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팍이고 히오스 밈을 잘못 알고 있긴 해도 분석을 꽤 정확하게 해서 갖고 와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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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은 합당으로 망한게 아니라 이미 망했기에 불가피하게 합당이라도 한 것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제3당들이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원래 신당은 창당시 반짝 했다가 거품이 빠지면 본래 지지율이 드러난다. 선거가 임박하거나 실제 선거가 되면 사표 방지 심리 때문에 더 추락한다.


그런데 이준석 신당은 그 거품이 워낙 빠르게 걷혔고 지지율이 낮게는 3%까지 찍혔다. 벌써 지지율이 3%면 완전히 망한거다. 그 지지율이면 운좋아야 비례 2~3석 건지는게 끝이고, 운나쁘면 봉쇄조항 3%도 못 뚫어서 깔끔하게 0석행이다. 그런 최악의 상황만은 어떻게든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준석은 합당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이번 합당으로 인해 이준석은 얼마 안 되는 지지자들마저 많이 등 돌리고 떠나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준석의 핵심 지지층이 사실 둘로 나뉘어져있었다는 것이다. 같은 지지자로 보였겠지만 사실은 두 부류로 나뉘어져있던 것이었다.


A그룹: 이준석 개인 팬클럽 - '이준석이 곧 길이요 진리요 빛이다. 그것이 페미니즘이라 할지라도 용인할 수 있다'

흔히 말하는 아이돌 팬덤에 가까운 사람들이다. 사실 웬만한 유명 정치인들이 팬덤을 가진건 그다지 드문 일이 아니다. 젠틀재인, 잼마을, 청년의꿈, 위드후니 등등. 그리고 이런 팬덤은 팀이나 집단, 세력으로서의 정체성보다 정치인 개인에 집착하는 면이 상당히 강하다. 팬덤이라고 무조건 부정적인 측면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유명인들에게 팬덤이 형성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


하지만 이준석의 팬덤이 다른 정치인들의 팬덤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악개'와 비슷한 성향을 띄고 있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멤버에게 방해가 된다면 소속사든 소속 그룹이든 다른 아이돌 그룹이든 닥치는대로 공격하고, 심지어 같은 그룹 멤버까지도 눈에 거슬리면 공격하는 아이돌 악개처럼 이준석 개인 팬덤은 이준석과 사적으로 친해보이면 상대 정당 소속이거나 반대 가치를 지향하는 정치인이라도 칭찬한다. 하지만 어제까지 칭찬하던 같은 진영의 정치인도 이준석에게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얘기를 하는 순간 갑자기 태도를 바꿔 맹비난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이렇게 이준석의 모든 의견에 동의하고 모든 행동을 옹호하며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이준석을 철저히 보호하려 한다. 이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어떻게든 이준석에게 뱃지를 달아주는 것이다.


즉, 어떤 가치를 지향한다기 보다 이준석이라는 '인물' 을 따르는 것에 방점이 찍혀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전부터 이 집단이 가장 자주 하는 말이 바로 '일단 지켜보자. 준석이가 알아서 잘 하겠지. 준석이도 다 생각이 있겠지'다. 


B그룹: 안티페미 - '다 집어치우고 반페미 이거 하나만 해라. 이 나라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문제와 불평등의 근원은 페미니즘이다.'

이 그룹은 일본의 재특회(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와 상당히 유사하다. 재특회의 재일 한국인을 페미니즘 내지는 여성으로 치환하면 이 그룹의 특징이 무엇인지 알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정치권, 법원, 시민 사회, 방송계, 교육계 등 사회 곳곳에 페미들이 침투해 한국을 페미로 물들이고 남성들은 2등 시민으로 전락해 탄압받고 있다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상당히 공격적이고 배타적인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페미가 척결되면, 국방, 안보, 경제, 복지 등 이 나라의 문제들 대부분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페미들과 맞서 싸우는 것을 일종의 '남성 독립 운동' 정도로 여긴다. 그리고 자신의 요구를 정치인의 언어로 풀어 자신들을 대변해 주는 유일한 정치인이 이준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이준석을 지지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이준석이라는 개인이 아니라 '반페미'라는 가치를 수호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까지 읽어봤다면 알겠지만, 지금 크게 분노하는 것은 B집단이다. 그동안 대부분이, 심지어 이준석 본인조차도 단일된 하나의 지지층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A, B의 핵심지지층이 이번 합당을 통해 분화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A의 상당수는 여전히 지지할 가능성이 높겠지만, B의 상당수는 이탈할 것이다. A는 이준석의 정치적 성공이 목적이기 때문에 이번 합당 과정과 당소속 인물들이 썩 마음에 들지 않을 지언정 뱃지를 다는 것이 최우선순위기에 충분히 할수 있는 행동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들은 설령 이준석이 비례 2순위로 출마한다 하더라도 말바꾸기에 실망해 지지를 거두기는커녕 현실적으로 필요한 판단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반면 B는 이번 일에 크게 분노하고 있다. 원래 돌아선 팬들이 가장 무서운 법이다. 그간 그렇게 좋아하고 따르던 이준석에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붓고, 그동안 자신들이 흐린눈하며 눈 감아 주고 적극 옹호해주던 이슈들을 전부 끌어와 맹비난한다. 이들은 실망하는 것을 넘어 자신들이 완전히 배신당했다고 여긴다.


이들의 분노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다 필요 없고 반페미 그거 하나만 하랬더니 그게 그리도 어렵더냐. 그동안 열렬히 지지해주고 가족, 지인들 설득하고 당원도 가입하고 당비도 냈더니 좌파, 페미, 전장연에게 당을 통째로 상납한다고? 개혁신당의 당원인 내가 자고 일어났더니 좌파페미가 된 세계라니...'


이들 입장에서 이번 합당은 도저히 용납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니다. 이준석이 류호정과 깜짝 결혼을 발표하고 '그럼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 같이 이 시대의 마지막 로맨티스트가 되어 눈물로써 호소하는 충격적인 이벤트라도 발생하지 않는 한 B그룹의 대부분은 떨어져 나가는 것을 넘어 이준석의 안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아마 당분간 무당층 내지는 정치혐오층 내지는 이전 소속 정당이었던 국민의힘 지지자로 돌아갈 것이다. 아마 페미 이슈 때문에 민주당 지지자가 되진 않겠지만, 만약 반페미를 주요 기치로 여기는 정치인이 민주당에 등장한다면 민주당 지지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외에도 이준석 지지층 내에는 반윤 보수층, 온건 중도보수층, 국힘의 권위주의적인 모습에 실망한 보수층, 양당에 대한 비토를 기반으로 제3당을 기대하는 정치 저관심층 등 다양한 유형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쪽의 대부분은 라이트한 지지층이고 별도의 분석이 필요없을 정도의 미미한 세력이다. 이준석 신당의 지지율이 4~5%에 불과했는데, 그 소수 집단 내에서도 또 소수 세력이면 사실 실질적인 의미는 없다고 봐야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이준석에게 크게 실망했다고 올라오는 수많은 글을 볼 때마다 솔직히 그런 반응들을 보는 것이 더 놀랍다. 이준석을 강경하게 지지하는 사람들은 최근 2~3년 내 이준석의 지지층이 된 사람들이 많을텐데, 그동안 항상 느꼈던 것이, 이준석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이준석에 대해 가장 잘 모르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


이준석은 지금까지 정치를 하면서 결정적인 순간에 소신을 택했던 적이 없다. 별 근거 없이, 별 생각 없이, 수습 불가능한 것들을 마구잡이로 질러놓는 것이 그의 특징이었다. 그리고 매번 나중에 적당히 말을 바꾸고 그것을 포장하며 합리화를 해왔다. 그런 이준석에게 제3지대 통합은 낮은 지지율로 말라죽어 가던 상황에 충분히 고려할만한 선택지였다. 지금까지 이준석이 보여왔던 모습들을 고려하면 정체성과 소신을 지키며 자강을 택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다.


통합하기 직전 갤럽 여조 기준으로 개혁신당의 지지율은 3%였다. 이는 현실에서 지지자를 찾아보기도 힘든 수준이며, 국민들의 냉혹한 평가가 이미 끝난 것이다라는 징표다. 사실 이준석에 대한 유권자들의 평가는 이미 오래 전에 끝나있었다. 단지 국민의힘 내부에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가려져 있던 것이, 당에서 떨어져오자 그 가림막조차 없어지며 선명하게 드러났을 뿐이다.


그동안 여러 커뮤니티들에서 흔히 보여온 반응인 '왜 이렇게 이준석을 비판하는 사람이 많냐'라고 하는걸 볼 때마다 정말 황당하게 느꼈다. 오히려 거꾸로 질문하는 것이 맞다. '과거의 정의당보다도 훨씬 못한 지지율이 나오는 정당과 정치인에 대해 유독 왜 이렇게까지 고평가를 하는가'가 올바른 질문이다.


예전에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이라는 게임이 있었다. 신기하게 현실에서 이 게임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유독 인터넷에서는 고평가를 했었다. 이준석은 정치판의 히오스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히오스도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인터넷 어딜가나 보이는 소수 팬덤들이 열심히 '시.공.조.아' 를 외쳤다. 하지만 이렇게 밈으로 소비되는것조차 한계가 닥치자 결국 아무도 찾지 않는 게임이 되어 버렸다. 기본적인 게임성이 받쳐주지 않는데 억지스런 찬양과 홍보로는 본질을 가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