤 스미스는 특정 계급이 자신들의 이익을 보편이익으로 호도하여 독점을 비호하는 정책들을 관철시켜 공공에 해악을 끼쳐 왔음을 국부론에서 논하였고, 그들에 대해서 비판을 하는 실천적인 내용 또한 적었기에 국부론을 단순한 자유방임주의적 경제학 저서로서 보면 안된다는 것이였음.
전반적으로 임일섭씨가 저술한 '개인이익과 국가개입에 대한 애덤 스미스의 인식:오이켄의 애덤 스미스 해석 비판'을 읽어보면 좀 더 세세하게 알 수 있을거임
이거 포인트가 좀 애매한 거 같은데. 글쓴이 게이가 이야기한 '도덕성이 완벽히 갖추어진 상태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경제를 조정한다'는 쬐끔 극단적이긴 함. 근데 내가 인용한 글에서도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이익추구를 하지 않는다' 라는 수준의 도덕성은 전제로 깔잖아. 근데 구성원들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수준에서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수준의 도덕성을 달성한 사회에서 자본주의가 작동한 적은 없으니, 애덤스미스가 이야기한 형태의 자본주의 국가는 현실에 존재한 적 없다고 주장하는 건 가능하지. 물론 애덤 스미스의 자본주의가 자본주의의 이상형인지는 다른 문제지만.
포인트는. 글쓴이 게이의 주장이 '완벽한 자본주의 국가는 존재한적 없다.'정도로 읽을 수 있고 이건 존나 건전한 주장임. 이거 내가 논쟁의 맥락을 몰라서 정확하게는 모르겠는데, 만약 게이가 '완벽한 공산주의 국가는 없었다'로 모종의 이슈를 방어하려고 하거나 ""현실"" 자본주의 국가의 결함을 바탕으로 자본주의 자체를 공격하려고 할 때에는 상당한 부담이 된다는거임.
게이가 준 논문초록만 봐도 '올ㅋ' 싶은 논문이긴 한데, 포인트는 '진정한'이라는 단어는 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쉴드를 못 친다는 거임. 애덤 스미스를 계급적 관점에서 읽어서 '얘는 계급을 옹호했응께 자본주의가 진정하건 말건 나가리' 이렇게 판을 짜고 들어오면 상대측에서 '그건 니 생각이고'라고 하고 들어가면 카운터 없음. 계급이 철폐된 완벽한 공산주의는 자본주의 따위와 비교할 수 없다고 쳐도 애초에 '그 계급의 철폐라는 게 가능하긴 한거요?' 라고 물으면 답 없는데?
이게 아예 자본주의와 마르크스주의가 자본가와 노동자의 고용관계에 대한 인식 자체가 다른 곳에서 출발함에 따라 생기는 근본적인 견해차에서 생긴 오해같은데
알다시피 자본주의는 노동자에 대한 자본가의 고용을 정당한 이익창출의 방법론으로서 보는 반면 마르크스주의는 일방적인 자본가의 착취라고 본단 말이지, 그래서 '완전한 자본주의, 즉 피해를 안주는 상태의 자본주의는 없다'라고 주장하는 것이고
그래서 이건 아예 좁혀지기가 좀 어려운 이야기인 것 같음, 의견은 어떤 이야기인지 알았고 내가 어떤 부분에서 좀 간과했는지는 알겠음 ㄱㅅㄱ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