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방서에서 근무한 의무소방 출신임.

하루는 아파트 화재대응 훈련 업무를 따라갔음.

따라가서 사진찍고 짐들고 잡일하는 역할로 갔는데, 훈련 시작하자마자 비상용 승강기를 점검한다고 소방공무원들 포함 총 5~6명이 같이 탐.

우리가 아는 방화복도 입고 공기호흡기 메고 완전무장한 채로 다 탔음. 나도 입음.


상식) 비상용 승강기는 실제 가동시 1층으로 강제로 내려 보낸 뒤 탑승하여 원하는 층을 누르면 논스톱으로 올라감.

우리는 꼭대기 층이 목적지 였음. 

근데 잘 올라가다 갑자기 엘레베이터가 덜커덩 하고 멈추더니 전등도 꺼지고 층수 표시가 안 나타나는 거임. 

엘레베이터에 갇힘.

 


일단 황당했음. 하지만 직원들이 엘레베이터 구조 실전 경험이 많았어서 안심은 되었음.

생각해보면 갇혀있는 사람 중에 제일 안전한 사람들 아니겠음?

서로 어이없어하면서도 직원들이 웃으면서 각 층 버튼도 눌러보고, 

버튼 조작 뚜껑도 열어서 만져보는 걸 보니 그냥 바로 나오겠구나 생각했는데, 

잘 안되니까 당황하기 시작함. 

 

근데 훈련 일정때문에 빨리 나와야 했음. 옥상 대피시설 점검에 소화설비 수압체크에 할게 많았음

그래서 함께 빨리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봤는데, 총 3개가 나왔음.

1. 119상황실에 신고한다.

2. 다른 차를 타고 온 대원들에게 연락해서 구조받는 것, 두 개가 나옴. 

3. 다 포기하고 엘레베이터 기사에게 연락해서 꺼내달라 한다.

 

각자 의견을 나누었는데 

1을 선택하면 ㅈ됨. 119상황실에 신고하면은 일단 상황실에서 휴대전화번호를 수집하고 공유함.

만약 같이 갇혀있는 소방관의 휴대폰으로 연락을 한다? 

상황실에서 훈련나간 소방관이 도와달라고 119상황실에 신고하는 것을 알아차리면 ㅈ되는게 뻔함. 게다가 무조건 소문 나게 될 거니까 절대 하면 안됨.

또 나는 휴대폰을 일하는 도중에는 사용할 수 없어서 내 폰으로도 신고가 불가능함.

어찌저찌 잘 숨겨서 신고한다고 해도 갇힌 엘레베이터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소방관들이 출동하라고 할거고,

지금 여기 갇혀있는 소방관이 갇혀있는 본인을 꺼내기 위해 출동해야 하는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질 거임

 

2를 선택해도 ㅈ됨. 다른 센터에서 온 팀도 훈련을 같이 왔는데 다른 아파트 동 옥상에서 훈련하는 상황임.

걔들한테 이야기해서 엘레베이터 열쇠 가져와서 꺼내달라고 하면 됨.

근데 하필이면은 그 사람들은 개빡센 당시 훈련담당자의 무전 지휘 아래 옥상에서 소방호스들을 묶어서 고층아파트 옥상과 지상의 소방펌프차를 건물 밖 수직으로 연결하는 미친 노가다를 하는 중이었음.

무전 듣는다고 온 신경을 세우고 있는데 휴대폰을 받을 여유따윈 없었음.

게다가 무전으로 엘레베이터 열쇠 가져와서 우리 좀 꺼내달라 말해야 하는데 

당시 훈련담당자가 개빡센 사람이라 우리 꺼내달라고 말하면 무조건 ㅈ됨.

심지어 소방무전은 항상 실시간 녹취되고 본부상황실에서 다 들음. 사건사고소식 뉴스 보도될 때 사고당시 소방무전 녹취록을 언젠가 한번은 들었을 것임. 누군가가 우연히 듣는다? 바로 무조건 소문 나게 될 거니까 절대 하면 안됨.

 


다 포기하고 엘레베이터 기사에게 연락해서 꺼내달라 한다를 선택함.

엘레베이터 업체에 구조요청을 했는데 구조에 15분 안팎으로 걸린다 했음.

엘레베이터 기사님을 기다리기로 했는데 싸한 분위기 때문에 농담을 해서 좀 풀어보려고 했는데 힘들었음. 

'소방관이랑 같이 훈련 도중에 엘레베이터에 갇힘'이라는 상황이 존나 어이없고 웃겨서 이악물고 참음.


긴 15분이 지난 뒤 엘레베이터 수리 기사님이 왔음.

수리를 마치고 문이 열리는 순간 기사님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남음.

엘레베이터 문을 열었는데 방화복을 입고있는 사람 3~4명에 무전기까지 챙긴 풀-무장한 소방관들이 여러명 있는 걸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