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에 대해 굉장히 잘쓴 글이 있어서 가져와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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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산업발전 전략이 미국-독일-일본과 다른 점이라면, 바로 '숙련을 우회한다'라는 것이다. 즉, 산업을 고도화하는 과정에서 핵심 장비나 개념을 수입해오는 방식으로 고도화가 일어났기 때문에 그런 것임.


이런 특징 때문에 제조업을 포기하고 금융-서비스업 위주로 나간 일부 유럽 국가들보다는 고용창출이 잘되고 있으나, 전방산업을 담당하는 대기업이 소재/장비를 국산화하는 후방산업에 기여를 별로 안하고 있다고 보면 됨.


일례로 소부장 산업이 빵빵한 독일의 경우 2010년대 기준으로 대-중소 임금격차가 10~15% 수준밖에 안됐음. 동시기 한국의 대-중소 임금격차가 2배 수준이었다는걸 생각해보면 굉장히 큰 차이. 다만 최근 들어서는 독일도 비정규직이 확대되며 노동시장 이원화로 인해 대-중소 격차가 조금 커졌고 한국은 최저임금을 급격히 인상하며 격차가 다소 줄어들었긴 함(최저임금을 감당할 여지가 안되는 중소기업들이 고용을 줄였다라는건 일단 무시하고)


그런데 이를 해소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흔히 제시되는 '대기업에서 핵심장비나 기술의 국산화를 국내기업이랑 협업해야 한다'라고 하면 약간 틀린 말. 보통 국내 대기업들은 내부이윤 극대화를 위해 중소기업에 대한 기술탈취에 나서면서 이걸 협업이라 하는 경우도 자주 목격되기 때문. 따라서 이걸 해소할수 있는 정책은 크게 2가지.


1. 비효율적으로 사용되는 공공 RnD를 어떻게 하면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에 쓸수 있을까?

2. 기술탈취를 해도 리스크를 받지 않는 시장질서를 어떻게 잡아야 하나?


앞에서 숙련을 우회한다고 했는데, 이걸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근로자의 숙련이 필요하지 않아도 되는 공정을 설계한다는 것임.


가령 현기차의 공정 자동화/로봇화율은 메이저 자동차 메이커 중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져있음. 그래서 고졸도 현기차 생산직에서 일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음.


독일이나 일본 등은 단계를 밟아가며 배후의 소부장 근로자의 숙련도를 올려서 중소기업의 배후지원이 튼튼해진 반면, 한국은 중소기업의 장기재직율이 매우 낮은데, 이런걸 바꿔서 장기근속자의 숙련이 중요한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임.


간단하게 말해서 한국에서는 대기업이 말로는 협업인데 실제론 중소기업이 설계를 해오면 다른 기업에 설계를 넘겨주고 그 기업하고 원가경쟁을 시키는 경우가 많음. 이러니 중소기업 사장들이 기술개발을 등한시하고 원가, 인건비 절감에만 혈안이 되어있는거.


'사실상 중소기업을 대기업이 착취하는 중이다'라고 말하면 제대로 설명이 안되니 조금 중립적으로 말한다면 '전방산업만 발전하고 후방산업은 발전하지가 않아서 후방산업으로 이윤 전달이 안됨'이라고 말하면 조금 중립적인 표현이라고 볼수 있을거 같음


한국은 발전 과정에서 핵심 설계와 장비는 외국에서 수입해오는 전략을 택했고, 그렇게 현기차의 공정자동화 비율이 세계 제일이 되었듯 전방산업은 빠르게 공정최적화에 집중할수 있었고, 이 덕분에 imf의 상흔을 딛고 2010년대 초중반까지도 선진국 치고 상당한 고성장을 이어온 배경이 될수 있었음. 하지만 이러다보니까 전방산업의 발전이 후방산업에 가져오는 낙수효과는 독일/일본 대비 적을수밖에 없었음.


근데 기술탈취하는 대기업에 대해선 착취한다는 표현을 써도 이상할건 없을거 같음. 리스크가 너무 없음. 법정싸움으로 가면 중소기업이 망할때까지 견딜수가 없거든. 국내에서 기업고발을 할수 있는 곳은 공정위 한곳 뿐인데 여기도 인력이 없거니와, 전관예우라는 달콤함에 위협을 받기 쉬운 구조라.


결국 결론은 '사람의 기술경쟁력이 올라올수 있도록, 일반 숙련공이던 엔지니어건 사람에 대한 투자에 공공 RnD 예산을 적극적으로 써야 한다'라고 볼수 있음. 근데 이것도 디테일이 중요한게, 이런 식으로 나가면 흔히 쓰이는 정책이 '직업학원을 통해 기술습득을 지원하자'인데, 이게 효율이 엄청 낮음. 오죽하면 사실상 국비 빼먹기라는 평까지 나오겠음?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공공 RnD에 대한 평가체계를 개선하는 것이 우선임. 윤씨마냥 무식하게 예산을 자른다고 하면 피해는 하위 연구원들이 볼수밖에 없음. 연구건, 숙련공 육성이건 숙련도를 쌓게 해줘야 한다는 취지와는 어긋나는거임.


그럼 왜 일본과 한국은 다른 길을 가게 되었는가? 일본은 고도성장기에 전방 제조업이 자리를 잡으니 소부장이 같이 자리를 잡았음. 이유는 좋게 표현하면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이겠지만, 중립적으로 표현하면 그 특유의 종신고용 문화 덕에 근로자들이 장기간 근속하며 숙련을 축적할수 있었음.


반면 한국은 고도성장기 때 쌓여온 비효율이 IMF로 한번 터지는 시기가 있었는데 이때 대기업들이 과도한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쓴 방법이 바로 '비핵심부문의 외주화'였음. 이 과정에서 배후의 벤더들에게도 고강도의 원가절감압력을 넣어 본인들의 이윤을 확보했고, 결국 이 과정에서 배후기업들은 원가절감을 위해 어쩔수 없이 근로자들을 정리해고하는 방향으로 갔기 때문에 중소기업이 숙련공을 육성할 기회를 놓쳐버린 반면 대기업들은 고수준의 기술을 요구하는 소재나 장비를 만드는 국내기업이 없었기 때문에 외국에서 수입해오는 방법을 쓰기 시작했고, 이게 지금까지도 벌어지는 대-중소 임금격차의 원인이 되었음.


그러니 자체 RnD 역량이 없는 중소기업을 도와주는 쪽으로 공공 RnD를 설계하고, 그밖에도 노동자의 장기재직을 유도하는 인센티브, 새롭게 유행하는 연구가 개발, 제조와 한 클러스터 안에 모일 수 있도록 하는 설계 등등이 필요해보임.


사실 멀리 갈것도 없이 독일의 연구개발 체계를 베끼는게 가장 좋아보임. 지난 정권 때 산자부 차원에서 산업클러스터 기획까지는 해놨는데, 아무래도 부처간 칸막이라는게 있다보니 산자부 주도로는 연구 개발 기능까지 한 곳에 모아넣긴 힘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