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싫다고 해도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나이를 먹게 되지. 


 그래도 옛날엔 분명 꿈이란 게 있었는데 지금의 나는 뭘까.


0.


 늦은 주말 오후. 


 낮잠을 자던 중 갑작스런 요의에 잠에서 깨 무기력한 몸을 일으키자 난장판이 된 방이 눈에 들어왔다.

 


 주중에 알바를 다니면서 귀찮다는 이유로 방 정리를 미룬다는 게 고작 1주일 만에 세 평짜리 쪽방을 쓰레기장으로 만들 줄이야….

 


 볼일을 보고 칫솔을 입에 문 채 하나하나 분리수거를 하고 쓰레기봉지들을 문 밖에 내놓자 그나마 사람 사는 집구석 같아 보였다. 


 칫솔을 꽤 오래 물고 있던 까닭에 입을 행궈도 한동안 입 안이 얼얼했지만, 그것보단 피곤이 먼저 앞서 자연스레 몸이 침대로 향했다.


 문제는 대충 정리를 마치고 다시 침대에 눕기가 무섭게 휴대전화가 울렸다는 것.


 엄마였다. 


 받을까. 하고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끊기고 몇 초쯤 뒤, '아들 잘 지내?' 라는 문자가 날아왔다.


 '응, 잘 지내.'라고 적당히 둘러 대려다, 하반기 공채에서 물만 배터지게 마신 게 생각나서 그대로 폰을 덮었다.


 어째서 계속 살아가는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그 질문에, 나름대로의 답을 얻기 위해 지난 세월 동안 적지 않은 시간을 고뇌해왔다.

 

 혹자는 자신의 영달을 위한다고 할 테고, 더러는 보다 많은 이들의 행복을 위해 살아간다고들 한다. 

 

 뭐, 지금의 나는 둘 중 어느 쪽에도 끼지 못한 상태에서 마지못해 삶을 영위하고 있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으면 더 이상 내일이 오지 않기를 기도한다. 


 고졸, 문돌이, 일용직, 막노동꾼…. 모두 나를 지칭하는 말이다. 


 전역을 하고서도 3년, 더 이상 자신을 장기구직자라 포장하기도 창피할 정도로 내게 이렇다 할 경력이나 자격증, 스펙이라 할 만 한건 없었다.


 그저 하루 벌어 하루 목구멍에 풀칠하는 게 끝인 하루살이 인생.

 물론 나라고 처음부터 이러고 살았던 건 아니다. 


 분명 내게도 꿈이 있었고 그걸 이루기 위해 노력하던 때도 있었다.


 인피니트 스트라토스. 


 지금도 창문 너머 상가 건물 옥상의 광고판에 실린 물건. 


 약칭이 한 때 시끄러웠던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과 같지만 그래도 현 세대 사람들은 자주 IS라는 이름으로 부르곤 한다. 


 어느 날 홀연히 나타난 천재 과학자 시노노노 타바네가 발명한 멀티 폼 슈트. 


 학창시절 매일같이 반복되는 현실에 풍화되어가며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 살아가던 나는 처음 등장한 그 순간부터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줬던 그 꿈의 날개옷을 동경했다.


 비록 남자인 나는 그 옷을 아주 잠시나마 입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겠지만 하다못해 정비라도 배워 그 동경의 대상에 한 발짝 가까워지고 싶었다.   


 근데 왜 지금 이 따위로 비루하게 살고 있냐고?


 백기사 사건.


 그 때 우리 가족은 부산의 해운대에서 여름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다만 나는 겨우 부모님을 설득해서 일본의 IS 초기 공개 자료를 얻을 명목으로 일본 행 비행기 티켓을 손에 넣었고, 어머니의 배웅을 받으며 막 출국 절차를 밟고 있었다.


 상식 있는 현 세대 사람들 중 이 사건이 무얼 의미하는지 모르는 이들은 없을 거다.


 그 사건의 전말을 생각하면 당시 차멀미 때문에 펜션에서 쉬고 있던 둘째는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시작은 미약하고 무시 받았지만 극단적인 무력시위나 다름없는 그 사건 이후, 세계 각국은 IS의 존재를 인정하고 알래스카 조약이라는 것을 맺어 그 과학자, 시노노노 타바네가 제조한 467기의 코어를 배분하고, 일본 근해에 인공 섬을 조성하여 IS학원이라는 단체를 결성한 뒤, IS를 우주 개발과 스포츠로만 이용한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이는 일부 전문가들의 시각에서 봤을 때, 세계의 분열을 미연에 방지하고, 이미 20년 이상 진행된 동북아시아의 군비 경쟁을 포함한 상호 군비 확충시대를 어느 정도 해결해 줄 수도 있는, 인류에게 있어 하나의 분기점과도 같은 사건이라 할 수 있었다….


 라고 지껄이는 게 현 세대 사람들의 주 의견이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백기사 사건 때 시노노노 타바네 박사가 자신의 발명품의 위력을 과시해 보이겠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을 위해 전 세계에서 해킹한 미사일들이, 자그마치 2341기이다. 


 매우 당연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것들이 핵탄두를 탑재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고, 대외적인 발표에 따르면 미사일의 대부분은 그녀의 발명품인 IS로 요격을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때 해운대에서 막내와 함께 물장구를 치던 내 아버지를 비롯한 4682명의 사람들을 불태워 죽인 건 대체 어디서 날아온 미사일일까.


 열일곱 청춘의 한줄기 빛이라고 여겼던 존재가 자기 힘을 과시하기 위해 가족 둘을 불태워 죽였다. 


 빈 말이라도 좋으니까 누군가 거짓말이라고 말해줬으면 했었다. 


  더군다나 그 사건 직후 아버지와 동생의 장례를 채 마치기도 전에 채무 관계에 있던 사람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들어와 집안은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나버렸고, 그 배상금과 아버지의 사망보험금은 순식간에 공중분해 되어 이름도 모르는 이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가 버렸다. 


 아버지와 막내를 가슴에 묻고, 어느 정도 정신을 추슬렀을 때 IS를 향한 내 감정은 무기력한 분노와 증오뿐이었다. 

 

 그동안 집이 아파트에서 빌라를 거쳐 버스도 잘 다니지 않는 시골 어딘가의 다 쓰러져 가는 조립식 집으로 옮겨가고, 어머니께서 열 두 시간씩 공장에서 일을 하시다 쓰러지고 다시 일을 나가시기를 반복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일손을 거들려 한 나에게 따귀를 올려붙여 고등학교 졸업장 정도는 따게 해 주신 어머니의 희생은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사연이겠지만, 한낱 싸구려 신파극의 소재 같은 일도 그걸 직접 몸으로 겪은 이들에겐 한 없이 서글픈 기억으로 남아 평생을 가져가게 되겠지. 


 인생의 목표가 없어지자, 대학 진학도 포기했고 이런 상황에서 공시충 코스프레를 하거나 계속 집구석에 붙어있는 것도 사람 할 짓이 아닌 것 같아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갔다 온 뒤에는 자연히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삶이 시작됐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슬퍼할 겨를도 없이 동생의 정신과 치료를 위해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내셨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금에 이르렀다.


 젊은 시절 수 없이 바뀐다는 그 흔한 꿈 하나도 없이 더 이상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일상들은 흘려보내며 3년이 지나갔고, 그렇게 세 번의 벚꽃을 혼자 구경하는 사이 늘어난 건 뱃살둘레와 흰머리, 한숨뿐이었다.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냉장고에서 마지막 남은 맥주를 한 캔 꺼내 따고 창가로 나가자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그걸 보니 오늘 자고 일어나면 내일부터 다시 하루를 살기 위한 전쟁터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울적한 기분만 앞섰고, 입안을 감도는 맥주의 청량감과 약간의 알코올만이 그나마 내 기분을 위로해주고 있었다.


 무심코 내다 본 창밖은 저녁노을이 아름다웠다. 내 인생이 저 노을의 1할 만큼이라도 아름다웠으면 할 정도로 말이다.


---

인피니트 스트라토스에 불행 포르노를 끼얹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